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길가를 걷다보면 장애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버스를 타도 휠체어 탄 장애인이 오면 기사가 내려서 버스를 태워주는데 기다리는 승객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길가에 장애인이 별로 없죠. 장애인이 돌아다니기에 너무 불편하고 비난까지 듣기 때문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이동권을 보장하라고 20년 동안이나 주장했지만 들어주지 않아서 이번에 지하철에서 출근길 시위를 했습니다.

독일의 모습은 왜 한국과 다를까요? 바로 히틀러 나치 집권과 관계가 있습니다.

나치의 우생학 때문에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의 2/3인 600만명이 학살됐습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서 장애인과 환자가 21만명 학살당했습니다. 강제 불임, 아동과 노인 살해도 자행됐습니다. 우생학은 가축을 교배시킬 때 열등한 종자를 도태시키듯이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이런 우생학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생각이죠. 우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죠?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대학교를 줄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회사 등에서 늘 듣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교육은 나치의 우생학 원리를 목표로 삼고 전쟁에서 싸울 병사들만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거를 할 때 우리는 모두 1표씩 투표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재용도 1표, 윤석열도 1표, 하버드 나온 이준석도 1표입니다. 왜냐면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다른 무엇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재용이 세금을 더 낸다고, 이준석이 하버드 나왔다고 100표를 주지는 않습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못한다고 지각을 자주 한다고 투표권을 반만 주지는 않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장애인들은 모두에게 되묻습니다. 지하철이 일 잘하는 사람들 지각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하라고 만든 건가요? 사람이면 누구나 어디 가고 싶을 때 편하게 가라고 만든 겁니다. 그런데 장애인은 그런 지하철이 무섭습니다. 여러분, 지각하면 회사에서 혼날까봐 무섭습니까?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밥을 먹으려는데 젓가락이 무섭고, 의자에 앉으려는데 의자가 무섭고, 계단을 오르려는데 계단이 무섭습니다. 이번 시위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가까스로 한 것입니다. 오늘도 장애인들은 지하철 바닥에 누워 묻습니다. 장애인에게 고통을 주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지하철과 버스는 이 시대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아니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