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페스티벌은 내가 십년 넘게 가장 좋아하는 문화지만, 요즘은 어떤 강박을 느낄 때도 있다.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곳에서 트렌드와 경향성, 상징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이랄까...

하지만 오늘 서재페에서 본 데이식스의 공연은 그런 강박 따위 완전히 잊게 만들만큼 좋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역시 좋은 음악, 좋은 공연은 그냥 좋은거다.


나는 사랑 노래를 좋아한다. 특히 데이식스처럼 사랑의 다양한 순간을 잘 포착하는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사랑이 무한히 반짝이는 순간이든, 사랑했던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처연함이든. 우리의 삶은 사랑 없이는 공허해진다고 믿는다. 나는 뻔하지 않은 단어로 사랑의 보편성을 자극하는 데이식스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데이식스는 성실한 밴드라는 이유로도 좋다. 오늘도 100분 동안 그 사실을 입증했다. 밴드라는 정체성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탄탄한 (원필이 연주하던 키보드 건반이 부러질 정도의...) 연주가 있었다. 그리고 성진, 영케이, 원필의 탁월한 보컬은 데이식스의 음악에 엄청난 설득력을 실었다. (물론 도운의 코러스도 좋았다.)

셋리스트도 만족스러웠다. 화려한 복귀를 알린 K-아레나 록 'Welcome To The Show'가 단숨에 체조경기장을 장악했다. 역주행의 주인공인 '예뻤어'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팬덤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소리지르게 만드는 히트곡이었다.

군대에서 들었던 추억의 데뷔곡 'Congratulations', 'Shoot Me', 'Love Me Or Leave Me', 'Sweet Chaos' 등 평소 좋아하던 노래가 잔뜩 포함되어 있어 선물처럼 느껴졌다. (데이식스 팬인 친구한테 듣자하니 오늘 선곡이 그렇게 귀했다고 한다.) '행복하다'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행복해지고 싶다'고 노래하는 'HAPPY'도, '널 제외한 나의 뇌' 같은 신곡도 마음에 와닿았다. 완급조절이 훌륭했다. 히트곡으로만 그들을 접한 일반 관객도, 오랜 팬들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데이식스의 공연은 지금까지 내가 본 밴드 공연 중 팬덤의 응원 구호와 가창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공연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는 않다.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노래를 따라부르는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지만, 금방 그들에게 동화되었다.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컴온) (그래 날 쏴/뱅 뱅)


데이식스는 모든 면에서 나를 설득시킨다. 그들이 언급한 6년전 서울 재즈 페스티벌 공연 때도 그들을 보았지만, 그때와는 아예 다른 밴드처럼 느껴졌다. 밴드의 눈부신 성장이 체감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데이식스의 무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식스를 아직도 아이돌 밴드니 뭐니 하며 평가 절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속 수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