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게 대중적 인식인데
반박은 이거 한 장으로 끝남
정작 조선도 부산에서 한양까지는 조운선 운용 못했음.
태종이 뱃길 몰라서 무리라고 중단시킴 ㅇㅇ
17세기 되고서야 항로 개설됨. (참고)
부산에서 한양까지 대각선으로 운송하는 길이 곧 일본군 보급선이었음.
저 길에서 출몰하며 보급을 끊어먹던 게 경상도, 전라도 의병들이고
의병들 본거지가 진주성이라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한 게 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
진주성이 버티면서 보급선 유지가 더욱 어려워져서 한양의 일본군이 말라죽은 것.
다시 말해 임진년 초반에 이순신 함대와 싸운 건 남해안 약탈선일 수밖에 없음
일본군이 해로도 모르고 중간기항지도 없는데 보급선을 띄우지는 않았을 거고
보급선이면 호위함대가 필요한데 그거 해야 할 와키자카는 용인에서 놀고 있었지 ㅋㅋ
나중에 헐레벌떡 남해로 오는 건 보급선 호위하려는 게 아니라 부산까지 털릴까봐 온 것임.
실제로 한산도 대첩 뒤에는 부산포까지 조선수군이 출몰함 (1차 부산포 해전)
그럼 이후에는 왜 조선수군이 부산을 견제하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군이 전진기지를 뿌려둔 탓이 큼
예를 들어 웅포 해전은 원래 부산에 가려다가 길목에 웅천왜성이 있어서 거기랑 싸운 전투임.
(웅천왜성은 거제도 위쪽 창원시에 붙어있음)
당연히 수군만으로 성을 함락시키기는 매우 어렵고, 그렇다고 무시하고 지나가면 포위의 위험이 있음
그래서 육군을 좀 보내달라고 하지만 올 턱이 없고 철수하게 되는 것임. (참고)
물론 정유재란 때는 상황이 좀 바뀌고
그래서 이때도 명량 아니었으면 일본군이 보급 받아서 한양까지 갔다... 뭐 이런 주장도 나오는데
확실히 그때는 일본군이 수륙병진을 하긴 했음
하지만 보급 목적의 수군 출격은 아님.
히데요시: 「지금은 군량을 계속하기 어려우니, 깊숙이 침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전라도를 분탕질한 뒤에는 곧바로 군사를 되돌려 진강(鎭江)으로부터 영일(迎日)에 이르는 연해(沿海)에 주둔하고서 조선에게 화평 조약을 맺을 것인지 안할 것인지를 물으며 우선 말[馬]들을 쉬게 하라. 그리하여 여러 해가 지나 오래되었는데도 조선이 만일 또 화평을 맺으려 하지 않거든 때때로 나가 조선의 군대와 백성들이 모여 있고 물자가 부요(富饒)한 지역을 소탕하도록 하라. 그러면 우리 나라의 군마는 수고롭지 않고도 조선의 군민(軍民)이 저절로 소진될 것이다. 이것은 짧은 기간으로 계획하지 말고 내가 죽은 뒤에라도 또 자손들이 있으니, 여러 장수들은 힘을 다해 기필코 조선이 화평을 애걸한 뒤에야 그만두도록 하라.」 (출처)
왜냐하면 정유재란은 초토화 작전이지 점령목적의 출격이 아니었기 때문.
히데요시: 「이미 전라·충청 2도를 공략했으면 급히 군사를 철수하되 10월 2일에 배에 올라 20일 이내에 일본에 도착해야 하니 어기는 자는 참수한다.」 (출처)
따라서 현지보급이면 충분했지 수군이 추가로 보급할 필요가 없었음 ㅇㅇ
그럼 명량 해전에서 나타난 300여 척에 달하는 대함대는 뭐냐?
당연히 전라도를 약탈하고 조선인을 잡아가려는 목적의 빈배들임.
저때 잡혀간 사람 중 유명한 인물이 간양록을 쓴 강항이지.
강항: 「그곳에는 적선 6백, 7백 척이 두어 리(里)에 걸쳐 가득차 있었고, 우리나라 남녀가 왜놈과 더불어 거의 반반씩 되었는데 이 배 저 배에서 부르짖어 우는 소리가 바다와 산을 진동하였습니다. 순천 좌수영(順天左水營)에 당도하자, 적장(賊將) 좌도수(佐渡守)란 자가 신과 신의 형 준(濬)ㆍ환(渙)ㆍ처부(妻父) 김봉(金琫) 및 그 가속(家屬)들을 한 척의 배에 실어 왜국으로 압송하였습니다.」 (출처)
일본군 출신 포로 복전감개도 히데요시의 기본전략이 초토화 작전이었다고 말함.
복전감개: 「관백이 사람을 보내어 전령하기를 ‘서울은 침범하지 말고 9월까지 닥치는 대로 무찔러 죽이고 10월 안으로 서생포나 부산 등의 소굴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3일 길밖에 안 되는데 곧바로 돌아간 것이며 전라도에도 머물 뜻이 없었습니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걸을 수 있는 자는 사로잡아 가고 걷지 못하는 자는 모두 죽였으며, 조선에서 사로잡은 사람들은 일본에 보내서 농사를 짓게 하고 일본에서 농사짓던 사람을 군사로 바꾸어 해마다 침범하고 아울러 중국까지 침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출처)
따라서 명량에서 일본군을 한번 밀어낸 건 조선의 피해를 경감시킨 공헌이 있지만, 전략을 어그러뜨린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봐야 함.
이때 한번 휩쓸고 왜성을 지으면서 일본군이 전라도 순천까지 들어오고 거기 지은 성이 유명한 왜교성임.
당연히 이런 성을 수군 혼자서는 깰 수 없지만, 반대로 무시하고 동진하기도 어렵고
이후 육군과의 합동작전인 왜교성 전투로 이어짐. (근데 함락 못함)
여기서 패전이냐 아니다 수군은 할만큼 했다 이런 논란이 있는데 넘어가고
아무튼 히데요시가 죽자 조명연합군은 다시 왜교성을 포위했고 고니시는 고/니시가 될 위기에 처함.
근데 진린이 뇌물받고 연락선을 통과시켜서 시마즈가 구원하러 옴
따라서 수군이 봉쇄를 유지할 경우 앞뒤로 공격당하는 상황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미리 노량으로 가서 시마즈와 싸움 (노량 해전)
고니시는 봉쇄가 풀리자 신나게 도망갔고 육지의 명군은 아무 도움이 안됐음.
그렇게 전쟁 끝남.
결론은 조선수군이 서해 보급을 끊거나 수륙병진을 무너뜨렸다고 하기는 힘들고
대신 전라도를 해상에서 침략하는 걸 초반에 막고, 부산을 들락거리며 일본의 골머리를 썩인건 맞음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출전했다 하면 일본군을 박살내니까 조선 조정이 멘탈 잡고 공포심을 완화하는 계기가 됨.
이런 보이지 않는 힘으로 따지면 이순신이 잔다르크와 동급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
다만 전쟁에서 조선수군은 박서, 김경손 정도의 위치였는데 그걸 양규, 김숙홍 정도였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 많으니 이런게 잘 안 알려졌지.
개인적으론 그래서 임란 때 육군에서 활약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대역에서 보고싶기도 함 ㅇㅇ
댓글 토론 환영.
대체 어느 학계에서 받아들여졌노 게이야 ㅋㅋㅋㅋㅋㅋ 다른 지구 살다왔노?
김문자 전공 일본근세사 이정봉 전공 한국과학사 애미씨발 ㅋㅋ 환빠의 거두 이덕일이 딱 그랬거든 본인 전공은 항일운동하던 근현대사인데 써내는 책은 다 본인 전공도 아닌 고조선 같은 고대사 ㅋㅋㅋㅋㅋ 하는 짓이 똑같노 문자 할매는 딱봐도 쪽바리들 자료만 보고 씨부렸을 가능성 120% 아니노? ㅋㅋㅋㅋㅋㅋ 학계에서 인정 ㅇㅈㄹ ㅋㅋㅋ 조선사나 임란 연구하는 학자 중에 그거 인정한 교수 누구 있드노? ㅋㅋ
ㄴ이쪽댓글부터 글쓴게이 반박못하는거 웃기노ㅋㅋㅋ
고대에서 교양은로 임진왜란 나왔을 때 사학과 교수님이 서해 보급 운송 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 교수님도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임?
교양 자료는 업데이트 안돼있는 경우가 수두룩 지금도 한국 사료만 인용하는 논문들은 이런 말 안하지
뉴라이트가 병신이라니까 병신인걸 모르는게 진짜 이해가 안간다 어느 집단에서 이재명 유능한 인재라고 이재명이 걔네 의견대로 그런 인물이 아니듯 이것도 비슷한데 학계=뉴라이트 동급으로 보는게 웃김 통설 개념 모르냐?
그 통설이 틀렸다는 거잖아.반박 자료 떡하니 있고
뉴라이트발 자료라고 무지성 복붙만 하지 말고 그럼 니가 재반박 논문을 가져오던가 해...
재반박 논문이 어딨냐 학계서 환빠 같은 부류에 일일이 관심 주는 경우 봤노?
개인 소수가 시간 내서 상대 해주는거지 하다 못해 이번 호남 쪽 에서 진행한 학술 회의 가서도 논리 안되서 고함 치고 문헌으로 만 떠들던데 교차 검증 개념도 없는 너 또한 다를바 없음
학설이란 최소 수십개 논문은 봐야 하지 니 뭐 몇개만 보고 떠드는 거 아님? 걍 여러개 읽어라 일본측 논문도 읽고 니가 본 논문에 그런식으로 연구 해서 이런게 있다 이런거 보고 떠드는 거 맞잖아? 교차검증 할거면 똑바로 해야지 일본 측 논문서 왜 그런 주장 하는지 한두명이 재해석 하고 자기 의견으로 취사 했을거란 생각 안함? 관련 학과 안 나온건 알겠네ㅋ.
난 또 뭐 대단한거 나온줄 알았네 딱 지 망상대로 씨부리고 있음 그냥 소설 쓰면서 어글이나 끌고 있는 수준임
ㄹㅇ 지 망상수준
수장시킨 놈이 몇마린데 뭔 ㅋㅋ
읽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글이었다.
녹둔도 백의종군이 있는데 뭔 육군 이순신을 찾노
책사풍후임?
일본이 처들어올때 뭐타고 왔는지는 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박제하려고 실베 올린거네 ㅋㅋㅋ
그거 정신병임 병원이나 가라
이렇게보면 왜 조선이 길 안 닦아놨는지 알겠다. 근데 장기적으로는 븅신짓이긴 했지만
산땜에 하고싶어도 못해
징비록 난중일기 선조실록 다시 읽고오세요
이순신이 죽인 왜군숫자만해도 수십만에 반파 중파도 아니고 '격침'만 수백척이 넘어가는데 히데요시가 해로로 보급할 생각을 할수조차있겠냐? 1분만 생각해봐도 답이나오는데
수백척에 수십만을 죽이면 한척에 백명은 타고있어야 하겠노
ㅇㅇ 거의 100명 맞음 안골포 해전에서 적선 42척 격침시키고 3,960여 명 죽여버림
수십만 이지랄 ㅋㅋㅋ 인구 5천만 현대 대한민국 육군이 60만 가량인데 전근대에 수십만이 뒤지면 국가 존립의 위기예요 미친새끼 ㅋㅋㅋㅋ
아카케부네 300명 세키부네 100명 정도임
전에 이거관련해서 본거 있는데 그게 뭐냐면 한국사학계가 임진왜란 관련해서 절대 말하지 않는게.... 일본군이 보급계획을 철저하게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한 이유가...... 조선에서 개돼지 가축취급을 받던 노비들 수십만명이 일본군에 전향했기 때문이라고 함 ㅎㅎ 이때문에 먹는 입이 2배 3배로 늘어나서 식량이 바닥난거.. 선조도 이사실을 보고받고 리얼 좇된걸 알고 명나라로 튀려고 했던거 라고 함 ㅇㅇ
저 당시 노비들에 대한 박해는 심각했으며 여자노비는 윤간당하고(심지어 결혼한 여자노비도 윤간했다고함) 남자노비는 죽어라 일만 해야했으며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반죽여놨음. 이런 박해를 받던 노비들이 일본군에 가담해 양반들을 썰어죽인건 뭐...
출처좀
조선 수군의 역할은 일본군의 보급차단 만이 아니고 일본군이 전라도 곡창지대를 공략함에 있어 바다길을 막아버림으로써 공격루트를 육지로 한정시켜 결과적으로 곡창지대를 일본군으로 지켜냈다는 점이 중요하고 이순신장군의 업적이 더욱 빛나는 이유라고 전에 어떤 역사 유튜버가 얘기했음.
과거보러 가는 선비의 경우에도 단순히 과거만 보러 간게 아니고 가는 도중에 가문과 친문이 있는 양반집에 들러 식사와 여자노비를 대접받는게 국룰이었으며 심지어 어떤 미친 양반은 아들이 과거보러 간다고 하자 누구누구 집에 어떤 여자노비가 있는데 존나 맛있다고 꼭 따먹으라고 했고 과거를 마지고 돌아온 아들은 존나 맛있었다며 그걸 감동이라고 기록에 남기기도 했다고 .. 씨발.. ㅋㅋ
ㄴ출처좀
그런 노비들 다 일본군이 강간함
틀딱이긴 한데 이런 거 옛날 하이텔 할 때 역사 교수가 교양? 으로 읽으라고 썼던 글에서 본 기억 나긴 한다 선조실록인가에 나오긴 할걸 노비들 일본쪽에 붙어서 개쫄린다고 ㅋㅋ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지 않냐 백성들이 왜군 오는 곳마다 환호하고 있다고
그냥 잘 싸웠다고 하면 그만이지, 꼭 그딴 비교질을 해야만 하냐?
정확히 비교해야지 - dc App
사료가 많아서 그런가 어설프게 개소리하는 애들은 없고 바람직하게 서로 토론하네 - dc App
근데 시발 자국 뱃길도 모르는게 ㄹㅇ이냐? 그냥 해안선 따라 배 쭉 가면 되겠구만
개소린 글쓴 놈이 하고 있네
연안 항해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 고대에도 하건 거라고 알고 있는데 나도 역사는 잘 몰라서 뭐가 맞나 모르겠네
대역갤러리 <<< 그냥 소각해야하는곳
명나라는 한 거 없음
저때 한반도를 먹었야했는데
저 당시 일본이 한반도를 완전히 점령했어야 함 ㅋㅋㅋㅋㅋ
왜군도 거르는 전라도 ㄷㄷㄷㄷ
어메이징 전라도
육군이 빠르게북진하면 수군이 북상할리가없다 수군은육군의 제안에반대하기때문에 - dc App
남해안에서 전투가 일어난 것은 일본군이 서해쪽으로 보급을 하려는게 아님. 전쟁터가 되지 않은 전라도를 약탈해서 육상으로 평양까지 보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경상도에 있는 왜군들이 육로를 통해 전라도쪽으로 넘어가려면 진주를 통과해야 하고 그 이후 소백산맥을 넘어야 한다. 어마어마한 손실이지. 이미 가면서 보급물자를 다 써버리거덩. 그래서 해로를 통해 전라도쪽으로 상륙하려고 한 거야. 그래서 첫 번째 전투가 옥포해전 이었던 거고.
옥포의 지리적 위치를 보면 딱 소백산맥 바로 서쪽임. 즉, 소백산맥을 넘었을 때 나오는 첫번째 평지와 옥포가 가장 가까움. 옥포를 통해 전라도쪽으로 상륙해서 약탈을 하고 전라도에서부터 평양까지 이렇다 할 산맥이 없는 평지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전라도에서 약탈한 물자를 육로로 수송하기 위한 것이지. 절대 황해안을 통해 보급물자를 수송하려고 한게 아니다.
전라도에서 평양까지 육로 수송 개힘듬 해안선 따라가는건 수군도 없어서 안됨 그리고 전라도도 그렇고 경기도 일대도 산 많아서 진짜 힘듬
또 개소리 ㅋ 처음에 일본의 목표가 점령이어서 나름대로 자제하고 갔는데 무슨놈의 약탈인지
조선에서 해로를 안썼다고 일본도 해로를 안쓸꺼라고 생각하는건가? 빡대가리인가?
조선은 썻음 왜란당시에도 임금한테 보낸거 배로 보냈잖슴
아 그래서 원균 명장설은 몇줄에 나오나요?
그 균은 진짜 뒤져서 다행힘 살았으면 더 트롤짓했을듯
어쩌라고. 조선이 일본군 막아낸게 도대체 누구한테 이득인데? 지옥같은 조선에서 살던 피지배층 입장에서 일본한테 정복 안당해서 다행인 이유 단 한가지만 대봐. 이건 존나게 안타까운 역사지, 막아냈으니 우리 조선 짱짱이다 거릴게 아님
농민들 입장에선 조선이 나았지 일본 농민들은 칠공삼민이라고 세율이 기본 70프로였고 전국시대 통일되고 나서 에도때 세율 66퍼로 내려준거인두세 걷으니까 세금 덜 내려고 마비키 같은 일도 흔해졌고조선 전기 농민은 공식세율 8퍼였는데 이것저거 하면 세율이 25프로 정도조선이 유교 논리로 세금도 말도 안되게 적게 걷어서 나라가 항상 가난했음나중에 전쟁들 터지고 말기때 삼정문란나면서 씹창났지만 저 당시 농민들은 조선이 더 나았을 거
일본도 세금 지랄같았던 건 전쟁으로 씹창난 전국시대고 에도시대는 걍 조선 삼정보다 나았다.
지옥은 니가 사는 현실이고 ㅋ 당시 일본보다 조선 농민이 두배는 살기좋았어 등신아
ㅇㅇ(112.168) << 그렇게 살기좋아서 흉년 아닌 상황에도 자식은 마비키하고 부모는 버렸음?
조선은 공식 세율 안믿고 삼정 문란 욕하면서 좆본은 공식 세율이 지켜졌을거라고 믿는 능지를 가졌으니 일뽕 하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좃선이 국력은 좆본보다 못했어도 사람들 식사량만 봐도 일본인들 3끼 먹을 양을 한끼에 먹던 나라임. 개인 입장에선 좆본보단 좃선이 나았음. 삶의 질이 조선의 노비 > 일본의 햑쇼임. 메이지유신 이후에나 일본이 훨 나은거지
압도적인 세율차이 한방이면 끝인데? 에도시대 안정기 세율이 조선말 무슨 삼정의 문란시대 실 세율과 동급임
공식 세율이 낮으니 지방관들 수탈이 극심해짐. 삼정의 문란은 조선 후기 세도정치 때만 있었던 게 아니라 조선 전기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것임.
이에야스가 대놓고 백성은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해야한다고 했는데, 조선에서 아무 선비나 그딴 소리 지껄였으면 공맹의 도를 참람되게 범한 새끼라고 모가지 날아간다 병신아 ㅋㅋ
국뽕충새끼들 미쳤네 ㅋㅋ
명량해전이 대첩으로 불릴만한지도.. 소형선 13척 끊어먹은 게릴라전이고 그후 재해권이 조선으로 넘어간 아무런 증거도 없음. 300척을 격파? 세계4대해전입니다????
제해권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왜 일본은 서해진출 안함?
??: 대영제국 해군에서도 이순신 명량해전 교과서에 박고 연구하는데 무슨 소리세요? 일뽕임?
반일국뽕 홧병 헬센징 센들센들
오사카에서부터 배타고 온 일본군이랑 세곡선이나 굴리던 조선이 항해술레벨이 같다고 생각함? ㅋㅋㅋㅋㅋ 시발 진짜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ㅋ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왜군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못한 듣보잡이였지만 후에 류성룡일파가 권력을 잡고 조선왕조실록을 고쳐버렸음. 이때 자기 당파인 이순신을 띄웠지. 일본에서 역시 이순신에 대한 기록이 있지도 않았고 일본에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알려진것은 이순신이 죽고 50년이상 흐른후 류성룡의 징비록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알려짐. 그래서 일본의 이순신에 대한 표현은 징비록의 이순신과 대동소이함.
미친소리하노
211.235 니가 못들어본소리는 미친소리냐? 찾아보고 이야기해라 ㅈㅁㅇ
뭔 개소릴 쳐하노 - dc App
조선왕조실록은 누가 고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데?
사실이라면 존나 처음 듣는 거긴 한데 못 고친다고 보긴 했는데 근데 전근대 왕조에서 실록을 절대 못 고친다는 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사관 자체가 유성룡 일파일 수는 있겠지
나참 이런실정이니 입만 아프지. 85.203 같은 먼가 생각을 좀 할줄 아는 사람이라도 조선왕조실록이 고쳐진것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게 바로 이나라 역사를 얼마나 취사선택해서 애들을 가르치는가 알수 있는 부분이다.
궁금한 게 조선내에서 현지 보급이 가능 했었음 ? 일본의 많은 병력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이 그렇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은 데 그리고 조총에 필요한 화약류 유황 같은 것도 조선내에서 보급이 잘 되었는 지도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고
1만 명이 사는 촌락에서는 1만 명이 1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물자가 생성됨 따라서 원주민 생까고 군대가 들어오면 1년 동안 보급 가능 그리고 일본군 조총병은 전체의 20%도 되지 않았음.
일본군 주력은 창병이지 조총병이 아님
고려 시대 이성계가 왜구와 싸운 황산전투, 전북 군산 에서의 진포해전 등등 왜구가 서해로 잘만 들어왔었구만.
글쓴이 주장은 고려시대때 쳐들어온-왜구들의 해로기록은 200년 전이라 임진왜란때 쳐들어온 일본군들은 해로 기록이 유실되었는지 기록을 못했는지 어쨌든 못 갔다라서
그건 섬 바깥 먼바다까지 우회 하는 루트로 다닌 거야.깡으로 멀미 버티고 파도 가르고 좋은 날씨 맞는 풍향 예측해서 목숨걸고 가는거.이건 일부 왜구들이나 서양인들만 사용 가능하다.조선 수군도 이건 못함.그리고 이 경우도 날씨가 안좋다던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 임시로 배를 대야하는데 조선 수군이 건재하면 이게 힘들어서 안정적인 보급이 안된다.좀더 쉽게 내륙출신 영주들도 수송가능하고 작은 나룻배 같은거도 싸게 동원해서 하려면 섬 사이 연안 물길을 알아둬야 하는데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명량에서 가장 열심히 싸우고 결국 임진왜란 유일한 다이묘급 사망자가 된 구루시마 미치후사 얘 부터가 무라카미 수군 출신 해적인데 명량 물길을 몰라서 닥돌하다 뒤진거야.뭐 해외 진출이 활발하던 해적들은 주로 규슈 출신이고(대표적으로 나중에 독자적으로 오키나와 정복하고 이순신도 죽였던 시마즈의 사쓰마번) 구루시마는 시코쿠~혼슈지역 뱃길이 주 활동 지역이긴하다만 니말대로 그렇게 뱃길 쉽게 알아내면 태생이 뱃놈이 얘도 그정도는 알았어야지
원양항해용 스킬이랑 연안항해용은 전혀 다른 거야
님 군사갤러리 하시죠?
현지보급은 씨발ㅋㅋ 1만명 이상의 군대가 현지보급으로 버틴적이없는데ㅋㅋ
한반도가 작아보여도 표면적이 넓다. 이게 무슨말이냐 ㅈㄴ산이 많다는 거. 표면적을 쫙 펼쳐놓으면 ㅈㄴ넓음. 꽤 넓은 국토임. 산길을 따라서 진군하기 쉽지 않음
바보같은 짓이다
옛날엔 육상 으로 운송 보급 한단게 미친짓임. 요즘 처럼 트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철도나 기차가 있는 것도 아니니깐. 지금은 간척사업 으로 매꾼데가 많지만 옛날엔 내륙 깊숙히 까지 배가 드나들었었는데.
'댓글 토론 환영' 보고 바로 댓글 보니까 욕, 비아냥, 비꼬기 그냥 이게 다네
정상적인것도 반박 못하는구만 뭔 소리노ㅋㅋ 씹..로각좁해라
이순신이 본인 전술 자만 안하고 진린이나 중국 애들하고 좆목질도 상당히 잘해서 잘끌여들인거도 한몫큼 - dc App
한국인들의 국뽕 역사 날조는 정신병 수준이야..
일본군 먹일 군량은 부산에서 자생했냐? 일본 본토에서 징발후 해운으로 부산까지 이동한다음 부산에서 니말마따나 육로운송한거지 이새낀 이시다 미츠나리가 조선 오기전에 뭐했는지조차 모를꺼임 다짤라놓고 부산에서 육로운송 했으니깐 이순신 전공은 생각보다 별의미 없었음 이지랄하고있네 에휴시발그래 디시글 쳐본 내잘못이지 ㅅㅂ
일본군이 서해로 군량 운송했다는 주장은 그 누구도 한적도 없는데 이새낀 도대에 혼자서 무슴 쉐도우복싱을 하고있는거냐???
이게시발 현대문명의 현주소다 아무리 교수들이 논문 좆빠지게 쓰고 책 발간하고 히데요시와 미츠나리가 교환한 서신 내용이 남아있어봐야 이런븅신새끼들은 그런거 찾아볼 지능도 의지도 없어서 지 혼자 소설을 씀
별 의미 없는 듣보잡 빨아대다가 17세기에는 그 망상병이 번져서 갑자기 명나라에서 8사품 받고 도독으로 제수됐다고 망상딸 치던게 조선 사대부들 ㅋㅋ, 21세기에도 자기 희망사항을 역사인양 적던 족속인데 조상이라고 달랐을까? 징비록 같은 조센징 특유의 자기미화가 잔뜩 들어간 망상집이 진실인양 믿어지고나서야 주목받은 이순신 ㅋㅋㅋㅋㅋㅋ
팩트로 조선을 욕할 부분은 이거 말고도 차고넘치니까 제발 이딴의미없는데이터쓰레기글좀 쓰지말아줘라 진심으로 부탁함
징비록 구라질은 아무래 작게 잡아도 박은식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묘사한 청산리 구라보다도 심각할듯 ㅋㅋ
니같은 지능을 가진 조센징은 대일본제국 치하에 있었어도 그냥 별볼일없는 조센징이다 이럴시간에 공부하거라
초선족들이니까
하필 갤이름이 대체역사 갤러리노 어느정도까지 팩트임?
바다 보급이 막혀서 육로로 보급하게 된걸 인과관계를 반대로 이해한 빡통의 글이라 보면 됨
이순신이 판옥선의 기술적 우위로 여러 수상전투에서 승리했다, 전략적으로 큰 의미는 없었다, 일본수군의 주요 목표인 부산포 항로는 한번도 건드리지도 못했다, 훗날 17세 중반부터 조선인들 정신병으로 과대평가하고 미화하고 진실인양 믿기 시작했다(리플리증후군이 종특)
ㄴ라고 자신의 정신병을 폭로하는 중
한국인이 말하는 역사는 그냥 다 걸러듣고 일본 위키나 찾아봐라. 동양인들 중에 유일하게 서양인 흉내라도 낼 수 있는게 쪽바리들이니까.
일본사에서 임진왜란은 아오 이순신시치! 아오! 김시민시치! 니까 믿으셈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일본 기록에서 이순신을 직접 언급하거나 간접적으로나마 언급한 기록들 가져와봐라. 와키자카가 한산도 패전한 데에 대한 변으로 적의 지휘관(따로 이순신이라고 특정조차 하지 않음)보다 성급하고 어리석었다고 언급한 것 외에 유의미한 기록이 있기는 하냐?
일본 위키 임진왜란 내용 판타지에 정신승리 써재낀거 여태 수정도 안해놨던데? 서양인 흉내라도 낼수 있다고 말하는데 왜 영문 위키하고 내용이 다르노ㅋㅋㅋ
일본위키가 가장 왜곡심각한 곳인데 ㅋㅋㅋㅋㅋ일본 위키를 믿으래 븅신ㅋㅋㅋ
이미 1500년대에도 왜구는 꾸준히 전라도 충청도(현 태안)에 침략했음 심지어 1587년에 전라도 침입했다는 자료까지 남아있네 뱃길 몰랐다는거는 바로 반박됨
태안 침공했다는 근거 제시 바람 그리고 1587년은 전라도 까지밖에 못 갔는데 뭔 뱃길을 알아 부산에서 한양까지 가본 경험이 없는게 중요한거지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0_0050_0010_0030_0020
- 안면도 풍천의 왜구 1523년에 갔다고 나와있네 네 본문글 논리대로라면 서해 끝자락까지만가면 본문두번째 사진에나와있는 나주 용안까지만가도 한양까지 갈수있는거 바로 반박되는데
1523년에 한번 갔으니 한번만 더 갔으면 베테랑인데 그걸 못하고 늙어죽었겠네 아쉽다 ㅋㅋ 왜구 그거 2척이라고 실록에 나오고 언제 나주까지만 가면 한양은 공짜라 그랬냐? 나주에서부터 한양까지는 조선 사람들이 뱃길을 알았다는 거지 그리고 임진왜란 때 나주 점령 못한거 알지?
네가 제시한 근거자료는 바로 반박되는거임 나주까지 조선인 포로로잡아서 뱃길 뚫으라하면 바로 뚫리는거고 네가 제시한자료는 서해밖에없는데 남해는 이미 1587년에 뚫었다는거 1587년에 자료로 나와있네 2척이든 뭐든 어쨌든 가긴 간거네. 나주를 왜 점령을 못했을까? 갈의지가없어서? 그러면 1587년에는 나주까지 어떻게간거지? 1587년에는 나주까지갔는데 왜 임진왜란때는 나주에 못간걸까? 임진왜란 5년전인데 5년만에 바닷길을 까먹었으려나?
ㅋㅋ 무슨 일본인들이 칼라로 연결된 프로토스냐? 왜구가 한 번 왔다 갔다고 다들 바닷길 훤히 알게? 시발 나도 엄홍길 대장이랑 같은 나라 사람이니까 히말라야 16좌 등반 쌉가능이겠네
한번이라도 도달만 하면 뭔 게임마냥 항로가 개척되는거냐고 ㅋㅋ 간적이 있다는 거랑 그 뱃길로 보급을 해야겠다고 추진할 정도인 거랑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
ㄴㄴ 고려말하고 조선초기에 일본이 침략했는데 150년동안 침투 안해서 바닷길이 끊켰을거라는 글쓴이가 쓴 앞쪽 댓글주장대한 반박인거임 또 본문 논리대로라면 전라도는 커녕 남해도 뚫지 못했어야했는데 기록들이 세세히 나와있고 날짜까지나와있네
일본이 바닷길 뚫어서 보급을 해야겠다 안해야겠다 부분은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길을 몰라서 안뚫었다는 네 주장은 바로 반박되는거네
그 왜구들이야 길을 알수도 있었겠지 이제 걔네가 침공 계획에 관여했다는 증거만 있으면 되겠네 아니면 유력 다이묘 휘하였다는 증거라도 ㅋㅋ
네말대로 일본군이 정말 길을 몰라서 안갔을 가능성도 있었겠지 근데 반대로 일본군이 길을 알고있었음에도 안갔거나 못 갔을 가능성도 있다는거지.. 즉 네 주장이 성립하려면 그 왜구들이 휘하의 장수에 있지 않았거나 침공계획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면되겠네. 이게 증명되지 않는 한 네 주장도 결국엔 뇌피셜에 불과하겠네
대하하하하하하
이순신 장군께서 음력 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승리하시고 나서 강항이 9월 23일에 전라도 영암에서 일본인들한테 잡혀서 무안으로 끌려감 둘다 서해안임. 인순신 장군은 뭐했냐고? 대승을 거두고 전북 군산의 고군산군도까지 튀느라 바빠서 서남해 제해권을 잃음. 참 대단한 승리 맞다.
당시 선조 새끼가 그런식으로 말했다가 명나라 장군에게 욕박힘.
럭키한타 이겼으면 빼야지 ㅋㅋ
13척으로 133척하고 싸웠으니 재정비 가야지 등신아. 그리고 정비 후 다시ㅈ내려갔고.
삼국지만 봐도 수군>>>>>>>>>>>>>>>>>>>>>>>육군인데 말이 수군이지 어디 상륙해서 칼 드는 순간 육군 되는거고 그냥 바다와 큰강 낀 곳에선 전략적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높음
말도 안되는 곳에서 수백명이 갑툭튀해서 다 쓸어 담고 튀어버리면 재해권 없는 쪽에서는 잡지도 못하고 계속 괴롭힘당함
정반대다 기술적 한계로 바다를 이용하는 방법이 매우 제한되고 조선은 병력 질이 딸려서 육상에서 맨몸 싸움이 안되서 상륙전은 미친 짓이다.현대에조차 상륙전은 폭격기 전함으로 몇날 몇일뜰 초토와 시킨후에 열린 해안 지형에서 총알 뒤집어쓰고 엄청나게 뒤져가면서 한다
ㄴ 상륙해서 정규전을 왜함
해안선만 따라가면 되는데 저걸 못했다고?
서해는 지금도 못함
조석간만의 차가 너무 커서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왜구들은 깡으로 멀미 이겨내고 파도 가르면서 좋은 날씨 알맞은 풍향 예측해서 바깥 먼바다까지 우회 하는 루트로 다닌 거야 거기는 일부 왜구들이나 서양인들만 사용 가능하다.조선 수군도 이건 못함.그리고 이 경우도 날씨가 안좋다던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 임시로 배를 대야하는데 조선 수군이 건재하면 이게 힘들어서 안정적인 보급이 안된다.좀더 쉽게 내륙출신 영주들도 수송가능하고 작은 나룻배 같은거도 싸게 동원해서 하려면 섬 사이 연안 물길을 알아둬야 함
원양 항해에 필요한 스킬이랑 연안 항해용은 전혀 다르다
동력이 노젓는거니까 제한이 심하네 항해술도 바닥이고
도요토미는 조선출병시켜서 쓸모없는 장수들 소진시킬라고 했는데 조선이 너무 병신이어서 함락시킬뻔함
도요토미 최측근 칠본창이 사실 다 쓸모없는 장수였노 ㄷㄷ 이에야스 빼면 일본 거물들 중에 조선 파병 안한놈이 없는데 이딴소리가 아직도 나오네
쓸모없는 장수들 소진 시키려고 지 칠본창인 가토 기요마사 가토 요시아키 카티기리 타케노리 와키자카 마사노리 에 동군서군 내전때 지네편 든 고니시 우키다까지 바리바리 다 보냈노?
그딴 새끼들 있어봐야 역모나 하지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생각함 ㅋㅋㅋ
가토는 진짜로 이에야스 편 든게 웃음벨 ㅋㅋㅋ
와키자카 후쿠시마 등등 칠본창 류는 새로육성하는 차세대 간판들이라 경험 쌓느라고 출전 시킨거지.진짜 측근,실세랄수 있는 오타니 요시츠구 이시다 미츠나리 이런 애들은 병력도 없이 봉행 역할로 감.
고니시, 구로다 나가마사는 영지가 규슈 쪽이지.전쟁 끝나고 잉여된 병력들 짬처리용.얘네가 맡은 1번대 3번대 뿐 아니고 대다수 병력이 규슈 출신.거기다 전쟁 시작전 예수회와 알력이 크게 있어서 바테렌 추방령 나오고 교황한테 사절 보내고 예수회 동인도 관찰사 히데요시 찾아오고 했기 때문에 본인이 기독교,애비가 기독교인 얘들은 신용하기 힘들어서 죽던말던 상관 없는 상황.애초에 히데요시 쪽이 임기응변으로 스노우볼굴린 거고 결속력은 약한걸로 유명하고
ㅋㅋㅋ 이미 이에야스한테 한번 개처럼 발렸는데 히데요시가 잘도 병력소진 시키러 보냈곘노 ㅋㅋ
아니나 다르까 세키가하라 때 애비 기독교 구로다 나가마사는 동군으로 배신 불알친구 가토도 고니시, 이시다 미츠나리 같은 기독교도 싫어서 동군으로 배신함.근데 그게 진짜 기도교만 싫었던거여서 전쟁끝나고 나서는 도요토미 가문 존속 시키는데 힘쓰다 숙청당하고 빈털털이됨
규슈 끝단에 있어서 동원도 어렵고 예수회한테 조종받는 기독교 득실거리는데 미래 대비하려면 당연히 소모 시켜야지.이에야스한테도 전투 교화비는 발려도 결국 화친하고 명분상 우위점하면서 대치상황은 만듬.
이시다 오타니는 장수도 아니고 행정관료였고 받은 영지도 칠본창보다 훨씬 적은데
최측근, 행주대첩 총지휘, 세키가하라 서군 총대장 ,그 오른팔 인데?노부나가 죽고 내부 장악하는 싸움들도 얘들이 다 지휘했지.칠본창들이야 신인으로 현장 지휘관들이고
지금 답변달아서 막댓사수정신승리처럼 보이지만 일단 사실관계나 수정하자 행주대첩 총지휘관은 우키타 히데이에였고 이시다는 끌고온 병사 자체가 없었는데 지휘를 했으면 얼마나 했겠음? 그리고 세키가하라도 인맥도 ㅄ이고 영지도 적고 병력도 1만도 못넘어서 바지사장 모리 테루모토 세우고 했는데도 단합 안되서 좆망했는데
노부나가 죽고 야마자키전투~후호조정벌까지 전쟁은 전부 히데요시 본인이 나섰거나 휘하총참모장 칸베에, 자기동생 히데나가, 제일 먼저 자기한테 숙인 유력다이묘 타카카게 등이 했는데 대체 이시다 오타니가 뭘 했다는거임? 후호조정벌때 처음 총대장 했다가 압도적인 전력으로 성 하나 못먹고 후호조 멸망할때까지 시간만 죽이며 포위하던게 이시다인데
그것도 오다와라도 아니고 듣보잡 지성 하나 상대로 포위만 해서 군사적 능력 ㅄ인거 증명한게 이시다였음 오타니도 애초부터 세키가하라 이전까지 대규모 군대 지휘해본 경험이 없는 행정관료였고
대체역사같은 정신병자짓거리만 하니까 사료하고 망상하고 구분을 못하고 입맛에 맞는것만 몇개 뽑아다가 아주 소설을 써놓은 전형적인 디씨망상종자 개지랄병 똥글
도대체 전쟁당시 1차사료도 개무시하고 조운선이 어쩌고 할거면 글을 왜썼노? 대체역사=정신병 있는역사도 제대로 해석못하면서 지 소설망상 좆물을 역사서에 치덕치덕 쳐바르는 또라이새끼들
1차 사료 하나라도 가져와 봐라 그런 게 있었으면 그거 인용했지 에휴 ㅋㅋ
이미 1500년대에도 왜구는 꾸준히 전라도 충청도(현 태안)에 침략했음 심지어 1587년에 전라도 침입했다는 자료까지 남아있네 뱃길 몰랐다는거는 바로 반박됨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0_0050_0010_0030_0020
왜구들은 섬 바깥 먼바다까지 우회 하는 루트로 다닌 거야.태생이 뱃놈들이라 파도 멀미 뚫고 날씨 예측해서 목숨걸고 다니는 거.거기는 일부 왜구들이나 서양인들만 사용 가능하다.조선 수군도 이건 못함.그리고 이 경우도 날씨가 안좋다던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 임시로 배를 대야하는데 조선 수군이 건재하면 이게 힘들어서 안정적인 보급이 안된다.좀더 쉽게 내륙출신 영주들도 수송가능하고 작은 나룻배 같은거도 싸게 동원해서 하려면 섬 사이 연안 물길을 알아둬야 하는데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명량에서 가장 열심히 싸우고 결국 임진왜란 유일한 다이묘급 사망자가 된 구루시마 미치후사 얘 부터가 무라카미 수군 출신 해적인데 명량 물길을 몰라서 닥돌하다 뒤진거야.뭐 해외 진출이 활발하던 해적들은 주로 규슈 출신이고(대표적으로 나중에 독자적으로 오키나와 정복하고 이순신도 죽였던 시마즈의 사쓰마번) 구루시마는 시코쿠~혼슈지역 뱃길이 주 활동 지역이긴하다만 니말대로 그렇게 뱃길 쉽게 알아내면 태생이 뱃놈이 얘도 그정도는 알았어야지
이새끼 쌀만 운반하는 세운선이랑 무기 탄약 온갖게 다필요한 전쟁물자 운반이랑 비교를 하네
조선 옹호하는 인간들은 세키부네 같은거 타고 약탈한걸로 밥먹는 왜구랑 수군 운용을 비교하고 자빠짐. ㄹㅇ 한국놈들 정신병자 투성이다.
어차피 일본 수군 전부 해적출신들에 똑같이 세키부네 우르르 끌고 돌격후 도선해서 백병전하는 게 똑같았는데 뭐가 문제임??
일본 수군 운용 자체가 주력함이 세키부네였는데 뭔 ㅋㅋㅋㅋ비교하고 자빠졌녜
약탈선 운용이 보급선과 어떻게 같냐고 ㅋ
왜구들은 섬 바깥 먼바다까지 우회 하는 루트로 다닌 거야.태생이 뱃놈들이라 파도 멀미 뚫고 날씨 예측해서 목숨걸고 다니는 거.거기는 일부 왜구들이나 서양인들만 사용 가능하다.조선 수군도 이건 못함.그리고 이 경우도 날씨가 안좋다던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 임시로 배를 대야하는데 조선 수군이 건재하면 이게 힘들어서 안정적인 보급이 안된다.좀더 쉽게 내륙출신 영주들도 수송가능하고 작은 나룻배 같은거도 싸게 동원해서 하려면 섬 사이 연안 물길을 알아둬야 하는데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명량에서 가장 열심히 싸우고 결국 임진왜란 유일한 다이묘급 사망자가 된 구루시마 미치후사 얘 부터가 무라카미 수군 출신 해적인데 명량 물길을 몰라서 닥돌하다 뒤진거야.뭐 해외 진출이 활발하던 해적들은 주로 규슈 출신이고(대표적으로 나중에 독자적으로 오키나와 정복하고 이순신도 죽였던 시마즈의 사쓰마번) 구루시마는 시코쿠~혼슈지역 뱃길이 주 활동 지역이긴하다만 니말대로 그렇게 뱃길 쉽게 알아내면 태생이 뱃놈이 얘도 그정도는 알았어야지
지랄마셈 이순신 장군님이 서해를 지켜서 육로보급 밖에 못 한거임
이순신 없었으면 짱깨까지 일본이 진출해서 다 먹는거 아니였음?
팩트) 임란 당시에 이순신은 개듣보였고 일본군 사이에서는 김시민, 권율이 훨씬 더 유명했다.
개 듣보는 개뿔ㅋㅋㅋ 루이스 프로이스도 일본이 조선 수군에게 탈탈 털린다고 기록해봤구만
해전이 불리하게 돌아갔던 거랑 이순신 이름 아는 거랑은 별개임.가장 유명했던 김시민도 1차 진주성 싸움 후에 죽었는데 몇년뒤에도 그걸 몰라서 정유재란때 진주성 칠때 미칠듯이 빡세게 준비함
존나 하나도 공감이 안감 글도 존나 못씀 ㅋㅋㅋㅋ
사실상 조선이 대패한 전쟁 솔직히 일본이 동군까지 참전했으면 일본이 인도까지는 정벌했음 ㅅㄱ
맞다 대일본제국도 미드웨이에서 아라시가 노틸러스잠수함하고 낑낑대다가 돈틀리스 폭격기들한테 걸리지만 않았어도 미드웨이는 일본 승리고 그대로 워싱턴까지 달려가 루즈벨트가 대가리 박고 항복하고 백악관에 일장기 휘날렸을텐데 아쉽다 ㅇㅇ
감히 이순신 장군님을 건드려?
논리가 너무 병신같아서 도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할지 감도 못잡게하는게 목표라면 성공했음 - dc App
얘는 근데 존나 역겨운게 지한테 불리한 증거나오면 바로 입꾹닫하네
이미 뒤쪽에 반박댓글 50개는 넘는데 다 무시중
원래 개처맞고 폐기된 이론 누덕누덕 이어붙여서 아무것도모르는 애들한테 큰소리 빡빡치면서 딸치는거 일뽕들 20년도 더된 짓거리인데뭐
이야.... 수십년간 연구한 대학교수들 찌바르는 재야의 고수 게이가 여기 있었노 ㅋㅋㅋㅋ 자신있음 논문써서 내라 게이야 디씨에게 댓글놀이 하지말고 ㅋㅋㅋㅋ
이미 학계에 나온 내용이라니까 ㅋㅋㅋ
뉴라이트 계열 논문 1~2개 가지고 학계드립치는게 웃음벨 그 자체ㅋㅋㅋ
나름 논문하나 인용하는데 인용한 논문이 뉴라이트라서 아무도 인정안해줌
뉴라이트 병신들이 쓴 논문은 이미 사학과 교수들에게 집단 다굴맞고 오체분시 당해서 아무 의미 없다 게이야 ㅠㅠ 재야의 고수인 우리 게이가 새로운 논문 하나 써내라 ㅠㅠ
글쓴새끼가 이해 못하는게 웃긴게 환단고기 관련 된 논문 1~2개 싸 지른다고 그게 학계의 팩트가 아니고 통설조차 아닌데 그걸 팩트=통설이라 이해 하는게 웃음벨임
논문 써내는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어서 뉴라이트나 자칭 재야사학계라는 환빠들도 논문은 써 낼 수 있음 근데 그게 인정받도 인용되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 저 뉴라이트 논문도 이미 주류사학계 학자들에게 개같이 물어뜯기고 반박당했는데 의미 있는 재반박은 못하고 귀처닫고 주류사학계 교수들 다 좌빨이라고 욕만하다 병신취급 당했음
학계에서 아무도 인정안하는 병신 논문 들고와서 마치 검증된 것인양 씨부리는게 일뽕치사량 들이킨 뉴라이트랑 환빠들 공통점이긴 함
상명대 김문자 교수는 우파긴 한데 국정교과서 반대했던 부산대 이종봉 교수까지 뉴라이트로 몰아버리네 ㅋㅋ 그냥 니가 모르는 주장을 하면 환빠랑 동급이 되는 거냐? 그리고 일본 학계는 이미 이런거 다 발굴해서 논의 끝냈어 ㅋㅋㅋ
그니까 그렇게 자신만만하면 디씨에서 대장질 할려고들지말고 논문을 써내서 국뽕 한껏처드신 주류사학계 교수들 찌발라줘 제발...
이미 나왔고 학계에서 받아들여졌는데 그걸 왜 하냐?
왜구들이랑 육지 싸움하던 영주들이랑 다름.나눠진 번국들이 다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라 그런 중요기술,인력들 유출 안시키지.일본 내 전투에서도 해전은 주로 해적들 고용해서 담당하게 함---->안 보이냐?다른 나라 영주들한테 중요한 밥줄 기술을 왜 알려줘.약탈도 하러 다니고 해군용병도 뛰고하게 해주는 개꿀지식인데
네 말대로면 어느정도 통일한 히데요시한테 부하들이 알려줬겠지 좆병신 새끼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로를 무슨 그림만 보면 터득하는게 아니라 직접 다녀봐야 경험이 쌓이고 안정이 되지 정규군 보급함대를 무슨 해적이 탐험하는 것마냥 운용했겠냐고
왜구들은 그럼 어떻게 수백년동안 서해 남해 동해 동에번쩍 서에번쩍 다녔노? ㅋㅋㅋ 왜구들도 결국 일본 영주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용병이라고 하던데? 그럼 후세에 그 해로 알려줬을거고 히데요시 밑에 해로 아는 왜구가 단 한명도 없었겠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섬 바깥 먼바다까지 우회 하는 루트로 다닌 거야 거기는 일부 왜구들이나 서양인들만 사용 가능하다.조선 수군도 이건 못함.그리고 이 경우도 날씨가 안좋다던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 임시로 배를 대야하는데 조선 수군이 건재하면 이게 힘들어서 안정적인 보급이 안된다.좀더 쉽게 내륙출신 영주들도 수송가능하고 작은 나룻배 같은거도 싸게 동원해서 하려면 섬 사이 연안 물길을 알아둬야 하는데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
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이미 1500년대에도 왜구는 꾸준히 전라도 충청도(현 태안)에 침략했음 심지어 1587년에 전라도 침입했다는 자료까지 남아있네 뱃길 몰랐다는거는 바로 반박됐네
섬사이로 안전하게 다니는 길이랑 먼바다로 둘러서 가는 길이랑 다르다고 위에 적어 줬냐 안적어줬냐?
.고려말에 명털고 서해 개같이 턴 왜구들이 기록으로 수도없이 있으니까 그건 부정못하고 그저... 로갓하고 왜구들은 수백년 지나서 항로 전달못했다도르 ㅋㅋㅋ 위대한 닛뽄징이노 ㅋㅋㅋㅋㅋㅋㅋㅋ
니새끼는 쓰지도 않는 해로를 몇백년동안 전달하냐 병신국뽕저능아새끼야? 그냥 망상꼬라지부터 대가리 저능한 국뽕장애새끼 수준
심지어 후기왜구가 요서털던거랑 서해 해로 이용해서 대명무역 있던건 모름ㅋㅋㅋ
왜구들이랑 육지 싸움하던 영주들이랑 다름.나눠진 번국들이 다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라 그런 중요기술,인력들 유출 안시키지.일본 내 전투에서도 해전은 주로 해적들 고용해서 담당하게 함
실록에 고려말에 왜구들 출몰했다고 인용하면서 왜구들 막아야 한다고 진언한 기록도 있는데 뭔 지랄을 하고 자빠졌노 ㅋㅋㅋㅋㅋㅋ 쓰지도 않는 해로도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저... "니뽄징은 위대하지만 항로조차 후세에 못 전하는 병신인데수웅"
병신아 일본이 통일하고 조센 쳐들어온 건데 당연히 해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지 빙신아 히데요시도 해상 보급로 짜라고 지시한게 남아있는데 개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통일 못했다.도쿠가와 세력 건재하고 그거랑 대치하느라 히데요시 쪽 주 병력이랑 에이스들은 얼마 보내지도 못함.임진왜한 얼마전에 복속시킨 규슈쪽 애들을 보낸거야
병신새낀가 육로 수송하다 의병에 짤린적은 있어도 전쟁 끝날때까지 육로 수송못해서 말라뒤지질 않았는데 계획도 없던 해상수송 이지랄
애초에 임진왜란 일으킨 실질적인 의도는 규슈쪽 병사들 소모시키고 영주들 약화시켜서 도쿠가와랑 대치하는 동안 후방이 안전하게 하기 위함이 큼.그래서 고니시 같은 애들은 전쟁 존나게 반대 했고 히데요시 죽자마자 다 본국으로 철수한거
정보)정작 전쟁으로 도쿠가와는 존나컸다
실질적인 의도가 적대영주들 약환데 왜 사실 병력 제일 갈려나가며 최전선에서 싸운게 자기 직속가신 가토 고니시 후쿠시마랑 자기 양아들 우키타 히데이에냐?
잠재적 위험인 영주들 약화시키려고 했으면 적어도 가토 고니시 후쿠시마 칸베에아들 우키타히데이에는 빼줬어야 하는거 아니냐?
그리고 통일과정에서 활약한 히데요시 에이스들은 다 영지받아서 다이묘 됐고 그렇게 다이묘 된 칠본창 와키자카 가토 후쿠시마에, 책략가 칸베에 아들 다 조선 갔는데 히데요시쪽 에이스가 없다는건 뭔 소리냐?
고니시, 구로다 나가마사는 영지가 규슈 쪽이지.전쟁 끝나고 잉여된 병력들 짬처리용.얘네가 맡은 1번대 3번대 뿐 아니고 대다수 병력이 규슈 출신.거기다 전쟁 시작전 예수회와 알력이 크게 있어서 바테렌 추방령 나오고 교황한테 사절 보내고 예수회 동인도 관찰사 히데요시 찾아오고 했기 때문에 본인이 이 기독교,애비가 기독교인 얘들은 신용하기 힘들어서 죽던말던 상관 없는 상황.애초에 히데요시 쪽이 임기응변으로 스노우볼굴린 거고 결속력은 약한걸로 유명하고
와키자카 후쿠시마 등등 칠본창 류는 새로육성하는 차세대 간판들이라 경험 쌓느라고 출전 시킨거지.진짜 측근,실세랄수 있는 오타니 요시츠구 이시다 미츠나리 이런 애들은 병력도 없이 봉행 역할로 감.가토 같은 경우는 좀 특이하다고 보는데 믿기 힘든 기독교인 고니시를 선봉으로 내세우고 그 앙숙이자 자기한테는 불알친구 최측근인 가토를 그 감시역으로 보낸거라고 생각함.인사 배치 자체가 딱 거기에 맞게 되있음.초기 승부처 였던 탄금대에서 신립이랑 싸울때 수상한 짓 보였으면 그 근처에 있기만 하고 싸움은 안했던 가토가 오히려 조선군이 아닌 고니시를 쳤을거라봄.실제로도 부산포 해전 앞두고 고니시가 조선이랑 내통해서 가토 입항 날짜 알려주고 죽이라고 했었지
잉여 병력 소모용 전쟁인데 가토는 과하게 열심히 싸웠다는 최측근이고 고니시와의 경쟁심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임
전쟁이 무슨 스타크래프트마냥 병력 찍어냈으면 유지비 하나 안드는 RTS게임임? 잉여된 병력들 짬처리하는데 들어가는 전쟁 비용이 그냥 잉여 병력들 평시에 유지시키는거보다 훨씬 큰데 뭔소리임?
규슈 끝단에 있어서 동원도 어렵고 예수회한테 조종받는 기독교 득실거리는데 미래 대비하려면 당연히 소모 시켜야지
군사칸베에 드라마에도 조선수군때문에 보급막혀서 더이상 올라가는거 힘들다고 나오던데
옛날학설 기반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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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끼리 도깨비요 사신이요 호랑이요 하면서 좆밥조선땅 쳐들어갔다가 명나라 오기 전에 좆밥 조선 점령 못하고 굶어뒤지다가 돌아온 wwww
공세적인 부분에서 별로 드러나는게 없다 뿐이지 남해 지역 제해권 끝까지 안놓고 있었던 공로 만큼은 확실하고 전면전 붙을 경우 일본에 비해서 우위를 가졌던건 확실함
팩트 까보면 일본 쪽은 넷우익 카더라가 출처라ㅋㅋㅋ 심지어 업데이트도 안됨ㅋㅋ
조선이 못했다고 일본도 못한다라는 가설은 좀 그러네.. 이런건 일단 20만 동원이라도 가능한 조선이였을때나 비교해라
섬 사이 연안 물길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명량에서 가장 열심히 싸우고 결국 임진왜란 유일한 다이묘급 사망자가 된 구루시마 미치후사 얘 부터가 무라카미 수군 출신 해적인데 명량 물길을 몰라서 닥돌하다 뒤진거야.뭐 해외 진출이 활발하던 해적들은 주로 규슈 출신이고(대표적으로 나중에 독자적으로 오키나와 정복하고 이순신도 죽였던 시마즈의 사쓰마번) 구루시마는 시코쿠~혼슈지역 뱃길이 주 활동 지역이긴하다만 니말대로 그렇게 뱃길 쉽게 알아내면 태생이 뱃놈이 얘도 그정도는 알았어야지
이미 전라도 진도 근처까지 갔기 때문에 그냥 육지끼고 쭉 올라가면 되는거야 말그대로 보급임 좀 헤매더라도 보급만되면 끝
조선이 500년 내내 활용 못하던 군산, 목포같은 전라도 바로 활용해서 대도시로 키운게 일본 아니냐? 그래서 전라도 해안지대 90 먹은 노인네들은 일본어 아직도 잘하고 그 시절을 부러워하고 대중적 인식과는 달리 김대중처럼 일본 존나좋아함
윗머가리 새끼들 위치가 운지하고, 그와중에 매국행위한 새끼들은 호의호식한거지, 절대다수의 평민에겐 나라고 뭐고 이런 생각 있었겠노? 옛날보다 배부르게, 과거와 다르게 교육이라는게 열리고 편리해진 세상사는데.
"좋은 일본 문화 받아들이자"
역사 = 지잡하위권대학 갈 정도의 저지능 저학력자들이 딸딸이 칠 수 있는 유일한 잡학 실제로 퍼거새끼들이 유독 역사에 매달려 딸딸이 짓을 한다 역사 = 지잡하위권대학 갈 정도의 저지능 저학력자들이 딸딸이 칠 수 있는 유일한 잡학 실제로 퍼거새끼들이 유독 역사에 매달려 딸딸이 짓을 한다 역사 = 지잡하위권대학 갈 정도의 저지능 저학력자들이 딸딸이 칠 수 있는 유일한 잡학 실제로 퍼거새끼들이 유독 역사에 매달려 딸딸이 짓을 한다 역사 = 지잡하위권대학 갈 정도의 저지능 저학력자들이 딸딸이 칠 수 있는 유일한 잡학 실제로 퍼거새끼들이 유독 역사에 매달려 딸딸이 짓을 한다 역사 = 지잡하위권대학 갈 정도의 저지능 저학력자들이 딸딸이 칠 수 있는 유일한 잡학 실제로 퍼거새끼들이 유독 역사에 매달려 딸딸이 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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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대깨문 새끼들
)병신새낀가 육로 수송하다 의병에 짤린적은 있어도 전쟁 끝날때까지 육로 수송못해서 말라뒤지질 않았는데 계획도 없던 해상수송 이지랄
식량 떨어지니 한양세서 남해안까지 다이렉트로 후퇴했으니 당연히 말라뒤진적은 없지. -
식량 없어서 빤스런친 닛뽄징이 하는 말 ㅋㅋㅋ
일본군에 식량 떨어져서 남해안까지 후퇴했다? 그냥 개센징 국뽕새끼들은 짱깨한테 빌붙어 근근히 연명한게 비참해서 말같지도 않은 국뽕으로 발악하는 것밖에 안남음ㅇㅇ
굶어뒤질까봐 먼저 경상도로 쪼르르 후퇴하니 굶은 기록이 없는거지 거기서 후손들의 1억 옥쇄정신처럼 버텼으면 다 죽었지
문크예거(14.6) << 한양에 주둔한 일본군 연명장에 식량 한달치밖에 없다고 한게 있고, 이후 식량 오링나니 전력으로 해안가까지 튀었는데 ㅋㅋㅋ -
한양공략 실패하고 겨울 오니까 바로 개같이 틀어박했는데ㅋㅋㅋ
정리하자면 일본이 서해해로를 뚫을려고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해로를 몰라서 안뚫었다는거는 뇌피셜인거네
해로 몰랐을리가 있나 후기 왜구만 해도 요서 잘만 털고 서해 이용하던 대명무역은 늘상 있었음 옛날 견수사 견당사 이런 공인 관계가 없던것뿐이지 그리고 포로중 뱃길 아는애들 있었을거고
이미 1500년대에도 왜구는 꾸준히 전라도 충청도(현 태안)에 침략했음 심지어 1587년에 전라도 침입했다는 자료까지 남아있네 뱃길 몰랐다는거는 바로 반박됐네
이런 소리하는 친구들은 난중일기 부터 좀 봐라ㅋㅋㅋㅋ 그런식으로 따지면 바이킹도 해로 다 알고 파리 공격한거임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일뽕새끼들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ㅋ 대마도 한번 경유하면 서울 충북까지 한방에 다이렉트로 보급할 수 있으니까 서해가 중요한거고 서해에서 갑자기 쳐맞으니까 서해 보급로를 포기하고 육로 보급을 선택한거고 그래서 뚫린 경상도쪽에만 루트를 틀은거고 ㅋㅋㅋ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보급루트를 동시에 운영하지 걔들이 바보임? 100년동안 전쟁만 하던 새끼들인데 그걸 몰라서 못했을까. 그냥 이순신한테 뒤지게 쳐맞으니까 거기 보급못한게 맞고
전쟁 끝날때까지 육로 수송못해서 말라뒤지질 않았는데 계획도 없던 해상수송 이지랄 망상으로 국뽕빠는게 애미뒤진 국뽕새끼들 수준ㅇㅇ
식량 없어서 빤스런친 닛뽄징이 하는 말 ㅋㅋㅋ
일본군에 식량 떨어져서 남해안까지 후퇴했다? 그냥 개센징 국뽕새끼들은 짱깨한테 빌붙어 근근히 연명한게 비참해서 말같지도 않은 국뽕으로 발악하는 것밖에 안남음ㅇㅇ
그니까 왜 육로수송을 고집했냐고 ㅋㅋㅋㅋ 해상에서 뒤지게 쳐맞으니까 해상수송 계획을 못하는거지 상식적으로 전쟁만 100년해서 보름만에 한양 따먹은 새끼들이 그런 보급로를 생각 못한다고? 말이되나 ㅋㅋ
섬 바깥 먼바다까지 우회 하는 루트는 일부 왜구들이나 서양인들만 사용 가능하다.조선 수군도 이건 못함.그리고 이 경우도 날씨가 안좋다던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 임시로 배를 대야하는데 조선 수군이 건재하면 이게 힘들어서 안정적인 보급이 안된다.좀더 쉽게 내륙출신 영주들도 수송가능하고 작은 나룻배 같은거도 싸게 동원해서 하려면 섬 사이 연안 물길을 알아둬야 하는데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ㄴ 당연히 모든 보급은 힘들다. 이미 보급작전의 중요성은 고대부터 있던 계념인데 그럼 저항한번 안받고 갈생각 했겠냐. 근데 상식적으로 해로를 뚫어서 중요지점마다 거점만들기랑 육로를 뚫어서 거점만들기랑 어떤게 더 어렵겠냐 ㅋㅋ 그것도 육로로 연결된게 아니라 바다를 넘어서 지형 날씨가 전혀다른 타국에서 전격전하면서 육로보급한다? 그러다 100만명 날려먹은게 수나라임. 그리고 조선은 제승방략이라 점조직마냥 갑자기 허공에서 병력이 소환되는 땅인데 거기서 육로보급은 존나 말이 안되는 얘기지. 그리고 왜란 초기는 평양까지 따먹고도 왕 못잡아서 왜군 전체가 붕 떴을 때 하삼도와 북부 조선군+명군이 샌드위치로 누르던 때인데 부산부터 평안도까지 일자로 길게 쭉 육로보급한다? 그새끼들 그런 능지였으면 통일 못했다.
일본군에 식량 떨어져서 남해안까지 후퇴했다? 그냥 개센징 국뽕새끼들은 짱깨한테 빌붙어 근근히 연명한게 비참해서 말같지도 않은 국뽕으로 발악하는 것밖에 안남음ㅇㅇ
식량 없어서 빤스런친 닛뽄징이 하는 말 ㅋ
전쟁 끝날때까지 육로 수송못해서 말라뒤지질 않았는데 계획도 없던 해상수송 이지랄 망상으로 국뽕빠는게 애미뒤진 국뽕새끼들 수준ㅇㅇ
같은소리 도배하는거 보면 병신인증하는거 나왔네 -
식량 없어서 빤스런친 닛뽄징이 하는 말 ㅋ
일본군이 식량 떨어져서 남해안까지 후퇴했다는 국뽕날조하는 국뽕저능아새끼들이 선동하는 이유가 후반기 정유재란 주력군 비율이 명군 다수일정도로 짱깨한테 빌붙은것 밖에 안돼서 되도 않는 국뽕 발악 쳐하는거ㅇㅇ
식량 없어서 빤스런친 닛뽄징이 하는 말 ㅋ
수십년을 역사 연구한 학자들 다 좆까고 지가 옳다고 뇌피셜 싸지르는 수준 ㅋㅋㅋㅋㅋㅋㅋㅋ 고려시대 왜구들 침투경로 봐봐라 전라도경상도강원도경기도 너나할거없이 다 들어와서 약탈했는데 ㅋㅋ
놀랍게도 뉴라이트 계열 학자 논문 1~2개 기반으로 쓴글임
왜구가 예성강까지 올라오고 조선왕들은 전라도에 조운한답시고 배보내면 왜구한테 약탈당해서 다털린다고 기록까지 남아있는데 뉴라이트 사파들 논문이 대수노 ㅋㅋㅋ 진짜 개병신들 많네 왜구가 수백년을 조선반도 해안선 다 털어먹었는데 해상운송 하나를 못하노?
뉴라이트 계열ㅋㅋㅋㅋㅋ그런 식이면 북한이 침략한게 아니라 미국이 유도했다는 식의 논문도 학자가 낸건데 다 믿어주겠노
좆선 ㅋ
이 새끼들 논리로 따지면 조선이 침략루트 된다고 도로 안 깐 건 옳은 선택이 맞았네 ㅇㅇ 일본 병신새끼들이 지 후손들 조까라고 해로도 안 남긴 병신새끼들이고해로는 엄두도 못내고조선에 와서 육로로 보급할 생각이었는데조선이 도로 안 깔아주는 바람에 다 좆됐네 조선 염탐하러간 스파이 새끼들 조선에는 도로가 없어요라고 말도 안해주고 뭐했노??거기다가 육지에서 좆바를 줄 알았는데 루이스 프로이스가 적은대로 조선인들의 미늘창 다루는 솜씨들이 엄청나서 좆털지도 못해서 밥도 못 먹었네 아이고
저 시대에 뭔 육로 보급이여 특히 포장도로 하나 없는 조선에서
분명.. 고려말에는 명까지 약탈하러 가고 서해에도 출몰해서 인천 개같이 턴게 왜구들인데 왜 갑자기 조선시대 오니 항로 다 까먹었을까?(진짜모름)
일본군이 식량 떨어져서 남해안까지 후퇴했다는 국뽕날조하는 국뽕저능아새끼들이 선동하는 이유가 후반기 정유재란 주력군 비율이 명군 다수일정도로 짱깨한테 빌붙은것 밖에 안돼서 되도 않는 국뽕 발악 쳐하는거ㅇㅇ
응 조까 국뽕 취할꺼야 일뽕 씨발새끼들아 ~~~ ㅋㅋㅋㅋㅋ
전근대에 보급 육로수송이 불가능하다는 개씹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논리대로면 개센징 좌빨 틀딱영포티새끼들이 빨아주는 짱깨 삼국지도 없던 역사 ㅇㅇ
개존빡대가리도 아니고 일본군 먹일 군량은 부산에서 자생했냐? 대놓고 군량미를 일본 본토에서 운송해왔는데 이건 쏙빼놓노
일본 본토에서 식량 징발 => 부산까지 이동 => 이후 육로로 쳐 운송한거지 육로 수송로만 찍 던져놓고 중립적인척 하면서 이순신 과대평가라고 하는게 우습네
팩트: 이순신은 벌집핏자 되기 전까지 부산엔 접근도 못했다ㅇㅇ
ㄴ부산포 해전은 어디다 팔아먹었냐? 일본군은 400척이나 배가 있으면서도 나와서 싸우지도 않았는데?? 일본군 군함 100척은 귀신한테 침몰되었네 ㄷㄷ
조선판 카미카제노? 조상님들이 이노오오옴 쪽빠리쉐리들~~~하면서 100대 박살 냈네 ㅇㅇ
설마 조선 점령지에서 자체충당 후 육로운송 했다는 개씹소리할거면 이시다 미츠나리가 임진왜란때 무슨 역할을 하는 직책에 있었는지부터 공부하고와라 진짜 국뽕이나 일뽕이나 어디서 주서듣고와서 힙스터질 하는게 존나웃김 ㅋㅋ
이순신 선조한테는 비장한척 다 하고 부산 틀어막겠다더니 아무것도 안하고 관광만하고 와서 선조 개빡쳤음.
갤러리 이름보고 바로 비추 박음 - dc App
대체 역사물 작작 봐라. 사료에 망상 좀 섞어서 소설을 쓰면 몰라 그걸로 남 가르치려고 들고 있네 미친
팩트: 일자무식인 고려말 왜구들도 수백년동안 명으로 갔다가 서해로 갔다가 동해로 갔다가 지들 맘대로 약탈하고 다녔다.
그건 섬 바깥 먼바다까지 우회 하는 루트로 다니는 거야.이건 일부 왜구들이나 서양인들만 사용 가능하다.조선 수군도 이건 못함.그리고 이 경우도 날씨가 안좋다던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 임시로 배를 대야하는데 조선 수군이 건재하면 이게 힘들어서 안정적인 보급이 안된다.좀더 쉽게 내륙출신 영주들도 수송가능하고 작은 나룻배 같은거도 싸게 동원해서 하려면 섬 사이 연안 물길을 알아둬야 하는데 이런 세세한건 왜구들도 모를 가능성 99%다.명량에서 엄청난 우위 가지고도 쩔쩔맨거도 같은 이유고
섬사이 암초들 조류 강한 시간 조류 강한 곳 같은 건 현지인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뱃놈들 잡아다가 알아야 하는 거고 아니면 오랜 시간 걸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함
일본군이 식량 떨어져서 남해안까지 후퇴했다는 국뽕날조하는 국뽕저능아새끼들이 선동하는 이유가 전쟁 후반기 남해안까지 도달하는 정유재란 당시 주력군 비율이 명군 다수일정도로 짱깨한테 빌붙은것 밖에 안돼서 되도 않는 국뽕 발악 쳐하는거ㅇㅇ
그냥 개조센 국뽕새끼들은 시작부터 명나라 짱깨 노예새끼에 청에도 강간당한 이씨조센의 임진왜란 상대가 일본이라는 이유 하나로 발작하는 것밖에 안남음
아무리 떠들어봐야 전쟁졌죠????
그래봐야 개조센 롤대남들에게 av 딸딸이나 당하죠?
을사오적 권중현이는 권율후손이다.
김정은장군만세!
ㄴ그건 뭐 국뽕학자들 개소리고... 접대를 후하게 해준건 맞지만 1년 예산을 속국사절에 썼다는건 개소리임 어디까지나 조선통신사는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조공사절이었음 이건 조선측도 암묵적으로 동의한거였음
조선이 속국이라는게 드러나는게 쇼군(일본국왕)과 조선왕이 동격으로 서로 존대하는 입장이었음 그말인 즉슨 천황의 신하인 쇼군이 조선왕과 동격이니 조선왕은 일본 천황의 신하격이 되는거임 ㅇㅇ 이건 조선측도 알고있는 바였음
일본은 옛날부터 신라 백제는 일본의 속국이라는걸 잘 알고 있어서 다시한번 조선을 굴복시켜 속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사명감이 있었음 그래서 조선이 조공사절(통신사)을 보내오니까 고대시절의 전통을 되살렸다고 좋아한거임
실제로 백제나 신라가 일본에 인질바치고 조공사절 존나 보낸건 교차검증이 되는거니까.. ㅇㅇ
ㅇㅇ(221.163) << 병신님아, 대마도주는 이후 조선에서 관직까지 받았는뎁쇼 ㅋㅋㅋ 눈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조공이라고 자국민 속인거하고 관직까지 받은거하고 비교하는 병신 ㅋ -
일본 사학계) 우리조상 이순신한테 배 수백척 갈리고 통신사 접대하느라 등골빠질뻔함ㅠ 반도센징이) 좆순신 기껏해야 수십척 침몰시킨게 다고 통신사는 조공사임>> 이새끼는 그냥 정신병자임ㅋㅋ 이 대단한걸 지만알고있음ㅋㅋㅋㅋ - dc App
왜 히데요시가 벽제관에서 이겨서 더 올라가면 조선 전체를 먹던 상황에서 왜 굳이 남해안으로 후퇴했음? 목표를 한반도 남부지역 영토화&인구약탈로 바꾼거면 왜 한반도 전체에서 남부지역 영토화로 더 적게 잡았냐니까? 애초부터 육로로 보급하는게 안되니까 그런거 아니냐?
ㄴㄴ 실제로 백제 마지막 왕인 부여풍은 일본천황에게 관작도 수여받았음 ㅇㅇ 신라 조공사절들도 일본 천황한테 관작 수여받은적들 있음 조선도 마찬가지임 조선왕은 조공사를 보냄으로써 옛날 신라왕이나 백제왕처럼 일본의 속국이 되겠다고 약속한거나 다를 바 없음
정보) 221은 히데요시가 안죽었으면 한반도 남부는 일본이 먹었다며 센징이들은 현실을 인정하라는 일침을 가했다. 막상 한반도 못처먹고 런친걸 if도르치며 현실인정 못하는건 본인이였다. - dc App
일본 사학계) 우리조상 이순신한테 배 수백척 갈리고 통신사 접대하느라 등골빠질뻔함ㅠ 반도센징이) 좆순신 기껏해야 수십척 침몰시킨게 다고 통신사는 조공사임>>주인 말에 반박하는 전형적인 악질 센징이의 모습이다 - dc App
ㅇㅇ(221.163) << 조선 이야기하는데 왜 백제나 신라 이야기하고 자빠지는지 ㅋㅋㅋ 이악물고 말돌려봐야 당시 조선이나 일본은 동등한 외교관계 수준이었음 -
정보)221은 지금 일본야후를 켜서 일본 사학계에서 이순신을 내려치기한 논문이 없나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 dc App
막댓사수하려고 1분간격으로 개소리를 싸지르던새끼가 5분씩이나 버로우를 탓다! 자살하러갔노? 컄ㅋㅋㅋㅋㅋ - dc App
ㅋㅋㅋㅋㅋㅋ 개병신 개처맞고 아가리싸무는거 보소 - dc App
하필 갤러리가
크 역시 천안의 아들 김시민
그니까 지금 이글이 대학 석박사 출신 학자들도 인정하는 글이라는거임? 아니면 그냥 망상 글이라는거임? - dc App
밑에 댓글처럼 발작하는 애들보면 알 수 있잖아
병신 망상 -
아니 망상글이면 저 장뮨의 글과 자료들 편집해서 적어올린 노력이 정말 가상해서 - dc App
망상글일 가능성 농후 애초에 도요토미히데요시부터가 장수들에게 해상보급를 개척하라고 명령내림 ㅋㅋㅋ 그냥 이순신에 의해 막힌 해상보급로를 그냥 애초에 일본은 해상보급을 할 생각이 없었다라고 정신승리하는 글같음
논문1~2개보고 글 싸재낀거라고 했음
전근대에 보급 육로수송이 불가능하다는 개씹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논리대로면 개센징 좌빨 틀딱영포티새끼들이 빨아주는 짱깨 삼국지도 없던 역사 ㅇㅇ
그래서 한양에 일본군에게 물자 보급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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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도 해상을 미국에게 뺏겨서 임팔작전에서 육로로 운송하다 털렸는데 뭔소리인지
175.207 임팔작전은 인도아대륙 내륙인데 태평양 재해권이 뭔 상관이야 병신국뽕저능아새끼야 니새낀 내륙에서 해상으로 보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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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해상세력이었고 제주도, 진도, 오키나와까지 다닐 수 있었지, 이성계는 그런 능력은 없음
전근대에 보급 육로수송이 불가능하다는 개씹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논리대로면 개센징 좌빨 틀딱영포티새끼들이 빨아주는 짱깨 삼국지도 없던 역사 ㅇㅇ
그래서 한양 주둔 본군에게 물자 보급함? - -
ㄴ 애미뒤진 국뽕개센징 저능아새끼 발작ㅇㅇ
그래서 한양 주둔 본군에게 물자 보급함? < - - 이라고 팩트로 물어보니 발작하네 -
육로로 수송한 일본군에 이순신이 보급 차단해서 이겼다는 이딴 말도 안되는 개센징 날조선동이 아직까지 쳐먹히는게 개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지능 수준 ㅇㅇ
일본하고 조선하고 해저터널 뚫려있었노? 전라도도 못 쳐먹은놈들이 약탈만으로 충분하지~했다가 왜성에 틀어박혀 다 굶어뒤지다가 겨우 살아온 병신들이라는거임?
이순신은 부산 근처론 접근도 못했는데 병신저능아 국뽕새끼야? 그래서 선조가 백의종군으로 이순신 줘팬건데 저능아 국뽕새끼가 아가리 터노
문크예거(14.6) << 부산 두번 왓다갔다 했는데 ㅋ -
애초에 저때 일본군이 정규군인줄 아냐 일본군=왜구임ㅋㅋㅋ 전라도가 곡창지대여서 약탈은 해야겠는데 일단 육로로 전라도에 쳐들어갔다 쳐도 약탈물 들고 나올 때가 문제지 괜히 왜구들이 해안선을 따라 침략한게 아니다 치고 빠질 때가 문제거든 육로로 수송하면 속도도 느리고 바로 추격당해서 개털리지 그래서 해로는 약탈물을 본거지로 수송해가기 위해 뚫으려고 했던거다
정규군인데 등신아? -
육로 운송은 해상보다 위험성이 크니 일본 해군이 조선해군을 뚤었으면 무조건 했지. 일본서 부산까지 배로 나른걸 다시 육로로 옮기느니 그냥 배를 더 멀리 보내면 그만인데
해상운송이 위험성이 더 커 병신아 전근대에서 배타는거 자체가 목숨건 행위였는데
육로 운송하고 해로운송은 효율이 천지차이임. 당시 일본도 물자는 해로로 운송하는게 주였음 -
ㄴ그건 지리 알고 해로 알고 익숙한걸 기준으로 하는거임 ㅇㅇ 일본이 조선 뱃길을 알았을 가능성은 0고 시도했을 가능성도 0임
애초에 해로도 모르는데 해상 보급을 어떻게 쳐하냐고 병신국뽕새끼야 그래서 전쟁 내내 부산에서 육로수송한게 전부인데 국뽕망상수준
그런 움직임도 없었고 계획서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음 오직 잡장 이순신을 전쟁영웅으로 만들 생각에만 미쳐버린 국뽕센징이들이 집착하는게 해로보급 차단론임 ㅇㅇ
그건 먼 바다 나가는거나 그렇고 섬사이 암초 위치 ,조류 위험한 시간,조류 강한곳 알아두고 나면 해안으로 수송하는건 쉬움
해로를 왜 모름? ㅋㅋㅋ 현지에 조선인 포로들을 데려다 길잡이 역할 해주면 다 알텐데 왜몰라 ㅋㅋㅋ
바닷길 아는건 그지역에서 배 몰던 사람들 중에서도 경험 많은 사람만 가능 한거야.아니면 직접 부딪쳐가면서 알아내던가 해야함
근해에서 배타는 거랑 원양어선 타는거랑 같이 놓고 비교하네 ㅋㅋㅋ
정걸이 행주산성 화살 보급한거만 봐도 일뽕새끼 헛소리임 씨발 이제 정걸일화 생각났네
전근대에 보급 육로수송이 불가능하다는 개씹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논리대로면 개센징 좌빨 틀딱영포티새끼들이 빨아주는 짱깨 삼국지도 없던 역사 ㅇㅇ
일본인은 위대하지만... 고려말에 인천 개털었다가 조선시대 오니 다 까먹었는데수웅 닛폰징은 치매라는데수웅
전근대에 보급 육로수송이 불가능하다는 개씹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논리대로면 개센징 좌빨 틀딱영포티새끼들이 빨아주는 짱깨 삼국지도 없던 역사 ㅇㅇ
분명.. 고려말에는 명까지 약탈하러 가고 서해에도 출몰해서 인천 개같이 턴게 왜구들인데 왜 갑자기 조선시대 오니 항로 다 까먹었을까?(진짜모름)
ㄴ기록이 없어서 왜구가 서해 해로 알리가 없다는게 글쓴놈 논리인데 요서도 후기왜구가 털던거 서해이용해서 대명무역 있던건 뇌리셋함
글 작성자 논리 "일본인은 위대하지만 고려말에 인천까지 턴 왜구들이 다 뒤지고 후세에 항로 못 전해줬다."
몇백년 차이나는데 누가 전달해줌 병신년아? 노략질하는 해적새끼들이 글이라도 쳐배워서 전달해줌 병신국뽕저능아새끼야?
애초에 고려시대에 석두창, 통양창 2개로 경상남도 곡식 다 옮김 1403년 마산창 폐지 이유는 전라도 충청도 뱃길이 험해서지 남해안 뱃길이 험해서가 아님 경남은 낙동강 통해서 옮겨도 되겠다 정도지 초창기에 육로보급 상정했어도 일본 애들도 머리가 있고 전라도 조운로도 멀쩡히 있는 상황에서 의병한테 털리고 있는 육로보급 끊기면 수군 보급이 택하지
임진왜란이 병자호란처럼 2달도 채 안 싸운 것도 아니고 일본 애들이 평양성 뺏길 때까지 최소 7개월~ 최대 7년이나 죽치고 있는데 조선 해로 아는 자들 잡아오거나 또는 포섭 못 해서 해로를 모른다도 말이 안되고 말이지
분명.. 고려말에는 명까지 약탈하러 가고 서해에도 출몰해서 인천 개같이 턴게 왜구들인데 왜 갑자기 조선시대 오니 항로 다 까먹었을까?(진짜모름)
몇백년 차이나는데 누가 전달해줌 병신년아? 노략질하는 해적새끼들이 글이라도 쳐배워서 전달해줌 병신국뽕저능아새끼야?
왜구들이 해로를 글로 써서 몇백년 지나서 전달해주냐고 국뽕저능아새끼야ㅇㅇ
병신이노 몇백년 지났다고 그 수많은 왜구들이 죄다 후세에 안 알렸다고? 지랄났다 ㅋㅋ 동조선 닛뽄징 ㅋㅋㅋ
이 새낀 글 모르면 전달도 못하는 건 줄 아노 병신아 구석기시대에도 사냥하는 법조차 전파됐는데 항로를 왜 몰라 병신새끼인가?
문크예거// 그 고려시대에 털고다니던 왜구들은 무슨 1타강사가 와서 비정규무장집단인 해적들에게 뱃길교육이라도 해서 털고다녔냐??ㅋㅋㅋㅋ 그것도 기술력도 조선시대보다 더 딸리던 시대였는데ㅋㅋㅋ 기술력 더 딸리던시대의 해적들도 다니던 길을 더 발전된기술력의 일본정규군대가 못간다는소리를 하고 있네ㅋㅋㅋㅋ
니새끼는 쓰지도 않는 해로를 몇백년동안 구전으로 전달하냐 병신국뽕저능아새끼야? 그냥 망상꼬라지부터 대가리 저능한 국뽕장애새끼 수준
군사칸베에 드라마에도 조선수군때문에 보급막혀서 더이상 올라가는거 힘들다고 나오던데 NHK도 반일국뽕센징이냐?
해적 새끼들이 후손들 좆대라고 해로도 안 전해주네 ㅋㅋㅋㅋ 시발 ㅋㅋㅋ 일본 해적놈들 중국땅 턴 건 뭐 바다에 뜬 다음에 알아서 데려다주겠지~ 이 지랄한 가챠에 미친 새끼들인가 ㅋㅋ
조선도 백여년간 일본과 교류가 없어서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감도 못잡는데 일본이라고 백년전에 사용한 조선의 해로를 제대로 기억하겠나? 히데요시는 조선이 대마도 영주에 복속된 줄 잘못 알고 대마도 영주가 복속했는데 왜 조선은 복속하러 안오나고 할 정도였음.
문크예거// 아 제발 저능아새끼야 저능아면 시발 어디가서 보수라고 하고 다니지 마라 병신새끼야. 니같은 윤서인류의 저능아 보수때문에 보수 이미지 개병신같아지는거 못봐주겠네 시발. 고려시대는 선박수준도 조선시대보다 더 후달리던 시대였는데 그시대 왜구들도 다니던 길을 시발 정규군이 못간다는 소리르 하고 있네. 진짜로 이순신이 바닷길 안막았어도 임진왜란 7년동안 왜군들이 바닷길 개척못하고 가르쳐주는 사람없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거라고 생각하노?ㅋㅋㅋㅋ
일본 왜놈들이 조선해로를 200년만에 까묵었나?
그건 히데요시 개인사례고 일반화 하지말곤 백년간 교류없긴 교류는 늘상 있었음 그리고 통신사들도 둘다 히데요시 야망이랑 의중은 알았고 조선 또한 알아서 대비는 했는데 대비한 이상의 병력이라 개판난거고
병신아 왜구들은 후세 똑같이 밥벌이 하라고 해로 알려주는게 정상인이 할법한 생각 아니노? 어떻게 명과 조센 서해 턴 그 수많은 왜구들이 죄다 자식들한테 밥벌이 해적질하라고 해로도 안 알려준다는게 말이나 되노? 빙신 같은 논리노 ㅋㅋㅋㅋㅋㅋ
보수는 니애미 창년새끼가 몸팔고 쳐받는거고 병신국뽕장애새끼야
전쟁 끝날때까지 육로 수송못해서 말라뒤지질 않았는데 계획도 없던 해상수송 이지랄 망상으로 국뽕빠는게 애미뒤진 국뽕새끼들 수준ㅇㅇ
ㅋㅋ 남해안왜성존버 상황에서 육로 수송못해서 말라뒤지질 않았던게 참 자랑이다 ㅋㅋㅋ
이 새끼 논리대로면 어떻게 글도 모르는 일자무식이 명까지 넘어가고 서해로 돌아가서 인천 털 수 있노? 일자무식은 왜구들이면 항로도 그릴 줄 모를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쓴이 존나 병신이노. 걍 조선이 조운선 그쪽에서 운용안햇다고 없는 뱃길치네ㅋㅋㅋ 정작 기술력 더 딸리던 고려시대에는 그쪽 수로 잘만이용해서 조운선 운용했고 한낱 왜구들도 서해수로 이용해서 털고다녔는데 시발 무슨 빈약한 논리로 선택지에서 빼버리노?ㅋㅋㅋㅋㅋ 근거라고는 아무튼 잊었당께 밖에 없고ㅋㅋㅋ
논문 1~2개보고 글쓴새끼라 다른쪽에서 나오는 논리는 반박못함
ㄴ 글쓴놈은 책한권읽은 새끼가 제일 위험하다라는 말의 살아있는 증거인듯
이야 조선도 보급할때 조운로 이용하는데 글쓴이의 무식한 주장 잘봄 ㅋ
육로로 보급이 안되면 당연히 수로로해야되는데 태평양도 건너던 새끼들이 해로 없네 걍 하지말아야지ㅋㅋ ㅇㅈㄹ한단다 ㅋㅋㅋㅋ
애초에 일본군에 육로로 보급이 안된적이 없는데 병신국뽕새끼야? 어디에 안된다는 씹소리가 쳐써있노?
육로보급이 수월하게 되어서 벽제관에서 이겨놓고 협상장에 나와서 협상하고 남해안으로 빠졌냐
어 본문에 써있어 넌 본문전제부터 부정하는구나ㅋㅋㅋㅋㅋㅋ
병신새낀가 육로 수송하다 의병에 짤린적은 있어도 전쟁 끝날때까지 육로 수송못해서 말라뒤지질 않았는데 계획도 없던 해상수송 이지랄
어 본문에 써있으니까 거기 반박해 병신아 ㅋㅋㅋㅋㅋ
의병에 보급 존나 짤리고 한반도 산악지형 좆같아서 보급 때려치고 남해안으로 후퇴해서 해안선 따라 육로보급한게 자랑?
간단히 정리 해본다. 1. 일본군은 수군을 이용한 남해-서해안 수송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건 기록으로 확인되는 팩트. 2. 그러나 조선 수군이 원균, 박홍마냥 다 무너졌다면, 전쟁이 장기화 되는 동안 일본군이 어떻게 해서든 해안 수송로 개척해서 사용했을 것이라는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임. 따라서 조선 수군 활약이 일본군의 보급 계획을 원천 봉쇄했다는 전제는 맞는 이야기임.
그런 가능성이야 부정 안하지 ㅇㅇ
멀리 볼것도 없이 고려말-조선초 왜구들은 남해-서해를 거쳐 요동까지 잘만 다녔다. 수군이 없었다면 당연히 이 루트 다시 열어서 이용했음.
임진왜란 떄 일본군 절반이 조선백성이었다. (선조실록)
노략질하던 왜구들 개인이 아니고 영주 휘하의 군사아니면 용병들 아니냐, 그럼 충분히 글로 남겨서 써먹을수있겠네. 아님 일본인이 그렇게 대가리 텅텅빈 병신들이라는거임?
니새끼는 쓰지도 않는 해로를 몇백년동안 전달하냐 병신국뽕저능아새끼야? 그냥 망상꼬라지부터 대가리 저능한 국뽕장애새끼 수준
아무리 해적이라도 항해사가 있고 항해사가 기록을 남기는건 당연한거아님? 진짜 어이가 없네 니 바다 무시하냐?
왜구들이랑 육지 싸움하던 영주들이랑 다름.나눠진 번국들이 다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라 그런 중요기술,인력들 유출 안시키지.일본 내 전투에서도 해전은 주로 해적들 고용해서 담당하게 함
요서까지 털던 후기왜구 서해 잘만 이용하던 대중무역하던 일본인들 어리둥절ㅋㅋㅋ
후세 다 뒤지라고 해로 자식들한테 안 알려준 왜구 의문의 병신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새끼노 아니노
백년넘게 한-일 교류 단절되었다는 점을 간과한 이야기임. 조선도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잊엇고, 일본도 조선이 뭔지 거의 잊었음. 히데요시는 조선이 대마도 영주 나와바리인 줄 알고 대마도 영주가 복속했으니 조선도 당연히 복속하러 올 걸로 착각할 정도였음. 그러니 과거 왜구들이 사용한 남해-서해 해로를 일본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수가 없음. 물론 결국 시간 문제, 1-2년 정도 시간이면 일본이 남해-서헤안 해로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수송선 띄우는건 시간 문제였음. 단지 임진년 그때 당장 할 능력이나 여건이 안되었던거지
왜구들이면 평생 직업이 해적질인데. 자식들한테 물려줄 직업에서 제일 중요한 해로를 그 수백년동안의 수많은 왜구들이 싹 다 안 알려주고 뒤졌다? ㅋㅋㅋ 에라이 좆병신 닛뽄징 새끼들아 ㅋㅋㅋ
진실을 알려주겠다 1. 조선의 조운선은 서해를 통해 한강으로 이동했다 2. 조선은 수군의 우선순위를 경상도(왜구방어)>황해,경기(조운선)>전라도(지리적이점)순으로 중요하게여겼다 3. 경상도 해군이 전멸했을때도 조선은 서해를 지키기위해 전라수군만 움직이는 상태에서 경기,황해수군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4. 일본육군은 육군과함께 전라도를 뚫기위해서 부산을 거점으로 공격을 진행했으나 전라도에서 전부막혀서 서해안에 진출하지 못했다
당시 본토가 갈려나가는 조선에 경기도 황해도 수군을 유지할 여유가 있었음?
걍 다른곳에 투입안하고 방어만 한거임 심지어 조선후기에도 항상 한강 방어할려고 거북선도 황해,경기에 존나 많이배치함
일본군이 수륙병진 작전을 하려다 조선 수군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썰은 그냥 조선측 착각이였다는 것이 요즘 학계 분위기더라. 그 주장은 일본측 기록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조선측 기록만으로 억측했던 것이고, 지금은 일본에서도 당시 군사 상황에 대한 여러 자료들이 발견, 조사되면서 애시당초 수륙병진 작전 같은건 없었다는 것이 확실시됨.
ㅇㅇ 일본 사료도 같이 보는게 중요함
이미 결론이 내려진 학계에, 일부 뉴라이트 또라이들이 개소리 좀 했다고 그게 요즘 주류 의견이 되냐 ㅋㅋ
뉴라이트가 왜나옴? 듣기 거북한 내용만 나오면 소환하는 겨?ㅋㅋㅋ
니가 달았던 다른 대댓에 있던 교수가 뉴라이트임 ㅄ아 ㅋㅋ
니가 참고한 자료가 뉴라이트 교수가 쓴 내용이다 ㅋㅋㅋ
ㄴ 일단 내가 단 댓글은 위의 댓글이 처음이고, 대댓에 있는 뉴라이트 교수는 누구를 말함?
글쓴이한테 한 말임. 222.110 너 말고
아 뉴라이트가 왜나옴? 이라는 댓글이 글쓴이가 쓴 댓글인줄 착각함
애초에 글쓴새끼 논문 1~2개보고 이 글 싸지른새끼인데 뭘 바람
조선시대 역사적 사실 평가는데 뉴라이트는 또 뭐임? 그때도 좌파 우파 있었던 거임? ㅋㅋㅋㅋ
또 개소리 ㅋ -
내륙: 육로로 이동하므로 당연히 효율이 가장 떨어짐 동해: 어디서 내리든 한양에서 매우 멀어서 중간에 육로를 이용해야 함 서해: 대부분의 경로라 바다 위이며 육로는 아주 잠깐 이용하면 됨 선택지가 이 셋인 상황에서 굳이 서해로 가지 않을 이유가...?
전라도쪽 해로는 뱃길 자체가 험해서 사고나기도 쉽고 지리를 잘 알고있지 않으면 힘듦 ㅇㅇ 당연히 일본쪽은 그럴 생각도 없었고 일본군 문서를 봐도 보급로에 성을 쌓고 조선 게릴라들로부터 방어한다 이런 계획밖에 없음.
명군도 심지어 초반에는 육로로 운송했음 전근대에서 해로로 운송하는거 자체가 상당한 리스크를 지는 행위임
평안도도 잉류지역이라 조운선 경험이 없어서 서한만에도 배 못 띄우고 육로로 운송하는 판이었는데 뭘 ㅋㅋ
박제가가 찡찡댄다고 진짜 도로도 없고 수레도 안썻을거라 생각하는 대가리
16세기 전근대 국가에서 아 조선도 조운로를 운용안하니 우리도 항로 이용하는 수군보급작전을 운용하지말자 라고 했을까? 그냥 수틀리면 이러하자 저래하자 왔다리 갔다리 주먹구구 했을거 같은데 - dc App
진짜 주먹구구여서 히데요시는 부산 까지밖에 쌀배달을 안했고 다이묘들은 그냥 팔도로 흩어짐 일본 수군이래봤자 해적 영지 병사들인데 양대 수군중 하나인 와키자카도 좋다고 육지로 진격함
아 태합 내가 조선 지리 잘모르지만 까짓거 부산 먹고 남해 서해 타고 한양보급하면 되지 않것소? 우리가 강남까지 갔다오는 바다사나이들인데 그깟 조선반도 해안 하나 못다닐까 수군보급 ㄱㄱ 합시다. 난 전근대 마인드로는 오히려 이랬을거 같은데 - dc App
아니 조센같은 땅덩어리에 수군보급을 안하면 군대가 전진을 못함
육로로 보급하면 중간에 쌀이 썩거나 부패해서 버려짐.. 시일이 오래걸리니까
애시당초 히데요시의 구상은 조선의 영토를 각 대명들이 자기 영지로 삼아서 식량이나 기타 물자는 현지 조달한다는거 였음. 무슨 대대적인 보급 계획 따윈 없었다.
근데 전국시대부터 현지조달하다가 좆망한케이스가 겐신 오다와라공성부터 한둘이아닌데 바다 건너 외국에서 현지조달하겠다고?
또 쌍도새끼들이야?
히데요시가 자꾸 쳐발리고 오니까 싸우지마라고해서 포기한거지 일본수군은 서쪽으로 진군했음 글쓴새끼가 좆병신인게 수군병력 왜 버려가면서 서쪽으로 갔겠냐?
일본 수군이 그런 수송 능력이 없었다는게 들어나는 또다른 부분이 딱히 조선 수군이 활동하지도 않는 동해안에서도 일본 수군이 전혀 활동안한 점에서 들어남. 함경도에서 보급 부족으로 가토가 그렇게 애를 먹지만 뻥 뚤린 동해안을 이용한 보급은 시도도 안함. 뱃길 잘 모름 + 수송 능력 미흡으로 애시당초 해운으로 멀리 북쪽의 일본군에 지원한다는건 능력 밖의 일이였고, 그들이 할 수 있는건 부산-대마도 구간을 지키는 정도였음.
동해쪽으로 명나라 조선군이 경주까지 치고 내려와서 못 간거임
가토가 함경도에 있을때는 그 전의 상황 아님?
저당시 부산에서 대마도가는것도 어려웠음... 나중에조선통신사들 대마도 가는데 최적타이밍 몇달기다리고 가서 기약없이또 기다려서 일본감... 그냥 부산보급도 힘들던시기인데 서해동해는 할 엄두도안났겠지
서울함락시키고 함경도로 간거고 병력 빼버린건데 그리고 경상북도 함락 안 당했는데 거기로 어케가냐? 적들 아가리로 운송하는새끼가 어디있어?
무슨 적들 아가리? 경상북도 북쪽-강원도는 산간 지역이라 사람 자체가 거의 안사는 동네였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인구밀도 가장 낮은 지역이구먼. 당시엔 인간 자체가 거의 없는 빈땅들이였음.
그리고 서울 점령 이후 일본군은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로 분산 이동하며 주요 거점 점령 시도했음. 죄다 선조 쫓아 북으로 올라간게 아님.
그래서 보급 못하고 내려왔는데 그리고 동고 서저라서 산넘어야 하는데 수군이 거길왜감? 거점 못먹엇으니까 경상남도까지 내려간거지 의
대체역사 = 망상딸딸이
육로로 보급한다는건 현지 조달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조선은 그런 경제 규모가 안됨 해상 운송만이 북진 방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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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작전은 인도아대륙 내륙인데 태평양 재해권이 뭔 상관이야 병신국뽕저능아새끼야 니새낀 내륙에서 해상으로 보급함?
이순신 일뽕이라서 일본 붓하고 일제 먹물만 사용했다며.. 그림도 일본 장인들이 그린 그림 열심히 모았다고 함 반일씹덕의 원조인 새끼인데 이런 새끼를 왜 빠는지 ㄹㅇ 이해불가 조국같은 새끼인데
왜긴 장군이 존나 잘싸웠으니까 빠는거지
육로로 수송한 일본군에 이순신이 보급 차단해서 이겼다는 이딴 말도 안되는 개센징 날조선동이 아직까지 쳐먹히는게 개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지능 수준 ㅇㅇ
ㄹㅇ
육로수송 효율이 ㅄ이라 평양까지 먹고 바로 남해안까지 밀려난게 현실인데?
못한걸 안했다 이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근대 시대엔 보급 육로수송이 불가능하다는 개씹센징 저능아새끼들 대가리 수준이면 내륙국가들은 애초에 전쟁 일으킬 능력도 없다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가 성립됨
-짱깨-
ㄴ 애미뒤진 국뽕개센징 저능아새끼 발작
-짱깨-
전근대에 보급 육로수송이 불가능하다는 개씹센징 국뽕저능아새끼들 논리대로면 개센징 좌빨 틀딱영포티새끼들이 빨아주는 짱깨 삼국지도 없던 역사 ㅇㅇ
ㄴ 애미 양수에서 대가리 터져버린 국뽕개센징 저능아새끼 발작ㅇㅇ
-짱-
일뽕은 정신병이다
이걸 꾸득꾸득 국뽕으로 결론짓는 센징 머역첩 wwww
내 뇌피셜로 뭐 칼같이 수군보급하자 말자 했을거 같진 않고 그때그때 사건마다 의식의 흐름이 있었을거 같음 - dc App
아 조선반도 수군보급 하면되지 ㅋㅋ - 아 조선해안 좆같네 수군보급 때려쳐 - 뭐 한양 점령? 야 다시 수군보급 가 - 아 이순신 미쳤네 수군보급 때려쳐 - 뭐 원균? 이거 좆밥이네 야 잔당치고 수군보급로 열러 전라도로 가자 - 아 명량 이게 뭐임 게임 좆같이 하네 수군보급 때려쳐 - dc App
熊谷半次・垣見弥五郎重而被差下当春可被成御渡海之旨、被仰出候処、乍憚被成御延引候様ニと奉存、有姿致言上候。 一、都之兵粮、色々穿鑿仕、ぞうすいを給居候て、今四月十一日迄之分御座候、諸々成兵粮之儀、熊谷半次垣見弥五郎可有言上事。 一、釜山海之御兵粮も山坂に而御座候間、五日路六日路、道中届かね可申候哉、川に付て船にてのほらせ申儀も、今のつなぎの御人数にては難届候由申候、又当春御渡海被仰付候人数ニて、河筋被差上候共、右之日限之内に、先々へ届申間敷や、日を送り候共、さきさき十日路共、自由ニは難届奉存、右様子は両人見及候間、可有言上事。 一、全羅道慶尚道成敗之儀、各申談相勤無越度様ニ、随分見計可申付候、乍去城責なども一旦責には手負出来、次よりは重而之城責も難成御座候間、兵粮つき申所より責申候はは、仕寄ニて五日も三日も日数を送りせめ申候はは、落去可仕候條、其段見計、無油断可申付事。
<3月3日付け京城からの諸将連名信> <3월 3일자 경성에서 온 제장연명신>
일,전라 경상도 양국을 진압한 뒤 해단천변의 (보급로도) 병량이 확보할 수 있는 곳마다 성들을 튼튼히 만들어 간다.이 외의 나라도 두려워 억누를 수 있다.이러한 사정으로 상시 인원과 수고가 필요한 상황이므로, 당해 히데요시 스스로의 도해는 꺼리지만 미루고 싶다. 一、全羅道慶尚道の両国を鎮圧したあと、海端川筋の(補給路も)兵粮が確保できる所々には城々を丈夫に造っていく。これ以外の国も恐れて押さえることができる。こういう事情で常時人数と手間が必要な状況なので、当年の秀吉自らの御渡海は憚り乍御延引願いたい。
일,전라도 경상도 진압에 대해서.각 군단 상담 협력하여 실수하지 않도록 상당히 힘쓰고 있다.성공도 일단 공격하면 사상자는 나고 다음부터는 더 어려워진다.병량이 처치된 곳에서 공격 5일 3일이나 계속 공격하면 일거에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가늠하면서 방심하지 말 것을 명한다.
일,경성에서여러곳으로연결된성을말한다.우희다슈 가문의 군세로 수도를 지키기 위해 주변 3곳의 성을 쌓는다.모리 요시나리 방면은 1개소, 시마즈 요시히로 방면은 2개소, 이동 유베 방면은 1개소, 성을 마련할 것. 일,장종아부와봉스카간대산(鳥嶺)고개에는조선군게릴라들이성을만들기위해봉스카가출성을쌓을것을명했다.인원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카토 키요마사·나베시마에서 인원수 천 명 정도를 가리킬 것을 명령했다.
걍 일본군 문서에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육로로 보급하는 정황이 그대로 있는데 존재도 안하는 해로보급 타령하면서 개잡장 이순신 전쟁영웅 만드는거임 ㅇㅇ 센징이들의 역사왜곡, 망상은 혀를 내두를 정도임
저 위에서 개처발리니 이제는 똑같은글 새로 도배하고 있네 ㅋㅋㅋㅋ -
,(일본에서 집하하여) 부산항에서 병량을 보내더라도 도중은 산비탈에 많고 경성까지 5,6일 걸려 길을 가다가 (게릴라도 있어서)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강(한강?)에서 (경성으로) 배로 보내는 것도 지금 일본군 인원으로는 어렵다.또 당춘 어도해 후속부대가 강줄기를 따라 수송한다 하더라도 (게릴라 때문에)5, 6일 만에 도착하는지 아닌지, 또 다시 아치형으로 전달하게 되면 10일 이상 걸려 자유롭게 보급하는 것은 어렵다.이 실상은 구마가야가키미 두 사람 모두 보고 알고 있어 언상 말씀드린다.
釜山海之御兵糧も、山坂に而御座候間、五日路六日路、道中届かぬ可申候哉、川に付て船にてのほせ申儀も、今のつなきの御人数にては、難届候由申候・・・・・
ㅇㅇ(221.163) << 결국 보급도 안되고 한양에 있는 일본군들 조선 사창 털어먹으면서 식량 한달남았다고 부들대다가 사창이 불타니 남해안까지 퇴각했는데 ㅋㅋㅋ -
언제부터 사료한줄 못대는 국뽕센징이들의 막댓사수 절규가 국뽕이들의 승리가 된거임?
ㅇㅇ(221.163) << 결국 보급도 안되고 한양에 있는 일본군들 조선 사창 털어먹으면서 식량 한달남았다고 부들대다가 사창이 불타니 남해안까지 퇴각했는데 ㅋㅋㅋ -
ㅇㅇ(221.163) << 너가 지금 위에서 도배하고 있는 일본 연명장이 일본군 보급이 안된다는 증거야 등신아 ㅋㅋㅋㅋ -
왜 히데요시가 이순신이랑 싸우지 말라는거는 꼭 빼먹음? 처발려서 못간거 일뽕 애미만 모름? ㅋ
일본 수군 도합 9500명이고 센징이들 수군만 3만명이었는데 센징 수군이랑 싸우라고 명령 내리는게 병신아님?
수군 9,450명구키 요시타카(1,500명)도도 다카토라(2,000명)와키자카 야스하루(1,500명)가토 요시아키(1,000명)구루시마 미치후사(700명)구와야마 마사하루(1,000명)도쿠이 미치토시(700명)스가이 에몬쇼(250명)호리우치 요지요사(850명)스기와카 덴사부로(650명)
1만명도 안되는 규모가 일본수군 전부였고 애초에 히데요시는 이새끼들은 그냥 약탈, 수송 정도 역할만 기대했지 병량보급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길 생각조차 없었어요 병신아
ㅇㅇ(221.163) << 당시 인공위성이라도 있어서 상대 수군 숫자 알 수 있었던거냐? 이 병신은 일본 우익들 자료 도배하는거 빼고는 볼것도 없네 ㅋㅋㅋㅋ -
와키자카가 1500명으로 깝치다가 이순신이 2만명 조선수군으로 다굴해서 깨진거 보고 대충 조선수군 규모는 파악가능하지 병신아 ㅋㅋㅋ
병신ㅋㅋㅋㅋㅋ 그래서 한반도남부 누가처먹었냐고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현실인정! 좀! 하라고! 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이! 한반도! 못 처먹고! 런친게! 현실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ㅇㅇ(221.163) << 뭔 개소리 하는지 ㅋㅋㅋ 2만명이면 판옥선 120척 이상 되어야 되는데 ㅋㅋㅋㅋ -
그래서 서울까지 잘 보급했는데 벽제관에서 이겼어도 남해안으로 철수함?
나: 니말이 맞으면 전략적 가치 1도없는 바닷길에 왜 수백척씩 꼬라박은거임? 221: 그거 구라임 센징이들만 믿음 나: 일본 사학계는 빡대가리라 즈그조상이 수백척 꼬라박은거 믿는거임? >이 이후로 답글못받음 답좀해주셈; - dc App
이렇게까지 안하면 남보다 우월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어 ㅠㅠㅠㅠ 몇년을 갈아넣어서 짜깁기한 자료를 복붙하며 날 깔봤던 센징이들을 비웃을거야 ㅠㅠㅠㅠㅠ 현실인정하라고 통렬한 일침을 날리며 자아도취에 빠질거야ㅠㅠㅠㅠㅠ - dc App
ㅇㅇ(221.163) << 이 병신은 자기가 '걍 일본군 문서에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육로로 보급하는 정황이 그대로 있다고 내놓은게 반대로 일본이 보급 안된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고 짖어대는 병신임 -
ㄴ ㅇㅇ 그건 명군의 보급로를 길게해서 고통을 주고 일본군의 보급을 더 편하게 하기위한 의도적인 행동임 실제로 전장이 남해안이 되자 명군은 극심한 보급난에 고통받았음 그 결과가 사로병진군 10만명 전멸로 나타난거고
걍 일본군한테 전술부터 전략까지 조선과 명은 철저히 농락당하고 패배했음 굵직한 전투에선 모두 일본군한테 대패한게 조선과 명임 그래서 이길 가망이 없었다고 인정한거임 센징짱꺠들이
삼로의 군사가 패전하다 이때 동로(東路)의 중국 군사는 2만 4천 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5백 14명이며, 중로(中路)의 중국 군사는 2만 6천 8백 명이고 우리 군사는 2천 2백 15명이며, 서로(西路)의 중국 군사는 2만 1천 9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9백 28명이며, 수로(水路)의 중국 군사는 1만 9천 4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7천 3백 28명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10여만 명이었다. 군량과 무기도 이에 비등했는데, 삼로(三路)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무너지니, 인심이 흉흉하여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었다. (是時, 東路天兵二萬四千, 我兵五千五百十四名; 中路天兵二萬六千八百, 我兵二千二百十五名; 西路天兵二萬一千九百, 我兵五千九百二十八名; 水路天兵一萬九千四百, 我兵七千三百二十八名, 共計十餘萬。 資糧、器械
왜(倭)가 조선(朝鮮)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관백(關白)(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죽고서야 화란(禍亂)이 비로소 종식되었다. (自倭亂朝鮮七載,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中朝與屬國迄無勝算, 至關白死而禍始息)
황본학자들도 교차검증하고 딴소리 안하는데 조센징 명예황국신민만 부정하는 www
그래서 누가이겼음???? - dc App
10배 많은 병력으로 행주산성 같은 언덕도 못먹는 일본군이 병신이네 ㅋㅋㅋ
굳이 따지자면 조선이 알아서 통신사(조공사) 보내면서 쇼군 즉위식마다 끌려오게 하고 중국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일본의 승리인듯 조선이 비참한게 통신사가 일본 내에서 류큐 사절처럼 조공사절로 인식되는거 알면서도 일본의 재침이 무서워서 꼬박꼬박 보냄
이길 가망이 없고 어쩌구저쩌구 중얼중얼중얼 왜 시발 인정을 안함?? 한반도 남부 못처먹고 런쳤다니까?? 니가 니입으로 현실인정 하라며? 왜 니는 현실인정을 안함?? - dc App
아니 애초에 한반도 점령이 최소 정유재란 시작이전까지 히데요시 명령이었는데 벽제관에서 이겨서 더 밀고올라가면 임무수행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상황 더 유리하게 만들겠다고 남해안 왜성으로 철수함?
실제로 당대 일본인들 인식은 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벌하고 함락시켜서 조선인들이 매년 조공사를 보내오는게 통신사들이라고 생각했음 실질이 크게 다르지도 않았고
센징이들도 대마도 들어갔다가 200명 뒤지고 쫄아서 튄 주제에 나중에 대마도주가 조공바쳤다고 대마도 정벌 승리라고 자위하잖아 일본도 같은 논리로 임진왜란 승전국임 조선측이 결국 무릎꿇고 조공사절(통신사) 보내면서 속국 형태로 일본 영향권에 들어온거라
ㅇㅇ(221.163) << 그건 막부가 자기 위신때문에 꾸민거고 등신아.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조공받으러 온 사자 대접하기 위한 비용이 1년 예산이나 됨? -
히데요시가 목표를 조선완전점령에서 남부지방영토화로 바꾼거라고 변명할까봐 말해두는데 애초에 히데요시가 목표를 바꾼 이유도 육상보급이 무리라는걸 알게 된 게 이유 아니냐?
부산항 보급이 육로 보급이고 해로로 보급하면 규수에서 한양까지 다이렉트로 보급이 가능한데 뭐하러 게릴라 쳐맞아가면서 육로로 보급함?
통신사가 조공사면 그거도 니가 일본건너가서 빡대가리 일본 사학계 계몽시키면 되는거고ㅋㅋㅋㅋㅋ 이새끼 대단한 새끼노 일본사학계도 모르는걸 시팔 몇개를 알고있는거냐; - dc App
실베바위 끌려오니 온동네 파리들이 다 꼬였노..
실베고로시의 무서움 ㅋㅋ
반박도 ㅈ같이 못하면서 뭐가 무섭노
자신있으면 학계로 가야지 디씨에서 똥글싸고 뭐하노
누가 보면 학계에 없는 걸 말하는 줄 알겠노
니가 말하는 학계 = 뉴라이트 ㅋㅋㅋ
나에게 세발의 총알이 있다면 한발은 더러운 짱깨새끼에게 한발은 음침한 쪽바리새끼에게 나머지 한발은 요 애미뒤진 일뽕일베충 버러지 새끼 대가리에 쏘겠소.
역시 과거인들은 븅신들이라서 이순신을 1등공신으로 넣어놨구나... 이제 이해했어!
원균도 1등공신이고 선조 따라다닌 애들도 공신인데 뭘 ㅋㅋ 그리고 이순신이 사기에 끼친 영향은 크긴함
이순신이 보급로 차단해서 이겼다는거 헛소리였누
일단 그게 참이 되려면 일본군이 육로로 보급을 했다는건데
길도 지랄맞았던 똥조센 지형에서 어떻게 육상으로 보급을 ㅋ
괜히 고려시대부터 조운선이 발달되었겠노? 육상으로 조세를 실어나를수 없어서 배를 띄운건데
강을 이용하면 70%는 수로로 갈수 있대
일부 병신들이 얘기하는 보급로 약탈이 거짓말인거고 남해서부 계속 잡고 있어서 해상 보급를 애초에 만들지를 못하게 한건 팩트임
ㄴ 게이야 ㅋㅋ 니 말이 정답이 되려면 일본군이 육상으로 보급을 해야됨 ㅋㅋ
명이 뒤에서 쳐준다는 전제 하에 보급로 차단이 의미 있는 거 만약 조선 단독으로 싸우는 거면 이미 육상 다 점령한 상태라 수군들 다 육군이 괴멸할 수 있음
근데 육상으로 보급을 하려면 중간에서 곡물이 썩잖아.. 지랄맞은 기후덕택에 병기는 곰팡이 들어 녹슬고 ㅋㅋㅋ
그런 손실이 있었으니까 일본이 한양에서 퇴각을 했지 ㅋㅋ
보급품 대다수가 쌀이었을텐데 쌀을 수천톤을 수레에 실고 조령과 죽령 산골짜기를 넘어서 한양을 친다고? ㅋㅋㅋ
산골짜기마다 의병들이 득실거리고 산적과 호랑이들이 득실거린 똥조센땅에서 육상보급은 자살행위야
글쓴놈아 그런 손실이 보이는데 손놓고 있다가 퇴각하는게 말이되냐 ㅋㅋ 니 논리대로면 약탈선이나 겨우 막을 줄 아는 수준의 수군 무시하고 칠천량해전에서 이겼을때처럼 해군 집중시켜서 바다도 장악하면 해결되잖아 ㅋㅋㅋ
그 약탈선이랑 일본 수군이랑 역량은 거의 똑같았지 그러니 조선수군을 뚫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거임
애초에 약탈선=해적=일본수군임 조선처럼 따로 병종분리가 되어 있는게 아님
그럼 결론은 이것밖에 없다 「히데요시는 애초에 한반도를 점령하려고 온게 아니라 그냥 조선땅 초토화하고 인구약탈하려고 조선 침략했다」
미국 양덕들도 임진왜란이슈 나오면 이순신 찬양하던데 어디서 이런 버러지들이 기어나와 선동을 하는건지?
해전은 아주 잘했으니 찬양할만 하지 전술적 능력과 전략적 입지는 다름 ㅇㅇ
저능아 집단인 뉴라이트가 주장하고, 그거에 감화된 사회 낙오자들 중 하나가 디시에 이런 글 남기는 거임 ㅋㅋ
그리고 씨발 누가 논문 한두개가지고 이게 학계주장이다 팩트다라고 얘기하냐 글쓴병신새끼야ㅋㅋㅋ
ㅇㅇ(59.15) 이런 저능아는 찬양받는것과 역사적사실을 고찰하는것을 구분짓지도 못하는 주제에 왜 글을쓰지? 이런 저능아는 키보드 압수해야함.
장애인새끼라 관련학과 나왔으면 안할주장 하는거보니 저능아 대역갤새끼답노ㅋㅋ
61.255게이야 고찰을 하려면 인터넷에 똥글을 쌀게 아니라 학계로 가서 대학원도 가고 논문도쓰고 그래야하는거 아니노
미국인중에 이순신 아는 사람하고 노부나가 아는 사람 비교하면 노부나가 압승일텐데ㅋㅋ - dc App
학계? 좌빨쪽 후원받으면 좌빨에 유리한 소리하고 우빨에 후원받으면 우빨에 유리한 소리하는 조선학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 역자학자들은 기레기랑 다를바 없는 인종들이야.
양키새끼들이 이런걸 어떻게 알아 병신새끼야 느그 씹센징 국뽕새끼들 날조선동 그대로 보고 좆도 모르고 씨부리는거지 저능아년아
뭔 개소리인가 했더니 대체역사 씹덕들이었노? ㅋㅋㅋㅋㅋ
일본 사무라이들이 노다치들고 돌격하면 조선군들 겁에질림? 키도 더큰데? - dc App
일본 해적들이 노다치 들고 무지성 닥돌하면 명나라 군대도 바로 다 런쳐서 명나라 장수들 뒷목잡고 쓰려졌다
일본군 6명한데 수천명 빤스런함.용인전투
실제로 노다치 한번 휘두르니 말탄 갑사가 말과 함께 두동강 나버렸다고 함..
겁에 질린놈은 이미 훈련이든 맨탈이든 싸우기 모자란 병사란 소리임. 그런놈은 노타치가 아니라 단검만 들고와도 항복함
아니 근데 수백년전 해상왕국 백제가 중국 요동 산둥반도랑 필리핀이랑 일본 규슈에 진출했었는데 대체 왜 조선은 해안가찔끔밖에 못다님? 왜 퇴화했냐? 이정도면 시간변화 고려했을때 호주대륙에 식민지 하나정돈 만들어둬야 정상아님?
그렇게 항해술 퇴보한 국가의 수군이 무서워서 바다로 보급할 계획을 접어버리는 왜놈들 ㅋㅋ
간단함 수백년전 해상왕국 백제라는거 자체가 센징이들 망상속에만 존재하는 구라니까
ㄴ 그게 맞다면 그런 허접한 수군을 보유한 국가를 상대로, 육상보급이 제대로 안돼서 힘든 와중에도 해상보급을 포기하는게 말이되냐 ㅋㅋ
ㄴ백제는 인구부터 전성기까지 과장은 팩트맞긴함
이때 먹혔어야했는데 씨발
일본에서도 이순신때문에 패전했다고 설명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씨발 ㅋㅋㅋㅋㅋㅋ
저능아같은 소리. 명나라때문에 패했다고 수백차례 언급되고 이순신은 그냥 잘싸웠다라고만 나옴.
일본에서 이순신이 뜬 것은 징비록 출판 이후 그리고 웃기게도 메이지 유신 이후 해군 키우려고 이순신 엄청 띄움
명나라가 오히려 이순신 치켜세웠는데 뭔 씹소리들이냐 ㅋㅋ 이래서 대역갤은 답이 없다니까
일본 명나라 다 이순신 물고 빠는 기록이 널렸는데 뭔 개소리세요? ㅋㅋㅋㅋㅋ
도독인 진린 마귀가 이순신 후빨오지게 했는데 대역갤은 개 병신들만 모아놓음?
ㄴ 짱깨 장수가 이순신 후빨했다는건 조선기록에만 있느 센징이들 망상임 중국기록엔 이순신 그냥 진린 꼬봉 1로 노량에서 뒤졌다는 기록 한두줄밖에 안나옴
조선기록이 동아시아에서는 정확성이 최고수준인데 뭘까내려 ㅋㅋㅋ
짱깨새끼들도 명나라 역사 참고할 때 지들꺼 못믿어서 조선기록으로 확인하는건 아냐? ㅋㅋㅋ
조선왕조실록 인용한 시점부터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는 이순신 유명수군도독도 인정해야함 ㅋㅋㅋ
유신이후 해군키울때 이순신 거렸다는것도 시바료타로 소설의 창작임
조선왕조실록의 정확도가 최고긴 씨발ㅋㅋㅋㅋ 정확이고 나발이고 결국 편찬사서는 그 국가와 그 조직의 세계관과 체험만이 반영된거다. 그래서 모든 사서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타국의 사서등과 교차검증을 반드시 하는거고ㅋㅋㅋ 교차없이 1차사서 따위의 정확도가 무슨 의미가 있어 씨발ㅋㅋ
이종무 대마도가서 깨진거도 솔직하게 적은게 조선왕조실록인데 뭐 체험만이 반영된다고 ㅈㄹ하고있냐
진린보다도 더 높은 명나라 정1품 도독 직위를 이순신한테 보낸게 명나라다 병신들아 ㅋㅋㅋㅋㅋ 명나라도 지들 사령관보다 캐리한 이순신을 더 높이 평가했는데 대체역사갤은 ㄹㅇ 병신들 밖에 없냐?
애초에 경남같은 똥땅에 조량 바칠 게 뭐 있냐
포스코있고 중공업 다 경상도에서하는데 뭔 풀뜯어먹는소리 제대로 알짜땅인데 항공우주산업도 경상도에서하고
부산항만해도 그 가치가 얼만데 ㅅㅂ 그냥 앉아서 3분만 생각해도 이런소린안나오겠노
부산 포항 발전한건 현대시대일이잖아 병신들아 조선시대 부산은 시도 아니고 동래구의 일부일뿐이었어
전라도 쪽은 섬이 많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배를 못댐 그래서 경남으로 와야 배를 댈수가 있다
배를못댐)고대엔 잘만 이용함 + 고려도 이용함
히데요시 본인 제외 아무도 원하지 않던 전쟁 ㅅㅂ 가신들이 전쟁 전부터 반대했고 히데요시 사후에는 바로 빤스런
대역갤이 욕먹는 이유
조선시대에 배로 조운선 못띄웟다고? 고려는 어캐 띄웟냐?
다시는 고려의 해양력을 무시하지 마라...
ㄴ논문 한두개보고 통찰가진 병신
ㄴ뒤에 밀린 댓글들은 쿨한척 무시하는 그저병신
고려는 태조부터가 해적인데
시이발 ㅋㅋ 88올림픽도 못본새끼가 허다한디 뭔 슨진왜란이노 ㅋㅋㅋ
한적이 없는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던거지 이순신이 한산에서 죽치고 졸라게 괴롭히는데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하자마자 달려간게 서해 바로 앞 진도까지 간거고 또 이순신한테 대가리 깨짐. 그리고 육군도 명나라한테 쫙다 밀려서 울산 경주 사천 경상남도 일부에서 버티기 밖에 못함. 화포전력 기마병력도 명이 압도적으로 쌔서 전면전 걸어버리면 개처발림
갤러리 이름이 대체역사 갤러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육상보다 해운이 더 가성비 좋은데 니말대로 육로운송 고집했다 치자. 니가 말한대로 지상에선 의병들로 보급로 막히는거 뻔히 보이면 마침 소화할 항구도 한양에 있겟다 당연히 서해로 돌아서 보낼 발상하는건 당연한거 아니냐
글쓴새끼 인천상륙작전 모르는가봄 ㄹㅇ 짱깨새끼인듯?
뒤늦게 발상을 했을 수는 있지 이순신 때문에 발상 단계에서 끝났겠지만 본문은 초기 계획에서는 그런 계획이 없었을 거란 말임.
일뽕 = 토착왜구 = 병신
판옥선도 다 씹어먹는 해군능력을 갖췄고, 조선수군은 약탈선이나 겨우 막는 수준밖에 안되고, 육상보급은 차질이 생기고, 이러면 당연히 조선수군 몰아내고 해상보급 하려고 하지 않겠냐 ㅋㅋ 글쓴이 니 주장대로라면 이 조건을 다 갖춰놓고 해상보급 생각못하는게 말이 되냐고 ㅋㅋ
칠천량해전을 통해서 조선수군은 그냥 다 씹어먹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해놓고도, 해상보급 계획 못 세웠다는게 글쓴이 니 주장이냐 ㅋㅋㅋ
애초에 섬나라에서 다른 나라 점령하러 떠나는데 해군 수준 파악도 안하고 가겠냐고 ㅋㅋ 그리고 그 해군 박살낼 자신없이 가겠냐고 ㅋㅋㅋ 이길수있겠다는 자신감이 있는데 해상보급 생각을 안하는게 말이 되냐고 ㅋㅋ
약탈선=일본수군=해적임 약탈선을 털 수 있으면 일본 수군도 당연히 털 수 있음 ㅇㅇ 칠천량만 빼면 다 털렸으니 히데요시가 해전 금지령을 내렸지
그러니까 보급하려고 시도했는데 이순신한테 개털려서 포기한게 먼저라는 거임. 보급 계획이 없어서 이순신하고 전면전을 한적이 없는게 아니라
해로 지식 없음 + 중간 기항지 없음 + 호위함대 해줄 놈들은 육지에 나가 있음 인데도 이순신과 만난 수십척 왜군들이 보급선이었을까 보급하려고 했던 시도의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임.
그럼 뭐하러 한산도에 330척 몰아넣냐 ㅋㅋ
한산도에 물자가 넘쳐나서 욕심났냐 ㅋㅋ
해로 지식없다고 단언하는게 걍 ㅈㄴ웃겨 ㅋㅋㅋ 포로나 항복한 애들중 아는새끼 당근 있었을테고 대명 무역할때 서해 거쳐서 간 경우도 있는데 고려말-조선초 이후로 서해에서 왜구 기록없다고 해로모른다 단언하는게ㅋㅋㅋㅋ 저기 동해안 약탈하던 읍루는 한참 지나서 어케 동해안 일대털다가 울릉도 대마도까지 갔을지 안이상함? 그전까지 교역이랑 약탈기록 없었는데ㅋㅋㅋ
ㄴ한산도에 330척을 언제 몰아넣음? 한산도 대첩에서 깨진 와키자카의 함대 다 합해도 80척 안됨.
해로 지식 없는데 한산도는 욕심났다 이건가? ㅋㅋㅋㅋ 칠천량해전처럼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왜 진격해서 쳐맞냐고 ㅋㅋㅋ
아 명량이 330척이지 ㅋㅋ 암튼 한산도랑 명량에 왜 그렇게 꼬라박냐고 ㅋㅋ
와키자카랑 구키는 히데요시가 특별히 모아서 조선수군 걷어내라고 해서 온거임 ㅇㅇ
명량은 전라도 초토화 작전 하려고 온거고
지랄 ㄴ
ㅇㅇ(221.163) << 이순신이 고군산반도 갔을때는 정유재란인데 ㅋㅋㅋㅋ 임진왜란때 일어난걸 이후 정유재란 명령서로 설명하로 하는 병신이 있네요 ㅋㅋㅋ -
선조실록 99권, 선조 31년 4월 15일 기사 5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오 총병 접반사 윤형이 왜적의 정세에 대해 치계하다국역원문.원본 보기 오 총병(吳總兵) 접반사 윤형(尹泂)이 치계하였다. "총병이 설태승(薛太勝)이 보고한 왜정(倭情)을 당보(塘報)로 보내왔기에 등서하여 올려보냅니다. 그 내용은 ‘이달 7일 울산(蔚山)에서 도망쳐 나온 고려인 이명(李明) 등을 조사하였더니 그의 말이, 「관백(關白)이 3월에 병을 앓았는데 청정(淸正)은 관백이 죽기를 기다려 그가 죽으면 철군하여 들어가서 자신이 왕위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관백의 병이 호전되어 청정에게 그곳에 있고 철병을 하여서는 안 되며, 중국군이 비록 수가 많기는 하나 양초가 모자라서 머지않아 돌아갈 것이라고
선조실록 114권, 선조 32년 6월 20일 정유 5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정원이 한 동지가 중국군의 철군에 대한 일로 언급한 것으로써 아뢰다 정원이 아뢰기를, "오늘 아침에 한 동지(韓同知)가 【한초명(韓初命). 】 차비 통사(差備通事)를 시켜 급히 어전 통사(御前通事)를 부리기에 이언화(李彦華)를 그 아문에 보냈더니, 동지가 분부하기를 ‘어제 철병에 대한 공문(公文)을 보았는가?’ 하므로, 대답하기를 ‘저는 듣기만 했을 뿐 보지는 못했다.’ 하니, 동지가 말하기를 ‘그대 나라에는 양초(糧草)가 없으므로 중국군이 오래 머물러 보았자 이익될 것이 없으니 모두 철수해 가는 것이 옳다. 전
. 하루라도 빨리 철수하면 하루의 양식을 덜 것이요, 하루라도 더 머물면 하루의 양식이 허비된다. 하루라도 일이 있어 머무르는 것은 옳지만 왜적이 현재 다시 움직일 동태가 없는데, 군대 병력이 그저 양초만 축내고 있으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철병하는 일에 대해선 천조에서 우리들이 멋대로 조처하지 말고 국왕과 상의해서 하라는 말이 있었으니, 그대 나라에서 처치하는 것이 가하다.
이미 명나라는 전쟁 후반기부터 극심한 군자금 부족과 보급난을 겪고 있어서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던 상태였음
왜성만 지킨다고 한반도 남부가 영구영토화됨? 정사삼국지 위오전쟁에서 오나라가 이릉성만 지키다가 어떤꼴났는지 모르냐
명나라 군량의 운반 이 많은 양의 군량미를 일시에 운송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명나라 원군이 왜군을 추격하여 서울을 수복하고 남쪽으로 진격함에 따라 보급로는 길어졌고 의주에 쌓아 둔 명나라 양곡을 남쪽까지 운반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었다. 양곡 운송방법은 두 가지가 있겠는데 하나는 육로를 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해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해로를 이용하면 육로보다 힘을 적게 들이고 한 번에 많은 양을 운반할 수 있는 이점은 있으나, 계절의 장애를 받을 뿐만 아니라 배의 부족 등 곤란한 점이 많아 초기에는 육로를 택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의병이나 의승군의 일부가 군량미 운반으로 전락한 것은 명군이 조선에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처음에는 명군이 남쪽으로 전진하기 이전인 관계로 군량운송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으나, 왜군이 선조 26년(1593) 4월 19일 서울에서 철수하여 남쪽으로 쫓겨가자 싸움터가 그 곳으로 옮겨감에 따라 군량의 수송거리도 몇 배로 늘어났다. 이에 종전의 수송인력으로는 명군이 급식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군량미를 운반할 수 없어 인력을 늘리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므로 부득이 실전에 참가한 관군을 차출하여 군량운송에 충당하였으며, 그것으로 부족하여 난중에 지휘관을 확보하기 위하여 선발한 무과급제자 중 미처 싸움터에 나가지 못한 자들까지 군량을 운송하는데 충당하는 일도 있게 되었다.153)
명나라가 보낸 군량미의 수송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체로 육로와 해로 두 길을 택하였다. 선조 25년 12월 명군이 내원한 이래 선조 27년 8월 일단 본국으로 철수하기까지의 기간은 주로 육로로 수송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정부는 수복지역의 소나 말을 징발함은 물론 왕의 호위병과 동궁행차에 따르는 군인 중 말을 소유한 자와 호남의병 가운데 말이 있는 자를 차출하여 명군의 군량미를 운반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는 기강이 해이하여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했고, 한 사람이 2斛을 운반하는 괴로움을 면치 못했다. 또한 대부분의 소나 말이 왜군에게 약탈당한데다 명군이 수용으로 매일 수백 두씩 도살되었으므로 운반에 이용할 마소도 날로 부족했다. 그러므로 男負女戴하는 경우도 허다하여 의주에 적치된 명군의 양곡을
. 그러므로 男負女戴하는 경우도 허다하여 의주에 적치된 명군의 양곡을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도중에 소모되는 양이 더 많아서 출발지의 양과 도착지의 양에 상당한 격차가 나타났고, 따라서 군량미 보급의 절대부족을 면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의주에 쌓아둔 명나라 군량미를 육로나 해로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이 있었다. 운송 도중에 많은 양이 소모되었을 뿐 아니라. 소모인력이 부족하고 수송수단도 원활하지 못하여 명나라에서 보낸 양곡으로 명군을 급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족량을 국내에서 조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ㅇㅇ(221.163) < 바닷길로 수십만 군량 보내서 겨우 바닷가 끝에 몇개 박아놓은 왜성에서 밥만 축내는 일본은 여력이 남았는가보네 ㅋㅋㅋㅋ -
그럼 빨리 일본 사학계 가서 논문쓰셈;; 일본 사학계 개병신이라 이순신한테 즈그조상이 배 수백척 갈렸다는거 인정하고 있음;;; - dc App
일본군이 남해안을 전장으로 삼은건 명군의 보급난을 심화시키고 일본군의 보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음 이 전략은 매우 유효해서 이미 명군은 긴 보급거리때문에 극심한 보급난을 겪고있었음 반면 왜성은 성마다 군량과 탄약이 풍족하고 전쟁수행능력을 잃지 않은 상태였음
유격과의 사이에 상기와 같은 협정이 이루어지면, 곧 일본군은 조선의 수도, 그리고 몇몇 다른 요새를 계피인에게 돌려주고, 관백으로부터 해로 수송되어 온 풍부한 식량과 탄약이 있는 해변지대로 물러났다
들의 성채를 가능한 한 견고한 것으로 하려고 생각해, 일본에서 실시하는 것과 같이, 절단하지 않는 돌을 이용해, 벽도 요새도 하얗게 석고를 바르고, 천수라고 부르는 높은 탑을 마련해, 한 성씩에 단성을 처치하고, 서로 그 완성을 경쟁했다. 관백에서 임명된 3명의 무장에 의해 식량과 탄약――그들은 실로 풍부하고, 1595년의 9월까지 충분히 가지고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양이 있어, 그들은 그 분배를 위해 관백으로부터 임명되고 있었다――가 분배되고 끝나면, 그 성채에는…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에서도 왜성마다 탄약과 식량이 풍부헀음을 전함
제가 처음 안동에 도착했을 때 고을 수령이 왜적의 진영에다 곡식을 운반해주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사실로 여겨 의심했습니다. 울산을 격파한 뒤 왜적들의 군량을 보니 모두가 왜적의 토산 쌀이었고 조선의 쌀은 없었으므로 비로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선조실록>
ㅇㅇ(221.163) < 오죽 병신이면 임진왜란 초창기 서쪽으로 수백척 보낸거 처발려서 서쪽으로 못가고 이후에도 보급때문에 북으로 올라갈 생각도 못한걸 이렇게 옹호하고 자빠질까 ㅋㅋㅋ -
선조실록에서 역시 왜성에 있던 쌀은 조선쌀이 아니고 모두 일본 토종쌀이었다고 전함 즉, 보급은 아주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것 반면 명군은 보급난이 이미 매우 극심해서 더이상 군대를 움직이기도 힘든 형편이었음
ㅇㅇ(221.163) < 오죽 병신이면 보급이 안되서 한양에서 조선이 모아놓은 사창이나 털어먹다가 식량 없어서 남해안까지 내려온걸 이런 개소리로 옹호할까 ㅋㅋㅋㅋ -
아니 그래서 졌냐고 이겼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히데요시는 이미 죽기전에 명군의 전쟁수행능력이 바닥났다는걸 간파했고 일본군에게 철수하지 말고 자기가 군대를 이끌고 친정할때까지 기다리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였음 히데요시 상태만 멀쩡했으면 조선은 뭐 끝장났다고 봐야지
"총병이 설태승(薛太勝)이 보고한 왜정(倭情)을 당보(塘報)로 보내왔기에 등서하여 올려보냅니다. 그 내용은 ‘이달 7일 울산(蔚山)에서 도망쳐 나온 고려인 이명(李明) 등을 조사하였더니 그의 말이, 「관백(關白)이 3월에 병을 앓았는데 청정(淸正)은 관백이 죽기를 기다려 그가 죽으면 철군하여 들어가서 자신이 왕위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관백의 병이 호전되어 청정에게 그곳에 있고 철병을 하여서는 안 되며, 중국군이 비록 수가 많기는 하나 양초가 모자라서 머지않아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관백이 군량 1만 석을 징발하여 곧 바다를 건너오기로 되어 있으며, 8월 사이에는 관백이 직접 왜노들을 통솔하여 부산에 머무를 것이다. 」 하였고, 또 말하기를, 「울산에는 왜노 3천 명만 남아서 지키고
" 뜻하지 않게 관백의 병이 호전되어 청정에게 그곳에 있고 철병을 하여서는 안 되며, 중국군이 비록 수가 많기는 하나 양초가 모자라서 머지않아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관백이 군량 1만 석을 징발하여 곧 바다를 건너오기로 되어 있으며, 8월 사이에는 관백이 직접 왜노들을 통솔하여 부산에 머무를 것이다." 히데요시 상태만 좋았으면 조선은 그냥 끝장이었다고 봐야지 ㅇㅇ
씨발 자료 많이도 모아뒀다 ㅋㅋㅋㅋㅋ 디씨질에 몇년 갈아처넣으면 이렇게되는거냐 - dc App
명군 역량이 병신이 되든 안되든 일단 왜성만 지키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안 되잖아? 결국은 해안가 왜성에서 나가서 북쪽으로 진출해야 한반도의 완전점령이든 한반도 남부 영토화든 이루어낼 수 있는데 일단 해안가 왜성 나가는 순간 일본도 왜성방어어드밴티지 사라지고 보급문제 또 발생하는데 대체 어떻게 전황을 움직이겠다는 거임?
통제사 이순신이 적 수군의 동태 및 아군의 준비상황을 아뢰다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의 서장에,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예교(曳橋)에 주둔하고 있으며 2월 13일에는 평수가(平秀可)가 그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같은 곳에 주둔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사(舟師)는 멀리 나주(羅州) 경내의 보화도(寶花島)에 있으므로 낙안
. 우리 주사(舟師)는 멀리나주(羅州)경내의보화도(寶花島)에 있으므로 낙안(樂安)과흥양(興陽)등의 바다에 출입하는 왜적이 마음 놓고 마구 돌아다녀 매우 통분스럽습니다. 명량 이후 일본수군이 제집처럼 남해안을 들락날락해도 손가락만 쪽쪽빨고 통분드립만 치던게 개잡장 이순신의 현실 ㅇㅇ
결론) 자신의 비루함을 조상탓으로 돌리고 싶은데 그마저도 여의치않아서 if도르를 치고있다 - dc App
히데요시가 직접 온다고 해도 왜성 나가면 별 수 있나? 해전경력 0인 히데요시가 조선수군이랑 정면대결후 보급항로 개척해서 실어나를거임? 아니면 한반도 산악지형에 터널이라도 뜷어서 보급하게?
ㅇㅇ(221.163) < ㅋㅋㅋㅋ 똑같은 레퍼토리만 되풀이하고 임진왜란 초기에 부산 서쪽으로 갔다가 이순신에게 깨진 수백척 왜선이 뭔지는 대답도 못하네 ㅋㅋㅋ -
당장 히데요시 죽은해에도 이미 출격명령이 있었음 ㅇㅇ 명군이 빠지면 왜성에서 주기적으로 나와서 학살하고 인구 약탈하고 초토화하는거 어케 막을건데? 명군 전쟁수행능력은 이미 상실된 상태였고 언제 조선에서 발뺄까만 기다리는 처지였음
국뽕들은 그냥 현실을 인정하셈
ㅇㅇ(221.163) < 히데요시가 가면 드랍십이라도 나와서 내륙 진출을 위한 보급이 된대냐 ㅋㅋㅋㅋㅋ 히데요시 정권만 뒤집히는거지 -
수백척 왜선이 깨진 적이 없음 이순신 최대 업적인 한산도에서 와키자카가 이끈 수군은 1500명이었음 애초에 이순신 본인부터가 날조장계로 전공과장을 밥먹듯이 하던 사람이었음
현실 인정안하는건 너임 ㅇㅇ 결국 남부점령 못하고 런친걸 인정못해서 웅얼웅얼...주절주절... - dc App
ㅇㅇ(221.163) < 그런 전쟁수행능력도 없어진 명군 밀어내지도 못하고 성에서 처박혀있지만 했던 일본군은? ㅋㅋㅋㅋㅋㅋ -
사료하나 못가져오는 국뽕들이 그런말을 해봐야 전혀 설득력이 없지만 ww
국뽕들은 그냥 현실을 인정하셈>팩트) 일본이 남부 못처먹은거 인정못하고 사료 체리피킹하며 if도르 딸딸치는건 211 본인이다 - dc App
삼로의 군사가 패전하다 이때 동로(東路)의 중국 군사는 2만 4천 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5백 14명이며, 중로(中路)의 중국 군사는 2만 6천 8백 명이고 우리 군사는 2천 2백 15명이며, 서로(西路)의 중국 군사는 2만 1천 9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9백 28명이며, 수로(水路)의 중국 군사는 1만 9천 4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7천 3백 28명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10여만 명이었다. 군량과 무기도 이에 비등했는데, 삼로(三路)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무너지니, 인심이 흉흉하여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었다. (是時, 東路天兵二萬四千, 我兵五千五百十四名; 中路天兵二萬六千八百, 我兵二千二百十五名; 西路天兵二萬一千九百, 我兵五千九百二十八名; 水路天兵一萬九千四百, 我兵七千三百二十八名, 共計十餘萬。 資糧、器械
왜(倭)가 조선(朝鮮)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관백(關白)(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죽고서야 화란(禍亂)이 비로소 종식되었다. (自倭亂朝鮮七載,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中朝與屬國迄無勝算, 至關白死而禍始息)
ㅇㅇ(221.163) < 보급이고 뭐고 하나도 안되어서, 방어하기 좋은 물이며 산맥이며 다 버려두고 그나마 보급되는 남해안 바닷가 왜성으로 빤쓰런친게 임진왜란때 일본군이었는데 ㅋㅋㅋ 그걸 인정못해서 이렇게 개소리인지. -
조선왕조실록, 명실록 공통적으로 이길 가망이 없었다고 빤히 기록이 있는데 센징이들은 죽어도 지들이 유리했다고 망상중 www 팩트는 히데요시만 좀더 오래살았어도 조선은 끝장났다는거
ㅇㅇ(221.163) < 이, 그 강한 일본군이 왜 싸우지도 않고 한양에서 남해안 바닷가까지 한방에 빤쓰런했는지 ㅋㅋㅋㅋ -
근데 진짜 왜 국뽕들은 사료한줄도 못가져오면서 깝치는거임? 악만 남아서 막댓사수만 하면 니들이 이기는거 같음? 걍 불쌍함 ㄹㅇ로...
난 현실인정 졸라잘하고 있음 지금 한반도 남부 한국꺼임 일본꺼임?? 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막댓사수고 나발이고 현실인정하라길래 하고있다고 말하는데 왜자꾸 헛소리함? 진짜 몰라서 물어봄 ㅋㅋㅋ - dc App
ㅇㅇ(221.163) <- 임진왜란 초기에 서쪽으로 간 수백척이 박설난거나, 안양 지키던 일본군이 식량없다고 한방에 남해안까지 내려간것만 해도 답 나오는데 ㅋㅋㅋ -
ㅋㅋㅋㅋㅋ 빨리 막댓사수하러 오셈 현실인정하기로 한거임? - dc App
왜성 안에서야 조선군이든 명군이든 털어먹었는데 왜성 안에서 인구약탈이랑 초토화가 가능하냐? 일단 인구약탈이든 초토화든 왜성 나가야 가능한건데? 왜성 나가서 이제는 지키는 입장 된 권율이랑 붙으면 또 이치전투 행주산성 시즌2라도 찍으려고? 그리고 왜성만 줄창지키다가 가끔씩 인구약탈 초토화 위해서 마실 나가는 상황은 다이묘들 입장에서도 전혀 좋지 않았을텐데? 일단 우키타 히데이에부터 가문 내부 개판이 된 상황이었고
병신 데꿀멍한거 보소 지인생 몇년 갈아처넣으면서 모은 자료들 1분간격으로 싸갈기면서 고작 한다는게 '히데요시가 안죽었으면 조선남부 털렸으니 조센징은 현실을 인정하셈' 현실은 일본이 조선남부 못처먹은게 현실인데 누가봐도 니가 현실인정 못하고있음 지입맛에 맞는 사료를 댓글 한페이지로 꽉꽉채울정도로 인생을 갈아처넣을정도로 인정을 못하고있는건 너임ㅋ - dc App
게이야 이치전투니 행주산성이니 뭐 이런거 일본측 사상자 몇백명도 안되는 개 마이너한 국지전임 맘먹고 일본군이 공략한 남원성 같은 경우는 센징군 5000명과 짱깨군 3000명이 모조리 몰살당헀음
하여간 센징이들이 개 좆도아닌 조선측의 티끌만한 국지전 승리 이런걸 마치 대승인것마냥 망상하고 조작하니까 저런 병신들이 마치 조선군이 자체적으로 방어능력이 있었던것처럼 망상하는거지 ㅇㅇ 행주산성이니 이치 전투니 이런거 걍 일본군이 좀 찔러보다가 다른데로 이동한거임 전쟁에 진짜 아무런 영향도 없던 씹 국지전임
정유재란 시작하고나서 전라도 전역이 모조리 학살당하고 경기도 안성까지 파죽지세로 일본군이 다 휩쓸고 다녀도 저항한번 못했던게 조선군임 ㅇㅇ 애초에 명군 아니면 조선측은 전쟁수행 능력 자체가 없었음
조선왕조실록 인용한 시점부터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는 이순신 유명수군도독도 인정해야함 ㅋㅋㅋ
ㄴ 그거는 센징실록도 아니고 어디 뭐 이순신 후손이 쓴 개병신 기록에 나오는거 아닌가?
아 알았다고ㅋㅋㅋㅋㅋ알았으니까 현실인정좀 해라ㅋㅋㅋㅋㅋ 한반도 남부 못처먹고 런쳤다고ㅋㅋㅋㅋㅋ - dc App
임진년에 일본국이 크게 패한 곳이 세 곳인데, 그중 이치를 첫째로 삼습니다 일본 승려 화안 ㅋㅋㅋㅋ
여기서조차 패배하면 넌 남을 내려다보는 기분을 느낄 유일한 기회가 사라지니까 인정을 못하는거임 ㅇㅇ 근데 인정해야함 일본은 조선남부 못처먹었고 런쳤음 컄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조선왕조실록이랑 정조 본인이 쓴 문집에 유명수군도독 나오는데요?
釜山海之御兵糧も、山坂に而御座候間、五日路六日路、道中届かぬ可申候哉、川に付て船にてのほせ申儀も、今のつなきの御人数にては、難届候由申候・・・・・
ㅋㅋㅋ 조선왕조실록도 이제 댁 입맛에 맞는 기록만 취사선택하게?
ㅋㅋㅋㅋㅋ 어질어질하노?? 지인생 몇년 처갈아넣으며 짜깁기해온 자료 1분간격으로 긁어오더니 갑자기 존나 버벅거리노 이새끼ㅋㅋㅋㅋㅋㅋ - dc App
현실 인정안하는건 너임 ㅇㅇ 결국 남부점령 못하고 런친걸 인정못해서 웅얼웅얼...주절주절... ->36분에 본인이 쓴 댓글에 관통당해서 그후로 대가리 뜨거워져서 횡설수설하는중 - dc App
센징실록 선조 부분이 아니거나 선조 수정실록이거나 후대 정조나 이런 쪽에서 이순신 후손 구라질을 그대로 믿고 쓴 기록이겠지 ㅇㅇ 당대 기록에 순신이가 명수군 도독 받았다는게 있을수가 없음 개구라거든
뭐 있으면 그거 나름대로 센징이들 실록 자체가 씹구라 헛소리라는게 증명되는거지만 ww
그리고 이치 전투 조선군 1500명 따리가 일본군을 격퇴해봤자 얼마나 큰 피해를 줬겠음? 뭐 1500명이 한 10만명 학살했어? 기껏해야 몇백따리 좀 죽이면 많이 죽인거지 ㅇㅇ
센징이들 기록만 봐도 일본군 수급 100개정도만 나와도 대승이라고 감격함 ㅇㅇ 병신같은게 울산 전투에서 대가리 짤린 짱깨 센징이들만 2만명이고 사천성에서 시마즈한테 코베인 센징 짱깨새끼들만 7천명인데 말이지 ㅇㅇ 한 몇백명 뒤진 의미도 없는 전투로 딸딸이 치는거 안 비참함?
1500이 10만명 죽였든 10명죽였든 일본이 한반도 남부 못처먹고 런쳤다고!현실인정 좀! 해라! 좀!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또 뇌피셜 넘겨짚기 나온다 ㅋㅋㅋ 아따 내 입맛에 맞는 조선왕조실록 기록만 조선왕조실록이고 내 입맛에 안맞는 기록은 구라투성이센징실록이랑께 ㅋㅋㅋ
이렇게까지 안하면 남보다 우월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어 ㅠㅠㅠㅠ 몇년을 갈아넣어서 짜깁기한 자료를 복붙하며 날 깔봤던 센징이들을 비웃을거야 ㅠㅠㅠㅠㅠ 현실인정하라고 통렬한 일침을 날리며 자아도취에 빠질거야ㅠㅠㅠㅠㅠ - dc App
히데요시 상태가 좋았으면 쇼군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었겠지 - dc App
수륙병진작전= 보급아님? 와키자카야스하루가 한양으로 갈려는거 막은것도 한산도대첩이고 이거에대해서 반박좀.
정유재란의 수륙 병진은 수군도 하삼도를 털고 육군도 하삼도를 터는 것을 말함 와키자카가 한양으로 가려 한다기엔 한산도는 경상도 아래에 있음 조선수군을 걷어내려 했다고 하면 몰라도 한영을 겨냥하기엔 너무 멀지.
그러면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육군에있다가 해군으로간건 수륙병진작전을 위한게아니라 그냥 이순신을 제거하려고 그랬다는거임?
한산도가 경상도 아래라서 한양으로 가려던게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진짜 미치겠노 ㅋㅋㅋㅋ
지도는 보고 하는 말임? ㅋㅋㅋㅋ
수륙병진+왜성 박기가 보급로 개척이라고 볼수 있는데 전쟁 끝날때까지도 보급 목적지인 한양 평양까지 연결을 못시킴.오히려 전선만 쓸데 없이 늘리는 게 됐지
와키자카는 원래 육군인데 영지가 해적들 있는 곳 처음에는 자기 하고 싶은대로 육지로 진격 이순신에게 일본 수군 썰리니까 히데요시가 불러서 남해로 옴 그리고 똑같이 썰리니 해전 금지령 입갤
근데 고니시 유키나카가 선조에게 보낸 "이제 우리 수군 10만이 서해로부터 오게 되는데 대왕의 행차는 어디로 가십니까? " 라는 편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함 이것만으로는 일본이 서해를 갈 생각이 있었다는 근거가 되기엔 부족함?
10만이라는 것부터 뻥카 냄새가 나는데 그런 병력이 일본에 남아있다면 예비대였을 것임 아마 나고야에 남겨놓은 예비대 ㅇㅇ 그거 외에 다른 다이묘들은 이미 자기 배정받은 지역으로 병력 끌고 들어간 상태.
물론 조선 입장에서는 서해로 일본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은 충분함 그러니 유성룡은 이순신을 더 고평가한 거고
그리고 1592 6 월 23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보급로 확보와 조선 수군 제거를 위한 일전을 펼치라는 명령이 장수들에게 하달되었다는건데 이것도 그럼 뻥카라고보는거임? 보급로 확보는 뻥카고 조선수군 제거가 진짜 내용인거임?
ㄴ그거 우리역사넷에 써있는 내용이잖음 아직 업데이트가 안된 거고 사료에 그렇게 나온 게 없음 있으면 이 글은 바로 반박되는거고 ㅇㅇ
정리하자면 일본이 임진왜란당시 서해해로를 뚫을려고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해로를 몰라서 안뚫었다는거는 네 뇌피셜인거네
팩트) 역시 선조대왕이 명군이시긴 하네. 이순신 역할이 별거 아닌거 다 꿰뚫고 계셨네 근데 무지몽매한 조선인들이 선조가 이순신 질투했다고 음해했구나!
요즘 전라도 홍어색희들이랑 능지장식 꼴페들이 뭐라고 날조하는지 아냐? 이순신이 전라도 사람이랜다ㅋㅋㅋ 이순신은 선친 이전 때부터 고위직 관료 지낸 서울 사람이다 그리고 이순신 전라도 가기 전에 한양, 전방, 충청도 다 돌아다녔구만 뭔 이순신이 전라도 사람이라고 날조 처하고 있어 홍어색희들아ㅋㅋㅋㅋ
이순신 과대과장의 결과지 이순신 패배한 적 물론 있는데 전승이라 구라질.... 명량해전도 기록에 의함ㄴ 일본군이 들이치는 바람에 도망치는 것이었는데 서해진출을 막아선 승전으로 기록... 명량해전 이후에 이순신은 지금의 경기도에 가까운 고산군도로 도망침. 도망쳐서 명나라 수군올 때까지 숨어지냄. ㅋㅋㅋ 더군다나 역대급 패전... 최후의 해전인 노량 해전 고니시 무사히 도망감. 명나라 진린은 거의 죽을 뻔함. 조선 이순신 이하 거의 모든 주요 장수들 모조리 전사. 피해척수가 조선이 적다고 하는데 사실 객관적 근거라 할 수 없음. 사실 조선해군 대부분의 전과는 원균이 있을 때 이룩한 것임. 원균이 찌질하다고? 사실 그 반대였음.
칠천량 해저에서도 데이터 터지냐?
이순신은 싸우려 들질 않음. 원균이 일본군 처들어 온다고 급히 출동을 요구하지만 이순신은 조정의 명령없이는 안된다고 버텨서 원균이 조정에 장계를 넣어서 이순신을 출동하게 만듬. 근데 그 조차도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음. 적극적으로 싸운 건 전력이 미미하던 원균과 원균 휘하의 병졸들임. 이순신은 그냥 외곽에서 포격지원만 해고 먼산... 적과 당파를 하던건 모조리 원균 휘하의 병졸들임. 근데 이 전과를 원균이 공동 전과로 올리자고 하니까 이순신은 천천히 하자고 해놓고 조정에 자신과 자신 휘하 장수들의 단독 전과인 것처럼 구라침. 이걸로 원균과 갈라짐. 그 이후에 난중일기보면 계속 원균 디스질함. 이것이 역사적 팩트~
칠천량 패전의 가장 큰 원인이 원균 No~ 이순신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 이순신은 원균의 좌천 이후에 거의 아무런 전과가 없었음. 조정에서 왜 안나가 싸우냐고 하니까 병마 즉 육군의 지원이 있어야 싸울수 있다고 주장함. 하지만... 이순신이 가장 병력은 조선군 중 압도적 최고!! 2만명을 보유하고 있었음. 최고 대빵 권율 조차도 3천 병력도 안되는 수준가지고 굴리는데 2만넘는 벼력을 껴안고 출격 안한다고 함. 조정에서 진주성은 좀 출격해서 도와주라고 했지만 거절~ 더 결정적은 것은 계속 이순신이 싸우질 않으니까 경상도 지역에 거의 모든 섬과 해안을 일본군이 야금야금 다 잡아먹음 결국은 조선수군의 본거지 거제도 반대쪽에까지 상륙해서 기지를 꾸리는 바람에 조선 수군 완전히 ㅈ됨. 조선 수군 출격했다간 본진
털릴 수 있을 지경까지 이르게 됨. 이순신에 비해 원균은 조선 최고로 많은 병력과 병장기를 보유하고 육전을 기피하는 이순신이 잘못됐다고 주장함. 필요하면 육전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순신은 끝까지 안싸움~ 틀어박혀서 계속 칼만 갈음. 결국... 거제도에 역병이 돌아 조선 수군이 거의 괴멸 수준으로 병력을 다 잃게됨. 그래도 조선 조정은 오히려 식량과 술을 내려서 이순신을 달래지만.... 그래도 안싸움.
개 열받은 조선 조정이 첩보를 받아 정유재란이 일어나기전 일본 대빵이 건너온다는 첩보를 받아 좀 가서 작살내라고 하지만... 이순신은 묵쌀... 안 싸움~ 진짜 대빵이 건너왔다는 것이 알려지고... 조선 조정은 완전히 개열받음!!! 조선 조정은 혹시나 해서 원균한테 이순신이 육군의 지원이 없으면 못싸운다는데 진짜냐?라고 물어봤더니 원균이 장수라면 당연히 육전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함... 이순신 짜르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 대빵으로 앉힘. 원균이 와서 봤더니... 자신이 구축해 놓았던 경상도 도서에 전진 기지들 다 사라짐. 거제도 반대쪽에 일본군 기지까지 진출함. 이순신이 도저히 출격이 불가능한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것임.
원균이 칠천량 해저에서 검거 ㅋㅋㅋ
원균은 그제서야 ㅈ된 걸 인식함. 게다가 일본군도 옛날처럼 도적질이나 하는 작은배 위주가 아니라 앗사리 해전으로 쳐붙으려 대형선 위주의 대함대를 거느리고 나타남. 결국 이순신과 한패였던 권율이 곤장을 쳐서 원균을 출전시키지만... 조선 수군은 부산진으로 가는 길목에 과거 조선군의 전초기지였던 섬들이 모조리 다 털려서 쉴 곳이 없었다고 함. 일본군이 없을만한 섬에 상륙해서 쉴려는데 일본군 매복에 걸려서 털리는 일을 당해서 결국 조선수군은 노젓다가 볼짱다봄. 지치고 싸울 기력도 없고 해서 그냥 돌아가서 칠쳔량에서 완전히 골아떨어져 쉬다가 털림.
이순신은 ㅈㄴ 과대포장이 되었는데... 그의 인자해 보이는 초상화 덕이 쿰. 실제로 보이는 초상화는 ㅈㄴ 표독스롭고 야비하게 생김. 기록에도 후덕한 관상은 아닌 것으로 추정됨. 게다가 이순신의 전과로 알려진 전투 1/3정도는 이순신이 앗사리 참가하지도 않았고 대부분 전투에서 그냥 부수적 세력이었음. 전투들이 대부분 경상도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순신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고 원균은 자기 영역이니까 ㅈㄴ 노력한 것이 팩트 근데 문제는 이걸 이순신이 야비한 방법으로 가려챘다는 것임. 이뿐 아님. 부산포에 있었던 일본군 보급기지 대화재도 다른 장수가 했는데 자기가 했다고 장개를 올리다 딱 걸림. 남의 공 가로채기의 달인이 이순신이었다는 것임. 구라라고 팩트임~ 이순신을 무슨 성웅으로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해서 삼도수군통제사에서 쫓겨났다? 팩트가 아님. 이순신은 계속 조종의 의견 무시하고 남의 공을 가로챈 사실 등등으로 분노를 누적시키고 있었음. 조종은 오히려 참고 참고 또 참고 사기를 돋우려고 했는데 계속 이순신이 어그로를 끈거임. 이순신이 짤릴 때 쯤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은 상황이 되서 짤린거임. 조선 조종과 선조가 ㅈㄴ 무능했다? 절대 아님. 선조 ㅈㄴ 똑똑하고 이성적인 놈이었음.
지랄하노
선조 머리 좋았다 말고 맞는말이 없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