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정치인으로 성장: 대공황 안 터졌으면 불가능. 실제로 미국이 제시한 도스 안과 영 안을 통해 베르사유 조약 배상금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낸 독일 경제가 괜찮게 돌아가던 1928년 총선 당시 나치당은 총 491석 중 12석, 득표율 2.63%에 불과한 군소정당이었음
똑같이 반체제 정당이었던 공산당이 54석 획득에 10% 넘는 득표를 했던걸 보면 당시 나치당은 그냥 하꼬 그 자체
총리 취임: 나치당이 대공황 이후 급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기에(나치당이 가장 크게 승리한 33년 총선에서도 288/647석으로 과반에 한참 미달)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려면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비상대권을 통해 그를 총리로 임명해주었어야만 했는데, 파펜의 공작 이전까지 귀족주의자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근본 없는 출신의 히틀러를 극혐했기에 이것도 히틀러를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자기가 실권을 꿀꺽하려 한 프란츠 폰 파펜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일.
독일의 재무장 성공 및 영토 확장: 전쟁을 두려워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군 전력을 과대평가하며 히틀러의 요구 앞에 설설 기지만 않았어도 불가능했었을 일. 프랑스가 ‘6주’ 당한 건 낫질 작전과 같은 변칙적 작전의 힘의 영향이 컸으며 독일군의 전력은 프랑스 내지 영프 연합군과 1:1로 붙을 정도로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폴란드 침공 당시 프랑스가 그냥 바로 독일로 진격했으면 나치 독일은 1945년이 아닌 1940년에 박살날 수도 있었음
똑같이 반체제 정당이었던 공산당이 54석 획득에 10% 넘는 득표를 했던걸 보면 당시 나치당은 그냥 하꼬 그 자체
총리 취임: 나치당이 대공황 이후 급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기에(나치당이 가장 크게 승리한 33년 총선에서도 288/647석으로 과반에 한참 미달)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려면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비상대권을 통해 그를 총리로 임명해주었어야만 했는데, 파펜의 공작 이전까지 귀족주의자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근본 없는 출신의 히틀러를 극혐했기에 이것도 히틀러를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자기가 실권을 꿀꺽하려 한 프란츠 폰 파펜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일.
독일의 재무장 성공 및 영토 확장: 전쟁을 두려워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군 전력을 과대평가하며 히틀러의 요구 앞에 설설 기지만 않았어도 불가능했었을 일. 프랑스가 ‘6주’ 당한 건 낫질 작전과 같은 변칙적 작전의 힘의 영향이 컸으며 독일군의 전력은 프랑스 내지 영프 연합군과 1:1로 붙을 정도로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폴란드 침공 당시 프랑스가 그냥 바로 독일로 진격했으면 나치 독일은 1945년이 아닌 1940년에 박살날 수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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