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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연인들

1976년 한국영화

감독 : 조문진

각본 : 나연숙

편집 : 유재원

출연 : 김추련, 최민희, 이향, 태현실

정규영, 윤영, 김기종, 임성민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최진희의 히트곡 "사랑의 미로"의 원곡인 태원 "너의 사랑" 이 주제곡

80년대 미남배우 임성민의 깜짝 데뷔작?


'빗속의 연인들' 조문진 감독의 1976년 작품입니다. 김추련과 최민희가 주인공이지요. 뭐 그리 대단한 영화는 아닌지만 짚어볼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최근 2-3년간 유독 70-80년대 한국 영화의 고화질 리마스터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의 고화질 리마스터링이 작품의 완성도 순서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영화사의 수작이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필름이 없거나 저화질이거나 불완전판 이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면 아주 평범한 70-80년대 영화는 꽤 좋은 화질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빗속의 연인들'은 애초에 좋은 화질이 있었던 작품인데, 같은 시기 영화들이 제법 고화질본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요.

이 영화는 딱 1938년 영국영화 'X 부인의 이혼'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일종의 남자 신데렐라 비슷한 내용이지요. 하룻밤 플라토닉하게 보낸 남녀, 남자는 여자의 신분을 오해하고 여자는 남자의 순수함에 반하고. 그런데 자신의 신분을 오해한 것이 재미나서 계속 그런 척 하면서 남자를 속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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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손녀로 등장하는 최민희와 이향


'X 부인의 이혼' 에서는 젊은 변호사 로렌스 올리비에는 유명한 판사의 하나뿐인 손녀 멀 오베론을 4번이나 결혼한 문란한 여자로 오해합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죠.  '빗속의 연인들'은 가난한 휴학생 문오(김추련)가 거대한 호텔을 경영하는 부자 노인의 하나뿐인 손녀 정화를 콜걸로 오해하지만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그런 문오의 진실함과 성실함을 알게 된 정화는 누추한 문오의 자취방에서 플라토닉하게 하룻밤을 보낸 뒤 그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하룻밤 플라토닉하게 보내고 나서 할아버지에게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도 두 영화가 유사합니다. 정화는 실제로 콜걸인 척 하며 문호를 만나지요. 문호는 그런 정화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하면서 자신과 같은 밑바닥 신세지만 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처지라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낍니다.


'X 부인의 이혼'은 재미난 코미디이고 뻔한 결말로 치닫는데 '빗속의 연인들'은 다소 의외의 결말입니다. 두 사람이 맺어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결말이 아닙니다. 영화가 중간에 끝난 느낌이기도 하지요. 뭐 열린결말이라고 굳이 해석할 수 도 있지만 형식상으로는 헤어지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정화의 정체를 알게 된 문오가 약간 방황을 하면서 자취방으로 오는데 정화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고, 두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고가 위에 올라가는데 뜻밖에 서로 돌아서서 각자의 길을 걷죠.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엔딩에 자막으로 표시되는게 독특합니다.


가난하지만 마음과 신체가 건강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남자, 그리고 부호의 딸이지만 그런 진실한 남자를 찾는 여자, 문오는 휴학을 하고 빌딩 유리창 닦은 알바를 하는데 호텔 유리창을 닦다가 호텔방에 있는 정화를 보고 콜걸로 오해한 것입니다. 정화는 향후 호텔을 물려받은 상황이다 보니 직접 호텔방에서 며칠 묵으며 자신이 물려받을 호텔의 객실을 확인해 본 것이었는데. 특히 정부 마농의 여주인공 연극을 준비하던 정화는 그 역할을 위해서 일부러 문오에게 콜걸인척 하면서 그의 진심을 떠보기도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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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고학생과 부자집 외동딸

김추련과 최민희가 공동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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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걸 신분으로 오해를 받지만 일부러 그런척 하고 문오를 만나는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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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크레딧에 없지만 이 배우는 암만 봐도 임성민, 최민희에게 딱지 맞는 귀공자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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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리 봐도 임성민. 즉 이 영화가 실질적으로 임성민의 데뷔작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가 주제곡입니다. 시작과 끝, 그리고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 흘러나옵니다. 엄밀히 말하면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는 아니죠. 그 노래는 80년대에 등장했으니. 80년대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사랑의 미로'가 사실은 개사를 한 리메이크 곡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원곡은 이 영화에서 흘러나온 태원 이라는 가수의 '너의 사랑' 이라는 곡입니다. 그걸 개사해서 최진희가 80년대에 불러서 대박 히트를 한거죠. 즉 80년대 히트한 노래가 70년대 영화에 나오니 묘한 느낌입니다. 1940년 '애수'의 주제곡으로 널리 알려진 '올드 랭 사인'이 1936년 영화 '공작부인' 시작할 때 나오는 걸 듣고 묘한 느낌이었던 것과 유사하지요.


또 하나 재미난 사실, 이 영화에 분명 미남배우 임성민이 출연했습니다. 그의 영화 데뷔작은 공식적으로 1984년 '달빛 멜로디'로 알려져 있는데 1977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가 군대에 간 걸로 알려졌습니다. 나무위키의 정보에 보면 1976년 이성구 감독의 '마지막밤의 탱고'에 출연했지만 개봉되지 못했다고 하니 76년 부터 영화에 등장한 것이 맞긴 하네요. '빗속의 연인들'에서는 주인공 최민희와 선을 보려는 부자집 귀공자 역할입니다. 단역이지요. 선보러 왔다가 바람맞는 역할이고 연극공연 장면에서 객석에 모습이 보이는 정도입니다. 크레딧에도 없고(이 영화 배우 크레딧 자체가 없어요) 임성민의 필모에도 없습니다. 이 당시는 임성민 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분명 임성민 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렇게 서구적으로 잘생긴 사람도 드물었지만 그렇게 키가 큰 연기자도 드물었으니 키가 큰 것을 보고 확실히 그가 맞다고 생각됩니다.


김추련은 악역이 더 어울리는 인상이지만 아주 좋은 이미지로 나오지요. 이 영화에서는 유독 외모가 이소룡 닮은 느낌입니다. 상체도 발달해 있고요. 턱이 좀 나왔고 얼굴이 좀 일그러진 배우라서 이소룡과 안토니오 이노키를 믹스한 느낌이랄까요. 최민희는 다소 평범한 느낌이긴 했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광고를 보니 최민희는 파나마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고 나오더군요.(워낙 옛날 광고는 신빙성이 없긴 하지만) 무시할 작품이 아니지요. 김추련, 최민희 모두 풋풋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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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의 어머니로 출연한 태현실

최민희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은퇴선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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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어울리는 장면이 한 번 등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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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호스티스 영화, 에로영화도 많았지만 이 영화는 임예진, 이승현 등이 출연한 청춘물 스타일까진 아니지만 '바보들의 행진' 같은 청년영화입니다. 비교적 순수한 청년영화이고,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렸죠. 물질 만능주의, 한탕주의가 아닌 그야말로 인간 자체에 반한 남녀의 사랑이죠. 물론 엔딩에서 후련하게 맺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 부분이 있지요.


이 시대 영화를 보면 재미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시대상을 보는 묘미가 있습니다. 호텔방이나 부자집의 촌스런 인테리어, 당시는 부자면 마당이 큰 '양옥집'에 살아야 했지요. 유리창 닦는 알바를 하는 문오의 한달 보수는 6만원, 3-4층 정도 되는 상가건물 가격이 5천만원, 그 상가건물에서 한달에 나오는 월수입이 30만원, 남녀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소위 '경양식'을 먹은 가격이 3천원. '네가 평생 일해봤자 5천만원을 벌것 같냐?' 라는 대사에서 정말 시대적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지요.


시나리오 평범하고, 내용도 심심하고, 배우도 비교적 평범한 영화지만 그 외적인 묘미가 있어서 흥미로웠던 작품입니다. 70년대의 물가와 화폐의 가치, 최진희의 히트곡 '사랑의 미로'의 원곡 감상, 뜻밖에도 임성민의 등장, 'X 부인의 이혼'과 유사한 설정 등 여러가지 흥미로운 요소가 발견된 영화입니다.


ps1 : 임성민이 1956년 생으로 알려졌으니 당시 21세 였네요.


ps2 : '사랑의 미로'는 개사한 노래가 훨씬 나은 것 같네요. 80년대의 명곡이지요.


ps3 : 김추련은 직접 고층건물 위에서 밧줄에 매달리는 연기를 했더군요. 그 시대에는 배우의 안전 등이 훨씬 덜 고려된 것 같은게 위험천만하게 불법 무단횡단 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도로를 통제하고 찍은 것 같이 안 느껴집니다.


ps4 : 최민희는 이후 돌연 은퇴선언을 했는데 7년뒤 '김마리라는 부인'으로 복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