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이 의미없이 좆대로 정한 미스터리로, 그냥 이런 게 있구나

생각하고 보는 게 마음 편함. 진짜임.







1. 한국에 유독 집중된 고인돌의 갯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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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있는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전세계적으로 고인돌의 갯수는 7만 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인돌은 아시아나 유럽, 북아프리카 등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한반도에만 절반 가까이 되는 2만 5천~3만 5천 기가 존재하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도 특히 황해도와 전라남도에 많이 존재하는데,

전라남도에만 2만 기가 있을 정도로 전세계 타 국가에선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높은 고인돌 밀집 분포도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고인돌이 무덤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을 알지만,

어떠한 학자들도 '어째서 한반도에 고인돌이 미친 듯이 존재하는가?'

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내리지 못 하고 있다.


2. 백제 무왕에 대한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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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30대 왕 무왕 동상. 신라와 밥 먹듯이 전쟁했다.


다들 어렸을 적 무왕이 '서동요'라는 노래를 지어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민간에서 내려오는 구전일 뿐이고,

당시에 백제와 신라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오피셜로, 무왕의 부인은 백제 왕족 출신인 사택왕후이며

더 나아가 선화공주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불분명하다.


선화공주는 신라 26대왕 진평왕의 3녀라고 전해지지만

첫째 딸인 선덕여왕(김덕만), 둘째 딸인 문정태후(김천명)과

달리 기록도 매우 부실하기 때문이다.


무왕에게 야반도주를 했다. 결혼하고, 죽을 때는

그의 옆에 묻혔다. 끄적끄적. 이게 끝이다.


무왕 또한 누구의 자손인지도 불명확한 실정인데,

삼국시대를 기록한 역사서 중 신빙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30대 법왕의 아들이라고는 나오지만


기록의 교차검증이 매우 번거로운 삼국시대상, 역사서마다

모두 기록이 달라 '삼국유사'에선 27대 왕인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내용도 담겨있는 등, 이외에도 가설이 넘쳐나

무왕은 어쩌다 홍길동이 되어버린 셈이다.


3. 백제 의자왕에 대한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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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31대왕 체어맨. 역시 신라와 밥 먹듯이 전쟁했다.


망국의 군주 의자왕이 재위 초기엔 신라에

꿇리지 않을 만큼 강대한 국가를 만들었으나,

향락과 사치에 빠져 결국 백제를 멸망시킨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다만 이 역시도 진위 논란의 여부가 존재하는데,

의자왕이 백제의 중흥을 이룬 후 만용에 빠져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위험에 빠졌을 때,


지금의 총리, 장관에 해당하는 백제의 좌평이자

의자왕의 충신인 '성충'이란 신하가 간언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다.


그때도 성충은 상소문을 올릴 때,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간언을 하였을 뿐

'사치와 향락'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었다.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백제가 멸망하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신라의 성을 공격하여 전쟁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백제는 쉽게 멸망을 허락한 나라가 아니었다.


게다가 후에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의자왕의 원수를 갚자는 기치를 내건 것을 보면

의자왕 또한 폐급 군주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의자왕'하면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를 멸망시킨 군주로 기억하지만,


백제는 신라보다 먼저 멸망한 국가이기 때문에

신라의 프로파간다가 기록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왜곡들이 맞물려 지금의 의자왕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흔하다.


여담으로 의자왕의 이름은 말 그대로 부여의자이고,

낳은 아들은 무려 50명이나 있었는데,

한국사 역사상 아들을 가장 많이 가진 군주이다.


4. 안시성주와 을지문덕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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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에서 안시성주를 분했던 배우 조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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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슬레이어 을지문덕


이 둘을 묶은 이유는 둘의 공통점 때문이다.

바로 둘의 정체가 매우 미스터리하다는 것이다.


먼저 안시성주의 경우, 이름 또한 알려져 있지 않은데,

양만춘이라 소개된 이름은 명나라 대의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창작된 이름으로

안시성주의 이름은 여전히 미스터리인 실정이다.


당 태종 이세민의 침공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후에 쿠데타를 일으킨 연개소문의 공격을 막은

안시성주는 이후의 기록 역시 존재하지 않아

말 그대로 '물음표' 그 자체로 볼 수 있겠다.


을지문덕의 경우에는 안시성주보단 아주 조금 나은데,

이름이 온전히 전해져 오며, 고구려의 고위 관직 출신이라는

기록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그 역시도 안시성주와 마찬가지로

수나라의 멸망 스노우볼을 굴린 살수대첩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후의 행적과

최후가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어

그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학자들은 그 당시 당나라에 '을지경덕'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점을 미루어,

을지문덕을 귀화한 선비족계로 보거나

하급 귀족 세력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고구려와 수의 전쟁 당시

외교권을 갖고 직접 협상을 했다는 점과,


을지문덕에게 젖보똥을 심하게 따인

수 양제가 자신의 장수들에게 그의 이름을

명시하며까지 꼭 붙잡아올 것을 명한 걸로 보아

고구려 내에서 입지가 적지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안시성주와 을지문덕 모두 중국 내의 기록이

매우 부실한데, 이는 중국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긴 인물에 대해서는 기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도 이를 대놓고

비판할 정도로 중국인들은 뒤끝이 매우 심했다.

아니, 지금도 심하다.


나중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