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지 고나우(관우):실제론 패귀 수준
제갈량(갈상국): 역시 자기대에 멸망하거나 살해는 안당했을뿐. 국력만 갈아넣고 성과가 없음
제갈량 죽고나서 촉은 고대에 1가구에 3.3명 핵가족으로 변함
하지만 제갈량은 대전략가, 고나우는 군신으로 추앙받음.
이순신
유의미한 승전은 한산도 (2만정도 동원해서 3만석 1500 병력 와키자카와 싸워 이김
와키자카는 이후에도 병력을 1200명 동원하여 추가 충원을 했다하더라도 한산도에서
죽은 일본군 숫자는 아주 많아야 300-500명 수준임)
명량도 대첩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일본군 선두의 병력 극히 일부 수십-백따리 수준과
1만석 개잡장 하나를 죽인후 전라우수영을 버리고 도주함. 군산 근처까지 계속 후퇴함
노량에서는 시마즈의 전술에 걸려들어 목숨을 잃음.
당시 조총은 유효사거리 40미터따리나 그 이하인데
전투에서 굉장히 안좋은 상황에 몰린듯함
윤관
국력 갈아넣어 17만 동원하여 동북9성을 쌓는 북벌을 하였으나
당시 국가체계도 잡히지 않은 추장 집단 여진족에게 존버를 실패하고
다시 뱉어내며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됨
대마도 정벌(?) 실제론 빤스런
임경업 뭐 한거 없음
등등
이순신은 그냥 후방부대 게릴라 하는 게 전부였고 보급로인 부산항은 근처에 못 가던 인간이죠. 그리고 연의의 관우와 장비는 정사 기준으로는 반대로 묘사하면 되죠 (장비가 오히려 지략을 갖추고 관우는 좀 모자란 인간 같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라면서 우금 하후돈 군대 계곡에서 화공으로 전멸시킨 것도 제갈량이 아닌 유비와 미축이 한 거고
조정에서 닥달하니까 부산포 한번 찔러봤다가 빤스런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포 보급로를 못끊었으니 전세에 영향을 끼칠수가 없었죠. 장비는 명장 장합과 싸워 이겼으니 군재는 제법 수준급이라 하겠습니다. 제갈량은 1차 북벌에서 황제 유선의 기록으로 호왈 20만명을 끌고 처들어갔으나 본대 회전 한번 못해보고 빌빌대다 실패했죠. 마속의 경우에도 당시 가정의 지형이 야트막한 구릉 수준이었다는걸 삼국지 유튜버 양양이가 직접 방문하여 인증한바가 있고(소수로 대군을 막을곳이 아님) 제갈량은 원자의 기록에 따르면 10리(4km이하)근처에 있는데 구원을 하지 않고 손절했다합니다. 마속은 패전 욕받이로 억울한 면이 많아보입니다.
제갈량은 명장 위연등에 재량을 많이 주지 않고 군재가 딸리는 자신이 모든걸 총괄하여(군권을 잃으면 권력을 잃는다는 관점인듯) 북벌 5차례 하면서 인력만 갈아넣고 거의 무성과로 국력만 소진시켰죠.
오히려 일본이 이런 면에서는 냉엄하더군요. 한때 영웅처럼 묘사된 사카모토 효마는 오히려 그 역할과 영향력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는 게 주류 정설이 될 정도고
료마는 소설빨로 올려치기 되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일본은 인물에 대해서 일방적인 원사이드 의견이 아닌 다각도 재평가등이 많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효마->료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