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간이 국가와 기업의 도구로서 쓰이고 있는 현실을 비추어 봤을 때 한없이 순진한 주장이죠.
징병제가 대표적입니다. 징병제는 개인으로 하여금 강제로 군대라는 이름의 전쟁기계의 부품이 되게끔 강제하는 제도이고
한국은 전쟁기계의 부품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오랜기간 형사처벌해왔습니다.
공교육이라는 제도 자체가 국가기계의 부품들을 양산하는 제도이고,
회사에 취직한 월급쟁이들도 기업기계의 부품으로서 존재하는거죠.
흔히들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하기에 인간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기술 체제의 도구로 쓰이고 있지요.
증명하기 어려운 주장 같습니다. “도구로써 사용한다”는 말은 엄밀한 정의가 있나요? 또한 기술 체제를 주어로 사용하시는데, 기술 체제가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나요?
미제스에 따르면 행동은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수단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고, 이러한 수단들을 재배열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것이 행동한다고 말하려면 그 어떤 것이 목적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적은 개별 행위자에게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술체제가 인간을 이용한다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문학적입니다.
기술 체제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율적 현상이라는 것이 반기술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더 나아가 카진스키는 자기증식 체제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자기증식 체제는 자신의 크기와 힘을 키우거나 비슷한 속성을 가진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자신의 생존과 증식을 촉진합니다. 자기증식 체제의 예로는 생물학적 유기체, 그리고 국가, 기업, 사회관계망 등의 인간 집단들이 있습니다.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르면, 생존과 증식에 가장 적합한 특성을 가진 체제가 성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기증식 체제를 가진 모든 환경에는 자연선택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카진스키는 하위 체제와 상위 체제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하위 체제는 체제의 기능 구성 요소를 의미하고, 상위 체제는 해당 구성 요소가 속한 체제를 의미합니다.
기술 체제, 혹은 자기증식 체제 역시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식물이나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가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 처럼요.
말씀하신 예시를 보면, 징병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의무교육 회피하면 처벌하는 것도 다 인간이죠. 어디에도 “체제”가 행동하는 것은 없습니다.
보수주의자들, 혹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건가요? 개별 인간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해 자유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결정의 총합은 개인들의 총합보다 더 상위에 존재하는 체제를 이루게 됩니다. 이는 마치 원자들의 결합이 모나리자라는 그림을 이루고, 한글 자모의 결합이 대한민국 헌법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개별 행위자만 존재하며 기술 체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오직 주기율표 상의 원소들만 존재할 뿐 모나리자라는 작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오직 한글 자모만이 존재할 뿐 대한민국 헌법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