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린 적 있는 글인데
무슨 이유인지 삭제됐나 안 보여서 재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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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요약 :
인간과 개를 구분짓지 못하는 개별자 범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부조리 상태, 즉 “인본주의적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대자가 실재해야만 하고, 그 절대자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 함을 알았다.
따라서 어떠한 의미나 가치나 도덕이 또 다른 의미나 가치나 도덕보다 우위점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절대자의 실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자이다.
반면 누구든지 무신론자라면 그 어떠한 의미나 가치나 도덕을 옹호할 수 없으므로 당장 칼을 들고 부모님을 죽여도 그것이 ‘악하다는 가치판단’마저 전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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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동성애 논의에 앞서 도덕과 당위성과 절대자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도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동성애의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
도덕의 관점에서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도덕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동성애도 하나의 권리로 인정받으려 하는 부류. 반대로 동성애도 ‘도덕적으로 선하므로’ 인정받으려 하는 부류.
전자의 문제는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도덕의 절대성을 부정하여 결국엔 살인도 악하지 않게 되는 무도덕 사회를 도래시킨다는 점이다. 반드시 지켜져야만 할 최소한의 가치는 절대성, 당위성을 기반하지만 동성애를 옹호하고자 이를 허상으로 보고 무너뜨리면 모든 도덕체계가 흔들릴 뿐만 아니라 살인이 악하다는 절대성마저 허상으로 전락한다.
뿐만 아니라 마이클 샌델도 저서 “왜 도덕인가”에서 권리위주 동성애 옹호론자들을 탁월하게 비판한다. 샌델은 동성애도 그저 권리이므로 사회적 인정이 없더라도 허용된다면 그것은 “천박함에 대한 관용”밖에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사회적 인정 없이 음란물이 허용되던 논리와 같은 맥락에서, 동성애도 음란물처럼 천박하지만 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용되어 사회적으로 더 고립되거나 무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 옹호론자들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동성애를 천박한 음란물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리는 데에 일조한다는 것.
그렇다면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동성애도 선하다’는 입증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만 “천박함에 대한 관용”이라는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과연 동성애가 선하다는 입증을 동성애 옹호론자들이 할 수 있는가?
위에서 살펴봤듯이 의미와 가치와 도덕은 ‘절대자의 실재’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곧 동성애가 선하다는 입증은 동성애가 선하다는 도덕적 가치체계를 만들어낸 절대자가 실재한다고 입증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동성애신교’라고 이름하는 종교를 만들고 이것이 사실이라고 입증하는 것까지, 과연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하지만 동성애라는 개별자에 기반한 종교를 만드는 것은 역시나 또 하나의 개별자를 만드는 것에 불과한 일이겠다.
이상으로 도덕의 관점에서 동성애 옹호론자들을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전자는 모든 절대적인 도덕체계를 붕괴시켜 살인마저 가치판단을 할 수 없는 무도덕한 사회가 되는 문제와 천박함에 대한 관용의 문제가 있었고, 후자는 동성애가 선하다는 가치체계를 만들어냈다고 하는 절대자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결론은 동성애는 여전히 도덕적으로 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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