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만난 놈인데 집도 잘살고 성격도 좋아서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좋은 놈이었다.
머리도 좋아서 학부 조기졸업하고 석박사까지 30에 끝내고 외국계 IT기업 다니면서 승승장구하던 놈이었는데 오늘 발인 마쳤다.
몇 달 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되면서 살도 갑자기 빠지고 무기력하길래 위 내시경 받았는데 이상 없었대.
근데 눈에 흰자가 노래지는 증상까지 조금씩 생겨서 다시 병원 가보니, 췌장암 증상이랑 겹친다고 소견서 써줄테니 대학병원 가라고 했대. 바로 대학병원 예약받고 검진 받았는데 이미 4기 말이었댄다.
항암 시작했는데 췌장암이 장기 내부에 깊숙히 위치해서 전이가 존나 빠른 암이라드라. 이미 전이도 심했고. 간 십이지장 폐 위 복막 뭐 여기저기 다 퍼졌고 뇌랑 척추쪽에도 퍼지기 시작해서 처음 진단받았다고 전화로 담담히 말하던놈이 한 달 뒤에는 말도 못하더라.
확진 판정받고 세 달도 안돼서 떠났다. 코로나땜에 난 면회 한 번 못하고 제수씨 폰 영상통화로 뼈만 남은 얼굴 한 번 보고 보냈다. 올해 초 낚시 가자는 거 너무 바쁘다고 거절했었는데 후회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또 내가 가장 마음 터놓고 지내던 사람이 죽게 되니까 허무한 감정이 너무 크다.
재산세 몇 건 더 해보겠다고 약속 미루고 일에 스트레스 받다가 돈 몇 백에 만족해했는데, 일 거절하고 베스낚시 갔으면 스트레스도 안받고 오히려 힐링하고 왔을텐데 돈이 뭔 소용인가 싶더라.
가족, 친구들 챙기는 것보다 항상 일이 우선이고 내 입신양명이 최고 우선순위라 생각해왔는데 내 가치관이 무너졌다. 나도 어짜피 죽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다 죽을텐데 아둥바둥 돈에 얽메일 필요 없다고 확신하게 됐어.
친구놈 막내딸 유치원 재롱잔치 다음달 초라는데 내가 친구 대신해서 가기로했다. 제수씨는 일을 못빼서 친구 어머님이 가신다는데 그래도 동영상, 사진은 30대가 60대보단 잘 찍겠지ㅋㅋ 막내딸도 나랑 자주 봐서 삼촌이라고 잘 따르기도 하고 오전에 행사 끝나면 오랜만에 동물원도 데려가려고 함.
내일은 부모님 모시고 대게 수율 좋은놈으로 잡아서 외식하기로했다. 부모님 모시고 30만원 넘는 식사 예약한 게 2년만이더라.
사랑하는 사람들 떠나기 전에, 그리고 내가 죽기 전에 그 사람들을 눈에 많이 담아놔야 내가 눈 감는 순간 후회가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