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의 밤


문수호는 오늘도 어김없이 24시간 편의점 야간 근무를 시작했다. 3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에 실패한 채 수년째 편의점 알바로 연명하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텅 빈 매장을 바라보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 2시, 초췌한 얼굴의 여자가 들어왔다. 수호는 습관적으로 "어서오세요"를 외쳤다. 여자는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들고는 카운터 앞에서 주저했다. "돈이... 500원 모자라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수호는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채워드릴게요."


여자가 나간 뒤, 수호는 다시 빈 편의점을 바라봤다. 가난하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 밤은 의미가 있었다. 형광등은 여전히 쓸쓸했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조금 따뜻했다.


다음 날 밤, 수호는 어제 그 여자가 혹시 다시 올까 싶어 괜히 입구 쪽을 자주 쳐다봤다. 하지만 오는 건 술 취한 대학생들과 야식을 찾는 배달 기사들뿐이었다. 


"수호야, 너 요즘 표정이 좀 밝아진 것 같은데?" 새벽 5시, 교대하러 온 사장 박미정이 물었다. 수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가요? 별일 없어요. 그냥 기분이 덜렁덜렁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호는 편의점 앞 벤치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손에 구직 신문을 쥐고 있었고, 지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기... 괜찮으세요? 아침 안 드셨죠? 제가 김밥 하나 사드릴게요."


여자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수호보다 몇 살 어려 보였다.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휘청거렸다.


"앉아 계세요. 제가 금방 사올게요." 수호는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김밥 두 줄과 따뜻한 우유 두 개를 샀다. 자신도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핑계로.


벤치에 나란히 앉아 김밥을 먹으며 둘은 서먹한 침묵 속에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여자였다. "저... 어제 정말 고마웠어요. 사실 3일째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회사가 갑자기 부도나서... 월급도 못 받고, 월세도 밀려서..."


수호는 자신의 처지와 겹쳐 보이는 그녀를 바라봤다. "저도 비슷해요. 편의점 알바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라..." 그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혹시... 우리 편의점에서 같이 일하실래요? 주인 아주머니한테 부탁해볼 수 있는데. 낮 시간대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여자의 눈에 처음으로 생기가 돌았다. "정말요? 그럼... 정말 감사하겠어요!" 그녀는 김밥을 삼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문수호의 편의점 생활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이름도 모르던 그 여자, 한지영은 일주일 후부터 낮 시간대에 함께 일하게 되었다.


한 달이 흘렀다. 문수호와 한지영은 이제 서로의 근무 시간이 겹치는 오후 5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교대 시간 전후로 함께 편의점 뒤편 창고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되었다.


"수호씨, 오늘 손님 중에 진상 하나 있었어요. 담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저한테 화내더라고요." 지영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의 초췌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밝은 표정이 돌아왔다. "그래도 이제 월세는 해결했어요. 다음 달부터는 밀린 거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수호는 그녀의 밝아진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행이네요. 저도... 사실 요즘 일하는 게 덜 힘들어요. 지영씨 덕분인 것 같아요." 그의 솔직한 말에 지영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날 밤, 수호가 야간 근무 중 졸음을 쫓고 있을 때 지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수호씨, 자고 있어요? 잠이 안 와서... 혹시 괜찮으면 편의점 앞으로 나가도 될까요?'


수호는 놀라며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 새벽 1시. 이 시간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 답장을 보냈다. '네, 올래요? 따뜻한 차 준비해둘게요.'


15분 후, 후드티를 입은 지영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었고, 머리도 대충 묶은 상태였다. "죄송해요. 갑자기 연락해서..." 그녀는 카운터 앞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심심했어요." 수호는 따뜻한 유자차를 건넸다. "무슨 일 있어요?"


지영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오늘... 전 남자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지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 만나자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그때 회사 부도 나고 힘들 때 저 혼자 두고 떠난 사람이..." 그녀는 유자차를 꽉 쥐었다. "근데 이상하게 화가 안 나요. 그냥... 아무 감정도 안 들어요."


수호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거절했어요. 전화 받자마자." 지영이 처음으로 수호를 똑바로 쳐다봤다. "수호씨... 저 요즘 다른 사람 생각하고 있거든요." 


편의점은 고요했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웅웅거렸다. 수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저도요." 그가 작게 대답했다. "지영씨 생각... 자주 해요."


지영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미소 지었다. 


형광등 아래, 두 사람의 손이 카운터 위에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수호씨! 수호씨! 아잉 내 남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