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성경을 논의함에 있어
콤팩트하게 논의하는 건 불가능함
신중하고 광범위하게 다뤄야만 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
일단 성경 속 세금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물어봤으니 이 링크부터
천천히 정독하고 오는 것을 추천함
호배게이가 자연법 그 자체를
최종적인 전제라고 봐서 생기는 문제 같은데
자연법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연법에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임
자기소유권도 “독점”이라는 범주에서
국가의 독점을 비판하려면
국가의 독점권보다 자기소유독점권이
더 우선해야만 모순이 생기지 않음
즉, 리버테리언부터 국가의 독점보다
자기소유독점을 상위법체계로 전제하고
이미 논의를 전개해나가고 있다는 것임
또 실제로 법치국가의 입헌주의로
상위법-하위법을 이해하기 쉬움
하위법인 법률과 행정명령 등은
상위법인 헌법에 저촉되는데도 집행할 수 없음
하위법의 준행은 상위법에 어긋나면서까지
이뤄져서는 안 됨
이 상위법-하위법 구조를 이해하는 게 중요함
자연법도 이 세상보다 상위에 존재하고
우선하는 상위법체계가 맞지만
그 자연법을 자연법답게 권위와 의미를 부여한
하나님 앞에서는 자연법도 개별자에 불과함
권위와 의미의 원천이신 하나님만이
모든 도덕과 법과 당위와 권위에 우선함
성경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인간이 지켜야 할 최상위법이라고 말함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의 신약 버전임
이 계명보다 자연법은 우선하지 않음
이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원칙에
자연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임
자연법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실정법 체계 하에서 상위법이 하위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음. 그런데 절대자의 도덕체계 안에 상위법과 하위법의 구분이 가능하다면 그 기준이 무엇이냐는 게 내 질문이었음. 게이는 하나님이 자연법에 권위를 부여했기에 자연법이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했는데, 맞음. 그런데 대체 어떤 근거로 자연법에서 보장하는 자연권 중 하나인 사유재산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규범을 옹호할 수 있냐는 거임. 즉 어떻게 세금을 정당화할 수 있냐는 거.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보다 어떤 말씀이 더 상위에 있길래 세금의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거임?
보통 로마서 13장 1~7을 많이 인용하는데,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권세가 아니라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함. 즉 하나님이 세우신 게 아니라면 그것이 권세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권세가 아닐 수 있음을 의미함. 또한 로마서 13장은 기독교인과 국가의 일반적인 관계에 대해 서술한 일반론이라고 보기 힘듦.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원칙을 국가 지배계층에게도 적용하라는 말로 의미하는 게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모순되지 않는 독해 방법임.
덧붙여서 13장 3절에 집중해보면,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을 행하는데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나옴. 이는 뒤집으면 선한 일을 행하는 데 두려움이 되는 자는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그저 지배하는 자일 뿐이라는 뜻임.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구절도 해당 말씀이 나온 상황의 뉘앙스, 전후맥락을 살펴봐야 함. 아주 쉽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함정질문을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음. 로마의 통치가 폭압적인 시절에 친로마냐 반로마냐 묻는 것은 명백한 함정질문이지. 이건 납세를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을 의미함. "나한테 함정질문 걸 생각하지 말고, 니들이 생각하기에 카이사르의 것이라면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이게 바치라"는 의미인 거.
정리하자면, 게이가 세금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을 인용하는 거임. 하지만 성경 구절을 인용하려면 해당 말씀이 왜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율보다 우선하는 것인지까지 논증해야 함. 물론 인용하는 구절이 "정말로" 세금을 정당화하는 구절인지도 검증해야 하고.
이게 왜 세금을 정당화하는 구절임?
그게 왜 그렇게 해석됨?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해석이 이루어진 건지 설명을 해달라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