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빈이 사사되었을 때

인현황후와 한편이었던 노론에게

세자(경종)은 껄끄러운 존재로 남았다.


다행히도 말년의 숙종도 세자의 승계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때문에 노론에게 세자 제거는 앞날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자

왕의 뜻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했다.


세제 교체가 실패하고 경종이 즉위했다.

그러나 선왕의 뜻에 따르려는 노론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건저(후계를 세움)와 대리(대리청정)다.

그런데 소론은 이를 역으로 몰아 노론을 다 쫓아내고 피의 살육극을 벌인 것이다.


*건저할 때의 상황

보위에 오른 지 겨우 1년, 이때 경종의 나이는 고작 서른셋 이었고,

재혼 왕비 어씨는 겨우 열일곱이었다.

설령 이때까지 자식이 없었다 해도 득남을 위한 섭생을 권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일 터인데.....


역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발췌했고


경종의 고단한 삶이 묻어나는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