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인이 된 이후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것은 여자친구의 자전거를 훔쳐 타면서부터였다.

딱히 훔쳤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은게 여자친구가 운동하겠다고 자전거를 사고 안장에 두어번이나 앉았을까 싶은데

바로 창고에 쳐박길래 그 불쌍한 녀석을 내가 데리고 왔었다.




바로 이 똥 자전거다.


여자친구가 삼천리가서 25만원주고 얻어왔던 미니벨로.

핑크핑크한게 섬세하고 여리여리한 나랑 뭔가 잘 어울렸다.
이 때만 해도 쪼리 신고서 그냥 동네 마실이나 다니고 그러고 놀았다.


그러다가 조금씩 재미가 붙어 여자친구한테 다시 자전거를 다시 줘버리고(물론 녀석은 이후 당근에 5만원인가에 급매당했다) 

전기자전거로 기변했다. 당시 체력이 너무 별로여서 전기자전거를 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놈이다. 


빨갛고 영롱한게 나의 소녀같고 부드러운 심성을 자극했다. 

이 놈이랑 처음으로 한강도 나가서 달리고 요기조기 다니고 즐겁게 놀았다.

그렇게 한 200km는 탔던가?

친형이랑 일산으로 같이 라이딩갔는데 일산에 도착했더니 배터리가 다 닳아버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지옥을 보고 지하철로 튀튀해서 돌아와버렸다.

나의 소녀같은 심성은 이 녀석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더욱 더 멀리 갈 수 있는 자전거로 기변해버렸다. (요놈은 여자친구에게 줘버렸다)




바로 이 자전거다.


거대한 남색의 자전거. 마치 황야를 달리는 한 마리의 말을 연상시키는 날렵함. 
나의 거칠고 강인한 심성을 충족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남자라면 이런 자전거를 타야지 미니벨로는 계집이나 타는 자전거가 아닌가?

이 자전거와 함께 한강이든 일산이든 모두 정복해버렸다. 

녀석과 함께 몇 개월간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타도타도 별로 운동이 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전기의 한계일까?

그래서 로드로 기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이 녀석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길어 누구를 주거나 팔아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 지키는 파수꾼으로 삼아버렸다.




도둑 안들어오게 집 잘 지켜라 이놈아!


여하간 로드자전거를 사려고 하니 당췌 뭐를 사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로싸갤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따져봤는데 가장 많이들 추천하는게 스컬트라100.

그래서 집 근처 자전거샵에 사려고 하다가 미리 그 자전거를 타고있던 사람과 상담했는데

아무래도 스컬100보다는 다른 자전거가 어떻겠냐는 추천을 받아 그가 권해준 기종으로 선택했다.




바로 이 녀석이다.


요 녀석으로 정말 신나게 즐겼다.

전기자전거로는 쉽게 다녔던 장소들이 로드로 가니까 무슨 서울에서 부산가는 것 마냥 멀게 느껴졌다.

두번? 세번? 탈때까지는 넘 힘들어서 그냥 팔아버릴까 고민하다가 참고 탔더니 갑자기 너무 재밌는 세계가 열리는게 아닌가?

그래서 자전거에 이름도 지어줬다. 도마니라서 똘마니라고 불렀다. 달리자 똘마니야 행복하자 똘마니야 하고 여기저기 즐겁게 다녔다.

그런데 업힐도 가보고, 평속이 어떻고 케이던스가 어떻고 막 따지다보니 점점 더 사야할 것이 늘어만 갔다.

클릿슈즈랑 페달도 사고 휠도 바꾸고 블랙박스도 사고 파워미터도 사고 하다보니 지출이 감당이 안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파산이다.. 이제 막 결혼해서 이것 저것 살 것도 많은데 이런 고가의 자전거 용품들을 막 사도 되나 싶었다.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막 한숨만 쉬게 되고 고생하는 아내 모습 볼 때마다 막 가슴이 시렸다.

그래도 유일한 취미인데.. 조금의 투자는 더 해도 되지 않을까?

자전거와 사랑에 빠진 나를 위해 그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사버렸다!!!


요 놈의 하얗고 까만 색상이 때로는 선비같고 때로는 음흉한 나의 심성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이게 자전거인지 예술품인지 볼 때마다 너무 눈도 마음도 즐겁다.

아내한테는 누가 망치로 후려쳐서 포크가 울퉁불퉁 휘어서 싸게 얻어 왔다고 할까 싶었는데

영수증 바로 걸리고 조금만 혼나고 용서받았다. 용서해줘서 고맙긴 하지만 근데 사실 그거 반값 계약금 영수증이야.


아직 이 녀석과는 많은 곳을 다니지는 못했다.

미세먼지도 그렇고 직업적으로도 바쁜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으로 이 녀석과 함께 할 시간이 기대된다.

멀리 지방으로도 가보고, 제주도도 가보고 언젠가 해외도 가보고 싶다.


여기까지가 나의 요상한 자전거 기변/기추 일기였다.

앞으로 이어질 나의 자전거 라이프를 스스로 응원해본다.




잘부탁한다!! 똘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