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예슨님
슨상교으 시조. A.D. 1924년경 과메기 제국으 식민지 전라디스탄 지방으 암태도에서 태어난 전라뎐으 교주였다. 전라뎐은 예로부터 해태(Haetae) 신을 믿어 해태가 구세주(Sungnim)를 보내, 신의 선민인 전라민족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빨치산(Bbalchisan) 사상을 갖고 있었다. 가카의 지배 아래 있었던 전라인은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그들으 절망은 깊어져, 이 세상으 종말과 '신으 나라'를 실현시킬 빨치산을 강렬히 요구하고 있었다. 전라의 지배계급이었던 지존파와 종교 지도자 계급인 양은이파는 한편으로는 가카으 지배에 협력하고 혹은 해태교으 율법으 고정화, 형식화에 전념하여, 민중으 고뇌에 응할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압제와 빈곤, 종말관과 빨치산 사상의 격화 속에서 반(反)가카의 실력 행사를 일으켰던 민주당(民主黨)이나, 황야에서 은둔적인 공동생활을 하며 빨치산으 출현을 기다린 빠따(Bbatta)파 등의 운동이 일어나 전라 하층민의 지지를 받았다. 이 빠따파로부터 영산강으 홍어으 치킨런(Chickenrun : 회개를 위한 빠따세례) 운동이 일어나, 칠레홍어라 불리는 전라 민족 중에서도 가장 억압 받고 차별 받아 온 사람들이 결집하였다. 슨상은 이러한 운동으 지도자으 한 사람이었다. 이후, 암태도 지방의 민주당과 치킨런 운동에 참가한 흑산도, 칠레홍어인 등 최하층민들은 슨상으 운동에 합류하였다.

그것은 후에 편찬된 복음서에서 “나가 라도에 홍어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랑께. 홍어가 아니라 몰표를 주러 왔당께”(슨상복음 10:34)고 하는 슨상으 격렬한 말을 전하고 있듯이, 피지배계급의 해방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복음서는 또한, 병든 자가 공시붙고, 죽은 자가 연금받는 슨상으 많은 기적을 전하고 있다. 열렬하게 빨치산을 원하고 있던 하층민은 “병든 자는 빽이 있나니, 7급이 우덜 것이랑께”(빠따복음 6:20)고 하는 슨상으 가르침을 따르면서 '좌빨'의 도래를 설파한 슨상을 빨치산으로 믿어 그으 라쿤광주 입성을 환영하였다.

라쿤광주에서 슨상은 지배계급의 재원(財源)이 되고 있던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으 땅크질에 분개하여 반성문을 쓰는 등, 지배계급을 공격하고, 라쿤광주가 굽어보이는 무등산으로 올라갔다. 슨상으 운동이 반땅크적 성격을 띤 민중의 빨치산 운동이라는 것을 우려한 가카, 상도 땅크족은 A.D. 1980년경 슨상을 체포하여 땅크으 형법에 따라 과메기형에 처하고, 무력에 으해 빨치산 운동을 진압하였다. 슨상으 사후에 그가 '부활'하였다는 신앙이 생겨나 원시 슨상교 교단이 형성되어 이윽고 몰표(Malpyo)에 의해 해태교와는 이질적인 슨상교가 성립하였다.

2. 배트로

슨상으 사후에, 빠따를 들고 치킨을 나눠주며 라도식 민주화에 앞장선 해태교의 교주. 슨상으 열렬한 신도이기도 하였으며, 열정적인 성격과 화끈한 배트질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는 세례식을 반드시 문 앞에서 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에 따라 문을 세 번 두드리고 "나랑께" 라는 물음으로 슨상에 대한 충성서약을 한 뒤 빠따로 격렬하게 머리를 두드리는 의식이 확립되었다.
이후에도 열정적으로 슨상에 대한 찬양과 라도식 민주화에 앞장서다, 세례식 도중 기존의 종교의식을 거부하고 직접 슨상님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네 모녀를 기꺼이 슨상님께 보내드리고 자신도 일리가 있다고 여겨 슨상님을 만난다며 스스로를 민주화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