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는 중의법이 난무하는 드라마다. 인물부터 물건까지 겹겹의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의 제목이 된 물건, 시카고 타자기부터 심상치 않다. 애초에 타자기가 아닌,총의 이름이다. 총소리가 타자기 소리를 닮아 갱들의 도시, 시카고와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톰슨 기관단총의 별명, 시카고 타자기는 소설의 제목이자 드라마의 제목이며 총과 타자기의 거리만큼이나 한편의 글이 지닐 수 있는 힘의 범위를 상징한다. 

 

 주인공 한세주는 드라마가 제시하는 이정표에서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표식같은 존재다. 시청자는 한세주의 성장과 변화를 따라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작가를 최종목적지로 삼았던 작가 지망생 한세주는 글이 밥도 되고 집도 됐으면 좋겠다는 중간 종착역까지는 성공적으로 안착한 듯하다. 유령작가로 쓴 첫번째 작품의 제목은 <인연>이었다. 사람을 믿지 않고 고마울 일도 미안할 일도 만들지 않을만큼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 살고 있는 그가 <unfair game>이라는 작품을 거쳐 중간기점까지 오기 위해 잃어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짐작가는 대목이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잘 써지는 작가"

 바뀐 대답 만큼이나 원래의 목적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세주가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지는 자명해 보인다.

"너도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을 청할 때가 반드시 와!!! 그 때 니 주변을 돌아 봐. 누가 있는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게 분명해 보이는 유진오(고경표)는 의미가 가장 중첩되어 있는 인물이다. 감독은 개에게서 빠져나온 영혼이 타자기로 들어가는 장면을 대놓고 보여주었다.  "내가 나를 작가님한테 보냈습니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그는 타자기이다. 집필실 한 복판을 내려다 보는 위대한 작가 '유진오닐'처럼 한세주에게 던져진 숙제이다. 꿈인지 전생의 기억인지 소설의 내용인지 모를 1930년대에 살고 있는 그는 세주의 환영인지 전생을 돌고 돌아 친구를 찾아온 유령인지 아직까지 알 수 없으나 주제를 함축한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전설(임수정)은 그 문제의 물건, 시카고 타자기와 함께 세주의 삶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세주에게 있어서 평온한 호수에 갑자기 던져진 돌멩이다. 1930년대에 세주에게 '위대한 글'을 쓰라고 이미 작가인생 화두를 던졌고 현재는 마음의 문을 닫고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세주를 바깥세상으로 마구 끌어당기고 있다. 그녀는 세주에게  연인이자 뮤즈가 될 것이지만 현재는 알러지다. 세주는 전설을 만난 이래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삼각관계를 형성할 백태민의 고양이와 설의 이름이 같은 것조차 상징적이다. 백태민은 전설을 그저 애완 고양이처럼 예쁜 연인 이상으로 밖에 보지 못할 것이다. 한세주의 개와 백태민의 고양이.  전설과 두 남자와의 만남을 이끈 동물이 각각 알러지를 유발하는 개와 애완 고양이라는 설정 역시 우연은 아닌게 분명하다.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세주를 만나 돌아가기 시작한 시계와 '카르페디엠'이라는 카페의 이름 역시 늘 마감시간에 쫓겨야하는 작가의 삶과 현재를 즐기며 살아야 행복하다는 진리사이에 고민하는 작가의 삶이 녹아 들어있다. 드라마의 대사 하나 하나가, 소품 하나, 배경 하나 조차 모두 언급할 수 조차 없을 만큼 드라마가 지향하는 세계 관안에서 제 몫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쫓기는 남녀가 뛰다가 벽에 숨어서 위장으로 키스하는 진부한 장면 조차 과거와 현재, 세주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는 중의법이다. 여자에게 불친절하게 시계를 건네는 친절한 남자의 대사는 '지금 나한테 츤데레 한거야?'라는 여자의 대사로 유치하지만 설레는 인터넷 소설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 읽을 거리 가득한 책같은 드라마가 어떤 전개를 보여줄 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의 주제만큼은 시작부터 확연해 보였다. 문자가 사용된 이래 요즘 처럼 글이 난무하는 시대가 없었다. 인터넷 댓글을 기본으로, 카.페.트, 블로그에다, 이메일까지... 우리는 한 20년전만 해도 말로만 떠들(수 있었)던 내용을 날마다 글이라는 형태로 생산해내고 또 소비한다. 유사 이래 요즘처럼 작가와 독자가 넘쳐나는 시대가 없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대하에서 당신은 과연 총을 쏘고 있는지. 타자기를 치고 있는지. 당신의 글은 사람을 죽이는 글인지 살리는 글인지 생각해 보자고. 실제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악성댓글 때문에 죽는 모습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작가 한세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너의 글은 어느쪽이지? 시카고야? 타자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