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금계획같은거 안세우고 비싼헬스장 6개월 그냥 긁었다. 스트랩 사고 헬스복 사고 보호대는 살까말까 고민중이다.

팔꿈치보호대정도는 사야될것같다. 남은 돈으로 내년 6월까지 계획세우다가 올해 12월 마지노선으로 세우니까 숨통이 트인다.

하위권 대학 휴학까지 5년 다니고 솔직히 지금까지 인생 열심히 살지 않았다. 나에게 남아있는 가능성의 미래들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미래들에는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정도 사리분별은 할 수 있는 나이인가보다. 스물일곱은.

그러한 미래를 선택하느니 차라리 죽는게 깔끔하고, 덜 고통받고, 나 자신으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다. 많은 밤동안 그런 불안을 가지고 잠자리를 뒤척거렸다.

사실 이 공무원시험이라는 선택지도 그다지 현실성이 높지 않았다.

가족들의 기대도 없었다.

나는 어렴풋이 앞으로의 남은 인생이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지도 않은 것에 대한 벌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너무나도 쓰디쓴, 힘들고 고단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쓸모없고 비참하고 착취당하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나의 남은 인생은 마치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이제는 마셔야 할 독이 든 잔이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무언가를 노력해서 끝까지 성취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운전면허조차 불합격했다.

그런 나를 누가 믿어주겠는가? 부모님조차 나를 믿지 못했다.나는 자괴감과 자기불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이 모든 노력이 다 의미없어지고 불합격해서 내 미래가 더 어두워질 것 같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 헤엄쳤다.

헤엄쳤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너무나도 많아서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고, 나는 나 스스로조차 통제하지 못한 채 감정에 하루하루 흽쓸려다녔다.

그런데 붙었다. 2022년 7월의 어느 날을 필두로 나는 두 문제 차이로 공무원시험의 합격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8살때부터 지금 27살까지 21년간 진 빚을 향후 죽을때까지 갚아나가야 하던 찰나에 그 모든 빚은 내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가벼워져 버렸다.

합격은 안도와 희망이 섞인 맛이었다. 기쁨의 함량은 크지 않았다.

처음으로 엄마가 기뻐하고 다음은 가족이 다 함께 기뻐하고 그 다음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기뻐하게 되었다.

물론 나라고 기쁘지 않았겠냐마는 나는 뛰어오를듯한 기쁨보다는 안도가 느껴졌다.

왜 안도하지 않겠는가? 내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치욕의 50년, 60년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런 인고의 세월로서 게으른 21년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고용의 불안함, 실적에 대한 압박, 별볼일 없는 인식 나쁜 직장과 그에 걸맞는 보수, 혹은 그러한 직장조차도 없는 비참함.

그런 것으로부터 나는 이제 영원히 작별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순간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다.

교갤에서는 청송을 까내리는 말들이 많다. 뭐 그런 말이 합당한 장소일 수도 있다.

다행히 나는 그런 말들에 구애받지 않는다.

합격발표 이틀 전의 나는 무엇을 바랬을 것 같은가?

나는 '청송이라도 좋습니다. 웃으면서 가겠습니다. 그러니 제발......'하며 빌었다.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내 능력, 내 학력으로, 이러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금 나는 분에 넘치게도 웃으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잠자리에서 번민하지 않고 내일은 뭘 할까 하며 웃으면서 잠자리에 든다.

내 방은 비로소 도피처가 아니라 휴식처가 되었다.

이토록 앞날이 오는것을 기대하고 설레어 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사람은 행복해서도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큰 기쁨과 행복이 이 글을 읽는 너희들에게도 역시 예외 없이 찾아가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앞으로 만날 동기 선배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