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6 게이가 첨부해준 영상 봤는데
초반부는 개신교에서도 인정하는 내용을 다뤄서 패스하겠음
영상에서 의도적으로 죄를 지은 자는
개신교에서도 “양심에 화인 맞은 자(딤 4:2)”이자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없는 자들이고
예수님의 제한속죄에 해당 없는 자들임

그외 논점을 다뤄보자면

1. 인신제사 금지에 대하여
- 이미 말한 것처럼 인신제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을 죽이는 살인과도 같음. 구약, 신약 모두 통틀어 인신제사를 엄격히 금함.
- 한편 이 존엄한 인간을 구하고자 행해지는 희생이라는 것과 살인으로 행해지는 인신제사라는 것 이 두 가지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함. 영상의 주장은 마치 강도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한 자를 구하고자 강도를 제압하는 행동 자체를 폭행으로 치부하며 하나의 악으로 여기려는 시도와도 같음. 하나님의 율법, 도덕법은 전혀 그렇지 않음.
- 영상은 고대 근동 국가들의 계약의 형태로서의 희생제물과 몰렉의 인신제사, 그리고 숭고한 희생 이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음.
- 몰렉에 대한 인신제사의 플롯을 기독교가 모방한 것이라고 보기보다, 당대 근동 국가들의 계약 문화를 몰렉이 변종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행한 것이라고 봐야 함. 다시 말하지만 희생과 살인은 완전히 다름.

2. 영상에서 언급한 에스겔 말씀에 대하여
- 에스겔 18장 20절 :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 먼저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가 우상숭배로 패역하여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고 난 시점에 활동한 선지자임을 알아야 함.
- 따라서 이 말씀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죄과에 따라 자신이 심판받을 것이라는 의미이지, 대속 가능성을 부정하는 말씀이 아님. 애초에 이 말씀을 대속 가능성을 부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려면, 구약의 제사법까지 부정하고 하나님이 죄를 속죄할 어떤 수단도 주지 않았다거나 과거에 주신 제사법은 실수였다고 주장해야 일관됨.
- 죄 없는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는 부당하다? 이 역시도 죄 없는 아들을 죽이는 살인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택하신 자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하신 것으로 평가해야 함. 심지어 영상은 “한국의 상식의 범주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성경을 성경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벗어난 이단적 해석방식임. 한국의 상식의 범주라는 포스트모던한 관점으로 성경을 보자면 출애굽 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 조차도 학살이라며 범죄시 할 것임.

3. 예수님의 대속제물 되심에 대하여
- 구약의 제사법과 유월절은 예수님의 대속제물 되심을 예표하고, 이외에도 구약 곳곳에서 예수님을 예표함. 창세기부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이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동물을 죽여(희생시켜) 가죽옷을 지어주셨음. 그리고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시며 성취됨. 창세기부터 구약 곳곳에서 끊임없이 예수님을 예표함.
- 영상은 예수님의 피가 직접 제단에 뿌려지는 제사법의 형식 절차가 생략되었으므로 무의미하다는 율법주의적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일관되지 않은 주장임. 왜냐하면 영상은 “입술로 수소를 갚겠나이다”는 호세아서 말씀을 인용하며 유대교는 기도로 제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오히려 그 어떤 피 뿌려짐도 없이 속죄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난 주장이기 때문임. 애초에 성경은 율법의 형식절차가 아닌 “마음의 할례”가 중요함을 말씀함.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셨지 어떤 율법의 준행으로 의롭다 하지 않으셨음. 구약과 신약 통틀어 모든 율법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목적을 지닐 뿐, 그 율법 형식자체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보다 우선할 수 없음. 따라서 어떤 율법주의적 형식절차 잣대를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그 형식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은 모순임. 예수님께서 이 율법을 완성하심으로써 우리는 이 율법의 형식절차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 될뿐임.
- 기독교인들도 호세아서처럼 기도로 회개를 할 수는 있음을 부정하진 않음. 그러나 그 기도가 완전한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신약시대의 성도들과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완전히 질적으로 차이가 있음. 완전한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을 통해 완전한 속죄가 이뤄졌고, 예수님의 완전한 부활을 통해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신약시대 성도들의 특권이자 구약성경 예언의 성취이고 하나님의 은혜임.
- 영상에서 언급한 “못 박힐 메시아”는 예수님께서 의로우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무에 달린 자(신21:23)”가 되어 저주를 받으셨다는 대속제물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