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공항의 모습]
나리타 공항은 일본이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을 세우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국제 허브 공항으로서의 야심을 품고 만든 공항이었다.
그런데 나리타 공항을 이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리타 공항의 경비와 경찰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경비가 삼엄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왜 나리타 공항은 여타 공항보다 더 경비가 삼엄하고 경찰들도 많이 배치되어 있는 것일까?
[나리타 투쟁 사진]
그것은 1960년대부터 2020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나리타 투쟁 때문이다.
(산리즈카 투쟁이라고도 함)
[사토 총리]
1966년 일본은 우리나라가 인천공항을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 거대 국제공항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나리타 국제공항 건설 계획을 세운다.
꿈은 원대했고 마음은 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정부가 건설 계획을 나리타에 살고 있는 주민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고 (?)
나리타 주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안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공항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한 점에 있었다 (??)
적절한 보상을 위한 정책과 자금을 준비하지 않은 정부는 충분치 못한 보상액을 제시했고 애초에 돈을 받아도 떠나지 않으려는 주민들에게도 공권력을 행사하여 '나라가 큰일을 하려는 데 왜 국민이 협조하지 않느냐' 는 식의 고압적 태도로 주민들을 밀어붙였다.
[나리타 공항 시위를 다룬 만화 '우리 마을 이야기 중 한 장면]
나리타 공항에 살던 주민들은 대대로 몇 백 년간 농사를 지으며 정착해 살던 사람들이었고,
나리타 공항이 건설되니 나가라고 해도 당장 어디 가서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적절한 보상안을 제안하거나 합의점을 도출하려고 하기 보다는 나라에서 큰일을 하려고 하니
보상을 받고 퇴거 해달라는 식으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려고 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와 행태는 당연히 주민들의 큰 반발을 샀고
이에 주민들은 어린이와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나서서 투쟁에 나선다.
[나리타 공항이 생기기 전 산리즈카 주민 모습]
대대로 물려받고 살아온, 혹은 힘들게 겨우 정착한 땅에서 퇴거당하면 살 길이 없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시위였다.
일본은 대대손손 가업을 물려받아 이어가는 성향이 강하고 특히 1960년대에는 농사짓는 토지와 고향, 고향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한 시대였다.
근데 갑자기 정부가 이 땅에 공항을 지어야 한다며 나가라고 하니 사람들은 반발하며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각종 정치단체와 정당이 개입하면서 사건이 복잡해진다.
일본 공산당과 일본 사회당 같은 정치 정당들이 사진한번 찍어보겠다며 가세했고
1967년 당시에 벌어지고 있던 월남전을 반대하고 사토 내각에 반대하는 신좌파의 각 파가 반국가 투쟁에 나서면서 나리타 시위에 동참한다.
또 지역의 기독교도가 모인 토무라 일작의 반대 동맹 대표가 활동을 선도하고
지역 농민들과 좌익 혁명가들이 협력하고 제휴하면서 나리타 시위의 규모와 성격은 일변하게 된다.
[좌익 혁명가들과 무정부주의자, 정치정당과 신좌파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는 점점 무장투쟁화된다.]
1967년에는 시위대가 다리를 건너려 하자 경찰 기동대가 버스로 다리를 막았지만
시위대가 버스를 탈취해 근처에 있는 살수차와 경찰버스를 충돌시키는 사건이 발생하여 여러 명이 부상 당했고
주민들은 고공철탑과 바리케이드, 시설물을 세워 확성기를 켜고 공사 차량의 진입을 막고 경찰과 싸우며 반대 투쟁을 전개해나갔다.
기동대가 최루탄을 쏘면 주민이 주워서 기동대에게 도로 던져 기동대가 해산하는 일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정부는 초지일관 비타협적인 자세로 건설계획을 수행했다.
주민들의 엄청난 저항과 반발 속에서도 경찰력을 투입해 진압을 계속했고, 이 과정에서 뉴스와 여론매체에는 머리가 깨지고 선혈이 낭자한채로 실려나가는 기동대원과 주민의 영상이 수차례 중계 되었다.
[시위 중 돌격하는 주민들]
주민들은 경제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 고향을 지키기 위한 성격의 알박기를 하고
다른 시민들과 함께 합세해 1평 땅 사기 운동을 전개하며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본 정부는 비타협적인 태도로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원래 1972년까지 공항을 완성 시키려 했던 일본정부는 시위로 계속 시일이 늦추어지자
1971년 2월 22일에 건설 예정지에서 경찰력을 이용하여 제 1차 행정대집행을 시행했다.
이 당시 투쟁은 경찰의 무력 진압 시도와 농민과 시위대의 목숨을 건 방어로 그야말로 전투에 가까웠다.
화염병에 맞아 불이 붙자 몸에 불이 붙은채 뛰쳐나오는 모습
[연행되는 시위 참가자]
1차 행정 대집행이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부상자가 나오지만 일본 정부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지 못했고
같은 해 9월 16일에 다시 제 2차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진다.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을 파괴하는 모습]
제 2차 행정대집행에서는 좀 더 과감히 공권력을 사용하라는 정부 측의 주문이 있었고
1차 행정대집행에서보다 더 강한 충돌이 발생하여 기동대와 시위대 양측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바리케이드와 건물을 구축하고 농성했고 기동대는 이들을 끌어내고 해산 시키거나 폭력 혐의로 구속했다.]
[행정 대집행 관련 만화 한 장면]
특히 1966년부터 1972년까지 농민과 시위 단체들이 곳곳에 성과 벽을 건설해두고 안에서 생활하며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이것을 불법 건축물로 규정하고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 철거 및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끝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며 자리를 지키던 농민이 사망하고 중장비 기사가 폭행을 당하는 등 이 당시의 폭력성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중장비를 동원해 시위대가 있는 성을 철거하는 모습]
[철거를 위해 중장비가 다가오자 화염병을 투척하는 시위대와 탈출하는 기사 모습]
행정대집행에도 시위대는 굴하지 않고 몇년간 더 투쟁을 이어나갔다.
1972년 3월 15일 반대 동맹은 A 활주로 남단에 접근 영역 내 바위 지역에서 높이 63M의 철탑, 소위 암산대철탑을 건설하여 비행전 검사를 중지하게끔 했다.
이에 1977년 1월 11일 후쿠다 내각은 국무회의에서 나리타 공항을 1년 내에 개항하게 하겠다고 호언하고 항공기 운항을 방해하는 암산대철탑을 철거하고자 1월 19일 중장비를 운행하는 도로 건설에 들어갔다.
[ 철거를 위해 진입하던 불도저가 화염병에 직격당하는 모습]
5월 6일 새벽 3시 기동대원 2100명이 암산대철탑 주변을 포위, 오전 11시경에 암산대철탑을 철거, 기초부까지 절단을 완료했다.
그러나 이 일로 5월 8일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고 시위대의 격렬 저항에 기동대가 최루탄을 마구잡이로 발포하다가 야전병원에 있는 학생의 머리를 직격하여 학생이 그자리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시위대가 설치한 탑을 사람이 있는채로 파괴하는 모습]
"이제 우린 어디로 가란 말이냐?!"
[항의하는 한 노인]
이러한 격렬한 시위와 투쟁 속에서도 일본 정부는 오직 나리타 공항의 빠른 개항을 목표로 경찰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 진압해 나간다.
결국 대부분의 주민들이 밀려나오고 어쩔 수 없이 정부와 합의하거나 저항을 포기하며 고향을 떠나가게 된다.
[무너지는 탑과 농성장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는 주민들]
그리고 나리타 공항은 조금씩 건설되었고 결국
1978년 3월 그 개항을 앞두고 있었다.
개항 직전 또 발생한 무장 투쟁
1985년 10월 20일 국제공항의 2기 건설을 반대하는 대규모 총궐기 집회가 일어났다.
3900명이 참여한 집회에서 오후 네시 경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을 비롯한 여러 당파가 '이전처럼 또 질 수는 없다' 며 철저한 항전을 약속하고 집회 예정 몇 주전 땅속과 관목속에 숨겨둔 쇠파이프, 죽창, 깃발, 화염병 등을 꺼내어 참가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준비해둔 트럭과 덤프 트럭으로 시위 현장에 난입, 기동대와 충돌하며 시위가 폭력화되었다.
[헬멧을 쓴 시위대, 헬멧에 새겨진 글귀와 마크에서 단체의 성격을 알 수 있다.]
4시 22분 1000명단위의 무장한 중핵파와 농민들은 교차로에 있는 경찰 저지선을 통나무로 뚫고 기동대를 공격했다.
저지선이 뚫리자 경찰 기동대는 큰 혼란에 빠졌고, 경찰이 다시 저지선을 세우려 하자
시위대는 화염병과 자갈을 던지고 낙오된 경찰 병력을 구타하는 등 2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일본 시위대가 통나무를 이용, 경찰 저지선을 붕괴시키는 장면]
[불타는 경찰 차량]
이 사건을 본 한국 노조원 및 시위대들도 "너무 격하다" 며 평가할 정도로 시위는 격렬했고 목숨을 도외시한것으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이 일로 기동대는 9명의 중상자, 5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다수의 장갑차 및 살수차가 파괴되었으며 241명의 시위대가 체포되었다.
공항 침투, 관제탑 파괴 사건
동 시각, 나리타 공항에서는 혁명적 노동자 협회의 구성원들이 택시로 위장한 차량과 가짜 신분증으로 경찰의 검문을 통과하고 공항 내로 진입하여
5시 35분경 공항 여객 터미널 빌딩 주차장에서 자신이 타고 온 차량 외 1대, 총 2대의 차량에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또한 화염방사기와 산탄총으로 무장한 결사대가 위장 소방차 2대를 방화 사건의 소화 활동 명목으로 경찰을 속여 진입했다.
관제탑 앞에 위장 소방차 1대를 정지시키고 시한장치를 작동시킨 이후 다른 위장 소방차로 도주했다.
약 8분후 소방 호스 노즐로 위장한 산탄총의 화약으로 한번에 200개 가량의 구슬탄이 발사되어 관제탑과 유리창이 파괴된다.
화염방사기는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아 관제탑이 불타지는 않았으나 타고온 위장 소방차에 불이 붙었다.
[점거된 관제탑에서 삐라가 날리는 모습]
이 전략은 수 년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고 극좌 과격파 및 농민들이 경찰과 시가전을 일으킨 것은 침투를 위한 양동작전이었으며 이 양동에 당해 2시간 가량 진압이 지연되어 국가 중추 시스템까지 파괴되는 수모를 겪은 일본 경찰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개항 후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주민들은 게릴라 형태로 항쟁을 이어나갔고 개항해 공항을 대상으로 150건이 넘는 게릴라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대에 밀려 나오는 기동대]
그 후, 결국 대화에 나선 일본 정부
이러한 1966년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치열한 시위 끝에
일본 정부는 농민들과 대화를 시작했고, 고통을 입은 농민들에 대한 사과가 이루어지면서 충돌은 잦아 들었다.
1995년 이후에는 공항2기 공사에 쓸 토지 매수에 응하는 농민들도 증가했다.
그러나 토지 이전에 응하지 않는 주민과 시위 단체들이 여전히 있어 공항은 결국 계획대로 완성되지 못했고
시위 단체와 주민들 일부는 여전히 공항 내 자신의 땅에서 살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리타 공항은 처음 계획의 절반도 이루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고
반쪽 짜리 공항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나리타 공항 2 활주로는 기존 계획의 2/3도 안되는 길이로 지어지고
3 활주로는 아예 활주로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에도 공항 내에 주택이 있으며
이러한 공항 내 주택과 건물은 항공기 촬영의 명소가된다.
투쟁과 그 결과로 인해 나리타 공항은 기존의 반도 안되는 활주로와 용량을 갖게 되었고
측풍이 강해 심심하면 고 어라운드(항공기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착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는 동작)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가진 나리타 공항 덕에 인천공항은 반사 이익을 상당히 많이 봤고
허브 공항으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게 된다.
일본 정부도 나리타 공항과 하네다 공항의 기능을 강화하고 여전히 눈에 가시처럼 박혀 있는 공항 부지 내 주택과 주민들을 몰아내고 공항을 고치려 했지만
현재 부지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과거 나리타 공성전의 기억으로 인해 정부에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고
나리타 시위 자체도 아직 현재 진행중 인지라 제대로 된 협상도 못해보고 물러나게 된다.
나리타 공성전은 베트남전이 진행 중이고 냉전이 벌어지던 당시의 시대상과
전공투, 좌익, 공산주의 같은 사상과 시위가 뜨겁게 벌어지던 일본의 시대적 특징,
그리고 국가 계획이라며 제대로 된 협상과 보상 없이 일을 진행 시키려 했던 정부의 행태가 만들어낸 참사였다고 평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보상과 협의를 거쳐 나리타 공항을 계획대로 완성했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한편 이런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 정당과 단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며, 나리타 공항에 경찰이 많이 있는 이유인 나리타 공성전, [산리즈카 투쟁] 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끝
출처: https://www.dogdrip.net/277658984
한국노조가 심하다 흔거에서 이미 끝남 ㅋㅋㅋㅋㅋ
고작 저거냐 ? 헬조선의 목사님과 신도들이 하는 알박기를 못봤구나. 아주 들어오면 죽겠다고 가스통에 휘발유까지 뿌리면서 저항했는데 말이야.
대대손손 농사지어온 땅 기술도 지식도 뭣도 없는데 갑자기 내쫓으면 저항 할만하지 근데 그 저항에 기름 붓고 불 붙이고 부채질까지한 좌파 빨갱이들이 문제임.
저게 당연한거지 넌 무식해서 저항권의 개념을 잘 모르나 보네. 부모가 잘못 키운 탓이니 어쩔수 없긴 하지
그렇게 저항권 존중 하시는 분들이 왜 학생운동 안하는 무고한 대학생들 잡아가서 고문하고 죽이셨어요? 그래놓고 뻔뻔하게 정치생활 하시는 분도 계신던데
내가 무고한 대학생 고문해서 죽였냐 병신아? 그건 그 새끼한테 따져 무식한 새끼야 아니다 니 부모한테 전해줘라 니가 애새끼 교육 병신 같이 시켜서 애가 병신 됐다고
좌파 특징 나오죠? 긁혀서 바로 발작하는거 ㅋㅋㅋ 좌파 = 전라도 = 친북 = 친중 = 빨갱이
팩트 쳐맞고 반박도 못하네 ㅋㅋㅋㅋ
광자검
팩트에 쳐맞고 ㅂㄷㅂㄷ ㅋㅋㅋㅋ
홍들홍들
기름 붓고 불 붙인건 일본 정부지 부채질 정도는 좌파가 한 듯
독재 정권 쁘락치가 무고함? 그리고 학생 운동하던 사람들이 고문 당해서 병신되고 죽은 건 니가 다 먹어버렸냐? 니 말이 다 맞아서 학생 운동 하던 사람들이 무고한 학생 고문해서 죽인거에 분노했으면 박정희, 전두환 찢어 죽이고 싶은거 어캐 참고 살았냐?
저항하지 말라는게 아님. 저항 방식이 잘못됐다고. 시위로 저항할 수 있는거 좌파 빨갱이들이 들어와서 지 뜻에 반대하는 사람한테 화염병 던지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동조안하는 사람들 잡아다 고문하게 만드는데 이게 맞음? 학생 운동 하다 다치고 죽은 사람들? 좌파 빨갱이들이 선동하고 부추겨서 그렇지 안죽고 끝날 수 있었음. 지들이 기름 뿌리고 불 질러서 경찰 쪽도 죽고 학생 쪽도 죽은건데 경찰 쪽 목숨은 안아깝고 학생 쪽 목숨은 아까워? 좌파 빨갱이식 내로남불이지. 그리고 독재쪽 쁘락치인지 아닌지를 왜 니네가 판단함 무슨 권리로? 누구보다 민주 좋아하시는 분들이 독재자가 하는 짓 고대로 하고있는데 이러니 독재자하고 싶어서 독재자 끌어 내리려했다는 소리 듣지.
젊은 남자들이 저항권을 무시하니까 남자만 강제징병 당하는 게 평등이라는 개소리를 듣는 거다. 총을 들고 있는 게 전부 20대 남자인데 왜 당하고 사냐? 좆팔륙과 페미와 좌익을 죽여버려야지.
일본이 한 강제징용은 나쁜 강제징용 한국이 하는 강제징병은 착한 강제징병이라고 씨부리는 나라에서 총 들고 뭐 하는 거냐?
솔직히 나도 한남들 저항안해서 이 꼴 났다고 생각함. 급진적인건 반대하지만 더 저항해야함.
어떤 식으로든 트러블이 생기면 이익집단이 발생함. 저건 걍 제대로된 보상도 없이 쳐나가라고 한 정부탓임 그런 트러블을 빌미로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 집단은 당연한 수순이고 애초에 그릇된걸 밀어붙인 쪽이 잘못
좌파 빨갱이가 문제가아니고 밤밖에의 부모님이 문제임
개센징들 일본은 남성성이 거세됐느니 어쩌니 우리나라는 군대를 가니 어쩌니 ㅋㅋㅋㅋ 야 이 개센징들아 시위를 해도 저렇게 좀 해봐라 정치인들한테 원한이 있으면 좀 쏴죽여봐라
하면 폭동이라고 하잖아?
하면 남성성 거세된 좆대남 새끼들이 "에에~ 폭동이다노~." 이지랄하면서 조롱하는데 잘만 저항하겠노 새끼들아. 심지어 신남연 시위도 일베 펨코 새끼들이 조롱하던데.
좆대남새끼들은 그럴 깡다구도 의지도없음ㅋㅋㅋ 여기디씨앰생새끼들만봐도 롤하고 욕만하고 자빠졌는데 그런븅신새끼들은 애초에 도태되서 뒤지는게 오히려 도움됨
5.18보고 공산폭동이라 하는 새끼들이 잘도 저항하겠다 ㅋㅋㅋ
하네다공항만 확장하면 될걸.
아시아 대장 갓본답게 시위도 어머어마하구마잉
왜 유익함
저돈으로 차라리 하네다 확장헀으면 더 싸게 먹혔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하네다는 도심지랑 가까우면서도 주택지랑 분리되어 있어서 히드로 같은 커퓨타임 없이 24시간 운영가능한 띵당중의 띵당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우리 마을은 저거 급식때 많이 읽었었는데 추억이노
시바 그래서 나리타공항 내리면 지상이동만 30분 가까니 한다고 조종사 친구게이가 ㅈ 같다고 했구만 - dc App
통나무돌격 존나 무섭노 ㅋㅋㅋㅋ
투쟁을 하면 잡아다가 용광로에 하나씩 집어넣어서 녹이는 퍼포먼스를 전국에 방송 해야한다고 봄. 일단 시위건 뭐건 맨손을 제외한 그 어떠한 것들이라도 들고 하면 바로 잡아서 죽여야한다고 봄
병신
병신
엔젤두환은 조선의 구원이었다 - dc App
엔두 마음 여려서 빨갱이들 많이 봐줌 ㅅㅂ
마음 여리긴 ㅅㅂㅋㅋㅋㅋ 미국이 보고 있으니 대놓고 못한 거지
적군파같은 일본좌파들 유명하잖어 ㅋㅋㅋㅋㅋ
존나 쌔다 ㄷㄷ
민주노총 : (광화문에서 술먹고 오줌싸며) ....!?
옛날 조센징들 학살하고 대가리썰고다니던 시절의 야마토인들이노 ㄷㄷ
한남냄져랑 다르게 남성성 오지네 한남냄져는 진짜 쓰레기구나
보상비 조금 아끼려다 그 수백배는 되는 세금이 공중분해됐노 ㅋㅋㅋ
니혼징들은 시체팔이를 못하네. 조선빨갱이들한테 한수 배우고 가라 ㅋㅋㅋ
ㅅㅂ 일본인들 화나니까 존나 차원이 다르게 무섭노
저러니 임진왜란 때 조선육군이 싸그리 전멸당한게 왠지 납득이되노 ㅋㅋ 일반인들도 존나 잘싸우는데 훈련된 군인들은 걍 전쟁병기지
싱글벙글갤 병신들 싱글벙글갤 병신들 싱글벙글갤 병신들 ㅋㅋ
인간 카타프락토이 전술 지리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네
좆본 난쟁ㅇ ㅣ새끼들도 하는걸 한남새끼들은 못하네
너라면 극단적 예시로 들어 조상 대대로 천석꾼 지주 집안 부잣집 자식으로로 살아 왔는데 공항 짓는다고 꺼져 이려먼 가만 있겠음?? 저렇게 격렬하고 잔인하게 꼬라박고 대들어야 그게 민주주의 국가 맞고 당연히 저항권을 명시하고 있음.
상관없음. 여기 새끼들은 빨간놈들이 들어오면 집문서 내놓고 빈손으로 나가라는 새끼들임.
냅둬라 ㅋㅋ좆대남새끼들 이미 대가리에 빨갱이와 롤만 가득차서 사리분간못하는 앰생새끼들임ㅋㅋ
그래도 시체팔이하면서 즙짜기 감성질은 안하는거 보면 상남자식 시위질이노
한국이었으면 나리타 유공자 특별법 제정하라고 난리쳤겠지
재인이 같은 애가 나와서 만악의 원흉 공항을 없애겠습니다 이지랄 하고 배타고 다니겠지 머
항상 부당한 공권력에 투쟁할 자세가 되어있어야지. 멀리서 연대합니다.
강제징용 강제노동으로 착취당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는 한남들 wwwwww
말은 하는데 무시하는데요
진짜 살려고 시위하던 농민들한테 각보고있던 빨갱이들이 접근해서 부추겼노 ㅋㅋㅋㅋ ㅅㅂ 시위에 빨갱이가 안끼면 섭하지
우리나라 80년대 모습같네 딱 ㄹㅇ
토지야 말로 인간들의 만년의 역사에서 보여주는 역린이지. 인간은 토지로부터 시작해서 모든게 시작되었으니.
토지가 있기에 자유와 책임이란 개념도 탄생한거임. ㅋ
반대로 우리나라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사실상 무상에 가까울 금액으로 토지주에게 보상해줌. 그럼에도 주민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며 싸게 매수 당하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라 판단하여 별다른 저항없이 넘어감. 이후 강남의 땅값이 폭등했을 때 이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함. 하긴 그때는 강남이 그렇게까지 발전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테지만
흠
쪽본놈들도 입꾹닫 하고 있어서 그렇지 저항의 역사가 있구만
일본사람들은 착하네 전라도였으면 진즉데 무기고 44곳털었을듯
싱글벙글갤 병신들 ㅋㅋ
일제때부터 돈안주고 아랫것들 마음대로 다루던게 기본이었는데, 미국이 민주주의 맛 보여줬으니 안통하지 ㅋㅋ
폭동이노
윤모지리 하는짓이딱 일본정부하는짓 똑같다. 당장끌어내려야.
넷우익 노예새끼들은 또 빨갱이타령이나하고있네 ㅋㅋ
저딴게 선진국?
우리 갓본이 저럴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내용이 좀 잘못되어 있는데 저거 초기 시위 주체는 더 복잡하다. 일본제국 시절에 빈농들 조선-만주-내몽골에 이주시킨 사람들이랑 그 후손들이 태평양 전쟁 끝나고 나라 망하면서 추방 당해서 저기 간신히 정착했는데, 그걸 또 나라에서 뺏어가려고 해서 저 사달이 난거. 이미 나라가 두 번이나 버려서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제로인데 가난뱅이들이니 적당히 보상해주면 된다고 대충하다가 안들어주니 공권력으로 추방시도 하니까 자기들을 세 번 버린 나라는 자기들 나라가 아니라고 극심하게 반발해서 더 잃어버릴 거 없는 인생이라고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것도 심함
더 잃을거 없는 사람들 좆으로 보다 매운맛 본거네
좆뽄 역사를 왜 알아야하노 ㅅㅂ 일뽕새끼들 하다하다 좆뽄 역사까지 설파하네 비추나 처먹어라
대대손손 살던 주민도 있긴 한데 문제는 해외에서 2차대전 종전 후에 빈털털이로 돌아온 재외국민들(히키아게샤)를 국가에서 집단 이주시킨 곳이었던 게 문제였음. 도시빈민이나 부랑자, 하류층들 모아다 집단 해외 이주시켰는데 거기서 터 잡으니까 전쟁 졌다고 무일푼으로 쫒겨나서 어디 몸 둘곳도 돈도 없는데다 말이 서툴다, 문화를 모른다 등등 차별당하는 기억이 있던 사람들이라 쫒겨나는 것에 병적인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인데 보상도 없이 강압적으로 쫒아내려는데 좋게 끝날거라 생각한 윗대가리들이 사태의 근원 임.
평화시위 <~단어부터 병신임 ㅋㅋ 말로 해서 됐으면 씨발 집에서 쳐 놀시간에 시위 나왓겟냐? 병신같은 소리 좀 작작해 때려부수고 좆깽판쳐야 미안하다 소리 한번 들을까 말까지
자기가 살던 땅 뻇기는데 나라도 저러겠다
걍 빨리 다 쏴죽이고 나리타 공항 더 크게 넓혀라
줘도 줘도 더달라고 지랄해서 끝이 없는건 경험칙으로 알텐데..
일반인들이 존나 잘싸우네 통나무 돌격은 신박했다
조직적이네 왜군이 왜 강한지 알갔다
저게 현실
한국과 일본 = 국민들이 독재 정부에 저항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과 일본 =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문화를 공유하는 좋은 친구
짱깨 = 제국주의 독재자 위구르,홍콩의 살인마 시진핑 개인소유 미개왕국 = 전세계가 죽이고 싶어함
习近平渣男 习近平鸡巴 习近平操你祖宗十八代 习近平王八蛋 习近平你妈死了 习近平肏你家
KILL XIJINPING
所有评论这篇文章的人都支持中国政府披露天安门事件,中国民主化以及台湾和香港的独立
총기가 없으니 국가가 이렇게 국민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구나 헌법에 무장할 권리를 보장해놓은 미건국의 아버지들 대단하다
이거 비슷한거 평택서 사람들 내쫓던 일 있지 않냐 노무현이 한거
다 일본 하는거 보고 배운건데 문제는 그것도 웰빙임 ㅋㅋㅋ
와 시발 찾아보니까 23년에도 시위대랑 대치하면서 철탑 철거했네
걍 지금도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이구만 아주
저때 일본은 경찰특공대 없었냐? 쌍용차 사태처럼 밀어버리면 되는 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