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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현행 대체복무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은 100여 건에 달한다. 대체복무요원은 육군의 2배인 36개월 동안 복무하는 방식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게 헌법소원의 청구 취지다. 헌재의 결정으로 탄생한 제도가 불과 1년 만에 다시 헌재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또다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정부와 국회가 뚜렷한 의지나 움직임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병무청은 헌재의 헌법소원 결과와 함께 국민 여론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도 나왔지만 정부가 상황을 관망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 국회에서 제도 개편을 공론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울림은 크지 않았다.

대체복무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2021년 1월 현행 대체복무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처음 제기했다. 복무기간을 36개월, 복무형태는 합숙 등으로 규정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대체역법)의 조항들이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취지다. 이후 복무 분야를 교정시설로 한정한 대체역법 조항도 포함된 헌법소원도 잇따라 헌재에 접수됐다. 청구인은 대부분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대체역 편입이 승인돼 소집을 기다리는 이들도 헌법소원을 냈다.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해온 오두진 변호사의 설명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서 병역기피자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 이 때문에 제도 시행 초기에는 수긍하는 마음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복무생활을 해보니 너무나 징벌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통제되는 데다 교도소는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기 때문에 긴장도도 매우 높다. 이런 곳에서 3년을 합숙 복무하라는 건 상당한 인권침해다. 이들은 헌재와 대법원에서 양심의 자유를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처벌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헌법소원 사건의 청구인 측 대리인인 이창화 변호사는 “헌재가 당초 2018년 대체복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우려를 나타낸 부분이 있었다. 현행 대체복무제도는 헌재가 우려한 내용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언급한 ‘헌재의 우려’는 이렇다. 헌재는 2018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을 규정하지 않은 당시 병역법 조항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헌재는 대체복무의 기간 등이 과도해 징벌적 성격을 가진다면 기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체복무 방식이 가혹해 헌재의 판단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체복무조차 거부한 사례도 나왔다. 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징벌적인 대체복무제를 거부하는 것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병무청은 제도 개편의 검토 여부를 묻는 질문에 “관련 사안이 헌법소원 청구로 헌재가 심리 중이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 방향과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병무청은 “대체역 제도는 2020년 도입 시 병역의무의 형평성, 현역병 사기, 국민 공감대 등을 고려해 복무기간·분야·형태가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최근 국회에서 대체복무제도의 개편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대체복무와 관련한 질의를 했다. 대체복무요원은 교정시설에서 복무하기 때문에 법무부도 관리책임이 있다. 김 의원은 대체복무요원의 숫자와 실태조사 등을 물었지만, 한 장관은 사전에 받은 질문 요지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라 답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김 의원은 이튿날 개최된 국회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다시 대체복무 얘기를 꺼냈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제도를 재평가해 그간 악용된 사례가 없다면 대체복무의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균혜 국방부 기획관리관도 “대체복무 당사자들은 신념을 가지고 대체역을 신청했다. 복무환경이 굉장히 가혹하기 때문에 신념이 없으면 대체역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라며 “업무환경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 복무만족도가 그리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가 큰 혜택을 주는 것인데 그것조차 (복무기간을) 또 내린다? 지금 종교적 신념 등을 국가가 인정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지금 더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이 외에도 대체복무요원들은 여러 제도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병역판정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가 가능한 4급을 받더라도 대체역에 편입되면 무조건 교정시설에서 합숙 형태로 복무해야 한다. 현역과 보충역 등에게 적용되는 복무부적합제도도 대체역은 예외다. 현역은 전상·공상·질병이나 심신장애를 갖게 되면 복무 중에 신체검사나 심사 등을 거쳐 전역할 수 있다. 사회복무요원도 질병 등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어려우면 소집을 해제할 수 있다. 병무청은 대체역에도 복무부적합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구체화된 구상이 나온 건 아니다.

대체역 제도 개편을 주제로 한 연구용역 보고서도 완성된 상태다. 보고서는 해외 사례와 전문가 인터뷰 결과를 종합 분석한 결과, 대체복무기간은 육군(18개월)의 1.5배(27개월)가 적합하다고 결론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답변한 평균 적정 복무기간은 1.70~1.88배로 측정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외국 사례 대부분이 다양한 복무 분야를 활용하고 있다”며 “또 대부분이 출퇴근을 채택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국제적 분위기와 국민 여론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도 “대체역 제도의 지속적 개선과 징벌성 문제의 해결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국민의 우호적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2000년 대체복무를 도입한 대만의 사례를 제시하며, 복무 분야 확대가 대체복무와 관련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연구용역을 발주하기 전부터 대체역심사위원회 내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론조사가 포함된 연구용역을 동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보편적인 인권 관련 정책은 정부와 국회가 의지를 갖고 반대 여론을 설득해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사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도 보호해야 할 가치라고 인정한 터다.

대체복무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적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체복무에 대한 여론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인권을 존중하는 정부라면 외려 국민을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로 연구용역 결과가 활용될 수 있다. 인권적인 요청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나마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놓으니까 행정부가 마지못해 좇아가는 형식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소수자 등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사법부의 결정에 따라 조금씩 보장돼 가는 게 한국 인권의 현실이다. 헌법에 맞춰 인권을 보장하는 취지로 법을 제정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