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배게이와의 토론에서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지점이 생겼음.
바로 “모순적인 신은 신이 아닌가”하는 지점.

호배게이는
절대자를 개별자적인 요소들로 구성해놓고서는
절대자를 평가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

참이다, 거짓이다, 모순이다 등의 의미뿐만이 아닌
우주 내 실재하는 모든 의미체계를 창조한 분이 절대자임.
모순도 모순이지 않던 무의 상태에서
모순에 모순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 절대자라는 것임.
이게 플라톤이 말하는 보편자 논의의 핵심임.
“개별자에 통일된 의미를 부여하는 보편자가 없다면
개별자는 의미를 지닐 수 없다”

모순을 모순답게 창조한 이를
모순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려 들며
전지전능을 재단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모순”적 행위임.
이것은 절대자의 전지전능함을 재단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닌,
“전지전능한 절대자”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주장을 펼치면서
“절대자는 전지전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

호배게이는 위 짤에서와 같이
절대자가 모순적이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를
“인간이 절대자를 알아볼 수 있기 위함”이라 들었음.
이건 지극히 개별자적 관점으로 또한 모순된 주장임.
인간이 찾고 말고의 여부는 전적으로 절대자의 의지에 따름.
개별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절대자가 ~해야 한다는 것은
개별자-절대자 간의 층위가 전도된 주장임.

호배게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절대자는 개별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아니다”를
입증하면 되는 것임.

호배게이가 소설을 쓸 때,
소설에 일관성을 지키면서 문학예술로 승화시켜도 되고
소설에 역설이나 오히려 모순을 더하며 승화시켜도 됨.
호배게이의 주장은 모든 소설가들이
자율적으로 내용을 창조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수준임.
완전한 자율의 소유자는 오직 절대자뿐이심.

또한 자기소유권을 기반한 자유지상주의에서도
신생아가 젖 달라고 보채는 행위 또한
어머니의 자기소유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신생아는 존재 자체가 자유지상주의의 위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