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될 수 없는 왕의 아들/ 본명은 이금李昑. 이름 그대로 언제 어디서든 그는 냉철하고 명석했으나, 보위에 오른 그날까지 단 한 번도 스스로 빛을 발한 적은 없었다. 스스로 그 빛을 머금고 때를 기다렸다. 임금이 되고자 하는 이금의 마음 또한, 아무도 눈치채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리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빛을 감추고 사는데도 타고난 왕골의 성정은 여느 왕통과도 격이 달랐다. 아비 숙종의 호통에도 기죽지 않는 패기. 단 한 번도 정당한 이유 없이 뉘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으며, 단 한 번도 허언이며 실언을 내뱉은 적도 없었다. 그가 옳다 하면 옳았으며, 그가 그르다 하며 그른 것이었다. 제 의지와 무관하게 왕자로 태어난 소년. 곧은 심지에 언변까지 갖췄으니 거르지 않고 술술 내뱉는 언행도 거침이 없다. 특유의 장난기를 뒤섞여 금상에게조차 술술 돌직구를 날리니, 혼구멍이 나서 뒷걸음질 치는 조정대신이 한둘이 아님이다. 실로 유쾌하고 통쾌한 쾌남아. 대체 누가 이 사내를 마다하겠는가. 허나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조선 팔도에 단 두 명뿐인 년놈. 한 놈은 벼랑 끝에서야 겨우 손을 내민 대길. 한 년은 목에 칼날을 들이밀고서도 절대 제 뜻을 꺾지 않던 담서. 이 두 사람과 인연이 닿았던 때는, 분명 자신이 연잉군으로 불리던 때였다. 그날 홍매관에서 담서라 불리던 여인을 만나지 않았던가. 담서를 위해 제 목숨을 내놓은 대길을 만나지 않았던가. 운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