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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id=firstHeading class=firstHeading>심영 (배우)</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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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
출생</TH>1910년 9월 3일
경성부<TH style=\"BACKGROUND: #f9f9f9\">본명</TH>심재설 (沈載卨)<TH style=\"BACKGROUND: #f9f9f9\">사망</TH>1971년 7월 24일 (6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TH style=\"BACKGROUND: #f9f9f9\">다른 이름</TH>靑木沈影 (아오키 진에이, 일본식 이름)

심영(沈影, <SMALL>일본식 이름</SMALL>: 青木沈影 <SMALL>아오키 진에이<SUP>[*]</SUP></SMALL>, 1910년 9월 3일 ~ 1971년 7월 24일)은 한국의 연극인으로, 본명은 심재설(沈載卨)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연극 배우로 활동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영화 배우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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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생애 [편집]</H2>

심영은 1910년 9월 3일 경성부에서 태어나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했다. 경성제이고보 시절 무용에 관심을 가지다가 학교의 승인 없이 사회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으며, 이후 토월회에 연구생으로 입단하면서 연극계에 입문했다.

영화 배우로 먼저 데뷔한 그는 1930년에 《수일과 순애》, 《방아타령》에 차례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극 무대에 서게 된다. 1932년에는 태양극장에 적을 두고 일본을 오가며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20대 초중반이던 그는 이때부터 연극계와 영화계로부터 연기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또한 연기에 대한 열정이 크며, 성량이 우렁차고 대사 처리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동양극장 청춘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부터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황철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특히 〈춘향전〉에서는 황철이 이몽룡 역을, 심영이 방자 역을 맡았으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는 심영이 주인공 홍도의 남편 역을, 황철이 홍도의 오빠 역을 맡았다.<SUP id=cite_ref-0 class=reference>[1]</SUP> 그러나 데뷔 초기의 왕성한 활동과 그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에 비해 황철의 등장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활동이 위축되었고, 나중에는 폐병 진단까지 받게 되었다.

1939년에는 극단 고협을 창설<SUP id=cite_ref-1 class=reference>[2]</SUP>했으며, 고협 등 연극 단체들이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친일 연극 단체 조선연극문화협회를 결성했을 때 이 단체의 간부를 맡았다. 고협은 태평양 전쟁임선규의 〈빙하〉, 〈상아탑에서〉, 송영의 〈해당화 피는 섬〉, 김태진의 〈아름다운 고향〉 등 친일 연극을 다수 공연했다. 그는 2008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연극/영화 부문에 선정되었다.

광복 이후 그는 미군정 시기에 혁명극장을 창립한 이후 좌익 계열에서 활동했다. 1946년 그는 자신의 부인과 함께 귀가하다가 김두한에게 하복부 관통상을 입었다.<SUP id=cite_ref-2 class=reference>[3]</SUP> 광복 이후 한국 연극계에서는 월북 예술인들이 많았는데, 특히 심영 피습 사건이 연극인 대거 월북을 불러온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SUP id=cite_ref-3 class=reference>[4]</SUP>

그는 1947년에 파업 선동 혐의로 미군정 경찰에 피검되는 등 탄압이 계속되자 월북하여 북조선 최초의 극영화인 《내고향》(1949)에 출연하였다. 이후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 《정찰병》(1953), 《벗들이여 우리 함께 가자》(1960), 《두만강》(1960), 《다시 찾은 이름》(1963) 등 많은 영화에서 비중 있는 악역을 맡아왔다.

조선영화인동맹 위원장을 지낸 그는 영화제작사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연기과장과 평양연극영화대학 강좌장으로 활동했으며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1971년 7월 24일에 사망했다.

<H2>심영을 연기한 배우 [편집]</H2><UL><LI>박철호 - 2001년 (동양극장, 심영) KBS 드라마</LI><LI>김영인 - 2003년 (야인시대, 심영) SBS 드라마</LI></UL><H2>참고 자료 [편집]</H2><UL><LI><CITE style=\"FONT-STYLE: normal\" class=book>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2006년 12월 15일).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서울: 소도, 191~194쪽. ISBN 9788990626264</CITE></LI><LI>“월북 문예인 심영.신불출 행적 비교”, 《연합뉴스》, 2003년 2월 13일 작성.</LI></UL><H2>더 읽어보기 [편집]</H2><UL><LI>고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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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o.wikipedia.org/wiki/%EC%8B%AC%EC%98%81_(%EB%B0%B0%EC%9A%B0)



결론 

안되겠소! 쏩시다!


</LI></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