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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아이크





1939년, 아이젠하워는 1935년 10월부터 1939년 12월까지 필리핀에서 4년간 맥아더 밑에서 개같이 굴려지던걸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함.


맥아더도 놀랐지만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마누엘 케손은 제발 떠나지 말라고 사정을 하는데...



케손이 이렇게 애원한건 사실상 당시 필리핀군 육성계획을 1+10까지 짠게 맥아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였기 때문임. 맥아더가 필리핀군 군사고문으로 부임했던 초기 시절부터 해당 업무를 본건 고작 하루 평균 1시간에 불과했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신혼 생활에 소모함.


심지어 케손과 필리핀 정부인사들과의 업무 교류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서 아이젠하워가 케손과 독대하면서 계획서 작성, 현지조사, 필리핀 육군항공대 창설(비행사 훈련까지 받으면서), 회계작업까지 전부 처리했음.


이러니 케손은 아이젠하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고, 정해진 급여없이 원하는 만큼 "백지 보수(blank emolument)"까지 제시하며 그가 필리군을 이끌어 가길 원했음.


하지만 맥아더에게 학을 뗀 아이젠하워는 미국행을 선택했고, 케손은 아이젠하워 송별회를 마련한 뒤 Philippine Distinguish Service Star(필리핀에서 세번재로 높은 공로 훈장)을 수여하며 그를 치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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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메이미 아이젠하워, 케손 대통령, 아이젠하워 1939년 12월 12일 송별 오찬식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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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손이 건네준 메달을 남편의 가슴에 달아주는 메이미



뭐 맥아더도 아이젠하워가 미국행 배를 타기전에 스카치 위스키 한 병을 선물로 줬다고 함. ㅋㅋ


케손은 이후에도 아이젠하워에게 고마움을 나타내고자 했는데 1942년 6월 20일 워싱턴 DC 망명 생활 당시 마지막으로 만난 아이젠하워에게 필리핀을 위해 봉사한 데 대한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금으로 사례하고, 봉사 표창을 수여하려함.


아이젠하워는 금을 사례금으로 받는건 사양하고 봉사 표창만 수락하는 것으로 훈훈한 해당 일화는 끝나게 됨.





p.s


맥아더는 1938년 케손 대통령과 상의도 없이 마닐라 대로에서 군대 행진 퍼레이드 계획함. 아이젠하워는 이러한 독단적 행동을 격렬하게 반대했는데, 케손이 해당 소식을 듣고 맥아더에게 항의를 하자 자신이 계획한게 아니라 밑에 있던 '아이젠하워와 참모진들'이 한거라고 책임전가를 하며, 아이젠하워를 쪼인트를 깜.


해당 사건이 쌓이고 쌓였던 아이젠하워의 맥아더에 대한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미국행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라 카더라.




처음에는 필리핀 근무 시절 눈물과 곶통의 아이젠하워썰을 짧게 써 볼까 했는데, 자료 찾아서 보면 볼수록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일단은 짧은 일화만 다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