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과연 진리는 실재하는가?

진리라는 것은 항상 참인 명제로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옳음을 의미한다.

진리에 대한 태도는 무신론, 불가지론, 유신론으로 나뉘는데
(이 세 관점 외의 진리에 대한 태도는 있을 수 없다)
이는 신의 실재에 대한 관점이
진리의 절대성, 객관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먼저 무신론자들은
세상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가치따위는 없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현대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다행이도 도덕은 절대적일 필요가 없다”
“우주의 근간에는 아무런 설계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악도 선도 아무것도 없다.
단지 무의미하고 냉담한 상태만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진화론을 옹호하는 과학 철학자 마이클 루스는
“도덕성은 단지
우리가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한 하나의 도움이고,
그 외의 다른 깊은 의미는 허황된 것이다”고 주장한다.

인터월드게이류의 유사무신론자들이 말한
“무신론과 도덕은 공존 가능하다”는 그저 뇌피셜일 뿐이고
도킨스는 도덕과 종교의 발현을 “밈”으로 간주하여
우연히 발현된 상대주의적인 것의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고 믿는
불가지론자들은 또한
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주장은 과연 옳을까?



사실 이 진리의 실재에 대한 탐구는 고대철학부터 진행돼왔다.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의 진리 실재 논쟁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르기아스는 당대 대표적인 “진리란 없다”는 무신론자였다.
하지만 이런 고르기아스의 주장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진리란 없다는 주장은 진리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으로
고르기아스의 주장을 무력화시켜버린다.
무신론의 자기모순성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불가지론도 마찬가지로
“진리가 뭔지 모른다는 주장은 진리인가?”로써 무력화되었다.

유일하게 진리는 실재한다는 유신론적 스탠스만이
절대적 옳음을 전제로 진리의 실재를 대변하므로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스탠스이다.

어떠한 주장이 항상 옳기 위해서는 진리의 권위를 필요로 한다.
무신론이 옳기 위해서는 무신론이 진리가 돼야 하며
불가지론이 옳기 위해서는 불가지론이 진리가 돼야 한다.
즉, 옳음을 주장하는 자들 모두가
진리를 전제한 듯 주장하는 유신론자이며
스스로를 유신론자라고 여기지 않는 순간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월드게이류의 유사무신론자들이 답답한 이유가
이 간단한 논리의 오류도 인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설령 인정하기 직전까지 몰렸어도
“내 주장이 무신론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씹게이처럼 도망간다.
진정 자기모순을 끝까지 이악물고 인정하지 않는
비합리성, 비이성의 끝판왕인 셈이다.
대부분의 현대 무신론자들이 합리성과 이성을 추구한다지만
이러한 모순을 겪고 있음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코미디다.

무신론과 불가지론은
자기모순적 주장을 맹목적으로 “신앙”하는
비이성, 비합리성의 총체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할 뿐
“진리는 없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자기모순을 내재한 무신론과 불가지론은
아예 탐구할 가치조차 없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시간에는 진리(절대성, 객관성)와 신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