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잡지 <시와 소설>의 이상이 쓴 첫머리
(이상임)
- - -싱글벙글 웃고있는 짤과 그렇지 못한 그의 일화들- - -
1-양어머니가 자식을 못낳는 스트레스를 이상에게 풀고 친아들이 태어나자 대놓고 홀대함
2-그림에 재능이 있고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기술자가 최고라고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학과 수석졸업(현 서울대 공과대학)
*백부는 재능에만 집중하고 엄격히 대했다고함.
3-이상을 키운 몰락 양반집 백부가 죽자 친가로 돌아왔으나 손가락이 잘린 가난한 이발사 아버지 집안이었던지라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함
이는 그의 소설에 나와있음.
"나는 그분들께 돈을 갖다 드린 일도 없고 엿을 사다 드린 일도 없고 또 한 번도 절을 해본 일도없습니다. 그분들이 내게 경제화(經濟靴)를 사주시면 나는 그것을 신고 그분들이 모르는 골목길로만 다녀서 다 해뜨려 버렸습니다. 그분들이 월사금을 주시면 나는 그분들이 못 알아보시는 글자만을 골라서 배웠습니다. 그랬건만 한 번도 나를 사살하신 일이 없습니다. 젖 떨어져서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와 보았더니 여전히 가난하게들 사십디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저고리를 걸기 위한 못을박으셨습니다. 동생도 다 자랐고 막내누이도 새악시 꼴이 단단히 박였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이상, <슬픈 이야기 中>
4-한창 문학활동 하던시기 건축기사로 일하는데 일본인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다가 결국 폐결핵(치료제는 광복후에 나왔음, 당시 불치병)진단 받고 결국 그만둠
"흔히 객혈로 인한 건강이 오빠의 사직이유로 말합니다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일인(日人) 과장의 이제는 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박차고 나온 오빠였습니다. 오빠의 몸은 그때부터 극도로 쇠약하기 시작했습니다. (…)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떠난 것은 이 무렵의 일입니다."
―김옥희, 「오빠 이상」
5-회사 그만두고 온천 요양갔다가 알게되어 사랑한 금홍이(연심이)라는 기생을 데려와 종로에 [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는데 장사가 잘 안됐고 금홍이가 자꾸 외박하더니 결국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았음
결국 다방은 망함.
"하루 나는 제목없이(느닷없이) 금홍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 너무도 금홍이가 무서웠다."
이상, <봉별기(逢別記) 中>
아래는 이상에 대한 평가 중 하나. 이상이 상당히 금홍이를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진실로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이면 믿어도 좋다. 그런 남자는 결코 악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아니 이상이야말로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고로 「지주회시」, 「날개」, 「동해」 기타 이상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상과 그의 아내들을 나타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인간 이상을 정당하게 이해할 수 없다. 공개된 석상에선 결코 진실을 고백치 않는 것이 이상의 엑센트리크한 성질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나타난 이상 자신은 모두가 인간 이상의 껍질이 아니면 그림자에 불과하다."
정인택, 「불쌍한 이상」(1939.12)
<이상의 사후, 조선일보 1939년2월22일 호에 박태원이 쓰고 그린삽화. "금홍이도 사라지고, 축음기도 팔아먹은" 다방의 현실을 묘사해놨다.>
당시의 경성의 다방은 여러가지 지식인들이 모여서 작품등에 대해 토론하는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이상의 [제비]에 경우, 축음기가 있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구본웅이라는 친구가 그려준 여러가지 그림들을 전시해놓기도 했다고 함.
6-회사를 그만뒀을때 정지용의 소개로 문학활동을 시작했는데(이 때에 [거울]이 발표됨), 이후 다방 [제비] 드나들던 문인들의 추천으로 구인회에 가입함.
가입 후 오감도를 연재했지만 독자들에게 잔뜩 욕먹고 연재 중단.
동료들만 천재성을 인정해줬음.
"대체 ‘조감도’를 일부러 ‘오감도’라고 오자를 낸다는 것부터가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니냐고, 신문사 교정부와 공장에서부터 말썽이었다."
김기림, <이상의 모습과 예술> (1949)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보아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2천점에서 30점을 고르는 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
[조선중앙일보](1934.7.24~8.8)「오감도 작자의 말」中
7-같은 폐결핵 환자인 김유정한테 동반자살을 권했는데 거절당했음.(신기한건 이상이 사망하고 김유정도 1달 채 되지 못해 사망함)
8-이후에도 다방 여러개 운영했고, 차례대로 [つる, '학'], [69](그 69맞음), [むぎ, 보리]를 운영했으나 전부 다 망함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이상, <날개 中>
9-이전에 알고지내던 변동림과 결혼후 새출발을 하려고 변동림과 구본웅(*이상의 아주 친한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 열차에 몰래타서 갔으나 매우크게 실망하여, 은둔하며, 건강이 나빠짐.
"나는 참 동경이 이따위 비속(卑俗) 그것과 같은 물건인 줄은 그래도 몰랐소. 그래도 뭣이 있겠거니 했더니 과연 속 빈 강정 그것이오."
이상, <김기림에게 6 中>
"...(내야말로 동경(東京) 와서 쓸데없이 담배만 늘었지. 울화가 푹― 치밀을 때 저― 폐(肺)까지 쭉― 연기나 들이켜지 않고 이 발광(發狂)할 것 같은 심정(心情)을 억제하는 도리가 없다.)
...
(여기는 동경(東京)이다. 나는 어쩔 작정으로 여기 왔나? 적빈(赤貧)이 여세(如洗)―— 콕토가 그랬느니라―— 재주 없는 예술가(藝術家)야 부질없이 네 빈곤(貧困)을 내세우지 말라고. 아― 내게 빈곤(貧困)을 팔아먹는 재주 외(外)에 무슨 기능(技能)이 남아 있누. 여기는 간다쿠 진보초(神田區 神保町), 내가 어려서 제전(帝展) 이과(二科)에 하가키 주문(注文)하던 바로 게가 예다. 나는 여기서 지금 앓는다.)"
이상, <실화 中>
*이상은 이때 주영섭에게 편지를 보내 숙박 편의를 봐달라고 했으나, 방이 너무 좁아서 주영섭은 방이 더 넓은 김병기 화백에게 이상을 재워달라고 했음.
*김병기 화백은 1916년 생으로 2022년 3월 1일 향년 105세로 작고하셨음.
"“빗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이상(李箱) 시인의 제일성이었다. 주인이 양보한 침대 위에서 일어나 아침 인사로 건넨 첫마디, 바로 빗방울 소리를 헤아리느라고 잠잘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빗방울 소리 때문에 잠잘 수 없었다! 도쿄 김병기 아파트에서의 일이었다.
(...)
드디어 이상 시인이 왔다. 첫인상으로는 나이 많은 노인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실제 나이는 30살도 되지 않았다는데 50살이 넘은 것처럼 보였다. 환자처럼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게다가 몸에서 냄새도 났다. 시인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나는 마루 바닥에서 잤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문제의 ‘빗소리’ 이야기를 했다. 하기야 내 방이 1층이었으니 빗소리가 잘 들렸을 것이다. 어쩌면 시인이 살았던 주거 환경과 많이 달라 빗방울 소리에 민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침대를 양보받고 내뱉는 인사말치고는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인다운 발상인지도 모른다."
직접 이상을 본 김병기 화백의 회상.
-한겨레<한세기를 그리다-101살 현역 김병기 화백의 증언>
10-이후 폐결핵이 악화되었고 폐인처럼 지내다가 수상해보인다는 이유로 1937년 3월에 니시간다 경시청 경찰서에 수감당함.
11-병보석으로 1달만에 풀려나긴 했으나 골초인데다가 이미 폐병은 심각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 결국 4월 17일 동경시 본향구 부사정 1번지 동경제국대학 의학부 부의원에서 27세로 요절.
"귀에 가까이 대고 ”무엇이 먹고 싶어?“ ”셈비끼야의 메론“이라고 하는 그 가느다란 목소리를 믿고 나는 철없이 셈비끼야에 메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
아내 변동림, 「이상(理想)에서 창조된 이상」(1986.8)
"6,7인이나 낯모를 사람들이 둘러앉은 곁에서 화가 길진섭이 석고로 상의 데드마스크를 뜨고 있다. 굳은 뒤에 석고를 벗겼더니 얼굴에 바른 기름이 모자랐던지 깎은 지 4,5일이 지난 양쪽 뺨 수염이 석고에 묻어서 여남은 개나 뽑혀 나왔다. 그제야 ‘정녕 이상이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소운, 「李箱 異常」, 『하늘 끝에 살아도』, 동아출판공사, 1968
"오빠 가신 지 서른 해가 된 오늘날, 유물 중에서 가장 찾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오빠의 미발표 유고와 데드마스크입니다. 오빠가 돌아가신 후 임이 언니는 오빠가 살던 방에서 장서와 원고뭉치, 그리고 그림 등을 손수레로 하나 가득 싣고 나갔다는데 그 행방이 아직도 묘연하며, 오빠의 데드마스크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유학생들이 떠놓은 것을 어떤 친구가 국내로 가져와 어머님에게까지 보인 일이 있다는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김옥희, 「오빠 이상」
"반년 만에 상을 만난 지난[1937년] 3월 스무날 밤, 동경 거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 상의 숙소는 구단시타(九段下 : 동경 중심부에 있는 오피스 지역) 꼬부라진 뒷골목 2층 골방이었다. 이 ‘날개’ 돋친 시인과 더불어 동경 거리를 만보하면 얼마나 유쾌하랴 그리던 온갖 꿈과는 딴판으로 상은 ‘날개’가 아주 부러져서 기거도 바로 못하고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있었다. 전등불에 가로 비친 그의 얼굴은 상아보다도 더 창백하고 검은 수염이 코밑과 턱에 참혹하게 무성하다.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어두운 표정이 가뜩이나 병들어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해올까 보아서나는 애써 명랑을 꾸미면서 “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피디아스(Phidias)의 제우스 신상 같구려.” 하고 웃었더니 상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껄 웃었다. 사실은 나는 듀비에의 「골고다」의 예수의 얼굴을 연상했던 것이다. 오늘 와서 생각하면 상은 시로 현대라는 커다란 모함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이었다."
김기림, 「고 이상의 추억」(1937.6)
<센비키야(千疋屋), 아직도 운영중이며 고급과일 매장으로 매우 유명함>
<이상이 먹고싶다고 한 센비키야의 머스크 멜론. 그러나 죽기 직전 맛보지 못한채로 요절하고 말았음.>
김병기 화백의 회상.
-한겨레<한세기를 그리다-101살 현역 김병기 화백의 증언>
12-이후 아내 변동림에 의해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면서 흔적마저 찾을 수 없게 됨.
"묘지명이라.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생의 대작 「종생기」 1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1937년 정축 3월 3일[음력] 미시(未時) 여기 백일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卒)하다. 향년 만 25세와 11개월. 오호라! 상심커다. 허탈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이상 구천을 우러러 호곡하고 이 한산 일편석을 세우노라."
이상, <종생기 中>
"그의 취미에 있어서나 성행(性行)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의 인생관, 도덕관, 결혼관, 그러한 것에 있어서도 우리는 보통 상식인과의 사이에 적지 않은 현격(懸隔)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명백하게 안다고 나설 사람은 그의 많은 지우 중에도 혹은 누구 하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의 참마음을 그대로 그의 표정이나 언동 위에서 우리는 포착하기가 힘들다."
박태원, 「이상의 편모(片貌)」(1937.4.26)
*(조선일보의 잡지 월간조광 1937.6.01도 있음.)
- - 친구 구본웅 이야기 - - -
삽화가 이승만이 그린 <이상과 구본웅>
큰키에 까치머리, 망토와 지팡이를 짚은게 이상임. 둘은 아주 친해서 늘 저렇게 어울려 다녔는데 문화계쪽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정도 였다고 함. 위 그림에서도 이상은 구두를 신고 있는데 항상 백구두를 신고다녔다고함. 그러나 패션에는 무관심해서 눈에 보이는 아무 옷이나 걸치고 다녓음
13-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이상은 경성공업고등학교 때부터 필명을 생각해놨음.
지인들 말에 따르면 구본웅이라는 친구가 졸업선물로 준 화구상자가 오얏나무(李) 상자(箱)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지었다고 함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도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이상(李箱).”
『경성고등공업학교 1929년도 졸업기념 사진첩』 말미에 써진 비망록..
*이때는 작가로 데뷔 하기 전.
"김해경이라는 본 이름이 이상으로 바뀐 것은 오빠가 스물세 살 적 그러니까 1932년의 일입니다. 건축공사장에서 있었던 일로 오빠가 김해경이고 보면 ‘긴상’이래야 되는 것을 인부들이 ‘이상’으로 부른 데서 이상이라 자칭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깁니다."
김옥희, 「오빠 이상」(1964.12)
*실제로는 이미 예명을 정해놨었지만 본격적으로 쓴건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발표 시작 후 였음.
14-이상에게는 구본웅이라는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상만큼 천재적이었으나 꼽추라는 이유로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음.
15-구본웅의 어머니는 산후통으로 사망했고 이후 아버지가 재혼하게 되는데, 이 재혼한 사람이 이상의 아내, 변동림의 언니(변동숙, 여동생과 26살 차이)임.
즉, 이상은 구본웅의 친구이자 이모부가 되는 셈...
16-이상과는 4살차이나 나지만,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던 데다가,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을 정도임. 그러나 가정형편은 서로 반대였는데, 구본웅의 아버지는 사업가로, 부유한 집안출신임.
17-이상의 다방이 전부 망하고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릴때 이상이 취직해있던 곳이 바로, 친구 구본웅의 '창문사' 였으며 여기서 이상, 박태원, 구본웅이 구인회의 <시와 소설>을 창간함.
<1935~36년 절친 구본웅의 부친이 경영하던 인쇄소 겸 출판사 창문사의 <아동세계> 편집부 시절 이상. 도쿄로 오기 직전 말년의 모습>
(왼쪽부터, 이상, 구보, 김소운)
(깨끗한 버전)
18-구본웅 또한 이상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래살지 못하였는데 한국전쟁 중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아들과 새어머니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47세로 사망하고 말음.
(다행히 자손들은 현재까지 남아있는데, 발레리나 강수진이 구본웅의 외손녀임.)
구본웅이 그려준
<우인상>(친구의 초상)에 그려진 '이상'
피골이 상접해 있는데다가 골초인게 실제로 이상의 특징을 잘 반영한 그림이라고 볼 수 있음.
자신이 직접 그린 이상의 <자화상>
내적 감정을 표현하였다고 함.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상도 그림쪽으로 상당한 소질이 있었음.
"비대칭 구조의 얼굴에 안구가 없는 한쪽 눈, 눈밑에 흐른 눈물 자국, 함몰된 정수리 등이 당대 첨단 예술사조인 표현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평이다."
(<이상평전>, 김민수 지음)
19-이상이 그 당시 기준으론 키가 매우컸고, 구본웅은 곱추라 키가 작았는데, 이로 부터 나온 일화가 있음.
이승만이 구본웅, 이상과 함께 술집에 가다가 소설가 박종화('운수 좋은 날'을 쓴 현진건이 박종화의 사돈)를 만나게됨
이 박종화 소설가도 그 키 작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이상이 박종화와 구본웅 사이에 껴서 걸어가고 있었음
이를 본 이승만이 '山'를 떠올려 이상에게 전해주니
"우리 모습이 마치 '뫼 산'자와 똑같군!"이라며 크게 웃었다고 함.
구본웅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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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상이 별로 행복했던 기억이 많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도 몇몇 유쾌하고 거침없는 작품들과 언사를 기록상에 남길 수 있었던건
친구였던 구본웅의 존재와 박태원, 김유정, 김기림등의 구인회 친구와 동료들의 영향이 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상임
이상이 설거지 대법칙을 알았더라면
그래 힘내라~! - dc App
볼품없는 인생에서 나온 빛나는 작품들
금홍이 완전 한녀노 ㅋㅋㅋ 이상게이야 한남으로 태어났으면 ㅋㅋㅋ - dc App
이상 너무 빠네. ㅋㅋㅋㅋㅋ 이상 "조감도"비롯해서 작품 몇개 봐라.. 그냥 디씨 중2병 카갤러 정도 수준이다.
디씨엠생이 이상을 평가한다ㅋㅋㅋㅋㅋㅋㅋ 씨발 배꼽 빠졌네
서글픈 인생을 살아가는 예술가가 서글픈 감정을 느낀걸 문학이란 매개물에 녹여냇는데 대다수의 인간들의 삶이란 서글프거든 그래서 대다수의 인간들이 공감할 수 있는거야 재벌 4세로 태어난 이재용 딸래미봐라 일가 돈으로 미국에가서 돈 걱정없이 , 경영권 물려받을 일도 없으니 걱정없이 대학생활 즐기고 틱톡찍고 다니는거 이렇게 인생에 고난과 풍파가 없으면 부정적 감정도 없고 , 부정적 감정이 없다는건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정속에 살아가는대 그 대척점에 있다는 것이니 그에게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대중들이 무슨 공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다수의 인간들은 현실에서 눈들 돌리고자 이세계물을 선택했지
근데 왠지 틱톡조회수 잘나와서 또 돈벌거 같네
ㄴㄷㅆ
방구석히키찐따실붕이가 여자잘못만나서 돈떼인 이야기지 ?
글 가독성 왤케 떨러짐 - dc App
차라리 이상 평전 그대로 긁어와라 진짜 폰트고 내용이고 지랄 좆박았네 롭코씹덕병신힙찔이갤 수준
이상은 유명한 시가 제일 기괴하고 안 유명한 작품은 문학적임
여기 조선족갤러리임?
지랄 염병 ㅋㅋㅋ 등따시고 배부르니까 중2병 걸린거지 파퀴아오는 어렷을때 부터 길거리에서 도넛을 팔아서 가족을 먹여 살렸는데 저새끼는 뭐함?
넌 가족이 다 버리고 떠나서 커뮤질하니? 맞네... 미안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저새기가 에어컨 발명한놈보다 위대함??
좆도 쓸모없는새기 위인이라고 올려치기하지마라
그래도 현대인인 역사상 가장 행복함. 오히려 지금 이후 미래가 될수록 불행 해질지도..
글을 잘쓴다기보다 내용이 좆같아서 흥미진진한데, 따지고 보면 그냥 일기장 아닌가......
In any age, the modern man despairs. Despair breeds skill, and skill leads to despair.
아니 69가 옛날에도 있었다고??
코리안 곽가
21savage 닮았노 ㅋ
아직도 이해받지 못한 천재. 폐병이 옛날 천재들 많이 잡아먹었구만.
12월12일은 명작임 다른소설은 솔직히 읽기 힘듬
진짜 애가 천재의 삶 그 자체네 ㅋㅋㅋ 모든 조건을 충족함
조선인만 아니었어도...
박종화가 그 월탄 박종화인가 어렸을 때 월탄 박종화 삼국지 여러 번 읽었는데 당시 결핵은 지금 같은 병이 아니고 처음 치료제 나오기 전이면 60% 이상 죽는 병이라 더더욱 이상이 어두워지지 않았겠나 싶긴 하네
원래 작가는 불행해야 좋은 작품이 나옴
그냥 Adhd에 우울증 조현병 있는거아니냐 - dc App
금홍아 금홍아 영화봐라 흥미롭다. 감독이 약속 감독이라서 영화 잘만들었음
그냥 ㅈ거품임 저당시 기준으로 나온지 20년도 더 된 프랑스ㅡ러시아 아방가르드 구성주의에 영향받은 씹 하위호환일 뿐 다 이미 진작에 시도했던것들이고 새로운 흐름은 창조 못했으며 한국에서만 유명한 이유가있음
ㄹㅇㅋㅋ
그딴 얄팍하고 극단적이며 당시의 상황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논리로는 조센징 짱깨 쪽바리 다 거품이다 미국도 거품, 이민자나부랭이들의 나라이고 본래의 것이 없는 이어붙인 정체성이기에.
이분 조선총독부에서 일했다던데 ㅋ 그 분들 논리라면 민족반역자 아님 ?
어허 그분들 논리는 갈대같아요~
혈서쓰고 견마지로 멸사봉공한 다까기 마사오도 있는데 대가리 깨진 액윽보수 새끼들은 착한 친일이라고 하더라 ㅇㅇ
가짜광기체 원조잔아
회사 힘들다고 관둔 거 보면 걍 mz새끼네ㅋㅋ
시대를 막론하고 문돌이새끼들은 어딜가나 적응못하고 벌레처럼 사는구나 ㅎ
박종화가 더 유명한 사람
이상 쓴거 박종화 쓴거 다 읽어보면 박종화가 재미있음
그저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조명 받는 것 뿐임 지금 태어난 25세 좆백수 취급은? 심지어 조선말 좆백수의 취급은? 놀랍게도 조선말 보다 일제시대가 객관적으론 살기 더 좋았고 그건 출산율이 증명해버림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조선말 그 암흑기 역사가 조명하는건 최고 기득권 뿐이고 일제시대 민족주의역사가 기록하는건 ㅎㅌㅊ들의 반란뿐 5252 조선말 ㅎㅌㅊ 인생은?
애새끼가 어린시절부터 불우하게 자라서 병신됐네 ㅋㅋ - dc App
전 세계 어디에서나 ㅎㅌㅊ 그지 집 출산 어린이 일상은 지옥 그 자체거든 내전 ing 중인 아프리카에선 초딩 광부 ON 심지어 그런 최하층 그지집인데 문과지향? 심지어 꼴초& 알콜 중독자?? 수익 전무 무능력자? 그저 살자 추추 문과 재능? 그게 뭔데? 정말 모름
날개가 본인얘기였구나... 저렇게 젊은 나이에 갔을줄을 몰랐네... 지금 내나이에 죽었다니...
애초 조선말엔 하위 계층 문과충은 조명 대상도 예외지만 일제시대 문과충 조명 대단하노? 숭배 세뇌ON 이게뭐임? 오구라쇼헤이와 미국 선교사들이 동서남북으로 다른 한반도 방언 근대 한글로 만들고 나서 만들어진 일제시대 글로 문과 천재라노? 아니 쌉 고종시대 문과천재 읎노? 한반도 방언 문과 츤재는 읎었노? 586쓰레기들 시대 인물 조명 ㅁㅌㅊ?
킹치만 국가를 본인 소유라 생각하고 매매한 고좆 시대 소위 한글 기록물 수준을 보면? 초딩의 기록물 그 자체 개씹 찬양 숭배하는 개병신 양반 노예주들 기록들 보면? 아 오늘도 개씹 편안하다노 안빈낙도 즐 아 노예나 줘 패며 스트레스 해소 꿀 아 굴러다니는 노예 여자 젝스 하며 성욕 해소 꿀 노예가 해주는 음식 좆맛탱 아 마 경치 쥑인다 아니노 와 예술적
해방 이후 대가리수 많았고 기득권이었던 당시 지식인들이 선호했던 기록물을 그저 픽업한 결과물에 불과함 5. 60년대 기득권이자 교육을 받았던 이들이 현대 교육을 위해 기록물을 선정해 본 결과일 뿐임 실상 2020년 이 시점에서 저 기록물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도 어떤 공감도 받기 힘들고 현 시점 한국인들과는 세계관이 달라졌음 사실 역사적 인물이라 기득권이 픽업한 조선시대 인물들 대다수 한국인에겐 인물?이라 세뇌됐을 뿐 정작 그 인간들이 현 세계관에 도움 준 것??? 엥? 몰루 그저 과거 추물들을 숭배ON 하는 수준이 586이 만든 인문 사회 문학 예술계 임
1930년대는, 30~40대 사회를 떠받치는 젊은이들에겐 인지적 불균형이 올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엔 나라가 있었는데 뻇기는 과정을 눈으로 봤잖아?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나라를 잃는 걸 눈으로 보는건. 어른들 경험으로 들은 거랑 달라. 모범 황국시민으로 살지 말지 현실에 타협해서 살지 말지 고민을 무진장 했을 거야. 그 와중엔 물론 타협해서 적당히 적응하며 잘 사는 사람들도 많았겠지.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 시대 분위기에 적응이 힘들었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내면의 불안의식.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거나, 삶을 이어 나가야 하는데 좀처럼 쉽지 않았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이상이 외국 사조를 빌려와서 작품속에 잘 녹여내고있기 때문에 한국문학사에서 가치가 높은거야.
팩트) 대공황 때문에 취업 못해서 문제였지 이씨조센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판타지 같은 추정일 뿐이지 봉권시대(대한제국 헌법에 근거 고종은 국가를 사유재산으로 여기며 우리집안이라 소개를 많이 했음)에 일반 사람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은 희박함 애초 국민국가 시대가 아닌 봉권시대 신민의 세계관인데 일본과 합병 상황에서 여전히 신민이었음. 과연 인지적 불균형 그런 것이 있긴 했을까? 소위 노비를 다수 거느리고 소유했던 과거 기득권에겐 엄청난 이권 상실로 인한 반작용이 심했을 가능성 큼. 한편, 소수의 양반 기득권을 제외한 일반 신민들은? 천국에 가까웠을 듯
10년대 개화가사나 창가 보면, 일반 시민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나라위해 죽어보세 애국하세 이런 애국가류가 엄청 많아. 애초에 그런 개념이 정말 희박했다면 그런 노래가 유통될 수 조차 없지 않았을까? 국가라는 개념이 아에없었다고는 생각 되지 않아. 그런 노래가 소비될 때 소비층이 왜? 왜? 왜? 왜 그래야 함? 지금이 좋은데?? 물음표만 자꾸 그린다? 애초에 유통자체가 불가능하지. 아니면 노래가사거 더 길어져야해. 왜 그래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동의를 얻을 만큼 기반은 있었다는 소리야.
조선말 창가나 애국가의 가사가 국민이란 세계관에서 가능한 가사임? 사실상 용비어천가 시즌2 내용의 왕조 찬양가인데? 봉권 국가 vs 시민 국가 여기서 갭이 엄청 큰데 일제시대는 여전히 국민이 아닌 '신민' 세계관임 한국인이 저 당시 옛 조상이 국가를 위해 뭘 했다라는 주장은 세계관 갭 이해자체를 틀린 것임 저 당시 세계관의 국가란 것과 지금의 국가는다름
이상하노
이상의 이상한 철학적 이상 잘봤음.
ufc파이터의 삶이 훨씬 더 가치 있는것 같음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또 또 조센징 ㅋㅋㅋㅋ
이제보면 저런건 걍 정신병을 시인이라는 거창하고 거룩한 말로 포장한게 아닐까 싶다
저 시대 배경과 후광 없었으면 그저 잊혀졌을 인물이라 추정해봄 유사 느낌의 자기 혐오 비하 처량함 착한척 굴 덧없는 희망 비굴함이 섞인 온갖 개 뻘글들? 씹창난 우울증갤이나 문과갤에 포화상태로 다량 있음.
솔직하게 이게 맞다 고등학생 때나 30넘은 지금이나 범상치 않다고 느끼면서도 배부른 또라이새끼란 생각 든다
퐁퐁남의 시초격이노 ㅋ
알빠노
기구하게 살다 요절했다고 너무 과대평가함 ㅋㅋ 조선은 요절이 답인 듯
ㄹㅇㅋㅋ
이거 그 scp재단같은 그 게임 하는 그 갤러리 아니냐? 왜 갑자기 순문학을?
신작 캐릭터들이 문학관련으로 구성되어서 저런 떡밥들 나올걸
이상이다
첫말은 존나 시대를 관통하노...;;
20대 초반에 활동하다가 중반에 죽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비록 과대평가되었을지는 몰라도.
지금 대학생들과 같은 나이대에 저런 작품들을 썼던 것 역시 그 나이를 고려하면 나름 대단한 거 아니냐.
교육 시스템과 누적된 인류의 학습 데이터를 접한게 다른데 저 시대의 저 나이대에 저런 통찰력이면 더 고 평가 해야지
왜 갑자기 힙찔이들 생각이 나지? 시발..
그냥 글좀쓸줄아는 럭키야붕이같은데? 뭐 어쩌라는건지
이 사람 시도 제대로 연구 안 해봤으면서 개소리들 오지네. 유클리드 기하학, 등비수열, 상대성 이론으로 시 쓴 양반인데. 너네 같은 미개한 씹종자들이 그걸 알 리가 없지 ㅋㅋ
와 이 사람이 유일하게 이상잘알이네 근데 아재요 우리 교양 좀 챙깁시다 이상 작품을 대중이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세기가 더 남았구만 뭔 욕을 합니까
저때 다방 팔고 테슬라를 샀어야 하는데
가오리 빵즈새끼들이 꼴깝을 떠네
조선족이 뭘 알겠니 조선족에게는 문학이란 게 없잖아
일단 건축기사였단 점에서 왜 생계를 다방에 전전했는지 이해 불가임, 글고 일본인 상사의 괴롭힘 ㅋㅋㅋ 아 일뽕들 중 능력이라도 되는 놈이 일본가면 겪을 일들이네
멜론짤에서 페페 보이는데 정상? - dc App
여기 scp 같은 게임 나오던 갤 아니었노 뭐지 - dc App
웰치스랑 뭔 개새끼 겜에서 왠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순 병신이로구나
옛날에는 이거 가슴 아픈 사연이었는데 지금은 시큰둥함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어도 이상은 불행했을 거야. 대마초나 히로뽕을 하고 예술한다는 여자애들이랑 그룹섹스나 했겠지
힘들어도 나가서 땅이라도 팠으면 뭐라도 거뒀을 거고 결핵은 못 나았어도 최소 우울증은 안 생겼을걸. 저렇게 이상하게 생기고 성격도 안 좋은 애가 다방하니까 망하지 그냥 예술한다고 껍적거리는 룸펜이었을 뿐. 저런 애들은 챙겨주면 안 돼. 죽든지 말든지
이상이 그린 명화가 있나? no 이상이 설계한 건물이 있나 no
금홍이련 뭐냐 왜 때려
이때 이 바닥은 툭하면 동반자살 이라니까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다자이오사무나 고흐가 떠오르네. 내가 읽은 이상은 흉내쟁이나 인기몰이를 원하지 않는 천재였다
금홍이가 한녀라..
조선엔 좋은 문학 따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