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수가 급수적으로 늘어난건 협호 때문이지
노비종모법이 노비 비율을 올렸다는 류의 주장이라는건
이미 진작에 반박된 구닥다리 인터넷 일뽕들 레퍼토리임
익명(118.235)2023-03-27 23:59
답글
즉, 19세기 초반까지 협호는 전체 호구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노비나 고공과 달리 가족을 구성한 신분이 자유로운 상민층이 그 중심부를 이루고 있으며, 평균 나이도 농사에 적합한 30대 중반으로서 주호의 생산노동력으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주호-협호의 관계는 가족노동력을 매개로 이루어진 노동관계였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에 협호의 숫자는 급감할 뿐 아니라 신분적으로 양반이면서 주호와 친척관계에 있는 남성 1인으로 구성된 협호가 그 중심부를 이루고 있으며, 평균 나이도 농사에 부적합한 50대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라고 나오는데. 협호가 노비가 아닐뿐더러 20%정도면 노비 비중이 최고 40%에서 최대 70-90%까지 올라간걸
영정조 올려치긴 좀 문제있다 보는데 세종이 노비킹이라는것도 과장임
고려시대 노비 비율 약 10퍼 -> 세종이 노비종모법 제정후 -> 노비비율 축소한게 40퍼대 많게는 70-90퍼까지도 추정하게 올라감
노비 수가 급수적으로 늘어난건 협호 때문이지 노비종모법이 노비 비율을 올렸다는 류의 주장이라는건 이미 진작에 반박된 구닥다리 인터넷 일뽕들 레퍼토리임
즉, 19세기 초반까지 협호는 전체 호구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노비나 고공과 달리 가족을 구성한 신분이 자유로운 상민층이 그 중심부를 이루고 있으며, 평균 나이도 농사에 적합한 30대 중반으로서 주호의 생산노동력으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주호-협호의 관계는 가족노동력을 매개로 이루어진 노동관계였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에 협호의 숫자는 급감할 뿐 아니라 신분적으로 양반이면서 주호와 친척관계에 있는 남성 1인으로 구성된 협호가 그 중심부를 이루고 있으며, 평균 나이도 농사에 부적합한 50대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라고 나오는데. 협호가 노비가 아닐뿐더러 20%정도면 노비 비중이 최고 40%에서 최대 70-90%까지 올라간걸
합리화가 불가능함.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835843
간혹 조센 초기중기도 쌍욕박는 사람들 있는데, 나는 뭐 거기까진 아니고, 조선중기까진 걍 전형적인 중세 왕정이고 후기부턴 발전이 없어서 개좆박은 쓰레기국가라고 봄 - dc App
노비종모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