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평가목록


윗 단락에서 "가볍게 추천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니다" 라고 서술되었듯, 이니오의 작품은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흔히 오타쿠라고 불리는 류의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컨텐츠들, 만화, 일본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 등은 현실을 마주하기 보다는 싫은 현실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현실 대신 있어주면 좋을텐데' 싶은 망상 세계를 그린다. 가장 노골적인 형태는 이세계물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장르의 컨텐츠들은 정확히 마주하고싶지 않은 현실에서 벗어나 즐거운 모험과 위험하지 않은 위기, 그리고 미소녀들이 있는 환상의 세계를 그린다.

이세계물이 아니더라도 대략 '오타쿠계 서브컬쳐' 라고 부를만 한 종류의 컨텐츠들은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많은 소년 소녀용 만화들은 예컨대 부모님이 없는 상태를 그리고 있다. 혹 주인공의 부모가 등장하는 경우에 이들은 결코 불쾌를 만들어내지 않는, 전적으로 만화적인 성격을 가진 비현실적인 캐릭터성을 띤다. 현실적인 부모님이란 거추장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대리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카이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춘기의 치기어린 (물론 정상적인 성장과정에 속하는) 연애감정을 극단적인 상황설정에 맞물리게 함으로써 세계 전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격상시켜 누구나 겪고 지나가는 소소한 성적 감정이 성취되지 못하고 끝나는 데서 오는 상실감을 과장하고, 이를 통해 그 작은 상실감이 부수효과로 가져오는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크게 즐기게끔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중요한 일, 중요한 감정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임을 아는 것이 적절한 현실 인식이고, 이 현실 인식이 자신의 일이 실은 별 거 아니라는, 나르시시즘의 부분적 손상을 초래하는데, 픽션의 세계 속에서 그 사소한 일의 중요성을 세계 존망의 문제 급으로 키워 나르시시즘의 손상마저 일어나지 않게 한다.

현실에서라면 반에서 가장 예쁜 여자 아이에 대한 욕망을 품지만 자신이 별로 대단한 남자가 아니라든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말조차 걸지 못한다든지 하는 시시한 이유로 좌절되었을 일,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상실감을 느끼는 것조차 조금은 창피한 일일 그런 것이, 그 예쁜 소녀의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나(주인공)밖에 없고, 나는 그 소녀가 예뻐서 욕정을 품은 게 아니라 단지 상냥하게 대해줬더니 내가 그 소녀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버렸고 그러다보니까 그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식의 '아름답게' 포장된 서사가 꾸며지고, 그 소녀가 희생되지 않으면 세계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제시됨으로써 "세계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일 때문에 피치못하게 겪게 된 상실이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상실에 대한 내 감정적 동요는 아주 합당한 것이며, 나는 이 감정을 당당하게 즐길 수 있어!" 같은 식이 된다는 얘기다. 종합하자면, 잘 팔리는 오타쿠계 서브컬쳐 컨텐츠란 기본적으로 Escapism의 성격을 띠고있으며, 바로 이 Escapism이 주는 쾌락이 그 상품들이 팔리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싶은 환상을 보게 해 줌으로써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것이 기본적인 비지니스 컨셉트다.

반면 이니오의 작품은 현실에 육박해들어간다. 그래서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블리치, 흔히 순정만화라고 부르는, 소녀들이 꿈에 그리는 훈남이 저돌적으로 대쉬해 오는 무수한 여성 청소년용 만화들, 여러 미소녀가 등장하는 남성 청소년용 만화들 등등과 성격이 다르다. 예컨대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의 경우 노골적으로 후쿠시마 이후의 일본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이 멋진 세상>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멜랑꼴리를 담아내는 작품이다. 따라서 전술한 성격의 작품들이 가져다 주는 것과 같은 쾌락은 제공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니오 작품이 다른 Escapism계 컨텐츠들과 성질을 달리하는 점이다. 물론 픽션 작품이라는 게 근본적으로는 어느정도 보고싶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소비자의 사랑을 받는다, 라는 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그런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도 결국은 '한심한 Escapism 따위는 보고싶지 않아. 리얼한 걸 보여줘' 라는 식의 욕망에 부응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차원에서는 단순한 Escapism 뿐인 작품과 구별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거 쓴놈은 진짜 새벽감성에 물든 힙스터친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