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처녀작을 듣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했다. 나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작품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성자에게는 FL처음으로 만들어본 처녀작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런 말을 일개 청취자의 위치에서 입밖에 내선느 안되겠지만 이 작품은 작성자의 인생을 대표하는 하나의 작품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FL을 뭉게구름처럼 부푼 마음으로 설치하고 음원을 찾아다녔을 작성자를 떠올려보자. 프로그램의 메뉴마다 뜨는 영어표기에 당황했겠지, 사용법을 알기 위해 네이버 지식인을 뒤져다 보면서 하루를 썼을수도 있다. 소스가 없어서 기존 작품에서 소스를 따왔을 수도 있겠군. 내가 이 작품으로 즐길수 있는 시간은 불과 5분이 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성자는 이 작품을 만들기위해 적어도 30분 이상
솔루션(121.177)2011-02-27 03:18
의 시간을 써야 했을거야. 어쩌면 하루 전부터 이 작품을 만들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품고 토요일을 준비했을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품고 나는 작품을 진지하게 대한 준비를 마쳤다. 원곡을 들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애석한 일이지만, 이런식의 패러디 작품은 원곡을 알 경우에는 재미가 극대화 되는 작품이다. 마치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을 읽을때 의미심장한 문장의 메타포나 수식이 어디에서 따왔는지를 파악해 내고 움베르트 에코의 식견에 감탄할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이 작성자가 나타내고자 했던 메타포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나의 청취는 암호를 해독하지 않고 단순히 암호를 이루는 기호의 심미성을 파악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때때로 영문도 모르고 접한 합성자료의 원본을 뒤늦게 알게되고 그 원본에 빠져드는 경우
솔루션(121.177)2011-02-27 03:23
가 있다. 빌리가 내게 그랬다. 처음 심영이 빌리에게 능욕당하는 플짤을 본 그 충격적인 날을 떠올렸다. 여성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 플짤. 그 플짤에는 화사한 미소를 짓고있는 제시카도 없었고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오필리어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플짤을 본 내내 나는 이상한 흥분에 휩싸여 짐승같은 숨결을 물씬 느꼈으며, 몇일간 내 성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해야 했다. 몇주간에 걸친 고뇌의 결과는 내가 양성애자라는것, 그리고 여성에게 능욕당하는 꿈을 꾸는것과 같은 빈도로 남자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꿈도 꾸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것 등이었다. 참, 이런 한가한 소리를 늘어놓을때가 아니었다. 난 지금 이 작품을 듣기 위해 이 글을 클릭한것이었지, 내 양성애 성향을 확인하기위해
솔루션(121.177)2011-02-27 03:27
이 글을 누른것이 아니었다. 만약 이 글의 작성자가 진짜 패러디만을 한 것이었다면, 이 작품의 전체적인 형틀은 이 작가가 지어낸것이 아니고 단순히 여기에 사용된 합필요소만에서만 이 작가의 메타포를 읽을수 있었다.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수 없었다. 음악이라는것이 이런 것이다. 단순히 듣고 즐기는것만이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라면 합필갤에서 음악은 전혀 쓸모 없는것이었다. 그러나, 함필갤에서의 음악이란 필수요소들이 이루는 대위법이 듣는 이에게 얼마만큼의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기에 세간에서 말하는 음악이라는것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합필갤에서의 음악이란 귀로듣는것이 아니라 머리로 듣는 음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 글의 작성자는 그 용감한 작업을 시도했고, 나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솔루션(121.177)2011-02-27 03:32
이 음악을 해석해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음악이 합필음악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아니면 단순히 합필요소들을 범벅해놓은 쓰레기에 불과한가...? 그것은 비단 나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한 독선은 일부 잘나신 음악평론가님들의 몫으로 돌리고자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 글을 클릭한것은 무엇때문에...? 엉뚱하게도 내가 생각할수 있었던것은 이 작품의 존재였다. 이 글의 작성자는 이 작품에 있어서 하느님과 비슷하다. 그의 피조물 중 하나가 될 수 없어서 하느님처럼 고독하고 하느님처럼 허망하고 하느님처럼 절망적이다. 피조물은 그의 빛 가운데서 살지만, 그는 빛의 근원이 견딜수 없는 어둠 가운데서 산다.............
솔루션(121.177)2011-02-27 03:37
그럼 크누페씨 잘 가시기를. 나는 나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 속삭인다. 죽느냐, 사느냐............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솔루션이여 잘했구나 수고했구나. 크누페씨 잘 가시어 성공의 열매를 거두시라. 창조한 사람은 당신뿐이다. 나는 그저 몇줄의 리플을 덧붙였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창조하는 것을 옆에서 거드는 우리 비평가들은 배우들이 그렇듯이 성스러운 무덤으로부터 거절당해야 마땅하다. 우리와 배우들 사이에 다른것이 있다면 배우들은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노는데 비하여 우리는 잡다한 위장과 무한우주에서의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범용한 것들에게 그렇듯이 휘황찬란한 상을 주다니. 인생이란 어찌 그리 관대한 것일까...
나는 누군가의 처녀작을 듣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했다. 나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작품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성자에게는 FL처음으로 만들어본 처녀작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런 말을 일개 청취자의 위치에서 입밖에 내선느 안되겠지만 이 작품은 작성자의 인생을 대표하는 하나의 작품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FL을 뭉게구름처럼 부푼 마음으로 설치하고 음원을 찾아다녔을 작성자를 떠올려보자. 프로그램의 메뉴마다 뜨는 영어표기에 당황했겠지, 사용법을 알기 위해 네이버 지식인을 뒤져다 보면서 하루를 썼을수도 있다. 소스가 없어서 기존 작품에서 소스를 따왔을 수도 있겠군. 내가 이 작품으로 즐길수 있는 시간은 불과 5분이 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성자는 이 작품을 만들기위해 적어도 30분 이상
의 시간을 써야 했을거야. 어쩌면 하루 전부터 이 작품을 만들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품고 토요일을 준비했을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품고 나는 작품을 진지하게 대한 준비를 마쳤다. 원곡을 들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애석한 일이지만, 이런식의 패러디 작품은 원곡을 알 경우에는 재미가 극대화 되는 작품이다. 마치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을 읽을때 의미심장한 문장의 메타포나 수식이 어디에서 따왔는지를 파악해 내고 움베르트 에코의 식견에 감탄할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이 작성자가 나타내고자 했던 메타포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나의 청취는 암호를 해독하지 않고 단순히 암호를 이루는 기호의 심미성을 파악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때때로 영문도 모르고 접한 합성자료의 원본을 뒤늦게 알게되고 그 원본에 빠져드는 경우
가 있다. 빌리가 내게 그랬다. 처음 심영이 빌리에게 능욕당하는 플짤을 본 그 충격적인 날을 떠올렸다. 여성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 플짤. 그 플짤에는 화사한 미소를 짓고있는 제시카도 없었고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오필리어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플짤을 본 내내 나는 이상한 흥분에 휩싸여 짐승같은 숨결을 물씬 느꼈으며, 몇일간 내 성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해야 했다. 몇주간에 걸친 고뇌의 결과는 내가 양성애자라는것, 그리고 여성에게 능욕당하는 꿈을 꾸는것과 같은 빈도로 남자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꿈도 꾸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것 등이었다. 참, 이런 한가한 소리를 늘어놓을때가 아니었다. 난 지금 이 작품을 듣기 위해 이 글을 클릭한것이었지, 내 양성애 성향을 확인하기위해
이 글을 누른것이 아니었다. 만약 이 글의 작성자가 진짜 패러디만을 한 것이었다면, 이 작품의 전체적인 형틀은 이 작가가 지어낸것이 아니고 단순히 여기에 사용된 합필요소만에서만 이 작가의 메타포를 읽을수 있었다.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수 없었다. 음악이라는것이 이런 것이다. 단순히 듣고 즐기는것만이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라면 합필갤에서 음악은 전혀 쓸모 없는것이었다. 그러나, 함필갤에서의 음악이란 필수요소들이 이루는 대위법이 듣는 이에게 얼마만큼의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기에 세간에서 말하는 음악이라는것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합필갤에서의 음악이란 귀로듣는것이 아니라 머리로 듣는 음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 글의 작성자는 그 용감한 작업을 시도했고, 나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이 음악을 해석해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음악이 합필음악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아니면 단순히 합필요소들을 범벅해놓은 쓰레기에 불과한가...? 그것은 비단 나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한 독선은 일부 잘나신 음악평론가님들의 몫으로 돌리고자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 글을 클릭한것은 무엇때문에...? 엉뚱하게도 내가 생각할수 있었던것은 이 작품의 존재였다. 이 글의 작성자는 이 작품에 있어서 하느님과 비슷하다. 그의 피조물 중 하나가 될 수 없어서 하느님처럼 고독하고 하느님처럼 허망하고 하느님처럼 절망적이다. 피조물은 그의 빛 가운데서 살지만, 그는 빛의 근원이 견딜수 없는 어둠 가운데서 산다.............
그럼 크누페씨 잘 가시기를. 나는 나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 속삭인다. 죽느냐, 사느냐............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솔루션이여 잘했구나 수고했구나. 크누페씨 잘 가시어 성공의 열매를 거두시라. 창조한 사람은 당신뿐이다. 나는 그저 몇줄의 리플을 덧붙였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창조하는 것을 옆에서 거드는 우리 비평가들은 배우들이 그렇듯이 성스러운 무덤으로부터 거절당해야 마땅하다. 우리와 배우들 사이에 다른것이 있다면 배우들은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노는데 비하여 우리는 잡다한 위장과 무한우주에서의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범용한 것들에게 그렇듯이 휘황찬란한 상을 주다니. 인생이란 어찌 그리 관대한 것일까...
생과 사까지 가나...
설리!!!
개념글 가자!!!
괜찮은데 왜 덧글이 없냐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