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필름 회사들 잡다하게 많았는데
안소컬러 게바트컬러 페라니아컬러 듀폰 등등 1930~1980년 쯔음 시절에 별에 별 회사들이 다 있었음
그중 최근에 다시 살린다고 노력중인 이탈리아 Ferrania를 소개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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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rania는 1882년 이탈리아 Cairo Montenotte마을 Bormida강 유역에 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됨
첫 공장은 이탈리아 폭발물 협회였음
러시아 제국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여기서 생산된 니트로셀룰로오스 기반 폭발성 분말을 수입했었음
여기서 생산된 분말로 무기를 만들고 1차 세계대전때 한창 사용됐었음
그러나 소련의 10월 혁명 이후 니트로셀룰로오스를 구매할 납품처가 사라지게 된 것
그래서 공장은 사진 재료인 셀룰로이드로 생산 방향을 틀게 됨
이후 Fabbrica Italiana Lamine Milano 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당시 유럽 최대의 감광재료 생산업체 Pathé Brothers와 합작을 함
1920년 최초 영화 필름 테스트가 이뤄졌으나 몇년동안 제대로 된 제품을 생산하지 못했음
그래서 Pathé Brothers는 자기 지분을 이탈리아 은행 Credito Italiano에 넘김
매각 당시 찍은 사진
1923년 Brothers가 떠나고 엔지니어 Franco Marmint가 사장을 맡고 구조조정을 실시함
저가정책과 원가절감을 통해 회사를 회생시킴
1924년 Ernst Leitz가 라이카를 출시하여 건판시대를 종식시키고 셀룰로이드 기반 필름으로 이동하는 변혁이 이뤄짐
이에 Ferrania는 X-ray필름, 16mm, 120, 35mm 다양한 필름을 생산해냄
이후 Cappelli 회사를 인수하여 짧은 기간동안 FILM-Cappelli-Ferrania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생산했었음
1936년 Cappelli 밀라노 공장에서 카메라 생산도 했었음
Pathé Brothers 광고 , FILM Cappelli-Ferrania 시대의 광고
1938년 소유권이 몇번 더 바뀌고 사명은 Ferrania로 변경되었고 Cappelli는 사라지게 됨
그 사이 공장은 500명 이상의 직원, 90,000 제곱미터 이상을 차지하는 정도로 커짐
전쟁이 일어나기전 공장 근무자들
2차 세계대전 이후 페라니아의 황금기가 시작됨
초보자들도 다룰수 있는 카메라들이 생겨나고 사진이 주류로 들어오면서 필름 생산이 활발해짐
30~40년대에는 파시스트 정부로 인해 이탈리아 감독들은 페라니아 필름만 써야했음
그리고 만들어진 영화들은 화려한 연출과 기발한 캐릭터로 비현실적으로 긍정적이었음
전후 무솔리니가 사라지면서 이탈리아 영화 제작자들은 오래된 방식을 무시하고 Neoralism이라는 스타일을 선택함
네오리얼리즘은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됨
이 시기에도 여전히 필름은 페라니아를 사용함
이때 사용된 필름들은 전설적인 P30 흑백 필름
유제 레시피를 손으로 다 작성했던 자료
1963년 Federico Fellini의 8½ 영화가 오스카상 2개를 받게 되며 P30필름의 인기가 늘어나게 됨
그래서 스틸 사진용으로 35mm, 중형으로도 생산하게 되며 상업적으로 큰 흥행을 이루게 됨
첫 컬러 에멀전인 Ferraniacolor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초기에는 감도가 부족해 감독들의 외면을 받음
agfa와 코닥의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60년대 중반에 이르자 이탈리아 전국의 집에 페라니아카메라와 페라니아필름을 다들 가지고 있었음
페라니아가 미국3M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이때였음
2편으로..
- Ferrania 필름회사 역사 2
1960년대에 이르자 Ferrania는 유럽의 대표적인 기업이 되었음
페라니아는 Kodak, Fuji, Agfa와 함께 컬러 필름을 생산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4개 공장이 됨
이 시기 3M이 유럽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음
그중에 눈에 띈건 Ferrania였고
1964년 Ferrania SpA를 5500만달러로 인수하고 사명을 Ferrania-3M으로 변경함
3M Ferrania 인수식 장면
(이때쯤부터 자료가 거의 없음)
3M 시절에 기계와 제작 과정이 더욱 업그레이드 되어 1983년 세계에서 가장 감도 높은 리버셜 컬러 필름을 내놓음
또 암실이 필요없이 처리가 가능한 X-ray 필름 시스템을 출시함
이때 공장은 20동 이상, 500,000제곱미터가 넘는 규모로 성장함
그리고 3M은 필름명을 Ferraniacolor에서 ScotchChrome으로 변경함
그리고 문제점이 존재했는데 코팅에 관한 지식은 높으나 품질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음
(이게 아무리 찾아봐도 내 한계인지 어떤 품질이 오류였는지 관한거도 안나옴)
그 사이 일포드랑 후지가 새로운 경쟁자로 올라오고 Agfa는 수년동안 동구권에서 소비자 필름 분야에서 대표적인 회사로 자리잡게 됨
코닥은 미국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 3M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음
점점 수익성이 악화되다 1995년 11월 14일 3M이 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 Ferrania에 타격이 가기 시작함
이미징 사업 분사하고 비디오 테이프 생산을 중지하기로 한 것
그래서 새로운 회사명으로 필름네이밍이 바뀜
하지만 이 자구책도 얼마가지 못하고 1999년 이탈리아 사업부가 타 회사에 매각됨
이로인해 Ferrania 브랜드가 부활했지만 너무 늦었음
디지털 사진이 치고 올라왔고 Fuji Kodak Agfa Ilford들의 엄청난 마케팅을 이겨낼 수가 없었음
그래서 OEM으로 공급을 계속 해왔음
이후 Film Ferrania팀에서 OEM으로 제작된 필름들을 수집한 사진
2006년 Ferrania는 다시 구조조정을 진행하여 제약 부문에 중점을 둔 Ferrania Technologies로 분사하고 태양광 패널 제조부문을 Ferrania Solis로 나눔
이 두 사업체도 2017년 이후 쓰러지고 Ferrania 본체도 쓰러졌음
본체는 2010년 마지막 운명을 하고 문을 닫음
죽은줄 알았던 Ferrania는
2013년 FILM Ferrania srl에 인수되어 제조장비, 건물일부와 해고된 기술자들을 인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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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스토리는 원문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해서 통으로 들고옴 )
내가 영화 감독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Ferrania라는 이름은 항상 이탈리아의 주요 회사 중 하나와 컬러 필름을 제조하는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와 관련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내 파트너인 Marco Pagni와 나는 300마일 떨어진 작은 공장 마을이 어떻게 되었는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Ferrania는 오늘날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그 역사는 시간의 안개에 싸여 있습니다. Marco와 저는 수년간 협력해 왔습니다. 저는 영화 제작자이고 그는 영화 처리 연구소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Marco는 영원히 영화 산업의 전문가였지만 저는 좀 더 전통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한 후 영화에 전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1년 가을, Marco와 저는 영화 필름을 작은 크기로 마무리하는 데 전념하는 틈새 사업을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크기"는 일반적으로 아마추어 형식으로 간주되는 8mm 및 16mm를 의미합니다. 2011년에도 Kodak 및 Fuji와 같은 대기업이 더 이상 재정적으로 실행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급이 부족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표준 35mm 필름에서 8mm 및 16mm 필름을 변환하는 데 필요한 기계를 조달하고 생산이 더 저렴하고 전 세계 배포가 더 쉬운 유럽 지역에 실험실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거의) 완료했습니다. 우리는 불가리아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Fuji와 협약을 맺어 비천공 필름을 공급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필름을 천공하는 기계를 놓쳤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허용 오차로 필름을 천공한 다음 초당 최소 24장의 "사진"을 찍는 다른 기계 안에 넣을 수 있는 기계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닙니다. . 문제의 기계는 너무 섬세하고 만들기가 어려워 세상에 예가 거의 없으며 존재하는 기계는 일반적으로 수년 동안 사용해온 회사의 손에 있습니다. Marco와 저는 2011년 겨울에 전 세계 사람들과 접촉하여 이러한 유형의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성공하지 못한 후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아주 우연히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 피렌체의 알리나리 사진 박물관을 방문한 후 우리는 Ferrania가 최근 박물관에 기증한 멋진 천공기를 발견했습니다. 천공기에 찍힌 숫자는 "86"이었고 "나머지 85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후 우리는 "Ferrania"라고 적힌 오래된 표지판을 따라 거의 숲 한가운데 위치한 공장으로 안내했습니다. 50만 제곱미터의 건물 사이에서 부동산 관리인 사무실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찾았을 때, 그것은 닫혔습니다. Ferrania로 운전하기 전에 먼저 전화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쉽게 포기하는 남자가 아니라 플랜B로 넘어갔다. 감독님과 프로듀서님이라고 적힌 명함을 꺼내서 근처 자동차 정비소(유일하게 열려 있는 곳)에 가서 연락처를 물어봤다. 옛 영화 시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는 핑계로 페라니아. 물론 Ferrania에 사는 사람에게는 공장에서 일한 친척이 있기 때문에 은퇴한 근로자의 집을 몇 번 더 방문한 후 우리가 찾고 있던 연락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Ferrania의 마지막 관리자 중 한 명입니다. 기계 폐기. 알리나리 사진박물관 86번 Perforator #36 - 스프로킷 구멍을 필름에 펀칭하는 필수적이고 고정밀 기계입니다. 그것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 기계의 비디오 클립은 온라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공장에 아직 작은 크기의 필름을 천공하는 기계가 있습니까?" “아, 1985년에 Ferrania에 고용되었을 때 그것들을 본 기억이 나는데 그 무렵 3M이 영화 필름 제작을 중단했기 때문에 그 기계들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Marco Pagni는 이 이야기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아무도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2012년 1월에 건물을 하나씩 완성하고 막대한 생산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수천 평방 미터. 강력한 Pagni의 눈만이 85개의 누락된 천공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2월에 그들은 불가리아에 있는 실험실로 옮길 준비가 된 트럭에 탔습니다.
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했고 영화 제작의 미래에 대한 Kodak과 Fuji의 소식은 그다지 유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제작을 중단하면 Super 8과 16mm 필름을 완성할 미래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으로 유명한 마르코는 자신이 생각하는 "논리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장비를 불가리아로 가져가는 대신 이탈리아에 두고 개조해서 영화를 직접 만들면 어떨까요?” Ferrania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장비도 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모든 노하우를 가지고 있던 전직 직원들이 다시 일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조각을 집어 들고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문제는 Ferrania 공장의 보석인 LRF 건물이 이제 이탈리아 정부의 지역 지부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정부와 협력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길고 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행스럽게도 Regione Liguria는 공장 복원에 큰 관심을 보였고 처음부터 재사용 계획을 지원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성공 사례입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미친 몽상가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산업 시설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2012년 여름 회의에서 구체적인 해결책 없이 10년 동안 아이디어를 들어온 사람들에게 사업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사업 계획은 처음에는 페라니아가 했던 일을 그대로 하겠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제대로 제시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우스꽝스러운 제안과 함께 보류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전략은 Marco의 야심찬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이는 물론 2시간 분량의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으로 바뀌었습니다(한숨).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디지털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RED ONE 카메라와 Super 8 및 16mm 장비, 많은 필름을 가져왔습니다. 청중이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카메라와 필름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좋은 움직임이었고 회의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코팅머신의 일부
불행히도 전체 프로세스가 실행되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많은 정부 규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또한 생산 공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극단적인 "슬리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일 제품인 Scotch Chrome 컬러 리버설 필름 개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필름은 오래된 Ferrania 필름 공장에서 2003년에 마지막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1년이 더 걸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매우 간단합니다. 첫 번째는 시스템의 복잡성으로 인해 2006년에 폐쇄된 LRF 건물에 남아 있는 다양한 구성 요소의 정확한 복원 시기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Ferrania Technologies의 부서가 의약품 생산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필름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구성 요소를 소싱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독립형 공장을 설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혹자는 세계화와 아웃소싱 시대에 이것을 약간의 산업적 광기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우리 공장이 향후 100년 동안 영화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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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ris FG-100 plus와 Scotch Chrome 100 개선버전을 출시할 예정이었고 시네필름 위주로 출시한다고 발표했었음
그리고 회사 책임자인 Nicola Baldini는 P30 흑백 필름을 다시 생산 하겠다는 포부를 밝힘
13년 11월 19일 수년간의 경험을 가진 8명이 모였음
14년 9월 킥스타터로 펀딩을 받아 일부 기계를 인수 받았음
그래서 Scotch Chrome 100 기반으로 한 슈퍼8 16mm를 보내기로 되어있었는데....
코팅 기계를 손보던 중 2015년 건물에 석면이 발견됨
덕분에 모든 일정이 꼬이게 된 것
코팅 기계가 준비되면 바로 생산을 준비하려고 했던 유제와 필름이 유통기한이 지나버림
그리고 2017년 첫번째 제품 Ferrania P30 Alpha가 나옴
복원된 코팅 기계를 테스트하기위해 흑백 필름 테스트 배치를 해보기로 하여 생산된 필름
수작업으로 포장하다보니 필름 생산량은 터무니없이 적었음
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모든 것이 셧다운 됨
소문도 없이 조용히 있다가
22년 살아있다는 소식을 알림
DX코드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고 필름에 QR코드를 포함시켜 생산 일자를 알수있게 됨
23년 4월에 Orto 필름을 발표함
모든 재료는 사내에서 이제 생산이 가능해짐
그러나 여전히 펀딩으로 컬러필름을 보낸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고 있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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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니아가 의외로 너무 정보가 없었다
3M한테 기록말살형 당한게 컸던건지 필름 정보도 잘 없고 특성도 없었움
컬러 기술은 agfa에서 지원을 받은거라고 함 그래서 2006년에 외국인이 물어본 글에 보면 agfa랑 기술 똑같으니까 암꺼나 써라 적어놨더라
https://goo.gl/maps/Ww5eJyr288q5LJfF8
아직도 공장 건물들이 남아있어서 구글 로드뷰로 볼수 있다
14년 펀딩에 컬러필름 발송이 포함되어있던거임? 그럼 이제 10년 다되가는건가?
ㅇㅇ 거의 10년 다되어감
와 그러면 쟤네 회사 필름 사서 써볼수 있는건가
솔라리스 좋았었는데 ㅜㅜ
되살리려는데 억까를 심하게 당했네 석면에 코로나라니 - dc App
와 스카치크롬 써보고싶다
나 리부트 사람인데, 스마트폰이 더 좋다.
필름의 기원이 한반도인건 상식이지
(2.5)
흠
화교 죽여버려야 한다 조센징거리는 일뽕새끼들 정체는'섬짱개 대만화교'다 절대 화교인거 안 들킬려고 짱개몰이,조선족몰이한다.아주 교활함 화교톡으로 서로 연락하며 단체로 몰려다니며 조센징,한국비하글 쓰고다님 대만갤에 증거많음.화교추방 집회해야 돼.인천 차이나타운 불지르고 화교 칼로 찔러 죽여라
화교 죽여버려야 한다 조센징거리는 일뽕새끼들 정체는'섬짱개 대만화교'다 절대 화교인거 안 들킬려고 짱개몰이,조선족몰이한다.아주 교활함 화교톡으로 서로 연락하며 단체로 몰려다니며 조센징,한국비하글 쓰고다님 대만갤에 증거많음.화교추방 집회해야 돼.인천 차이나타운 불지르고 화교 칼로 찔러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