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GHQ가 인정한 히로히토 천황의 무죄를 증명하는 기도 고이치 증언과 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노?(난 전후 일본의 새로움을 상징하기 위해 인간선언 이후 아키히토한테 양위하고 물러나는게 옳았다고봄)
2.1947년 헌법을 수립된 일본국이 극성 한국좌파 일부의 주장대로 나치독일과 독일연방공화국과 관계와 다르게 1931-1945 군국주의 일본과 전혀 다를바 없고 같은 세력이 통치하는 국가로보는가?
1.GHQ가 인정한 히로히토 천황의 무죄를 증명하는 기도 고이치 증언과 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노?(난 전후 일본의 새로움을 상징하기 위해 인간선언 이후 아키히토한테 양위하고 물러나는게 옳았다고봄)
2.1947년 헌법을 수립된 일본국이 극성 한국좌파 일부의 주장대로 나치독일과 독일연방공화국과 관계와 다르게 1931-1945 군국주의 일본과 전혀 다를바 없고 같은 세력이 통치하는 국가로보는가?
1. 기도 고이치조차도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있으니 퇴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황의 일본사, 구태훈 저, 휴먼메이커, 2022년, 376~379쪽) 2. 그 당시의 군부 출신들 자체야 물갈이 되고 현대 일본은 관료들이 통치하는 체제이지, 그러나 국체를 계승한 이상 배상책임은 승계한다는게 통설이라고
1.도의적 책임이고 퇴위 관련은 동의 2.독일도 나치 국체를 계승함?
1. 천황의 측근 기도 고이치(1889~1977년)는 같은 재판부에서 자신의 일기를 제출하며 “진주만 공습이 천황의 재가를 받고 이루어졌다”고 증언했다.
출처 :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3264
2.
국가 승계 되었다는게 통설로 알고 있음. 뭐 반박논리가 있을 순 있겠지
1.형식적 재가 2.독일연방공화국은 승계를 부정하고 나치를 불법정권 취급함
@AmericaFirster 1. 애시당초 다른 댓글에서 언급했지만 히로히토는 능동적으로 전쟁에 참여했음에 교차검증 가능함. 2. 나치를 불법정권 취급한다는거고 자연법상 수권법이 문제있기에 불법정권 취급하는것이지 나치 시절의 배상책임을 부정하는 맥락이 아님.
@ㅇㅇ(118.235) 엄밀히 말하면 도의적 차원의 보상이긴 한데, 사실 국제적으로는 우리나라랑 다르게 배상-보상 개념이 엄밀히 구별되는건 아니다만
1.매국노 고종 저자 주장과 똑같노 2.히틀러 수상 임명을 나치정권 스타트로 볼걸
@AmericaFirster 1. 고종과는 궤가 다르지, 고종이나 히로히토나 둘다 무능한건 맞지만 적어도 히로히토의 전쟁 가담은 여러 증거들로 교치검등 가능함. '사와모토 요이오 해군차관 일기'나 '쇼와 천황독백록'이나 '9월 6일 어전회의' 등의 기록에서 히로히토는 단순히 거수기 역할이 아니라, 명백하게 최종 결정과 안건 선택 등의 능동적 통수권 행사를 주도했음.
@AmericaFirster 그레 비해서 고종이 일본에게 나라를 팔았다는 주장은 고종실록 외에는 그 근거가 빈약한데, 사실 고종실록은 엄밀하게 말해서 조선왕조실록에 해당되지 않음. 왜냐하면 전통적인 조선왕조실록 편찬방식으로 간행된게 아니라 최종 편집을 일본에서 주관한지라 편파적 내용이 있었고, 심지어 대한제국에서 독일이나 미국 등에 보낸 친서에서는 고종실록과 상반된 내용까지 확인
@AmericaFirster 가능해서 고종실록의 신빙성이 낮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니깐
@AmericaFirster 이건 내 억지가 아니라 실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조선왕조 실록 중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이왕직 (궁내성 관할 하의 기구이지만, 동시에 조선총독부의 감독을 받는 일본의 기구)의 주관 하에 편찬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외되었음.
@AmericaFirster 일부 오타는 양해바람
@ㅇㅇ(118.235) 1.그런걸 다 종합해도 전쟁범죄자라고 명확히 판단할 수준까지는 아니라고보고, 대부분 그래 그렇게해라(ㅅㅂ 내가 뭐 어쩌겠노) 이런 수준의 재가였음
@ㅇㅇ(118.235) 고종실록뿐만 아니라 매국노 고종 저자는 여러가지 교차검증이 가능한 자료들로 고종 매국설을 주장한거임 이태왕 작위를 받은게 고종이고 고종이 병합 이후 탈출을 시도했다는 증거도 다 자료중 신빙성이 낮은편이고, 어느 자료는 아예 측근이 1915년에 중독영러가 연합해서 일본을 협공한다는걸 믿고 한중의방조약안에 도장까지 찍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런 낭설까지 떠도는데 고종저항설을 믿기가 어렵지 일제가 적었다고 다 가짜도 아니고
나는 고종실록도 역사적인 자료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임. 반일을 하기 위해서 일제치하의 영향에 있었던 고종시기의 기록이 영향이 있다하여 그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부정을 하면, 명나라,청나라 압력을 받았던 조선왕조의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맞음. 실제로 일제의 영향이나 압력이 있었던다 한들 그또한 소중한 자료이며 유물임.고종실록만 제외해서 역사에 체리피킹해서는 아니될 일임 - dc App
한국인이라는 거는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 대개 없기 마련이고 주로 돈의 흐름만 보면 되는데 이씨 왕족 집안을 대변하는 기관 '이왕직'은 일반적인 화족들이 부러워할 정도로의 액수를 매년 일본정부로부터 받았음. 이또한 고종이 국가를 팔았다는 '킹리적갓심'에 해당함.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음. - dc App
@DR블랙잭 체리피킹이 아니라 대놓고 다른 역사지료와 충돌되는 지점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믿냐는것
@AmericaFirster 고종이 적극 저항했는가 망명하려 했는가에 대한 판단을 제외하고 봐도, 심지어 일본 측 기록에도 고종실록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 존재함. 주한일본공사관 문서중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일의 기사를 보면 대놓고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하고 압박을 넣어서 한규설이 졸도했다고까지 나오는데
@ㅇㅇ(118.235) 고종실록이 당시 기준으로는 제일 신빙성있는쪽에 속하고, 1915년에 중독영러가 연합해서 일본을 협공한다는걸 믿고 한중의방조약안에 도장까지 찍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런 친고종 자료들을 어떻게 믿을수 있냐는거임
역사라는 건 본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승자가 적당히 자신의 입맛대로 썼음은 감안하고 보아야 하는데 기록자체를 무시하는 처사는 역사의 체리피킹이 맞잖아? 당장 용비어천가만 보더라도 일개 여진족에 불과했던 이씨왕가의 정당성을 찬미하는 이야기인데 이게 당연히 주작이 맞음.그러나 우리가 이를 공식적인 사료중 하나로 취급하는 것은 그또한 가치가 있기 때문임. 만일 고종실록이 일제의 영향을 받아 신뢰할 수 없다면 중중 명뽕 성리학뽕에 찌들었던 조선왕조실록 자체도 공식적인 역사사료에서 제외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다 할 것임. - dc App
@DR블랙잭 당연히 교차검증을 통해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을 배제하는건 당연한 상식임. 가령 세조가 계유정난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김종서가 역모를 꾸몄다"는 핑계를 들이대고, 이것이 세조 시기의 역사서적에 적혔으나, 현대 사학계에서 그런 주장을 일단 사효에 적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사실로 보자고 주장하는 사학자는 1명도 없음. 당연히 고종실록 전체의 내용을
@DR블랙잭 깡그리 다 배제하자는 논리는 아니고, 그럼에도 고종실록을 편찬한 것이 일본정부였는데 고종실록의 내용으로 한일관계를 가늠하려는 것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료로 보긴 어렵지
한국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료만 체리피킹하고 불리한 사료는 빼서 사실이 아니다 식으로 얼버무리는것이 어느정도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고종실록 거르는 건 좋게 보기 어려워 보임. 당장 일본서기만 하더라도 임나일본부 설을 주장했고 한국 국사계는 이를 부정했는데 전라도 쪽에서 왜인 풍 고분이 나오니 발굴을 중지하고 바로 다시 다 파묻었다고 함. 물론 일본이 주장하는 바가 100프로 옳지는 않을수도 있겠지.그러나 일단 사료적 증거가 있는데도 무지성으로 아니라고 우기는것만큼 추한 것이 또 없음. 이러한 작태를 본인은 상당히 안 좋게 보는 바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