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모든 대상이 익명으로 쓰여졌고, 대상자는 디씨인일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아닌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쓸 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삼아 그동안 만났던 자전거인들을 생각하며 한 번씩 떠올려보며 써보려고 합니다.
혹시 본인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더라도 굳이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95%의 실화와 5%의 허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5%의 허구를 넣은 이유는 몇 개 글을 쓰다보면 본인이 특정될것 같아서입니다.
왜 익명으로 남을 평가하냐 물으신다면, 이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며 재미로 떠드는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남 또한 익명이고 특정될 수 있는 정보 또한 되도록 쓰지 않을 것입니다. (예:자전거 모델)
과장은 되도록 자제하고,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표현 또한 되도록 자제해서 담백하게 그대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전거 타면서 만난 사람들 (1) - A양


나는 허리가 아팠다. 디스크였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온 긴 세월과 그 세월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탓이 가장 크겠지.

운동을 하고 싶어도 의욕이 나지 않았고 언젠가부터는 포기를 하게 되었다.

거울 속 나의 얼굴은 점점 쳐지고 시들었고 몸매는 점점 망가져 돼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나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나의 나이는 이미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조금 빠르게 포기를 했었다.

사람은 포기를 하면 무엇인가에서 자존감을 끌어내는 법이다.

나는 몇 푼 받는 월급이 평균보다 조금 많다는 것을 자랑으로, 아주 약간의 평균보다 나은 학벌이 나의 유일한 자존심으로,

오직 그것을 내세우지 못해 안달난, 잘 발끈하는 삐죽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세상에 대한 식견이 모자란 멍청한 인간들보다 내가 낫다는 입장으로 나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내가 비난하고 격하했던 사람이 얼만큼인지.

사나울 수 있는 곳에서만 사나운, 그리고 인간의 폭이라고는 더 얇을 수도 없는 비참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자전거를 생각한 것은 동네 마실 때문이었다.

운전하기 애매한 거리를 걸어다니는게 너무 싫어서 전동킥보드를 사고 싶었고, 킥보드를 사려다 보니 오토바이가 사고 싶었다.

그런데 오토바이는 주차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았고 그러다 생각한 것이 자전거였다.

페달 밟을 생각을 하고 땀 날 생각을 하니 지옥같았지만 얼마 타다가 안되면 버리지 뭐, 하는 생각으로 당근을 통해 중고를 한 대 샀다.


한 세 달 탔나?

재밌었다. 아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어렸을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나의 생활반경이 넓어졌다. 한강까지도 가봤다. 어둑해지는 한강에 나가본게 몇 년 만인지. 나가서 야경을 보며 음료를 마시는 그 기분이란.

몸이 좋아지는게 느껴졌다. 몸이 가벼워지고, 엉덩이가 탄탄해지고, 컨디션이 좋아지고, 수면이 잘 되고, 발기가 잘 되었다.

자존감이라는게 살아나니까 삐죽했던 성격도 점차 원만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을 비난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말로 꾸미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정치와 사회 이슈, 연예인 이야기 등등에 관심이 사라지고 사회적 불의라고 그렇게 부르짖으며 매도하던 병신같은 정의에도 관심이 사라졌다.

직장 동료들도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다.

스스로를 포기하기 전에 옛날에 입던 비싸고 예쁜 옷들이 다시 맞기 시작하고, 전투복 정장과 츄리닝만 입던 생활에서 점점 벗어났다.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즈음 외로움을 느꼈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는 결코 달랠 수 없는 인간의 갈증이 있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는 모두가 알 것이다.

요즘 모두가 그렇듯 대학동창들이나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와 만나서 사람간의 관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래서 동호회에 가입했다.

'한강' 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서 가장 먼저 뜨는 동호회에 그냥 들었다.


첫 모임에 나갔다.

오랜 동안 직장 외에 인간관계를 갖지 않다보니 되도록이면 나의 진짜 성격을 드러내기보다 조심스럽고 싶었다.

예의바르고 매너있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 일부러 적극적으로 쓰레기도 치우려 하고 인사도 살갑게 하려 했으며 주의깊게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만난 사람들의 퀄리티가 상당히 낮았다.

교양은 개나 줘버린 몸에 밴 장사꾼식 말투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고 이미 어느정도 인맥을 형성한 그들은 이너써클을 상위계급처럼 여겼다.

돈의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이나, 완곡하게 강조하는 돈 있는 투, 돈 쓴 데 대한 젠체 등등이 온라인에서나 접하던 레벨이었다.

그래도 그 얇은 비위는 내가 삐죽하고 얇게 살아온 세월에서 온 탓이리라 생각했다.

몇 년 남을 욕하면서 살아온 관성이 아직도 사람들의 단점만 찾고 있구나 생각해서 그들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나를 반성했다.


그러던 중에 A양을 만났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교활한 사람을 처음 봤다. 여성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 그런가.

이 사람은 남자가 어떤 말을 하는 여자를 좋아하는지를 잘 안다.

각종 인터넷 밈을 다 꿰고 있고, 약간의 유쾌한 개그 센스를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 선을 넘고 지켜야 하는지 감이 뚜렷하며 어떻게 하면 여성끼리 한 편을 먹을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안다.

어떤 남자여야 자기를 얼만큼 좋아해줄 수 있는지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여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톡방의 채팅에 무한한 시간을 쏟아부을 수 있는 백수였다.

여기까지 쓰면 언뜻 괜찮은 여성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에게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으니

그것은 이 여성이 나이가 많은 유부녀라는 것이었다.

나와는 앞자리부터 까마득하게 다른 무려 82년생이었다.


지금 이 동호회의 단점을 들라하면 셀 수도 없이 들겠지만 그중 가장 큰 단점은 극렬한 진보였다는 점이다.

나는 서로 얼굴을 보는 사람끼리 이렇게 정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구나, 할 정도로 이들은 정치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중 원숭이를 닮은 가장 열성적인 진보주의자가 있었고 그도 82년생이었다.

그는 수많은 기사를 링크해댔다.

그 기사들에 대한 일관된 주장을 피력할 능력도, 일관된 논리를 만들어갈 능력도 없었으나 그는 증오로 가득한 외침을 줄곧 토해냈다.

그가 외치는 사회정의에 참여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그는 게으르고 뜻이 없는 속물들로 매도했다.

상술했듯 나 또한 비슷한 시기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나의 혐오는 더 심했다.

그리고 A양은 그와 아주 친했다. 단톡방은 하루종일 그 둘의 대화로 메워지곤 했다.

원숭이는 A양을 연인처럼 대했고 A양도 거기 맞장구를 참 잘 쳤다.

단톡방을 읽지 않기 시작했던 게 그때쯤부터였다.


그리고

긴 과정 속에 여러가지 일이 얽혔지만 거두절미하고,

A양은 결국 바람을 피웠다.

그러나 대상은 원숭이가 아닌, 원숭이와 함께 그들이 그렇게 욕하던 부르주아였다.

잘 생기고 배운 티가 나고 자기관리를 잘 하는 그런 사람과.

언젠가부터 둘만이 벙을 치기 시작했던 그들은 결국 벙을 올리지 않고 데이딩을 하는 일이 많아졌고, 결국 꼬리가 밟혀 톡방에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홀려있고 서로 선 넘는 대화를 주고받던 그 때에 아무 말도 없었던 '유부녀' 라는 꼬리표는 그 때에야 다시 등장했다.

심지어 엉덩이가 작아서 예쁘다는 말까지 주고받았으면서, 갑자기 모두가 도덕적 심판관이 되어 그들을 완곡하게 을러대며 비난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굴었던 원숭이는 결국 그들이 톡방을 떠나고서도 분을 식히지 못해

그 사실을 여기저기 다 알려야겠다며, 다른 방들에도 전했다고, 그런 사람들이랑 모르고 자전거를 타면서 얼마나 소름끼쳤을까, 이런 말을 하루종일 입에 달았다.

동호회장은 50 중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사람이었는데, 자유방임주의라 아예 간섭을 하지 않았다.

가끔 그만 좀 하라는 사람들이 나와도 원숭이는 입에 거품을 물며 날뛰었고 거기 상대하기 지친 사람들은 그냥 말을 아꼈다.

나는 그쯤 방을 나갔다.


그리고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A아주머니, 아니 A양은 다른 동호회에서 만났다.

솔.직.히

모두 동호회 간을 볼 때는 한번씩 여성을 탐색해보지 않는가. 나도 목록에서 여성을 찾아보고 사진을 한번씩 눌러본다.

난 A양인줄 몰랐다. A아주머니인줄 모르고 활동을 활발히 하는 여성이 있구나 하고 들어갔다.

보정을 너무 많이 한데다 고글까지 씌워놨으니.

모임에 나가서야 그 사람인줄 알았고 과거와 똑같은 태도에 놀랐다.

용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몸매와 옷을 품평하는게 인생 최대의 낙이었으며

단톡방에서 애매한 선을 타면서 만만한 남자들을 애태우는게 하루의 소일거리였다.

왕복 40km를 2시간 걸려서 타는게 쉽지않을 만큼 여전히 자전거는 핑계였고, 처녀때의 유희를 즐기는 것이 목적임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 글을 쓴 목적이자 이유가 이 시점에서 터졌다.

A 아주머니가 도싸에다가 글을 쓴 것이다.

특정될 수 있기에 자세한 내용을 서술하지는 않겠고,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콜나고 할아버지로 유명한 그 성희롱이 성립될 지 애매한 그 사건이 터진 얼마 후에,

모르는 남자의 시선이 불편했다는 글을 후방블박을 첨부해서 올렸다.

당연하게도 성희롱 따위가 아니었다.

아닐뿐더러, 블박의 남성은 같은 동호회, 심지어 같은 팩을 달리던 사람이었다.

왜. 왜? 대체 왜??

나는 안다.

비슷한 삶의 시간을 보내봤기에 추측할 수 있다.

관심이 필요했고, 피해자인척 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일침이 가하고 싶었고, 훈계가 하고 싶은 심리다.

A양은 도싸글에 댓글이 달리면 삭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잠깐 자기 후방블박을 점검하다가 그런 소설이 쓰고 싶었고, 그런 관심이 받고 싶었으며 그런 훈계를 세상의 뭇 남자들에게

'나는 아직 매력적인 여성이고 너희는 그것을 탐하는 벌레들이다', 라고 외치고 싶었으며

한순간의 그런 심리로 올렸던 글은 삭제할 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다.

그리고 횡설수설을 오천만번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 끝에,

예전 그 원숭이의 지인이라는 사람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사정없는 매도와,

결국 벼랑끝에 몰린 여성이 공개했던 원숭이의 고백카톡이라는 희극 등이 일어난 끝에

A아주머니는 그 동호회에서도 나갔다.

그리고 나가기 전 A양 옹호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서 싸움을 시작했던 그 동호회는 나간 이후에도 대립을 멈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A양 옹호파의 주 멤버 중 하나는 그 블박에 찍혔던, 관심을 위해 이용되었던 남성이었다.

'내가 괜찮다는데 니들이 왜 지랄이세요' 라는 외침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40 모쏠이었던 그에게 그간 A양과의 대화란 정말 절실해보이기는 했었다.

나는 이 동호회는 꽤 오랜 동안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즈음 디씨를 시작하게 되며 로싸갤에서 대부분의 여유시간을 보냈기에 가끔 벙에 나가는 것 외에는 동호회에 관심을 껐던 것도 있었겠지.


나는 아직 A 아주머니와 스트라바 팔로우가 되어있고 가끔 들어가본다.

아직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라이딩을 잘 하고 계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진 중에는 로싸갤의 모 게시판이용자와 함께한 사진이 있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맞나 싶어서 갤에 올라온 다른 사진과 몇 번 확인해봤는데 맞다.

자전거판은 참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