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NUYES씨. NUYES씨에게 고소를 당한 IBEX라고 합니다.
제가 NUYES씨에게 고소당하기전 제가 심경 고백과 저는 어떤 사람이란 걸 알려드리고, 어떻게 살아왔고, 왜 제가 NUYES씨에게 욕설과 기분 나쁘게 발언한 글들을 작성하게 된 경위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이 글을 씁니다. 26일에 저의 친동생의 휴대전화로 제가 비겁하게 저의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목조목 사과를 요하는 부분에 대해서 제가 죄송하다고 욕을 한 부분과 비하한 점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유선상으로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저도 생각을 정리하여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NUYES씨가 답답하게 느끼신 부분도 있고 고소당하니 형식상으로 한 사과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할꺼라고 생각합니다.
0월00일 고소접수 스샷을 보고 오늘 0월 0일까지 제가 심경에 많은 변화를 느껴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육하원칙에 맞는 사과글은 아니여서 제 마음가는대로 적는 글이라 사과만 보시고 싶다면 결론만 읽어주셔도 됩니다.
저는 4년제 대학교를 2007년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과는 허브소재전공이었고 고등학교 때와 달리 남녀가 한 공간에서 같이 교수님에게 강의를 듣고 저는 mt도 빠지고 아싸였기 때문에 저는 대학교생활에도 관심이 없었고 학과 또래들과도 제 폐쇄적이고 말수가 없는 성격탓에 친해지기 어려워 교우관계를 형성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 산에 가는 산악부 동아리 활동에만 전념했으며 동시에 학생회관 지하에 있는 그룹사운드 동아리에 가서 무작정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다고 그랬습니다. 연주하고 싶은 악기를 물어보아서 무작정 베이스기타라고 대답했지만 베이스기타는 리듬감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거절당하고 동아리 연습용 어쿠스틱기타를 치라고 주어 만지게 되었습니다. 콜트 어스70으로 보이는 기타였습니다.
저는 코드도 모르고 메트로놈도 모르고 4분의4박자나 8분음표 4분쉼표라는 이런 박자개념도 몰랐기 때문에 당시에 학과 수업이 끝나면 그룹사운드 동아리 지하에 가서 통기타를 1번 프렛부터 4번 프렛까지 잡고 6번 줄부터 1번 줄까지 크로매틱 이라는 걸 알려주어 그걸 만지고 왼손에 통증을 느끼고 뿌듯해했습니다. 미라레솔시미 개방현 음들을 외우면서 좋아했습니다. 2008년 여름방학 때는 짝사랑에 실패한 슬픔을 일렉기타로 풀기위해 그해 2008년 8월에 외할아버지 돌아가시던 달에 군 입대 하기전까지 삼호일렉기타 상, 하 교본을 사서 스콰이어 에이브릴라빈 텔레캐스터와 펜더트위드 케이스를 아버지가 주시던 용돈으로 구입하고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아버지가 젊었을 때 야유회 가서 통기타를 치던 사진을 봤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기타를 기타학원 가서 1~2달 자세라도 배울래? 라는 권유에 당시 아싸였던 제 어두운 성격에 거절하고 집에서 자기만족에 빠져 삼호일렉트릭 상권 몇 페이지 따라하다가 이내 군대가는 8월달이 되어 흐지부지되고 그 일렉기타는 군대에 일요일마다 통기타 교회반주를 하던 군대 동기에게 휴가 복귀 날 군대에 가지고 가 팔았습니다.
그 당시 4년 레슨을 받아 지옥의 메카니컬 기타 트레이닝 책 마지막 연습곡을 쉽게 치고 에이브릴라빈 곡도 즉석에서 나오길래 그 맞선임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저는 에피폰 통기타와 군대동기가 가지고 있던 자마통기타로 원스 ost인 falling slowly를 타브 악보 보고 박자도 없이 연주하고 자기만족 했습니다.
저는 랩음악을 사랑합니다. 대학교 리더쉽 커뮤니케이션 시간 때 장래희망에 Hey ya라는 곡을 부른 Outkast를 적었고 2007년도 그때부터 외국 힙합음악을 들어왔고 mc스나이퍼, 스토니스컹크, 바스코, 각나그네, 키네틱플로우, 프리스타일과 소울컴퍼니 음악등을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짝사랑하던 여자아이에게 전화상으로 몽환의 숲을 불러주었고 영어강의때도 랩을 좋아한다고 하니 여자교수님께서 랩 음악 같은 거 하려면 서울로 가지 그러냐 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군 제대 후 저는 과에서 허브소재전공이 없어졌다는 통보도 못받고 원래 그 과에 물리치료과로 전과하기 위해 입학했는데 제 학점도 2.6 이정도여서 학교생활과 강의등에도 별로 재미도 못느끼고 혼자 도서관에 가서 연습장에 랩가사를 끄적거리고 방황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수능을 권유했을때 선뜻 받아들였고 그 후 계속되는 수능에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제 동생이 2명이 있는데 첫째동생이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동생과 같은 나이의 학생들과 제가 같이 수업을 받는다는게 모양새가 안좋았기 때문에 실패한 수능에서 전문대를 진학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저는 신디사이저를 만들고 싶었고 그걸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고싶었습니다. 또 믹싱엔지니어들이 예전에 음향학과가 없었을 당시에 전자공학으로 많이 입학한걸 알고 무작정 전자과에 들어가게되었습니다. 실상은 반도체를 배우는 학과라 졸업후에 그 계통으로 취업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제 나이가 28살이었기 때문에 학과 사람들과도 서먹서먹하고 친하지 않아서 전문대 2학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 교수님이 설명한 회사로 가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경기도 데마시아에 있는 삼성 반도체 협력업체에서 4조 3교대로 웨이퍼 유지보수를 하는 메인터넌스라는 직업을 수습기간 3개월동안 2015년 9월부터 12월까지 일하다 교육을 받으러 간 화성사업장에서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여자 차장에게 회사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고 부장님과 면담후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께서는 꾸중을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그럴수도 있다며 다른 일을 찾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29살의 나이로 2016년에 현재 백수인 상태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건축일을 하시기 때문에 저는 법대를 가려다 노가다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살기가 어렸을때부터 싫었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에 어렸을때부터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머니 지갑에서 만원을 훔쳐서 장난감 로봇을 샀다가 그걸 아버지에게 걸려
밤 10시에 내복바람으로 아버지 손에 붙잡혀 그 장난감을 산 문구점까지 가서 제가 산게 맞는지 문구점 주인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바램대로 살기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공부가 싫었는지 이윤 모르겠지만 전문대에 다니던 1학년 여름방학때 서울로 올라가 건대입구에 있는 고시원에서 2달간 근처 이모집과 고시원 거주생활을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축구를 배우고싶어 내방역에 있는 오병이어축구교실과 2007년도 4년제 대학을 다닐때 못배웠었던 베이스기타를 랩의 리듬을 기르기 위해 홍대입구에서 레슨을 2달간 받게 되었습니다. 그걸 받으면서 십몇년간 레슨을 하시고 세션활동도 하시고 밴드활동도 하시는 레슨선생님을 보면서 저는 악기를 직업으로는 삼기가 힘들다는 현실을 피부로 체감하고 두달간 레슨받고 집으로 내려오게되었습니다.
사실 데마시아에 있는 반도체 협력업체에 가게 된 이유도 지방과 달리 지하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해 수도권 어디든 금방 갈수있고 레슨이 활발한 경기도와 서울에서 작곡을 위한 청음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데마시아에 있는 늘벗신창아파트에서 방 하나에 2~3명씩 거주하게 되면서 아파트에서 7명이 생활하게 되면서 저는 그곳에서 악기를 연습할 여건도 전혀 안되었고 뭔가를 할 수가 없었고 단지 무거운웨이퍼를 들기 위해서 마른 제 몸을 살찌울 헬스장밖에 제가 피로를 풀곳이 없었습니다. 교육을 받으러 가던 달에 저는 디씨 가요갤러리에서 활동하던 보컬트레이너에게 개인레슨을 받으러 데마시아에서 어린이 대공원역까지 갔으나 제 나이가 많았는지 제가 구랫나루를 안자르고 왔는지 제 연습량이 모자를것같았는지 거절당하고 그 달에 회사로돌아가라는 통보를 받고 반도체 협력업체를 퇴사하고 집으로 내려오게되었습니다.
집으로 내려와 저는 던파라는 게임을 하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아버지는 작곡 할려고 악기를 만지고 시퀀서 프로그램을 만지고 하는 아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 안하고 살거냐고 물어봤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제사 외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엊그제 저와 동생에게 용돈을 주시면서 저에게 20만원을 주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고소당하기 전까지는 힙합음악을 만들고 싶어했고 샘플링 클리어 문제도 불거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Nishihara kenechiro나 re:plus, blazo 처럼 재즈힙합 정확히는 멜로우 힙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5월달이 되면 롤랜드의 디지털 피아노를 사서 연습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물론 고소당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저는 후회하고있습니다. 제 나이 29 내년 2017년에는 30살이 됩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렸는지 세월의 무성함만 느껴집니다.
저는 디씨인사이드 악기갤러리를 제가 전문대에 입학할 때 2014년도부터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대기업취업반도 들어갔고 음악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장비를 사려면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취업을 생각하고 경기도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기도의 집값에 향후 10년은 벌어야 겨우 집하나를 살수 있다는 그런 현실에 저는 반도체 공장에서 월 200도 못버는 그런 생활이 새벽안개에 7시에 버스를 하차하고 내리면 안전모 쓴 아저씨들과 반도체 공장에서 청소하시는 아줌마들과 나이드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저도 저렇게 나이가 들거라는 불안감에 앞날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그 직업에 만족을 못했습니다. 원래 대학교가 2월에 졸업식을 하기 때문에 그전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려고 했습니다만 이른 00월달이 되자 결과적으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NUYES씨가 보시는 것처럼 저는 악기갤러리를 비롯해 작곡갤러리에 부정적인 글과 댓글을 달기 때문에 갤러들에게 평판이 안 좋습니다.
갤에서 웃고 떠들고 바보짓하면서 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때론 제 사진을 올리자 그걸 보관하고 있던 갤러가 그걸 올리면서 조롱하고 놀리고 때로는 전문대생 좇문대라고 놀리고 때로는 퇴사자 백수 아이백수라고 놀리고 때로는 퇴사당해 집간 사람에게 집에 언제가냐고 댓글로 놀리기도 합니다.
저는 민감하게 생각안했습니다.
예전 정사 갤러리가 있을때부터 코갤이 있을때부터 디씨인사이드는 욕설과 비꼬는 글이 많았고 현시대에 와서는 일간베스트와 동격인 사이트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디씨인사이드
악기갤러리는 사이트에서 욕설이라는것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도 저에게 댓글로 니에미라고 하였기 때문에 고소장에 니에미-고소인의 친모모욕이라고 적혔을때 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NUYES씨의 화가 풀리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0월 0일부터 저 똥파를 지칭하여 특정성과 공영성이 성립된다는 댓글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저를 노리고 저격하기위해 사전에 계획하고 저를 약올리면서 힙알못이라고 힙찔이라고 병신똥파라고 하시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떠나서 제가 잘못한점은 욕설을 내뱉은 점 여자친구를 빗대어 표현한점
레슨생을 얼빠라고 한점 등 대표적인 잘못들이 있고 여기에 구체적으로 명시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나빠서 제가 한 욕설들에 대해서 일일이 인지를 하고있지 못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제 기억력이 나쁜것에 대해 NUYES님도 알고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0월0일 00시 00분에 글을 적고있고 지하철이 가까운 홍대입구역 근처에 제가 거주하고있었더라면 술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하고 제 잘못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제가 지방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NUYES씨가 저에 대해 고소 취하는 생각하고 있지않은점에 저는 NUYES씨와 술자리하는게 꿈같은 일이라고 간주하고있습니다.
사실 닥터케이라는 필명으로 저에게 메일을 보내실 때 저는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친목을 하려고 해도 저는 랩을 못한다는 이유로 안껴주기 일쑤였고
저는 같이 할 사람을 찾기위해 여지껏 힙합갤러리사이트를 한것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못구했고 현재 29살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자라나는 15살 16살이 래퍼하겠다고
그것이 꿈 장래희망이라고 밝히고 있는 현재 2016년도 이 시기에 저는 꿈이 없습니다.
꿈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NUYES님이 닥터케이로 보내셨을때 저는 카톡을 보냈고 교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샘플링을 할때 mpc를 사용하시냐고 여쭤봤고 프로그램은 무엇을 쓰시는지 노하우를 알고싶었습니다. 사실 비트 4개 받은것도 처음엔 샘플링이 아닌 피아노연주를 쓴 비트였기 때문에 샘플링 힙합이아니고 재즈힙합같은것이라 의아해 하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좋게들었고 그 비트로 랩을 하고싶어서 랩을 보냈습니다. 저에 랩실력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도 해주길 바랬고 그래서 쿨에디트로 컴프를 어떻게 하고 했다는걸 밝혀 녹음물과 함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00일 고소당한걸 00일에 닥터케이한메일 스샷을 보고 알게되었고 저는 순간 속은것에 대해 분개해 제가 구입했던 힙합 시디를 손으로 망가뜨렸습니다. 손에 피도 약간 났습니다만 눈에선 눈물이 그치질 않더군요. 제가 좋아해서 구입했던 시디였는데 이렇게 막을 내리니 제가 그동안 힙합음악을 들었던게 한심하고 자괴감이 휩쓸더군요. 나름 2007년도부터 들었는데 어디가서 힙합많이 듣는다고 사석에서 그러지않고 현실에서는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으로 주위사람은 제가 힙합음악을 듣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밝히기전까진 노래방에 가서 제가 랩을 부르기 전까진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요? NUYES씨와 저는
이것은 호소하는 글이 아닙니다. 저의 죄를 정상참작해달라는 글이 아닙니다.
단지 저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고 저는 지금 00일날에 그 이후에 글 쓰면서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라는걸 인지시켜드리고 싶었습니다.
단지 저는 디씨인사이드 악기갤러리 게시판에 저에 대한 험담을 다른 갤러들이 제가 고소당했다는 이유로 제가 악역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저를 비하하는 글이 보기가 싫었습니다.
저는 단지 이러한 일이 벌어진것에 대해 갤러들이 불난집 구경하듯이 생각하는 세태가 너무 밉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사소송이 되고나서도 그이후에 악기갤러리를 하지않겠습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계기가 제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가 했기때문입니다. 저는 큐오넷에서는 글도 안남기고 누구를 험담하거나 욕설을 쓰지않습니다.
이해해달라는 글이 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디씨라는 사이트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트라고 생각하고 욕설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세태에서 제가 너무 경솔하고 조심성이 없고 나잇값 못하는 어른이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제가 전혀 NUYES씨에게 비하한게 일어나지않았을때보다 당신의 기분이 나아질것이라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저는 심경이 괴롭습니다. 고소당하고 난후 저의 일과는 점심때서가 되서야 일어나 오줌을 싸고 제방에서 눕고 시체처럼 나병걸린 환자처럼 누워만있습니다. 가끔 tv를 보러 거실에 나가거나 아프리카tv에서 다른 사람 뭐하는지 보거나 할뿐입니다. 디씨 게시판을 확인할때도 있고 당신의 답변이 오진않았는지 카톡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경찰서에서 보겠죠? 수사관이 말하면 저는 부정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잘못한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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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먹고 왜 저러는겨... 커뮤를 좀 끊고 일을하지
심지어 저글도 오래전 글임 ㅋㅋㅋ 지금 30중반 무직백수 - dc App
이거 공지에 박아서 모기향처럼.피워놓고싶다ㅋㅋㅋ쟤 못오게
몇달전이었나 개념글 대부분이 형철이욕이었는데ㅋㅋㅋㅋㅋ 모든사람들이 형철이 차단해서 욕하는사람이 없음 - dc App
작문 꼬라지 ㅋㅋㅋㅋㅋ
그냥 병원을 가지 씨발..
뭔소리냐? 나 할배인데 저거 먼소린지 몰라서 제미니한테 물어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