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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자전거인 게 당연하잖아"

야밤이니까...

광인 컨셉을 벗고 좀 정상적으로 자전거 글 써볼까요?

물론 제가 기분 나쁘게(일부러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니까) 공격하는 건 맞지만 똑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어떤 대단한 물건을 만들게 되면 생각 외로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는 게 사실입니다. 이건 단지 트렉만 그런 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든 대규모 양산 체계에서 대량 생산하는 소비재에서 발생하는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트렉이 마돈이 "망돈"이 되는 지점, 즉 54 이하 지오메트리에서 마돈이 허벅지가 길고 종아리가 짧은 동양인들의 무릎을 사냥하는 소위 "아시안 운디드 니 헌터"가 되버린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일단 우리가 먼저 살펴봐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트렉 마돈 정도의 물건이 "우리"를 위한 게 아닌 물건이라는 점입니다.

레이스에서 승리하기 위해 태어난 자전거

모든 프로 레이스에서 자전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정적인 차이점을 만들지 못해서도 안됩니다. 제가 그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라 UCI에서 자전거를 그렇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기재에 의해서 기량 이상의 차이가 나면 그건 경기용 자전거가 아니라는 논리이죠.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전거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자전거(정확힌 앞 삼각과 뒷 삼각의 비율)을 만들어내면서 서로 내 자전거가 더 대단하다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어처구니가 없는 싸움이지만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을 겁니다. 

굳이 레이스에서 승리하기 위해 태어난 자전거라고 적어놓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마돈은 작은 사이즈이든 큰 사이즈이든 이것을 타고 달리는 프로 선수가 경기에서 우승해야지 그 존재 의미를 갖게 됩니다. 즉, 마돈 정도 되는 자전거들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스트라바 기록을 자랑하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0.01초로 인생과 커리어가 뒤바뀌는 선수들에 맞춰 설계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마돈과 같은 자전거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에어로를 유지하는 선 안에서 선수들의 신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최적화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지오메트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제가 말하는 "망돈"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죠. 요컨대 마돈은 우리 대다수와는 관련이 없는 물건입니다. 프로 도로 경기 선수 대부분은 서양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극소수의 유색 인종만이 있을 뿐이고 그 중에서 동양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듭니다. 당연히 마돈을 만드는 수백 명의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레이스에서 승리하기 위해 태어난 자전거는 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둬야만 하는 대다수의 선수들에 맞춰져야 자랑스러운 자전거가 됩니다. 그게 마돈을 비롯한 수많은 도로 경기용 자전거의 본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살 수 있어야 하는 자전거

그런데 이상하죠? 그런 물건을 왜 우리한테 파는 걸까요? 답은 역시 UCI의 규정에 있습니다. UCI 공인 경기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의 기재는 전부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물건이어야만 합니다. 몇몇 선진국들이 특수한 자전거를 만들어서 독차지하고, 이것으로 격차를 벌리는 일을 막기 위해 이런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돈은 레이스에서 승리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살 수 있는 자전거가 되어야만 하는 기묘한 운명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점에서 제조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당연히 동양인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합리적인 선택이죠. 경기에 내보내는 자전거는 일반인도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성적이 제대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선수 대부분은 서양인이나 극소수의 흑인(역시 서양인과 비슷한 신체 비율)입니다. 동양인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고요. 그래서 제조사는 과감하게 선택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마돈의 에어로 설계에 넣을 수 있는, 프로씬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조정된 최적의 지오메트리가 허벅지가 긴 동양인의 무릎을 사냥하는 "아시안 운디드 니 헌터"가 되더라도 바꾸지 않는 선택. 그렇게 마돈은 소비자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똑똑한 사람 수백 명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 비싼 도로 경기용 자전거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도 사실 동양인보다는 백인이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죠. 굳이 마돈이 아니더라도 이젠 에몬다도 에어로이고, 도마니도 에어로인데 이 둘은 지오메트리가 인종 중립적이니 문제 없을 거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합리적인 선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마돈을 만들어 팔았어도 이렇게 만들어 팔았을 겁니다. 우리 같은 동양인들은 마돈을 좋아해주고 타면서, 잘 맞지 않으면 또 열심히 매장에 가서 시간을 들이며 이게 왜 안 맞을까 고민하며 값비싼 피팅 머신에 올라 화수분처럼 돈을 뿌릴테니까요. 사실 트렉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트렉은 기업으로서, 그리고 회사가 후원하는 프로 선수를 위해 한결같이 이익만 되는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다고 가장 좋은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

그럼 이제 맨 처음으로 돌아가 햄버거와 콜라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만화의 한 장면을 보도록 합시다. 이쯤되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는 현명해야 하는 것이고, 비록 저같은 사람이 광인의 행색으로 광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한 번쯤은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종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전거는 아니지만, 우리와 같은 동양인, 그 중에서도 키가 작고 허벅지는 길고 종아리는 짧아 슬픈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에어로를 누릴 수 있는(마돈보다는 조금 공기역학적이지 않지만) 자전거를 만드는 기업들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이것으로 여러분이 보는 세상, 특히 자전거를 보는 세상이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 정도에서 마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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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팬심을 가지면 바보가 됩니다

그럼 정말로 끗!

즐겁게 자전거 타세요 ㅇㅅ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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