마야는 뭐 다른 생각할 필요도없이 100퍼 불교, 힌두교 쪽 마야 이 어원에서 따온건데
마야의 산스크리트어의 의미는 '환영(幻影), 속임수, 외관(外觀)'의 뜻이다.
즉 덧없는 바닷물결거품같은 신기루같은 현실세계라는 건데
그럼 주인공 마야가 쫒는게 환상일 뿐이고 결국 주인공 마야의 꿈은 실패하게 되는건가? 이런 합리적 의문이 들게하거든
우파니샤드에서는 세상이 연극 무대처럼 진짜 집이 아니고,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환영(幻影)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마야(maya)라고 하는데, 우주의 본체이며 창조의 근원인 브라흐만이 만들어놓은 그물망이라고도 하고,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마야를 환영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환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상은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사용하는 공간일 뿐이라는 뜻이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본체이고,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해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지만 세상은 늘 변하고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환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살고있는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자만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지혜가 부족한 사람, 즉 무지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 avidhya)[15]이다. 그러니깐 무명은 우리 눈을 가려 자신의 참모습, 우주의 근원을 볼수 없게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이것은 거울과 같이 맑은 마음에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지혜를 담아야만 없앨 수 있다.
완전히 유리가면 이야기지???? ㄷㄷㄷㄷㄷㄷㄷ
우파니샤드 보면 작가가 거의 70% 이상 주인공 이름이랑 전체 스토리 배경 중심생각을 여기서 가져왔을것같은데
복잡한 이야기지만 해석해서 유리가면 스토리에 적용해보면,
지금까지 주인공 마야가 추구하던 '유리가면'의 세계, '천의 얼굴의 세계', 그렇게 불꽃같이 열정을 태우던 연극이라는 세계에서 대 여배우로 성공하는게 결말이 아니라, (그건 '마야'환영에 빠져 무지에 허우적거리는 무명의 거짓이라는 말임)
그것 , 연극에 대한 몰입 역시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인식하고 더 변화롭고 다채롭고 바뀌어가는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는게 결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것.
연극에 불태우던 자신이 마야, 무명에 불과했음을 자각하고 부정적자아, 한계가 있는 자아를 극복하고 더 완전한 깨달음의 자신으로 나아간다 뭐 이런건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극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갖거나, 사고로 몸을 다쳐서 연극을 할수없게 되거나, 심지어는 갑자기 아침드라마처럼 불치병으로 죽을수도 있으리라는 것.
그냥 평범하게 철학적 의미같은거 포기하고 그것이 비록 환영의 거짓 꿈이라 하더라도 대배우가 되서 잘먹고 잘살았으면 좋겠는데 ㅠㅠ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즈에 이 양반이 그런 루트를 준비하고 있었던것 같지는 않다 ㅠㅠ 어케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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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짠데? 불교에서 항상 말하는게 공즉시색 이러면서 현실의 욕망을 쫓는게 덧없고 그걸 극복하고 진리를 깨닫고 열반해라 이런거잖아. 거기서 부정적 현실세계로 설명되는 개념이 마야 그 자체야. 애초부터 작가가 한계를 지워놓은 네이밍임.
마야란이름은 흔해서 저런거 생각한건 아닌거같은데
물론 아닐수도 있지,,
ㄷ ㄷ
+++ 더해서 스승 이름도 츠키카게=월영=달그림자 잖아. 달그림자 도 흔히 덧없는 현실세계와 비슷한 이미지로 쓰이는 말로 마야랑 같은 의미로 볼수있겠네
초반엔 그런생각했다 늙어서 전개 바꾼거같은데
야 이거 괜찮은데? 마야 연기하는거보면 가끔 미친년같아서 불쌍할때도 있음 그 드럼치는 영화 결말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