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제 4대왕. 해상방위대를 이끌고 태조의 역성혁명을 도운 3대왕인 홍종洪宗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원래 형인 봉하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봉하대군이 뇌물을 받고 사치를 하는 등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폐세자 된 후 대신 세자로 책봉되었다. 

과학,예술, 문학 등 여러분야에 두루 통달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계최초로 중력을 측정하는 도구인 측중기測重基를 고안하여 팔도에 설치하게 하였으며 아내가 스위스 사신으로부터 선물받은 시계인 자격루를 궁중에 설치하였다. 

또한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회주의 학자들을 모아 좌현전左賢展을 설치하여 사회주의 학문의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 좌현전 학자들과 함게 연구하여 반포한 것이 그 유명한 운민정음雲民正音이다.

또한 군사적인 업적도 세워 여진족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무장인 나랑계 장군으로 하여금 사군死郡과 육진肉鎭을 개척하게 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종래 명과 맺던 사대관계를 청산하고 북방의 여진족에게 조공을 바쳐 보수적인 신하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치세 말에 반정이 일어나 명종明宗에게 선양한 후 경남 김해의 시골에 위리안치 되어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시호는 운지(雲芝), 묘호는 노종(盧宗), 능호는 봉하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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