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으로 지적된 전투의 문제.
나우시카의 전투에만 초점을 맞추면 할말없긴한데, 그게 전부였냐고하면 글쎄라고 생각하는게 크샤냐가 있어서.
하나의 군단을 통으로 지휘하면서 도르크와 전투/탈출 등을 하는데 지적된 패턴과는 전혀 다르니까. 피를 묻힐 수 밖에 없는 크샤나와 그와중에도 살생을 피하려는 나우시카가 보여지는 대목이라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고 비중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함.
2. 중후반부 캐릭터
애새낀 사실 언제봐도 좀 붕뜬느낌이긴함. 토왕의 소개와 크샤나/도르크의 화해를 위한 장치라는 느낌. 그래도 토르메키아 국왕이나 황자는 그만하면 충분히 인상깊고 좋은 단역들이라 생각함.
애초에 크샤나의 언급과 작중 묘사에서 더 다듬어질 캐릭터나 스토리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적어도 난 모름
3. 묘소의 파괴
나우시카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었으니까 구질구질하게 변호해보겠음. 묘소는 분명 '인류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행동하고 있으며 그 계획이 끝난 후에는 히드라가 보관한 예술, 생물들과 묘소에 있는 이상적인 인간들이 지구를 차지하겠지. 그때까지 살아남은 인간들도 기술로 정화된 지구에 살 수 있을거고(따라서 댓글의 주장은 틀림. 적어도 인간에 한에서는)
그런데 '구하는 인류와 지구'는 뭐지? 멸망 혹은 오염되기 이전의, 혹은 독자가 현재 살아가는 환경과 인류일것임. 그래서 그 상태를 복구하기 위해 부해를 가속시켜서 정화를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 묘소는 도르크의 황제에게, 그 이전의 국가들에게 기술을 제공하고 분쟁을 일으켜서 부해를 확장시킴. 즉 현재의 인류와 생물은 묘소가 구하는 대상이 아님.
하지만 나우시카에서 반복되는 요소 중 하나는 오무, 곤충, 곰팡이들의 생명과 그 위대함임. 이것들은 묘소가 지구 정화를 위해 만든 인위적인 생명이고 오염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만화내에서 증명하고 있음.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역시, 나우시카의 행적과 도르크와 토르메키아의 화해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함.
그렇다면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의 생물들과 인간들 역시 생명의 가치에 포함되어야하는게 아닐까? 이들이 (구시대의 기준으로)오염 그 자체거나 오염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이라 해도,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생물인데? 이게 묘소에 가기 직전의 나우시카가 얻은 결론임. 그 동안의 모든 행적과 대결을 통해서(특히 키메라한테 진실을 알고 나서) 말이지.
그래서 나우시카는 묘소를 파괴할 수 밖에 없음. 나우시카의 '생명'에는 현재의 오염과 그 생물들이 포함되며 우선시되고(왜냐면 현재를 살아가니까) 묘소의 '생명'은 자신이 만들어진 구시대의 기준이고 거기서 나아가질 못했으니까. 묘소는 살아있는 이상 이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고 현재의 생명을 파괴하겠지. 그래서 나우시카는 묘소가 생명이 왜 소중한지조차 모르는 불쌍한 괴물이라고 하는거. 그걸 안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거나 앞으로는 안할테니까.
메베는 착한 기술이고 묘소는 나쁜 기술이냐? ㅇㅇ 왜냐하면 묘소는 생명을 무시하고 죽음을 흩뿌리니까. 묘소가 생체 컴퓨터고 과학기술의 집합체고 세계의 계획자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묘소를 파괴하는 수단이 뭐지? 구시대의 세계을 파멸시키고 파괴적인 거신병이었지. 그래서 나우시카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것처럼 이 생물체를 사랑할 수 없음.
하지만 거신병은 나우시카라는 어머니를 만나 오마라는 이름을 얻었고, 지성을 얻었으며 어머니의 뜻대로 묘소한테 선빵을 맞기까지 하면서 싸움전에 대화를 시도하고 죽어가면서도 어머니에게 자신은 착하게 행동했냐고 물음. 그래서 나우시카는 이 흉악하고 파괴적인 생물체를 동정하고 결국 최후에는 걸맞는 칭찬을 해줌.
난 솔직히 미야자키 작품들의 환경적 메세지에 많이 공감하지 않음. 애니메이션 나우시카는 솔직히 지적대로 반기술/과학적으로 보였고, 원령공주도 자연중심적 사고가 인간중심적 사고와 동격취급되는게 우스웠음. 나도 이런 스탠스 졸라 싫어하거든.
하지만 만화 나우시카는 이런 환경적 스탠스들을 초월한 인간과 생명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 기준에서 미야자키 최고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임. 센치히로 좆까
나도 묘소 파괴를 그 글에 나온 것처럼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좀 의아했었음
본문에 쓰긴 애매해서 댓글로 쓰는데, 난 도르크 왕이 참 맘에 들었음. 이상적인 인간의 묘사를 듣고 '그런 건 인간이라 할 수 없지...'라고 함과 동시에 나우시카를 인정하며 보호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인간중심적 사고였음. 원령공주처럼 대립관계로 남은것도 아니고 서로를 인정했으니
그리고 오염이 생명에 필요하다면 그건 오염인가?란 얘기는 과학적으로 생각해도 재밌음. 애초에 산소란 새끼는 초창기 지구에선 개 좆같은 새끼였고 지금도 영생을 막는 원인으로 꼽히거든
솔직히 구세계 싸그리 쓸어버리려는 묘소를 구세계에서 살아온 나우시카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기를 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대결해야 하는지 이해 안 간다고 얘기한 부분은 좀 의아하긴 했음. 하물며 신도시 짓는다고 퇴거명령 떨어지면 세입자들도 죽어라 싸우잖아ㅋㅋㅋ
1)작품외적으로 미야자키의 반기술적 편견 때문에 묘소를 파괴하는 스토리로 가는 건 난 반대라는 의미임. 2) 내 맘에는 안들지만 작품내적으로 개연성이 충분하면 내가 뭐라할 건 못되는데, 작품내적으로도 문제가 있었음. 첫째, 앞서 이야기한 전반적인 초압축전개의 악영향으로 묘소 들어가서는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하면서 충분히 갈등이 발효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덩어리대사-덩어리대사-덩어리대사 식으로 설명전개로 소설처럼 되어버려서 문제. 둘째, 나우시카가 그간 보여준 덕성은 삶의 관계를 다르게 배치할 수 있는 변화 능력이고 이게 이 만화의 알파요 오메가. 죽음으로 달려가는 오무를 돌려세워서 삶으로, 삶의 의지를 갖고 서로를 죽이려는 인간들을 다시 건강한 배열로. 등등. 황제마저도 성불시키는..캬..
그런데 묘소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대안적 관계 변화'를 모색하지 않고 바로 생사 투쟁으로 들어가서 파괴하는데, 이건 물론 단지 평화주의만이 아니라 파괴와 생존본능 역시 생명의 훌륭한 고귀성의 일부라고 하는 식으로 미화하고 넘어갈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나는 그런 장점보다도 이전의 캐릭터성과 주제를 무너뜨리는 자기파괴적 전개로 보였기에 문제라는 거임.
셋째, 그리고 작품외적인 미야자키의 편견이 작용하는 점인데, 난 묘소를 부숴야 하는 근거들 자체는 동의하지만, 그 근거들은 미야자키가 부수고싶어서 외삽해서 억지로 붙여놓은 거지, 작품이 전개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작품 내에서부터 생성되어서 독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는게 아니라고 봐서 문제라는거임. 묘소가 굉장히 여러모로 악역인데, 타협의 여지도 주지 않고, 그럼 그걸 작품 초중반부터 슬슬 녹여내서 복선을 깔고 회수를 해야 결말인거지, 아무런 장치도 없이 마지막에 "이런 설정"이다 라고 들이미는건 이세계물 수준의 전개라고 봄. 그래서 문제
1) 3이랑 같은얘기같음 2)묘소와의 갈등은 중반부터는 나왔다고는 생각함. '생명을 조작하는 기술'이나 도르크 왕의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전쟁같은 언급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4권부터는 등장했다고 생각함. 또한 묘소 전의 키메라 역시 멸망전부터 이어진 요소고 묘소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대립했다는걸 고려하면 이 키메라와의 대립도 묘소와의 갈등
에 포함해야한다 생각함. 두번째 나우시카는 살생을 혐오하며 기피하고 자비를 베푸는 캐릭터가 맞으나 폭력과 살생을 완전히 배제하는 캐릭터도 아님. 공주로써 필요하기에 전쟁에 끼어들었고 크샤나와 함께 있으면서 폭력을 사용하는 입장도 알게 되었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지킬 수 없는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다고 자만하는 캐릭터가 아니고.
나우시카가 구한 황제는 도르크의 군대를 이끌고 토르메키아를 박살내려는 육신이 아니라 육신을 잃고 허무와 암흑에 빠진 영혼이었지. 애초에 나우시카는 자신을 죽이려는 황제를 구하려 시도한 적이 없고 힘을 잃고 가엾은 영혼만이 남은 황제였음.
거신병은 파멸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으나 나우시카를 어머니로 생각하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지성으로 본능을 통제하고 대화할 수 있는 존재기에 나우시카의 인품에 변할 수 있었음. 그래서 묘소는 이 존재들과 같은 존재가 아님. 저 생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이상 더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니까.
무엇보다 나우시카는 묘소를 파괴하면서도 자신이 한 일의 죄악에 몸서리침. 나우시카는 그 이외의 방법이 없었고 그럴 수 밖에 없기에 묘소를 파괴했으나 그럼에도 묘소의 죽음과 신인류의 죽음을 슬퍼함. 애초에 묘소의 목적 역시 그 당시로는 최선이었단걸 인정하고. 그래서 나우시카의 캐릭터성은 붕괴하지 않았다고 생각함.
3) 묘소라는 인물 그 자체로만 보면 앞에서 언급한 얘기들이 있더라도 뜬금없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음. 하지만 묘소는 인물 그 자체보다도 목적과 사상이 더 중요하고 이는 작품에서 전개되었다 생각함.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어리석은 인간이 이 별에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이 별을 더럽히는 인간은 없는 것이 낫지 않은가? 애니메이션을 포함해서 이 질문은 계속
던져졌고 반복되며 나우시카를 압박함. 그리고 그 답을 얻었고. 그래서 묘소의 파괴는 인물의 파괴가 아니라 이 질문과 그 세계관의 파괴를 보여주는거라 생각함. 그리고 자꾸 반기술적 편견이 등장하는데 난 묘소의 계획 이후의 인류야말로 반기술적 편견을 보여준다 생각함. 그런걸 인간이라 부를 수 있나?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전쟁과 기술이 없는 인간을?
묘소라는 인물로 저 질문을 상징화하고 파괴하는 것이 그래도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읽은놈이 좆같다면 그게 끝이지 뭐. 하지만 주제에 맞지 않다거나 얘기하는 '편견'이 주제를 해친다는건 동의하고 싶지 않음.
묘소는 기술이며 악역이 된 이유에는 미야자키의 기술혐오가 작용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만화 내에서 묘소가 파괴되어야 하는 이유는 묘소는 인간과 생명의 가치를 망각했으며 파괴하는 기술이 되었기 때문이고, 나우시카는 묘소의 기술보다도 묘소의 가치관과 오랫동안 대립했고 싸웠으며 먼저 승리했다는게 더 중요하다 생각함
어... 오래전에 다른곳에서도 했던 말인데 창작자로써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던 시절일때 (지브리 선립 이전부터 모노노케히메 완성 전 쯤 까지) 긴 시간을 두고 연재한 작품인 나우시카 만화판 이야말로 미야자키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함.
연재기간이 너무 길어서 초기 연재본에 느껴지는 사상과 마지막 결말에 느껴지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궁기준의 사상이 달라졌다.. 또는 더 확대되었다! 라고 볼 수 있지. 언제나 노스텔지어를 꿈꾸는 만화가 양반인 미야자키가 바라는 이상의 세계에 대한 작은 묘사같은거라 생각하는데 ..... 그 후 만화가 양반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명감독, 명제작사 대표가 되었고 꾸역꾸역 신작을 만들어야되는 환경에서 자기가 지닌 찌꺼기 까지 짜내다가 결국 이름뿐인 제작사만 남기고 은퇴..? 복귀한단 이야기도 있지? 하게되어 저 파괴는 묘소의 느낌을 가끔 ... 지브리를 보면서 느끼고 있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