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이런 글이 올라와서 사설을 좀 적어보려 합니다. 원래는 이틀 전에 올렸어야 할 글인데 회사 일로 바빠져서 이제서야 쓰기 시작합니다. 늦은 만큼 급하게 쓰는 글이니 어색한 문장이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ㅠㅠ
시작에 앞서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인터넷 창작 커뮤니티를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2009-2010년즈음엔 파워포인트로 게임이나 그림 따위를 그리며 노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했고 2013년 때부터는 합성 필수요소 갤러리에서 놀았습니다. 그때의 생애 첫 합념글은 '문화유산으로 고사리 만들기'였어요. 그리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는 작은 호러 창작 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 달 전 며칠 정도 놀고 말았던 해병대 갤러리도 있지만 념글도 몇 개 보내긴 했으니 같이 끼워서 소개합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창작이 주가 되지 않는 커뮤니티라곤 하나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죠. 있다한들 어떻게든 창작 활동을 해낼 방법을 찾아서 발굴해내곤 했습니다. 어쩌면 이게 합성가들의 정체성이죠. 이게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누구도 생각 못할 법한 점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 그게 우리가, 우리의 선조격 되는 사람들이 십수년간 해온 일입니다
십수년간 창작 커뮤니티에서 구르며 봐오고 경험한 것 중 하나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합성 따위 하나도 의미 없지 않느냐?' 이 물음은 비단 합성계에서만 나타나는 물음이 아니란 걸요. 제가 봐온 그 어떤 커뮤니티에서도 이 물음은 나타납니다. 대뜸 창작이란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고 지금까지 해온 창작을 자조적으로 여기고 만들어온 모든 걸 삭제하고 정리하며 떠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이건 모든 창작 커뮤니티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는 창작 활동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물음이야말로 내가 무얼 좋아하고 즐기는지 명확히 짚을 수 있고 어쩌면 나만의 새로운 창작 전환점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완전히 접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합성을 하는 이유
-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합성해서 남는게 뭐가 있냐던 사람들은 모두 합성을 해오던 사람이었습니다. 일부는 이 사람들을 단순 분탕이라고 여기면서 배척하거나 내쫓지만 우리가 제대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창작에 불태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에 의문을 던질 뿐이에요. 그런 만큼 이 모든 잡념과 고찰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 내가 합성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성취감 때문입니다. 온라인 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발상의 전환을 높이 평가하고 개념글 추천을 아낌없이 던지니까요. 소속감도 있을 수 있겠죠. 인정합니다. 부심은 나쁘지만 자부심까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작업 자체가 즐겁기도 합니다. 그냥 노가다일 뿐인 누끼를 따고 있을 때도 즐겁습니다. 합성 당하는 필수요소가 제가 좋아하는 대상이니까요. 이렇게 하나씩 나열해보니 점점 추려지는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합성은 일종의 덕질이었던 거네요. 게임이나 만화 보기 등처럼 '소비'로 끝나는 취미와는 다르게 '생산'의 역할에 선 취미죠. 그리고 이 생산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 계기는 인터넷 밈 문화를 선두하던 선구자들의 창작물들을 소비하다가 올라오게 됐죠. 가령 뚝배기 캐니언이라던가... 이제야 퍼즐이 풀립니다. '내가 즐겼던 것만큼 남들을 즐겁게 하려고'가 이유였어요. 오로지 재밌다는 반응 하나를 위해 쏟아부었습니다
비디오 게임 등에서 객관적인 수치를 넘기고 클리어만 해내면 남발을 해대는 칭찬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불확실한 사회 관계 속에서 수확해낸 칭찬은 고작 게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성취감을 선사합니다. 대부분 저와 같은 경로로 합성에 뛰어들었을테고 같은 이유로 못 빠져나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리) 창작 취미 활동에서 얻는 성취감은 소비적인 취미 활동에서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그럼에도 합성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
- 즐거웠던 합성이 더이상 즐거워지지 않는 때가 옵니다. 그건 창작의 적, 흔히들 번아웃이라고 부르는 거에요. 불같이 쏟아낸 활동 후에 픽 식어버려서 아무 의욕도 들지 않는 때가 옵니다. 일처럼 해도 즐거울 건 AV 남자배우 역할 말고는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가볍게 여겨지지만 번아웃은 심한 우울감도 가져올 만큼 중대사항입니다. 특히나 요즘만큼 합작 많은 때가 없었잖아요? 마감일자에 쫓기다 못해 취미를 일처럼 해내버리니 번아웃은 쉽게 다가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합성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만화판에서는 공동작업으로 인한 번아웃이, 소설사이트에선 경연이나 대회로 인한 번아웃이 오죠. 하지만 합성계는 다른 창작 커뮤니티들보다도 사람 대하는 일이 훨씬 잦다보니 사람과의 갈등마저 한몫을 해요. 파트 하나를 빠르게 끝내고 지쳐 있을 때 누군가 마음 헤아려주지 않고 닦달한다면 정말 미칠 노릇일 겁니다. 평소엔 잘만 받았던 피드백도 어느 날따라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는 후회할 때도 있어요. 상대가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면 어찌저찌 넘어가겠지만 항상 따뜻한 사람만 만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그게 내 창작 활동을 방해한다면 에너지 분배가 과하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심적 부담감에 약합니다. 게으른 사람이더라도 합작 마감을 여유있게 시작해서 느긋하게 끝내는게 바람직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이더라도 완장의 부탁에 떠밀려 너무 많은 파트를 잡지 않도록 합니다. 열정적인 사람이더라도 한 번에 너무 많은 합작을 잡지 않습니다. 예방은 쉽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요. 그럼 이미 번아웃이 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존경하는 작가분께서 조언해주시기를 우선 다 놓고 휴식을 취해야 한답니다. 한계에 부딪혔다는 느낌이 들었을 땐 반드시 마우스 놓고 창작에선 잠시 멀어져야 하고요. 강박이나 의무감은 내려놓고 슬럼프를 억지로 돌파하려다 완전히 소모돼서 절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아예 다른 취미를 오래간만에 잡아본다거나 하면서 극복했어요.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보면서 슬슬 다시 재미 붙이는 방향도 좋고요
물론 잡고 있는 합작이 있을 땐... 각자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정리) 번아웃 예방을 위해 취미엔 취미만큼의 에너지만 쏟아야 한다. 이미 왔다면 잠시 놓고 다른 취미를 찾자
합성을 해서 남는 것?
- 일부는 이 말을 듣자마자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가령 수십만 구독자를 먹었던 여유만만의 사례나 돈 좀 만졌다는 사례를 가져와요. 저는 이걸 조금 잘못 접근한 생각이라 봅니다. 합성의 의의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이들을 선망하면서 같은 자리에 오르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당장 뚝배기 캐니언 나오던 시절엔 유튜브로 돈을 번단 생각도 못했잖아요? 창작 활동은 취미고 일이 아닙니다. 일을 할 거였으면 취업 준비를 했겠지요. 그런데 거기에서 뽕을 빨아먹으려고 한다면... 전 그걸 취미라고 보기에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미로 당구 배운다던 사람이 뽕 뽑자고 커피 믹스 여섯개씩 타먹고 에어컨 강풍으로 틀어서 폐에 찬바람 저장하려는 느낌이에요. 당구칠 생각은 없고 돈 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 차 있는 거죠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애초에 뭐가 남는 장사가 되는 취미가 있기는 한가? 그렇지 않아요. 롤을 배워서 친구들과 더 친해질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친해지자고 롤을 배우는 사람은 없어요. 탁구를 배우다가 좋은 순발력을 얻을 순 있습니다. 그런데 순발력을 얻자고 탁구를 배우는 사람은 없어요. 모두 딸려올 뿐인 보조 기능이지 주 기능이 되진 않지요. 취미가 취미로 남으려면 언제나 내가 즐거워야한다는게 우선 순위여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경험치작이나 다름없는 노가다가 될 테니까요. 즐기지도 못하는 순발력작을 취미라고 부르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이제 주목할 부분은 합성 활동에 따라 붙는 보조 기능입니다. 당장 저부터 시작하자면... 초등학생 때부터 자발적으로 배운 이미지 편집과 동영상 툴을 십년 단위로 능숙하게 다룰줄 알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엔 축제 때마다 매번 UCC를 제출해 열렬한 환호를 얻었습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실 영상분들 대부분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수백단위의 박수갈채만큼 짜릿한게 없으리라 자신합니다. 이미지 편집 기술은 최근 지방선거 출마한 무소속 후보 하나의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데에 활용되어 실질적인 페이로 들어왔습니다. 재단 마플샵을 열어 직접 디자인한 상품을 팔기도 했습니다. 대략 60건 정도 팔았는데 바이럴 같으니까 링크는 안 달게용. 올해 초부터 회사 여섯 군데에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첨부한 포트폴리오로는 미디제4 붐바야 파트와 앞서 말한 마플샵 사이트를 제출했습니다. 두 회사에서 면접을 진행했고 뷰티업 회사의 기획홍보실에 정규직으로 합격해서 이번 달 초부터 열심히 달리는 중입니다. 위쪽에 첨부한 사진이 그거에요. 인증 없이는 안 돌아가는게 디씨라 ㅎㅎ 아무튼 그때 음원 제작자분께 치킨 기프티콘까지 쏴드릴 정도로 기뻤었습니다 ㅋㅋㅋ
합성을 통해 무엇을 남긴다는건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란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남긴단 것에 관심이 있다면 정말 무언가라도 하나 더 남길 수 있겠지요. 물론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남는 것은 분명히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가령 여러분들도 역시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전문적인 툴을 만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음원이든 영상이든요, 그렇게 만져온 툴 숙련도는 막 대학에 들어가 배우기 시작하는 실제 전공자들보다 낫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 업 삼아 경쟁한다면 년단위로 배워온 우리도 꿀릴 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탁구의 순발력과 같은 보조 기능이라고 보아요.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거나 섬을 여행하는 취미에 비하면 상당히 혜자스런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취미 치고 남는 장사 되는 취미 없다. 그런데 합성은 다른 취미들에 비하면 훨씬 혜자롭게 남음
그럼에도 우리가 합성을 끊을 수 없는 이유
- 창작은 덕심을 기초로 둡니다. 내가 소스로 써오던 것들. 정말 좋아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엔 기자 소스를 되게 좋아하는데... 기자를 포함해서 내가 좋아하던 수많은 소스들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면 전 아마 합성 자체를 접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합작에 여러 번 참여해본 영상하는 사람들이라면 알지도 모릅니다. 내 파트 음원러가 대뜸 잘 모르는 소스, 아니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스를 들고와서 그 영상을 만들어야하는 상황 있었나요? 또는 땜빵으로 들어간 자리 소스가 정말 알 수 없는 소스인 경우요. 이러면 정말 취미 아니고 일 같거든요. 완전 노잼입니다.
저는 합성이란 과연 덕질의 확장이라고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스로 내가 원하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니요. 이 활동을 대체할 수 있는 덕질 방식이 존재할 수 있나요? 존재한다한들 합성만큼 재밌나요? 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렇기에 계속 합성을 하는 것 같습니다. 더 즐거운 취미를 찾을 때까지요. 아직은 합성만큼 재밌는 취미는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전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정리) 대체 가능한 컨텐츠가 없음
합성러의 길의 끝이란?
- 길의 끝이란 건 뭡니까? 취직하면 합성가들의 길이 끝나나요? 일단 저는 아니더라고요zzz 여전히 퇴근하고 나서도 열심히 개인작을 만들고 합성을 합니다. 현생에 치이지만 짜투리 시간을 쪼개가면서 취미에 매진합니다. 합성으로 수십만 유튜버가 된다면 어떨까요? 그건 그야말로 합성의 길을 끊을 수 없는 것이구요. 취미 분야로 취직하지 않아도 워라밸 지켜가며 합성은 작은 취미로 두고 살 수도 있겠습니다.
하고픈 취미만 충분히 가져가면서 즐길 수 있다면 전 그게 건강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정리) 그없
하지만 정말로 끝낸다면?
- 결국 저 물음에 이기지 못하고 접는 사람도 있고 그냥 접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만 보면 몇가지 유형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어떻게 함부로 사람을 재단할 순 없겠지만 감히 나눠보자면 이런 양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1. 어느날 대뜸 사라지는 사람들 ─ 아마 다른 취미를 찾으러 갔을 수도 있습니다. 현생에 치일 수도 있는 거구요. 제가 합성을 접은 2015년에서 미디제로 복귀한 2020년까지의 공백도 그런 느낌이었으니 이때 사라진 인물들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완전 탈갤 선언은 안했으니만큼요. 카툰-연재 갤러리 같은 곳에선 정규 작가로 채용돼서 다시는 안 찾아오는 느낌도 있나봄
2. 정작 지도 한 발 담그고 있던 사람들한테 할 말 못할 말, 저주를 지껄이고는 나가는 사람들 ─ 이개씹쌔들은꼭탈갤선언하고한두달뒤에닉변해서기어쳐들어오는데그냥평생나가뒤졌으면좋겠음개1씨팔련들
3. 탈갤 선언하고 정말 나가는 사람들 ─ 대부분 사람과 사람간의 일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이 질려버린 케이스라 적극적인 중재도 힘들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 결국 창작 좋아하던 사람들이고 다른 취미를 찾더라도 결국 창작쪽으로 정착하게 되더랍니다. 하기야 한 번 창작 맛을 봐버린 사람들인데 어떻게 평생 소비 취미만 가지면서 살겠어요zzz
정리) 그렇게 접은 사람들, 그래도 결국 창작 취미를 버리지는 못하더라
QNA 받습니다
이 짧은 글 하나 올리겠다는 약속 하나 못 지키고 이제야 올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런 물음은 창작 커뮤니티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는 것이고 정말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분위기 망치는 말을 했나 싶어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질문은 선착순 1천개만 받습니다.
원글 글쓴이이자 개씹쌔입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개추 박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