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그의 대통령 취임 약2주일 전인 이듬해 212일 그가 추진할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벌기업의 개혁을 포함한 과감한 경제개혁을 단행할 것을 밝혔다.


김대중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총체적인 개혁을 다짐하는 가운데 이 계획을 발표했다. 재벌 개혁의 내용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한계업종의 정리를 핵심으로 하는 구조조정과 기업 활동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들을 골자로 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경제개혁에 착수했지만 기업, 금융, 노동, 공공부문의 4개 부문 개혁 가운데 기업과 금융부문은 성과를 올렸으나 노동과 공공부문 개혁은 부진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 기업은 5대 대기업그룹을 비롯한 64개 기업그룹과 중견 기업이었다. 정부는 주거래 은행들로 하여금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토록 하는 간접방식으로 기업구조조정을 사실상 강제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712월부터 단행된 금융분야 구조개혁에서는 7개 부실은행과 12개 종합금융회사 등 총 39개의 금융기관(신용금고 제외)199811월까지 정리되었다.1)



이같은 기업구조 조정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IMF 측의 일방적 가이드라인에 순응해 기업의 채무비율을 200% 이내로 강요함으로써 많은 기업들이 도산, 유수한 공기업들이 외국에 헐값으로 팔려나간 점이다. 이로 인해 국부가 외국으로 대규모 유출되고 전략기업이 외국지배로 들어감으로써 경제의 대외종속이 심화되었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가 공적자금 17조원을 투입한 제일은행을 미국의 헤지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에 12조원에 팔아 5조원의 손실을 가져오게 한 사건일 것이다(공적자금은 모두 159조원이 투입되었으나 그 중 69조가 회수불능이 되었다). 뉴브리지는 불과 5년만에 1조원을 챙기고 제일은행을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되팔았다. 국부의 외국유출로 시중은행의 주식 50% 이상과 대기업 주식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다. 삼성전자(60%), 포항제철(47%) 등이 대표적인 예로, 이 때문에 이들 기업의 순이익 50% 가량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산업체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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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마침내 19991119우리는 국민과 함께 다짐하고 결의한 대로 1년 반 만에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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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들어서도 성장세가 이어져 8.5%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물가도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금융시장 불안 및 심리적 요인, 설비투자 부진, 국제유가의 상승과 IT경기의 둔화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까지 겹쳐 성장률이 3.8%로 악화되었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대대적인 카드발행 등 내수진작시책을 쓴 끝에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전년의 2배 수준인 7.0%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 기간 동안 경제의 원동력이 제조업 중심과 수출제도 경제에서 서비스 산업 등 비제조업 중심으로 자리 잡아감으로써 내수기반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5년간 평균경제성장률은 4.3%의 저조를 면치 못했는데, 외환위기로 8.8%의 마이너스성장을 1998년을 뺀 4년간의 평균성장률은 7.20%를 기록했다. 2)


이렇든 저렇든 김대중 정권하에서의 경제성장률의 하락은 나중에 잃어버린 10논쟁의 원인이 되었다.



1) 삼성경제연구소(2000), 한국경제의 회고와 과제, 삼성경제연구소, pp. 122~144.

2) 통계청 (2007), 한국통계연감 2007, p76


-남시욱 저 《한국 진보세력 연구》 , p457~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