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피에르게이가 신명론자라는 부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맘에 들긴 하나
도덕이 실재하는 이유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엄밀함이 필요해 보임.
도덕이 실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명령해서라고 표현하기보다
하나님 그 자체가 진실, 선, 공의이시기 때문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함.
신의 “명령”이라는 수단으로써 도덕을 정당화하면
다시 신이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생김.
이게 오히려 너가 자꾸 물고 늘어지던 괴델의 증명에서
지적하는 동일한 오류를 너도 범하는 것임.
신의 속성에 대해 정의가 안 된 채로 명령에 의존하는 것이니.
(난 괴델이 positive를 가장 총체적 바깥의 개념으로서
실재하는 속성으로 정의하며 오류를 피했다고 봄)
그래서 진실과 선과 도덕의 실재에 대한
무한퇴행을 막는 최종 결론은 신명론 그 이전에
신 그 자체가 진실하며 선하며 공의롭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함.
한편 너가 이 신명론의 관점에 서서
내 주장이 문제가 됐다고 여기는 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나 다른 유신진화론자 같이
이들이 “계시”가 아닌 “이성”을 통해 발명한 도덕인데도
내가 이를 옹호하는 듯 보여서라고 보여짐.
어느 정도 옹호하는 건 맞으나 이 주장은 틀렸음.
(난 유신진화론을 극혐함)
내가 옹호하는 이유는 이러함.
저들의 발명은 발견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고
이 발견은 하나님이 일반은총으로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창조주 되심과 인간 기본 도덕을
온 우주와 인간의 마음에 일반계시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
이 또한 계시라는 것이고
난 성경에 나와있는 이 일반계시를 옹호함.
하지만 난 동시에 ”일반계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도 말함.
성경에 나와있듯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인간의 양심이 더럽혀 있어 이 일반계시가 묻혀있는 경우도 많고,
또 이 일반계시, 인간 기본 도덕을 안다는 것만으로는
영혼의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임.
신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스스로의 존재를
온 우주 만물에 밝히 드러내신 분이라는 점에 기인하므로
신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피에르게이는 틀렸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존재 증명(사실상 발견)을
인간이 할 수 있게 허락하셨다는 것이고
이는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 없다고는 “핑계치 못하게” 하려 하심임.
따라서 피에르게이의 공격의 방향은
신이 있음을 발견하려는 이들을 향할 것이 아니라,
그 발견한 신의 속성을 같잖은 이성으로 함부로 재단하는 이들
(신은 비인격적이다, 신은 대진화를 허락한다,
신은 다원주의적이다 등)을 향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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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이긴듯. 애초에 논증법 이런 걸로 전공자 이기기 힘듦. 주딱게이랑 니 논리의 차이는 초등학생 수학이랑 대학교 수학 차인거 같다 - dc App
1.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분의 존재를 드러내심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1-4)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성경에서도 드러나듯이 인간의 이성이 더럽혀진 양심에 가려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일반계시하신 그분 스스로의 존재를 인간은 “핑계하지 못하게” 알 수 있음. 그럼에도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의 죄악으로 더럽혀졌기 때문이고,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합당함. 이 부분은 우리 둘다 이견이 없을 거라 봄.
2. 하나님의 일반계시는 특별계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 노아의 홍수,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등의 사건들은 모두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과 양심을 더럽혀 자연법도 저버렸기 때문임. 이 사건들의 공통된 특성은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의 보전을 위해 직접 심판으로 자연법을 회복시키셨다는 것임. 인류의 자연법적 타락은 복음의 전파를 불가능하게 함. 쉽게 말해 맹목적 살인을 정당화하며 인간 기본 도덕마저 준행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복음이 전혀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 일반계시는 특별계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 이러한 1, 2의 이유로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된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자연법 또한 중시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복음의 전파 뿐만이 아닌 자연법의 보전에도 힘 써야 할 의무가 있음.
3. 신명론에 대해서는 난 플라톤이 언급한 신명론에서처럼 신명론 그 이전에 하나님이 곧 진실, 선, 공의 그 자체여야 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한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상호 이견이 없으니 나도 신명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음. 그러나 하나님이 진실, 선, 공의 그 자체라는 속성 정의마저 부정신학 관점으로 부정하려는 시도는 이해가 안 감. 부정신학은 하나님은 완전하시다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등을 얘기하는 것마저 부정하라고 한 게 아님.
4. 데카르트와 괴델의 함의는 하나님이 창조한 질서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이 중요함.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객관적 실재로 창조하셨고, 그 객관에 의하여 창조주를 발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음. 괴델의 증명은 신 “존재” 증명이지 부정신학을 넘어서 신의 어떠함을 증명하고자 함이 아님. 너가 말하는 그 언어화 문제는 하나님이 있음을 표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 언어화와 부정신학을 거기까지 적용시키면 우리가 “신은 존재한다”고 긍정언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안 됨?
5. 너가 오해하고 있는 게 코기토는 우리의 신앙과 위배되지 않음. 근대수학과 과학은 철저히 데카르트에 영향을 받았음. 외부에 객관적 실체가 존재하고 이 객관성을 전제로 외부의 실체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근대수학, 과학은 탄생함. 객관적 외부 실체와 이를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자아 간 객관적 상호작용은 이를 조정한 객관적 신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함. 이를 견고한 인식론이라고도 부름. 그리고 현대철학 사조가 이 코기토를 해체하는 데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코기토의 해체가 파편화된 개인을 부추기는 것이고 너의 주장은 틀렸음.
그외 양진주의나 마지막 질문은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 답변을 원한다면 설명 바람.
그래 너도 내가 디시에서 본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듯 고맙다 나도 너의 신앙을 응원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