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미하우 크비앗콥스키.
마이클이라 부르던 미하엘이라 부르던 미하우라 부르던 어쨌든 그런 이름이다.
그런 이름이 틀림없는데 -

"욘범아, 밥 뭇노? 와 안 묵노? 어서 무라!"

어찌된 영문인지 저 밀짚모자를 쓴 여성이 허리를 두드리며 부르는 영범이도 나를 가리키는 듯하다.
경험상 밀짚여성은 세 번 부를때까지 말을 안들으면 절구공이로 마늘 빻듯 머리통을 빻아대며 화를 내고, 놀랍게도 저 외침에는 세 번의 부름이 다 들어가 있다.
일단 서둘러 식사를 하고 내 나머지 신세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거 무라! 할미가 쭉 빨아가 하나도 안 맵다."

저것은 김치라는 음식인데, 놀랍게도 연장자가 먼저 한 번 소스를 쪽 빨아서 자극적인 양념을 덜어낸 뒤 먹여주는 식사매너를 가지고 있다.
고향의 폴란드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라겠지.
밥 위에 쪽 빤 김치를 얹어 입에 넣는다. 맛이 그닥이라 생각하면서도 절구공이를 한 번 쳐다보곤 우물우물 씹어삼킨다.




이것은 1년차 생활이다.
나는 작년 출전했던 뚜르 드 프랑스에서 사망했었다.
심장이 멎어가며 조금씩 굳어가는 내 몸을 내가 느꼈었고, 피가 식어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직접 느꼈다.
사인은 후두부 함몰 혹은 경추 골절로 인한 질식사 중 어느 쪽인지 애매한 것이리라.


스트라데 비앙키 우승 후 이렇다할 커리어를 쌓지 못하던 나는 비싼 몸값을 지불해주던 이네오스 팀에서 오더를 받았고, 그것은 HC급 업힐 피니시 스테이지의 우승이었다.
한참 지나버린 전성기를 그리워하며 새파랗게 젊은 놈들 사이에서 어떻게 우승을 해낼까 궁리하던 나는 결국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대었고 그 대가를 받았던 것.
동양의 대국에서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초경량 휠을 사용하면 무려 200g의 경량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소국의 커뮤니티에서 발견했고 나는 그것을 구입했다.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말로는 부서져서 커뮤니티에 올리거든 쥐도새도 모르게 워런티를 해준다니 그저 개꿀이 아니었겠는가!
팀과 스폰서사에 양해를 얻지 못한 나는 알리를 뒤져 Dura-ace 라는 데칼을 구입하여 붙인 뒤 대회에 출전했더랬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대국의 휠은 그다지 내 기록을 당겨주지 못했다.
오더 받았던 몽방투 스테이지에서 BA를 나섰던 나는 타데이 포가차도 요나스 빙에고도 아닌 펠릭스 갈에게 바싹 추격당했고 그는 힘겹게 올라가던 나를 가볍게 제쳐버렸다.
무려 w/kg 7.1로 밀고 있었건만 대국의 휠과 함께 한 나는 오히려 평년보다 2~3초 늦은 기록을 내고 있던 것.
여기서 쳐지면 무조건 실패한다 생각한 나는 이를 악물고 혼신의 댄싱을 시도했고 결국 펠릭스 갈을 따라잡고 말았었다.
그러나 아뿔싸, 순간 나의 파워를 견뎌내지 못한 대국의 휠은 밸브 근처에 크랙이 생겨버렸고 이어진 다운힐에서 깨져버리고 만 것.
림이 터지고 타이어가 구겨지고 스포크가 휘날리던 광경을 기억한다.
주마등처럼 지난날이 지나가며 쿵. 나는 그렇게 죽었더랬다.


나쁘지는 않은 삶이었다.
크리스 프룸과 함께 팀스카이의 전성기 후반을 이끌었었고 이네오스의 공신으로 적잖은 몸값을 받았었다.
이후로도 경험과 경력이 있고 판단력이 있는 선배 대접을 받으며 차세대라는 작자들과 그랜드 투어에 나섰었고 과히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게 한 해만 더 하다 은퇴하려고 했었는데.
그놈의 대국 휠만 몰랐었어도, 매일 지중해 해변에서 썬텐을 하며 사이클 선수의 절륜한 발기력을 자랑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을텐데.
아쉽다. 아쉬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대국 휠을 내게 소개한 그 놈들, 그 아무것도 모르는 FTP2, 3점따리 놈들이 마구 써제끼던 후기에 속아버렸던 것이.
내게 기회가 있다면 그놈들 죄다 따버리면서 "그딴 휠을 쓰니까 그렇게 느리지!" 일갈해줄텐데.

"욘범아, 이, 이 함 타보라!"
어쩌면 그 아쉬움이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걸까.
밀짚 노인은 나의 생일날 자전거를 선물했고

"말리아 로자(Maglia Rosa)!"

자전거를 본 나는 홀린 듯 외쳤다.


-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