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병사 가슴에 ‘나치 문양’이…국제 사회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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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병사 가슴에 ‘나치 문양’이…국제 사회 곤혹토텐코프·조넨라트·갈리지엔 문양 논란www.hani.co.kr
Nazi Symbols on Ukraine’s Front Lines Highlight Thorny Issues of HistoryKYIV, Ukraine — Since Russia began its invasion of Ukraine in February 2022, the Ukrainian government and NATO allies have posted, then quietly deleted, three seemingly innocuous photographs from their social media feeds: a soldier standing in a group, another resting in a trench and an emergency worker posing in front of a truck. In each photograph, Ukrainians in uniform wore patches featuring symbols that were made notorious by Nazi Germany and have since become part of the iconography of far-news.yahoo.com
이것은 굉장히 복잡하고 고민이 많이되고 슬픈 기사입니다.
스탈린 소련과 나치의 점령 그리고 2차대전 전에 소련 스탈린의 아사형 학살로 인해 홀로드모르로 수백만이 희생당하자 2차대전 당시 나치부역식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독립운동으로 활용했던 가슴아픈 역사..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것은 나치나 반데라는 잘못됬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가슴아픈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재판소가 예전 저 일부 문양들을 나치 문양에서 제외한 것은 아마도 일본이 해상자위대기에 욱일기를 착용하거나 욱일기는 전범기였던 대정익찬기(일본판 나치기)와 다르다는 인식 그리고 미국 남부 보수주의자들이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는 KKK 깃발과 다르다라는 인식. 독일이 철십자는 현재 독일 연방군 상징으로 체용하고 나치 스와스타카는 다르다라는 인식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의 우크라이나 핍박 홀로드모르 대기근 아사 학살로 수백만명 사망..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2차대전 독일 나치군을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는 해방군으로 인식, 인도, 동남아 반영/반서구 독립운동 민족주의자들 2차대전 일본군의 대동아 공영권을 해방자로 인식 인도 변호사들은 한술 더 떠서 2차대전 도쿄 전범재판에서 일본을 비호. 일본의 진주만 공격당시 흑인 민족주의자들 환호 유색인종 제3세계 독립운동 세력들도 환호.. 이런 복잡한 맥락들이 다 있는데..
이런걸 미국 일부 고보수세력(Paleocon)이 친러 대안우파에 영향을 받아 우크라이나 스테판 반데라 나치 악, 러시아 선이라며 러시아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있더군요. 이런 역사의 복잡하고 가슴아프고 풀기 어려운 맥락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러시아는 선이고 우크라이나는 악이다? 고로 러시아 침략전쟁은 정당하다?
그러면 2016년 이후 트럼프 행정부시절 대안우파의 나치 깃발, 백인 민족주의, 큐어넌, 반유대주의등 수많은 파시스트 집회를 비판을 거부하고 거의 동조한 자신들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건가요?
그리고 러시아 푸틴 자체가 히틀러, 무쏠리니를 찬양했던 백군출신 러시아 파시스트 이반 일린을 영웅으로 승격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와 러시아민족주의 자체가 나치즘입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유럽과 북미에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직접지원하고 키어오는 역할을 했었죠. 러시아는 러시아의 반대세력이 나치라는 집단 최면을 거는 스키조 파시즘(정신분열 파시즘, 나치가 자신의 반대편을 나치라고 부르는 적반하장을 홀로코스트 연구가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가 이것은 스키조 파시즘이라고 명명.)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맥락, 슬픔, 아픔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또다른 극단적 상징을 착용하고 기념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일국사적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초국적(Transnational)인 관점에서 이것의 과거의 희생자의식 아픔의 기억을 어떻게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세계인이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 해결책을 내어야지 무슨 러시아는 선 우크라이나는 나치 악으로 해서 러시아 침략전쟁을 정당화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동유럽의 비극적 역사를 모르면서 함부러 재단하는 미국의 고립주의 팔레오콘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한일 양국 국민간 우호와 협력 그리고 회복을 위해.
[집합적 유죄(collective guilt)와 기억의 책임]
1. 일본의 전후세대는 전전에 있었던 일본의 과오에 책임이 있는가.
여기서 수많은 논쟁과 주장이 있었습니다만 집합적 유죄로서의 일본인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연좌제와 예전 나치의 학살 방식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2차대전 독일이 패망을 한 이후, 나치의 만행이 전세계에 알려지자 독일인들은 전세계적으로 지탄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는 독일인들이 단지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는 것은 나치 독일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홀로코스트로 학살한 범주적 살인(categorical killing)과 다를 바가 없다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비판했습니다. 참고로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써 전간기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 위협으로 독일을 떠났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집합적 유죄(collective guilt)'라는 개념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절멸수용소로 보낸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논리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아렌트의 항변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다는 것은 오로지 그가 한 행위와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어야 한다. 그가 한 행위와는 상관없이 그가 속한 인종이나 민족이 무엇이냐에 따라 책임을 물어서는 곤란하다. 인간 개개인의 죄의 유무는 유대인이냐 아리아인이냐는, 그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 그 인간 개인이 저지를 일의 내용과 결과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극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기억 전쟁에서는 '집합적 유죄'의 논리로 가해 민족 전부를 단죄하거나 피해 민족 모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집단 심성이 그야말로 완강하다. 독일의 전후 세대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일본 전후 세대에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이유는 그들이 독일인 혹은 일본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스라엘이나 폴란드, 한국의 전후 세대는 참으로 떳떳하다. 희생자 민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강의 도중 학생들한테서도 그런 태도를 발견할 때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양민 학살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지를 묻는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도 20여 년이 지나 태어난 세대이니, 까마득한 옛날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잔학행위 에 대해 자네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왜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한 통치에 대한 책임을 묻는가?"
'집합적 유죄'의 논리적 함정에 빠져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곤란하다는 데 학생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그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다.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이들에게 과거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 면죄부를 부여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기 때문이다. 죄를 묻기도 면죄부를 주기도 어려운 이 딜레마는 기억 전쟁의 한 축을 구성한다. 해결의 실마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그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존적으로 전후 세대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러나 그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지금 여기의 문제이니, 전적으로 전후 세대의 책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기억은 전후 세대가 과거에 개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저장된 기억을 원래 그대로 송두리째 빼내는 단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적인 사회적, 문화적 코드 체계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하는 현재 진행형의 작업이다. 과거사를 끄집어내 성찰하고 또 그 성찰의 기억을 지키고 끊임없이 재고해야 할 책임은 전후 세대에게 있는 것이다." (기억전쟁 - 임지현, 291-293p)
"전후 세대 중 일부는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넘어 그 과거에 '연루'되기도 한다. 예컨대 식민지인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해 자본을 축적한 일본의 재벌 기업이나 동유럽인들의 노동을 착취해 부를 축적한 독일의 전범 기업들, 또는 베트남전쟁으로 '전쟁 특수'를 누리며 재벌의 반열에 오른 한국의 대기업에 취업하여 좋은 급여와 노동 조건을 누리거나 그들과의 사업적 제휴를 통해 혜택을 받는 일본, 독일, 한국의 전후 세대들은 본의 아니게 피 묻은 과거와 '연루'된다. 과거에 벌어진 잔학행위의 주체는 아니지만, 그 결과로 혜택을 받는 '연루된 주체(Implicated Subject)'로서의 전후 세대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
전후 BMW의 대주주로 등극한 콴트 가문이 좋은 예이다. 귄터 콴트(Günther Quandt, 1881-1954)와 헤르베르트 콴트(Herbert Quandt, 1910-1982) 부자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유럽 등지에서 징용된 노동자들을 헐값으로 착취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전후 헤르베르트 콴트는 이렇게 번 돈을 부도 위기에 처한 자동차회사 BMW에 투자하여 회사의 파산을 막고 BMW의 대주주가 되었다.
(...)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자상하고 너그러운 "우리 할아버지가 결코 나치일 수 없다"고 믿었던 것처럼, 쾬트 가문의 젊은 상속인들도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나치의 범죄행위에 편승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운 좋게 전범재판을 피해간 나치의 공범자였다는 주장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국유화된 재산을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배상법이 시행되자 일가친척이 공장 부지 등 주로 부동산 반환을 요구했는데, 창업주의 손자 하트무트 톱프(Hartmut Topt)가 나서서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홀로코스트와 연루된 이득은 부도덕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에르푸르트(Erfurt)의 공장 터는 나치의 범죄를 기억하는 홀로코스트 기억의 터로 다시 태어났다. 2011년 1월 27일 UN이 정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날'에 박물관 겸 교육센터가 문을 연것이다.
되짚어보면, BMW가 만든 고성능 자동차나 오토바이, 미쓰비시의 SUV '파제로(Pajero)'를 타는 부유한 매니아들만 피 묻은 과거에 연루된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독일의 다국적 기업 '닥터 외트커(Dr. Oetker)'의 냉동 피자를 먹고 독일의 대중적 브랜드 '휴고 보스(Hugo Boss, BOSS)'의 옷을 즐겨 입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나치의 추악한 과거와 연루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자신 나치의 무장 친위대 대원으로 잘 알려진 외트커 박사도 그렇지만, 이런저런 나치 당조직에 군복을 납품해서 돈을 번 휴고 보스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모두 열성적인 나치 추종자였을 뿐 아니라, 나치가 조직한 강제 노동의 수혜자였다.
(...)
이와 관련해, 한 독일인 친구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있다. 살아생전에 자기 어머니가 끔찍이도 소중히 여기던 어떤 도자기에 대한 기억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친구는 그 도자기가 옆집의 유대인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면서 싼값에 내놓은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에게 유대인 이웃이 남기고 간 그 도자기는 이 평범한 가족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치의 범죄에 연루되었음을 보여주는 힘겨운 기억의 물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해주는 내내 그 친구의 얼굴에서 곤혹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친구의 곤혹스러움은 '연루된 주체(Implicated Subject)'로서의 전후 세대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사건과 자신의 실존적 관계를 고민할 때 생기는 딜레마 같은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대한 성찰적 기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다. 그의 곤혹스러운 고민은 과거에 연루된 전후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 비극을 기억할 책임을 어떻게 지고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전후 세대인 그의 고민이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 곤혹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며 기억의 주체로서의 그, 곧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곤혹스러운 과거 앞에 당당한 사람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사회의 기억 문화가 더 건강한 게 아닐까?
책을 읽고 난 뒤에도 독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답답할 것이다. 책 어디에도 분명한 답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답을 제시할 의도도 능력도 없었다. BMW나 미쓰비시 같은 재벌 기업만 과거의 범죄와 연루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네 삶도 과거와 연루되었다고 할 때, 그 과거와 '연루된 주체'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옳은지 나로서도 아직 막막하다. 과거의 범죄에 '연루된 주체'인 저자나 독자 모두 같이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가는 공론의 장이 열렸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안고 글을 마친다.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다." (기억전쟁 295-299p)
그래서 현재 전후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이전에 일어났었던 일본의 과오에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책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들에 대해 책임 있다면 그것은 연좌제이자 집합적 유죄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그러면 완전히 책임이 없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책임인가 하면 그것은 과거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한 '기억의 책임'입니다. 기억의 책임은 전후 일본인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테사 모리스 스즈키(Tessa Morris-Suzuki)와 마이클 로스버그(Michael Rothberg)가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은 '연루(連累, implication,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주장)'나 '연루된 주체(Implicated Subject, 마이클 로스버그 2019)'라는 것이 집합적 유죄(collective guilt)보다 더 중요하다고 봤는데.
연루와 연루된 주체가 뭐냐하면 이런 겁니다.
이 책에서도 나온 바와 같이 월남전이 끝난지 훨씬 뒤에 태어난 90년대생 대학생들에게 물어볼때, 월남전에 대해서 국군이 벌였던 잔인한 행위에 대해서 자네들이 직접적인 책임이 있나? 그러면 다들 아니라고 그러죠. 그러면 너희세대 일본 일본 친구들이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벌인 그러한 잔학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면 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닌거죠. 그러면 뭐에 대해 책임이 있느냐? 그러면 거꾸로 이번엔 너희들은 월남전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고 일본의 전후세대 친구들은 2차대전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은 우리가 그 자리(시간과 공간)에서 연루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과거를 '기억' 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일이다. 지금 가령 2023년이란 시점에서 전전 일본이란 기억에 대한 것은 그러한 기억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책임은 있는거죠.
그러니까 과거에 일어난 '사실'에 대한 책임감 보다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 전후세대들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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