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문제가 해결되는것"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
여자는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집중한다.
남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신경을 쓰는데 (물론 안그런 남자도 있다)
여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이게 내 잘못처럼 인식이 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발뺌할 것인가?"에 신경을 쓴다.
그러니 여자랑 같이 문제해결을 하려 하면 문제 해결이 안된다.
그녀들은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방법도 모른다.
여자에게 왜 투표권을 주면 안되는가?
여자는 누가 당선되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사람이 어떤 정책의 성향을 가지고 있나? 는 관심도 없고 설명해줘도 알지도 못한다.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것은
"지금 이 사람을 찍으면 내가 돋보일수 있는가?" or "지금 이 사람을 찍으면 내가 욕을 먹지 않는가?" 이다.
그러니 그들은 다른 사람이 많이 찍는 , 그러니까 내가 저사람에게 표를 줘도 욕을 먹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대상이다.
거기다가 자기가 돋보이면 더 좋기 때문에
"나 투표 했어용. 아힝 나는 개념녀" 라는 표식을 남기기 위해 인스트그램에 자신을 올린다.
이는 본질적으로 연애인도 비슷한 운명을 가지기 때문에 연애인도 도장을 찍고 사진도 찍는다.
골프를 잘 치는것 따위는 중요한게 아니고, 골프장에서 어떤 이쁜옷을 입고 가야 주목을 받는가. 가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본질적으로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실신해서 쓰러져 있는 자신의 친구를 보며 "이 사람을 어떻게 회복시킬것인가"가 그녀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다른사람들에게 내가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가 중요하다.
그래서 안전요원들이 심장전기충격기로 실신한 사람에게 전류를 주고 있는데 옆에서 울고짤고 주무르다가 같이 쇼크먹고 떡실신 하는 웃프닝이 나온다.
옆에 안전요원이 없었으면 아마 그년은 자기 친구를 주무르지 않았을거라는데 한표다. 보여줄 대상이 없으니.
링크는 몰라서 못달았다. 능력자게이들 좀 찾아서 링크 달아주라.
자 이러한 방식의 사고회로로 인해 여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 부각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생각해서 지금 당장 손해보더라도 미래를 내다보는" 방식의 플랜이 아예 불가능하다.
중장기적으로 체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근육"을 만들것이냐
당장 이뻐보이는 방식으로 "살빼기"를 할것이냐 에서, 전자를 택할 여자는 없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의문에서 반복적으로 고민을 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같은 선택을 한다.
기준은 단하나
"욕먹는것처럼 보이는가, 아닌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 라는 말이 있다.
그걸 남자와 여자의 "차이"로 인식해야 한다고 누가 개소리를 써놨더라.
그건 "차이"가 아니라 "사고체계의 부재"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도 좋아보이니 여기에 집중하면 이거고, 저것도 좋아보이니 저기에 기를 틔워주면 저거다.
오늘은 초밥을 먹기위해 가다가도 중간에 고기굽는 냄새가 나면 고깃집 가자고 조르는 동물들이다.
목적의식도 없다. 그냥 당장 좋아보이는 것에 선택한다. 그기고 그걸 "감성적"이라고 기가막히게 포장도 한다.
그러니까 10살배기 아이들이 이거좋다고 이거, 저거 좋다고 저거
메시 떳다고 포지션이고 나발이고 팽개치고 우르르 달려가서 막으려 하는 우리나라국가대표 축구팀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선택지를 다수 줘서는 안된다.
그중에 가장 그럴싸한 것을 선택하기는 하지만, 가장 알맹이가 없는 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여자는 찍어누르는 것이라는 논리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게 비인격적인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보면 여자들에게 가장 행복한 선택일 수 있다.
여자들도 자신들이 바보가 아닌데, 왜 수천만년간 남자들에게 지배받고 살았을까?
왜 기꺼이 그래왔을까? 그게 결국 여자들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앎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
남성이 우위라서? 그래서 사실이 아닌 말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구전이 된다고?
그럼 이런 속담이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도 있을까?
여자를 설득하려 하지 마라.
그들은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면 듣는척 할뿐.
그것이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지겹도록 반복해도 또 까먹는 이유이다.
그들은 들어도 듣는게 아니다. 그냥 듣는척 하는것 뿐이다. 그냥 이해하는 척 하는것 뿐이다.
이해할 생각도 없다. 그저 그 방식이 가장 욕을 덜 먹는가, 혹은 돋보이는가 만 관심이 있다.
그런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오빠 나 살쪘어?"
여기서 가장 올바른 대답은 무엇일까?
당연히 미래를 내려다본다면 "어 살쪘어" 가 맞다. 그래야 살을 뺄태니까.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면 "나도 이미 알고 있는데, 꼭 그렇게 말했어야 했어?" 라는 희안한 대답이 돌아온다.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바라는게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든 감추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이성적 해결을 원하고 여자는 감성적 공감을 원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후자는 열등한 것이고,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이 열등함을 포장하려 해서는 안된다.
열등한 것을 열등하지 않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열등한 것이 개선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페미나치즘이 시작되고, 그렇게 해서 분쟁, 열등감, 혐오, 비극이 시작되는것이다.
시간이 가면 여자들도 개화되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는데,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참정권을 얻은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정권을 발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결과는 이렇다.
말하자면 우리는 상당히 실험적인 세대를 살고 있다.
여자에게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보장해주었을 경우,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에 대한 전 세계적이고 장기적인 실험의 희생양으로 우리가 선택된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결말은 "그래서는 안된다"로 날 것이다.
복지지옥 스웨덴은 다이나마이트를 개발한 노벨과, 2차세계대전을 피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쌓아 올렸다.
그래서 그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어마어마한 실험을 강행했다.
"인간은 복지만으로 발전할 수 있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no
오랜 실험끝에 스웨덴은 하나의 결론에 봉착했다.
"이대로는 망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가지고 있던 우량기업들은 대부분 스웨덴을 떠났고,
그들은 그들의 막대한 부를 다 쓰고 나서야 이딴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깨닳음을 얻었다.
말하자면 그 사이의 스웨덴 인들은 실험의 희생양이었다.
생각해보자.
고대부터 전쟁이 활발한 인류의 역사에서 왜 여자들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나?
당장 전투에 참가하면 전투 인력이 2배가 되는데?
2세를 생산하고 육아를 하기 위해서??  젖같은 소리다. 전쟁에서 지면 모두가 몰살당한다.
그런 한가한 소리 이전에 이기지 못하면 멸망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고집스래 여자를 전투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어느 문명이고 할것 없이 말이다.
왜일까?
그들이 전투에 참가하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결론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는 생물이니까..여자는 타인의 시선속에서만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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