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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공부 안했다...

노량진도 가봤었는데 거기서도 안했다.

관리반 갔었는데 한달만에 도망나와서 쭉 고시원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놀았다.


책사놓고 다읽은 책 단 하나도 없었고 프리패스 사놓고 완강한 강의 1개도 없었다.

나에게 1회독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았다.


일행으로 시작했고 작년부터 교정직으로 쳤는데

그것도 사실 진짜 교정하고싶어라기보다는

그냥 더 이상 댈 핑계가 없어서 교정으로 바꾼거다.


이런 나에게도 부모님은 나쁜 말 한번 한적이 없다.

항상 니가 더 답답하고 힘들겠지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도 조심하셨다.


항상 엄하던 아버지도 시험에 있어서는 말을 삼가셨다.

1년에 한두번 가끔 잘하고있나 묻는 정도?


그래도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고 하니 진짜로 위기감이 닥쳐오더라

그래서 작년에 교정으로 바꾼김에

이번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여유부리면서 안하다가

어느새 12월이 됐었다.


그리고는 지금와서 해봤자 안될텐데... 라는 생각에


또 나는 그렇게 시험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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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공부하는척 시험 치는척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치러 가서는 떨어질걸 알면서 그냥 치기만 했다.

그리고 당연히 떨어질 성적을 받았다.


책을 단 몇 페이지도 본적이 없으니까 당연했다.


그런데 이 23년 시험이 최합이 63점이었다.

내가 한국사를 1회독만 해서 70점 받고 

교정 형소 40점씩만 받아서 과락만 면하면

합격인 점수였다.


하지만 행운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 법

노력조차 하지 않은 자에게는

행운은 찾아와도 빗겨가는게 당연했다.


이 역대급 관운을 나는 쓰레기짓으로

"역시 나는 지금해서는 또 안될거야"

라는 자기합리화로 버린것이다.


저 3달간만 했어도 충분했던것을...


그렇게 또 후회하면서 지내다가 이번엔 생산직으로 일을 하러갔다

갔다가 일은 두 달 하고 나왔다

차라리 내가 공부를 하고 말지 라는 미친 생각으로다.


그렇게 나와서 11월달부터 다시 책을 잡았다.

그래도 이번엔 생산직 일을 체험해본 만큼 어느정도 동기부여는 되었다.


이번에는 무려 두 달간 꽤 열심히 했다

순공 평균 6시간을 쉬는 날 없이 매일 달렸다.

책 한번 펴보지도 않던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는 12월 말 연말

나는 오늘은 하루 쉴까? 라는 생각을 했고

하루를 쉬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책을 잡은 날은 3월 1일이었다.

너무나 공포에 질려서 책을 잡았다.

다시 포기하자는 마음이 들어서 이틀 후 책을 놓았고


시험 일주일전 3월 16일에 내가 작년에 했던 생각을 되돌아보았다.


그때 내가 무슨 후회를 했더라.


과락만 면하면 합격인데 그걸 안해서 떨어졌구나 병신새끼

행운이 아무리 내게 찾아와도 거저 떠먹여줘도

숟가락 조차 들지않으면 먹지를 못한다...


11~12월 두달동안 한교형을 2회독 했었다.

그리고는 두달 반을 쉬었고.

당연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막 작년의 그 비참함 기회가 와도 먹질 못했음을 떠올리고

이번에는 최후에는 잡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고있던 이윤탁 1200제와 고종훈 800제를 집어던지고


단 일주일


여기서 최소 1회독을 해서 결과적으로 3회독을 채우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윤탁 5개년, 고종훈 400제, 임현 700제


하루 11시간씩 일주일을 했다.

결과적으로 형소 1회독, 한국사 필노1회독 400제 1회독, 교정학 1회독을 할수있었다.

시험 당일 새벽 3시까지 보다가 컨디션때문에 억지로 눈을 감고 시험을 보러갔다.


난생 처음으로 공부를 하고 본 시험이었다.

공부하지 않았을때는 하나도 긴장되지 않았다.


덜덜 떨면서 시험을 봤고 결국 언어과목들에서는 생각보다 더 실력이 나오지않았다.


항상 잘보던 국어를 망쳤고 영어도 풀면서 이거 과락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사는 정말 쉽게 느껴졌고

형소법도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놀랍게도 보면 답이 눈에 딱딱 박혔다.

순식간에 스르륵 풀어버렸다. 5개년 볼때는 하나도 몰랐는데 이게 가능해서 놀라웠다.


하지만 교정학에서 대참패를 봤고 시험장을 나오면서 계속해서 빌었다

제발 교정학 과락만 면하게 해주세요...


집에가서는 나 혼자 몰래 채첨을 봤다.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게 공단기 채점을 입력하니 교정학이 40점이었다.


이건 내가 공부해서 실력으로 맞춘게 아니다.

행운이...

또 찾아온 행운이...

그래도 이번엔 마지막까지 교정학을 보다 잠들었던 행위가 숟가락으로 이걸 퍼먹게 해줬을뿐이었다.


이번 시험 평균은 70점 근방이다.


내가 한건 단 두달의 공부와 포기뿐이나

이번에는 찾아온 행운을 주워먹을수는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숟가락을 던져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또 찾아와준 행운에 그저 감사한다.

교정학 티오가 500으로 줄었다면 또 포기했겠고 두달 공부조차 하지 않았겠지.


이 끔찍한 앰생 난신적자의 삶을 끝내주셔서

그래도 이제 사회의 일원으로 1인분의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어제부터 달리기와 윗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