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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海防兵團, 바다를 지키는 병단)이 창설된다, 이날이 해군의 창설기념일이다


해방병단은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이자, 1946년 1월 15일에 창설된 조선국방경비대(대한민국 육군의 실질적 전신)과 1949년 4월 15일 창설된 대한민국 해병대, 같은 해 10월 1일 창설된 대한민국 공군에 앞서 제일 먼저 창설된 최초의 국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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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 제독)


해방병단은 초대 해군작전사령관 및 해군참모총장, 제5대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 제독(해군 장성을 가리키는 말)의 주도로 창설됐다


이 손원일 제독은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성 중 하나이자 곧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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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 제독이 졸업한 난징 중앙대, 오늘날 중국의 난징대와 대만의 국립중앙대로 계승된다)


평안도 증산군에서 손정도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손원일 제독은 중화민국에서 중학교를 나왔는데, 상하이의 조계지에서 각국 해군을 보고 감명받아 중화민국 해군에 입대하고자 하였으나 군벌이 장악하고 있는 해군에서 타지인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상선사관(상선의 간부 선원, 해군 장교와 역할이 많이 겹친다)이 되기로 한다


난징 중앙대 항해과를 졸업한 손 제독은 중국의 해군 군비유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며, 1930년대에는 독일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했으며, 하벤슈타인호의 2등 항해사로 함부르크 ~ 수에즈 운하 ~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장거리 항해를 경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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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 목사)


한편 손원일 제독의 아버지 손정도 목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손정도 목사는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중국 군벌들에게 감금당한 조선인들을 구제하는 활동에 힘써, 김일성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김일성은 손정도 목사를 은인으로 여기고 죽을 때까지 자신을 살려준 일에 대해 회고하였다

(다만 김일성이 본인 우상화를 위해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가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날조했다는 설도 있는데, 손원일 제독을 비롯한 손 목사의 일가가 김일성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과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어느 정도 관계는 있긴 있었는 듯)


손정도 목사는 길림 일대에서 활동하던 무장단원들에게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서 내주면서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뒤에서는 종교인인 손정도 목사를 욕하고, 앞에서는 자금과 인망을 위해 손 목사에게 손을 벌리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환멸을 느낀 손 목사의 가족들은 반공주의자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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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손원일 제독은 손정도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일제에게 어그로가 끌렸고 1930년 일본 경찰에게 상하이 독립운동단체 비밀연락원 혐의로 체포된다


1935년 석방 후 일자리를 잃은 손원일 제독은 고문 후유증에서 회복한 뒤 지인의 권유를 받아 식료품 수입 사업을 시작하는데, 해외 출국 제한 때문에 제동이 걸릴 뻔했으나 사업을 제안한 지인이 일본 경찰에 로비를 하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더 큰 회사로 이직하여 상하이 지점장이 된다


이 시기 사업 활동을 통해 손원일 제독은 훗날 해군 창설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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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 제독이 해방병단을 모집하며 서울에 붙인 벽보)


1945년 8월 광복 이후, 해군의 꿈을 꾸던 손원일 제독은 귀국하여 곧 해방병단을 모집 및 창설한다


해방병단은 이듬해 미군정청의 남조선해안경비대와 통합되어 '조선해안경비대'가 되었고, 손원일 제독이 총사령관이 된다 (명칭처럼 미국의 연안 해안경비대와 유사한 개념)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조선해안경비대는 9월 5일 '대한민국 해군'으로 재창설되었으며 손원일 제독은 대령의 계급으로 초대 해군총참모장(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이후 손원일 제독은 1948년 12월 준장으로, 1949년 2월 소장으로 진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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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 PC-701 백두산함, 백두산함은 6.25 전쟁 직후 발발한 대한해협 해전에서 부산으로 침투하던 북한 해군 함정을 격침하여 6.25 전쟁에서 국군의 첫 승전보를 올렸다)


창설기 해군은 역시나 형편이 마땅치 않던 육군에 비해서도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장비, 기반시설을 가졌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일본에게 인수한 장비라고는 폐선 직전의 목선 뿐이었고, 대한제국의 함정들은 행방불명에 있어봤자 의미가 없는 전력이었다


또한 일본 해군은 선상반란 등의 사태를 우려하여 1943년까지 조선인의 입대를 불허했고, 입대를 허가한 이후에도 승함 직별에 접근은 막았기 때문에 일본 해군에서 근무한 경력자들이 아예 없었고, 해군은 손원일 제독을 비롯한 상선사관들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런 배경 덕분에, 대한민국 해군은 일본, 만주군 출신의 지휘부로 구성된 초창기 육군과 달리 일본군과 연관이 없는 역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한편 육군의 초기 지휘부가 거의 일본군 출신 인사인 것과 해군이 그렇지 않은 것은 경험과 능력이 있는 인사를 동원해야 했던 상황적 배경 때문이지, 양군이 일제 부역 경력을 무시하거나 고려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예로 손원일 제독은 일본군 출신인 제5, 8대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장군, 초대 공군참모총장 김정렬 장군과 일명 '육해공 삼형제'로 불리는 의형제 사이였고, 여순 반란 사건의 영향으로 1949년 해군 예하에 창설되어 손 제독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해병대는 역시 만주군 육군 출신 인사들이 지휘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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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개전 당시, 손원일 제독은 함정 인수를 위해 미국에 가있었다


개전 소식을 들은 손원일 제독은 즉시 귀국하고자 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이 인수된 함정을 가지고 함께 돌아오라고 지시하여 손원일 제독은 개전 이후 약간의 시간 이후 입국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영흥도와 덕적도 탈환을 지시 및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작전지휘관은 이희정 중령과 함명수 소령(간첩에 의해 납북당한 미군 장성용 보트를 임시특공대 조직을 통해 탈환한 몽금포 작전을 지휘함, 몽금포 작전은 역사상 유일한 대한민국의 국지전 보복 작전임, 이후 인천상륙작전 영화의 배경이 된 첩보작전인 X-ray 작전을 기획 및 지휘함)


인천상륙작전 본작전 당시에는 국군 최고사령관이었지만 함대와 상륙부대 지휘권이 없어 원래 미군 기함 함교에서 참관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뒤 소총을 들고 전장에서 돌격하는 패기를 보여줬다. 이런 사례는 그 급박한 6.25 전쟁 전투 중에도 다부동 전투에서의 백선엽 장군 외에 없다


이후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태극기를 게양했을 때도 선두에 있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는 포고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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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

1952년 중 중장으로 예편한 손원일 제독은 전쟁 말기인 1953년에는 국방부 장관으로 부임, 1956년까지 역임하다 1958년부터는 독일 유학 및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초대 주서독 한국 공사 → 대사가 된다


1960년까지 서독 대사를 지낸 손원일 제독은 재향군인회장, 한국반공연맹 이사장을 지내다 1980년 신장병 투병 끝에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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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현충일에 찍어온 국립현충원 손원일 제독의 묘소, 제2장군묘역에 안장되어 계시다)


해군의 어머니격인 홍은혜 여사는 음악교사 출신인데, 국군 최초의 군가인 해방행진곡과 현재 해군 10대 군가 중 하나인 바다로 가자를 작곡했다 (손원일 제독은 작사)


홍은혜 여사는 손원일 제독 사후에도 해군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며 해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시다 2017년에 별세하셨다


참고로 사진에서 보이듯 손원일 제독의 최종 계급은 중장인데, 당시 미국 극동해군사령관이 중장이었기 때문에 활약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진급하기 어려웠다

나중에라도 대장으로 진급시키려는 시도가 있긴 있었으나, 손원일 제독 본인이 변변치 않은 해군에 대장이 있으면 남부끄럽다 하여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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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급 잠수함 1번함 SS-072 손원일함, 가운데 홍은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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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 제독은 독립운동가, 해군 창군자, 전쟁 영웅, 외교관 등 대한민국 해군, 국군을 넘어 한국 현대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영웅적인 입지를 가진 인물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해군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보고 대사와 함께 GOAT 라인의 한 사람으로 구 해군본부/진해통제부, 현 진해기지사령부 본관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