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것도 없고 잠도 안오고 해서 썰푼다 주변에 뭐 친구도 없고 해서 혼자 소주먹다가 혼자 센치해졌다!!!!!!


부모가 기초생활수급자였음. 애비는 어디갔는지도 모르겠는데 무튼 엄마가 보험일하면서 돈벌어다오면 한달에 한번 수금하러 옴. 중딩때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고딩되니깐 불만이 점점 많아지더라. 애비는 죽이고싶고 엄마는 마냥 한심하고.. 그러다가 보니깐 주변 비슷한애들끼리 놀다보니깐 조금 엇나감. 크게 사고친건 없는데 그냥 가끔 엄마 교무실 불려가고 울고 그랬음. 

고1까진 공부좀 했는데 고1겨울부터 고3초까지 공부손놨음. 원래 공부는 집에서 하는 스타일이었던걸로 기억함. 근데 집들어가기도 싫고 친구들이랑 노는것도 너무재밌고, 또 엄마가 살기 힘들어서 그런지 전~혀 성적에 신경을 안씀. 내가 알기론 담임이 전화도 몇번함 성적이 너무 떨어진다고. 근데 엄마는 한마디 하고맘. 뭐 다 좋았음.

그러다가 고3때 학교내 후배 폭행으로 학교가 한바탕 난리남. 난 그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싸잡아서 불려감. 엄마는 못온대서 군대 휴가나온 우리 친형이 옴. 예전부터 내가 형보다 크고 형졔끼리 안친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진짜 형한테 ㅈㄴ맞음. 싸우려해도 아무래도 피섞인 형이라 그런지 못때리겠더라. 뭐 당사자들은 정학먹고. 

나는 그냥 교내봉사??같은거 했는데 우리형 휴가 복귀하고 학교끝나고(보충, 야자같은것도 안했음) 3시쯤 집들어갔더니 엄마는 아빠한테 맞았, 그 원인이 난거같더라. 학교에서 애비한테 먼저 전화를 했었나봄. 신경도 안쓰던 애비가 술처먹고 꼬장부리는거였을텐데 그냥 나도 눈돌아감. 뭐 손에 닿는거 던지고 창문 부시고 하다가 피나니깐 머리가 식음. 애비 쫓아내고 엄마랑 멍하니 있는데, 그냥 엄마한테 미안했음. 진짜 별생각없었는데 갑자기 엄마한테 미안해지더라고. 지켜줘야겠다 싶었음

그때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함. 그당시때는 할수있는게 뭐 딱히 없더라고. 엄마한테 힘이 되줘야겠다 그런게 아니라 그냥 속상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같은거였음. 뭐 어찌저찌 지거국감. 학자금대출받음. 겨우 예비로 들어감ㅋㅋ지금 와서 보면 왜갔나 싶음. 그냥 공부그래도 했는데 안가긴 좀 그랬음

1학년 끝내고 군대갔다가 워킹홀리데이 붐이 일어나서 호주감. 거기서 돈 많이 벌었다. 쉐어하우스에 같이살던 형 누나들은 엄청 힘들다 그러던데 난 별로 안힘들었음. 아마도 고딩때까지 집이 개 흙수저라 멘탈은 좀 강했었나봄. 농장같은덴 안가고 시티에 있으면서 쓰리잡뜀. 어느순간 주방보조만하다가 현지인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더라구. 따로 공부는 안했는데 사장이 서빙하라함. 팁 진짜 많이받음. 슬슬 한류 시작시점이라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줌. 외모도 나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딩때부터 대학교때까지 인기는 좀있었다. 근데 집사정같은거 들키기 싫어서 깊게 연애는안함. 호주에서 처음 진지하게 연애시작함. 거긴 애들이 개방적임.

1년정도 하고 비자 연장할까 고민하는데 애비죽음. 그래서 한국들어옴. 진짜 뻥안치고 객사함. 눈물 한방울도 안흘림. 사실 별생각도 없었고 귀찮기만했음. 나는 아직도 한번도 안찾아감. 형이 알아서 하는거같은데 내가 증오를 넘어서 혐오하는걸 알아서 오라고는 아직도 안하더라. 오라해도 갈맘도 없음

한국와서 모아놓은 돈으로 첨으로 엄마랑 아파트로 이사갔다. 엄마도 짬좀 되니 수입도 좀있고. 이제 돈뜯어갈 새끼도 없고. 나도 벌어놓은 돈도 있고. 엄마 펑펑울더라. 대학교 자퇴함. 아무리 생각해도 다닐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음. 자동차 딜러로 들어감. 내인생 황금기였다. 돈도 많이 벌고 , 돈쓰는 맛을 알아서 버는 족족 다씀. 한달 카드값이 400~500정도였음.

마냥 행복하게 살고있었는데 엄마 암걸림. 4기임. 건강검진 매년 했었는데도 안되려니 그렇게 되더라. 진짜 눈앞이 캄캄해짐. 겉보기엔 혈색만 없지 괜찮았는데 하루하루 안좋아지는게 눈에 보임. 엄마는 보험하면서 자기 보험은 제대로 안들어놨더라고. 항암약은 보험되는건 엄마한테 효과가 없어서 보험 안되는 약으로 썼는데 진짜 약값이 어마어마하더라. 빚이 4000생김. 형도 나름 잘되서 반반 부담한건데도 이렇게됨. 진짜 돈잘벌때 저금 안한거 엄청 후회되더라. 저금해라 얘들아

2년정도 버티다가 항암 포기함. 방법도 없고 암세포도 너무 커짐. 사실상 포기당했음. 근데 옆에서 보고있으면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차라리 가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들었다. 항암포기하고 나도 일 그만둠. 퇴직금도 꽤 쌓였고, 남은 기간동안 엄마랑 시간을 오래 보내고싶었음. 누구 하나가 옆에서 케어를 해줘야 하는 상탠데 요양병원 보내기도 싫었고.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집에서 자기 케어만 하지말고 공무원준비라도 해보라함. 사실 병간호를 또 24시간 하는건 아니니깐 심심도하고, 목적이 없는 인생이라 공허하기도 했음. 막내아들 자랑스럽게 공무원되서 자기 자식농사 잘지었다는거 눈으로 보고 가고싶다함. 깊게 생각안함. 무조건 제일빨리 될수있는거 찾아봄. 시간이 얼마 없었거든. 교순소중 하나던데 순경이랑 소방은 학교를 꽤 오래 가더라구?? 교정밖에 없었음. 9월부터 시작함. 고3때 공부를 좀 해서 그런가 영어 한국사 국어는 엄청 어렵게 하지않음. 이번 시험도 꽤 만족스럽게 나왔음. 뭔가 합격할것 같았음.

엄마가 2월에 죽음. 갑자기 죽음. 중환자실에서. 내 세상이 끝난것 같았음.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쇼크오더니 죽더라. 뭐 사실 멀쩡하진 않았지. 시험될것같냐해서 될것같다고 별로 어렵지 않다고 대답했더니 엄청 환하게 웃더니, 3일뒤에 죽음. 엄마는 옛날사람이라 공무원이 되게 높은건줄 알았어. 뭐 9급?7급?이런건 모르는것 같더라. 그냥 꼭 보고 죽을거라 했었는데 결국 나 합격하는거 못보고죽음. 진짜 자신있었거든

마냥 슬퍼할 시간도 없었음. 시험 2달남았었고, 사실 별로 실감도 안나더라. 그냥 이번에 합격하고 합격증?같은거 받으면 그거 들고 집에오면 엄마가 보고있을것 같아. 그래서 그냥 열심히함. 장례식때 말고는 한번도 안울었다. 이번에 시험보고 집에서 혼자 채점하는데 평균 80점 조금 넘게 나옴. 진짜 펑펑울었다. 그냥 엄마가 옆에 있는것같았어. 찍은것도 꽤 많이 맞춘거같은데 엄마가 도와주지 않았나 싶었다. 여자친구, 여자친구부모님, 우리형 전화오고 나오라는데 집에서 나가기싫어서 그날은 그냥 하루종일 집에있었다. 그날이 나는 그냥 엄마 보내준 날이었음.

운동도 나름 꽤했고, 이번에 체력학원가서 측정해보니깐 어디 부러지지 않는 이상 충분히 합격할것같더라. 엄마가 도와줄거라 믿는다.

제일 후회되는게 엄마랑 여행한번도 안가본거, 두번째가 합격하기전에 엄마 보낸거다. 이번에 합격하면 아마도 결혼하고 나름 평범하게 살겠지. 여태까지 평범하진 않았지만 이제부턴 최선을 다해서 평범하게 살거다. 남은 체력 다들 열심히하고, 이글을 끝까지 본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들 부모님한테 잘하구! 잘될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