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퇴근하면 항상 집에 와서 맥주 한 캔을 따고 데바데를 킨다.

그날도 솔로 큐를 돌리고 있었다.

로비에서 한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Mika_0416


평범한 닉네임이었다.

게임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 사람, 실력이 심상치 않았다.

킬러한테 쫓기면 3분은 기본으로 버텼고,

발전기는 혼자서 척척 돌렸다.

나는? 데바데 5천시간 겨우 넘기지만 그녀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손가락 쪽쪽빨며 그녀의 무빙을 입 떡 벌어지게 구경하는게 일상이다.


그렇게 첫 만남의 게임이 끝난 뒤.

갑자기 친구 추가 알림이 떴다.


Mika_0416: 수고하셨어요ㅎ 한국인이시죠?

나: 저는 한 게 없는데요...

Mika_0416: 그래도 마지막에 몸대주셨잖아요.

나: 그거 몸대준 거 아니라 벽에 박은 건데...

Mika_0416: 알아요ㅋㅋ


그렇게 우리는 가끔 같이 게임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어느새 매일 같이 게임하는 사이가 되었다.

2주일 쯤 지났을 때.

디스코드도 하게 됐다.


Mika_0416은 여자였다.


목소리가 좋았다.

웃음소리도 좋았다.

무엇보다 게임을 엄청 잘했다.

문제는.

나를 엄청 놀렸다.


어느 날.

내가 판자를 너무 일찍 내려버렸다.


Mika_0416: 와...

나: 왜요?

Mika_0416: 그걸 거기서 써요?

나: 안 맞으려고요.

Mika_0416: 아직 킬러 20미터 뒤에 있는데요?


또 어느 날.

창틀 넘다가 벽에 걸렸다.


Mika_0416: 혹시...

나: 왜요?

Mika_0416: 킬러 편이세요?


또 어느 날.

나는 첫 번째 추격에서 런구에게 15초 만에 누웠다.


Mika_0416: 이번 판도 관광 잘 봤습니다.

나: 너무하네 진짜.

Mika_0416: 아니 근데 이렇게 못하는데 왜 귀엽죠?


그 말에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물론 나는 티를 내지 않았다.


나: 그거 놀리는 거죠?

Mika_0416: 들켰네ㅋㅋ


그렇게 매일 밤 게임했다.

서로 얼굴은 몰랐다.

이름도 몰랐다.

직업도 몰랐다.

그냥 데바데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회의실에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팀장: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될 신입사원입니다.


문이 열렸다.

예쁜 여자였다.

다들 웅성거렸다.

나는 별 생각 없었다.

다른 팀 사람이었으니까.

그날 밤.

평소처럼 디스코드에 들어갔다.


Mika_0416: 오늘 회사에서 진짜 피곤했어요.


나는 처음 듣는 말에 물었다.

나: 회사 다녀요?

Mika_0416: 당연히 다니죠ㅋㅋ

나: 무슨 회사요?

Mika_0416: 그건 비밀.


이상하게 궁금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몇 주 뒤.

야근을 하던 날이었다.

복도 끝 휴게실을 지나가는데.

누군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 아니 진짜 오늘도 판자 미리 내리는 사람 만났다니까?


심장이 철렁했다.

그 말.

매일 밤 나한테 하던 말이었다.

나는 천천히 휴게실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거기에는.

신입사원이 있었다.

그 여자도 나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정적.

5초.

10초.

그녀가 천천히 휴대폰을 내렸다.


신입사원: 설마...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나: Mika_0416...?


그녀의 눈이 커졌다.


신입사원: 아.


끝났다.

나는 죽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디스코드에서 회사 욕을 엄청 했기 때문이다.


나 (디코에서): 우리 회사 팀장 진짜 이상함.

나 (디코에서): 회사 사람들 눈치 너무 줌.

나 (디코에서): 우리 부서에 일 못하는 사람 하나 있는데... 하...


그리고 그 일 못하는 사람.

알고 보니... 


그녀가 벙찐 나를 보며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신입사원: 그래서 제가 일 못하는 사람인가요?


나는 진짜 끝났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살인마?

블라이트?

너스?

전혀 안 무서웠다.


나: 아니... 그게...

신입사원: 아니긴요.

나: 그건...

신입사원: 매일 디코에서 말했잖아요.


도망가고 싶었다.

데바데에서라면 창틀이라도 넘었을 텐데.

현실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는 화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재밌다는 듯이.


신입사원: 근데.

나: 네?

신입사원: 저도 말 안 한 거 있거든요.

나: 뭔데요?

신입사원: 저 사실 처음부터 알았어요.

나: ...네?

순간 머리가 멈췄다.

나: 무슨 소리예요?

신입사원: 입사 첫날부터.

나: 어떻게요?


신입사원: 목소리.


나: ...

신입사원: 매일 밤 듣던 목소리인데 모르겠어요?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나: 그럼...

신입사원: 네.

나: 알면서 모른 척한 거예요?

신입사원: 네.

나: 왜요?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신입사원: 재밌었으니까.

나: 뭐가요?

신입사원: 회사에서는 엄청 진지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 ...

신입사원: 술먹고 겜 들어와서 발전기 터뜨리고.

나: ...

신입사원: 판자도 이상하게 쓰고.

나: 그만해요.

신입사원: 엄청 귀여웠거든요.


귀여웠다고?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시선을 살짝 피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괜히 커피컵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신입사원: 근데.

나: 네.

신입사원: 하나 궁금한 거 있어요.

나: 뭔데요?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 아니었다.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신입사원: 만약 제가 직장 동료가 아니었으면.

나: ...

신입사원: 저한테 고백했어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질문 하나에.

그동안 같이 게임했던 밤들이 전부 떠올랐다.

매일 같이 웃었던 것.

퇴근하고 제일 먼저 디스코드에 들어갔던 것.

그녀가 없는 날이면 괜히 심심했던 것.

나는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나: ...아마도요.


그녀가 웃었다.

정말 예쁘게.


신입사원: 다행이네.

나: 뭐가요?


그녀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신입사원: 저도 그럴 생각이었거든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런 내 반응이 재밌는지 웃음을 참았다.


신입사원: 왜 그렇게 놀라요?

나: 안 놀라게 생겼어요?

신입사원: 맨날 디코에서는 말 잘하더니.

나: 그건 얼굴 안 보일 때 얘기고요.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사원: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나: 왜요?

신입사원: 게임 말고.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신입사원: 진짜로 같이 놀게.


그날 밤.

우리는 데바데를 켜지 않았다.

대신 근처 술집에 갔다.

신기했다.

몇 달 동안 매일 같이 얘기했는데.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 처음 만난 사람 같았다.

하지만 또 이상하게 편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술 한 잔이 들어가고.

두 잔이 들어가고.

어색함도 조금씩 사라졌다.


신입사원: 근데 진짜 궁금한 거 있는데.

나: 또 뭐요?

신입사원: 제가 예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맥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나: 그걸 왜 물어봐요?

신입사원: 궁금하잖아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나: 솔직히요?

신입사원: 네.

나: 목소리 듣고 예쁠 것 같긴 했어요.


그녀의 귀가 살짝 빨개졌다.


신입사원: 뭐야...

나: 근데 생각보다 더 예뻐서 놀랐고요. 미카엘라 닮았어요


이번엔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평소에 그렇게 놀리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울렸다.


Mika_0416: 오늘 재밌었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나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나: 저도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Mika_0416: 근데 앞으로는 발전기는 터뜨리면 안 됨.

나: 노력은 해볼게요.


몇 초 뒤.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Mika_0416: 그리고.

나: 네?

Mika_0416: 이제 신입사원님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나: 왜요?


한참 동안 답장이 없었다.

그러다 진동이 울렸다.


미카♡: 그게 더 좋으니까.


그 짧은 문장을 보고 한참 웃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메시지를 보냈다.


나: 그럼 다음 주말에도 만날래요?


이번에는 답장이 1초 만에 왔다.


미카♡

: 네.

미카♡

: 근데 데이트로.


그 짧은 문장을 읽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데바데에서 만난 인연이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오래전부터 시작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데바데 덕분에 요즘 행복이 많다.

데바데 너무 고맙다.

그리고 미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