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사건이 일어난 후 제주도 총선에서 친이승만계의 대동청년단 출신이 국회의원으로 무난하게 당선되고
국회를 겁박해서 부산정치파동 일으켰는데도 임정 출신이자 민주당에서 밀던 이시영을 눌렀고 당시 선거 결과 보면 80%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직선제에서 당선되었죠
이후 부통령 부정선거로 책임지고 하야했는데도 인기가 많아서 이승만 집에 찾아오는 시민들이 많아 이승만이 담소 나누고
이승만의 양자인 이강석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는 말까지 나왔으니..
당시 반도놈들 입맛에는 딱 맞는 국가수반이었던 듯
뭐 청년 시기부터 네임드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여러 조직에서 대표로 추대할 정도였고
현대의 몇몇 조센징들이 임정을 한국의 정통 정부라고 우기는 개소리를 해도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 되는 거니..
국회를 겁박해서 부산정치파동 일으켰는데도 임정 출신이자 민주당에서 밀던 이시영을 눌렀고 당시 선거 결과 보면 80%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직선제에서 당선되었죠
이후 부통령 부정선거로 책임지고 하야했는데도 인기가 많아서 이승만 집에 찾아오는 시민들이 많아 이승만이 담소 나누고
이승만의 양자인 이강석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는 말까지 나왔으니..
당시 반도놈들 입맛에는 딱 맞는 국가수반이었던 듯
뭐 청년 시기부터 네임드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여러 조직에서 대표로 추대할 정도였고
현대의 몇몇 조센징들이 임정을 한국의 정통 정부라고 우기는 개소리를 해도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 되는 거니..
당시 미국 박사학위란 권위는 조선인들을 압도하기 최적 스펙이었던듯합니다. 조선인 천하관에서 일본 세상이 무너지고 미국 세상이 왔는데 그 미국의 박사(당시에 엄청나게 희귀)가 조선에 강림했으니
그래서 미군정이 대체재로 자기들에게 순응하는 김규식 (미국 석사)을 밀었는데 이승만만큼의 선동능력이 없었고 지지도 미약해서 실패해버렸죠. 서재필도 밀어보려 했는데 정치권력에 큰 관심이 없어 실패했고
이시영은 찾아보니 훌륭한 장인(김홍집)을 두었네요. 그렇지만 반일로 살아왔으니. 그래도 국민방위군 사건에 개탄하며 부통령직 던진거 보면 나름 양심은 있는 인물같습니다.
한편 이승만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일부 재산의 환급을 제안했으나 이때 이시영은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운동한게 아니라며 거절하였다. <- 이것도 인상적이네요. 저러기가 쉽지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