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긴 이야기인데 나름 파란만장 삶이라고 생각하고, 수험생활간 느낀 바가 있어서 간단한게 글을 써보게 되었다.

나름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느끼는 듯해서 한 번 내가 나중에 돌아볼라고 글 써본다.


먼저 난 91년생 외국계 보험회사 3번째 회사 3년차인 직장인이다.

SSH 11학번 사회과학 89.6/930 졸업했음.


원래 원전공은 졸라 재밌어서 학점 잘 받았는데, 취업안될까봐 불안해서 복전한게 학점 다 깎아먹고 내 인생 최대의 후회이다.

그 때는 회사생활에서 성공하신 아버지 보면서 취업이랑 샐러리맨 드림을 꿈꿨었다.


근데 대학교 생활 때, 스포츠 마케팅, 만화 편집 이런 덕업일체만 꿈꾸다가 좌절한지라, 준비가 안 되서 준비안된 취업의 현실은 무서웠다.

문돌이에게 영업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고, 90번째 자소서 만에 나름 업계인에게는 알아주는 회사에 첫 취직했지만,

제조업 꼰대들의 술영업 논리에 학을 떼며 1년 만에 내 발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고 또 10개월 동안 자소서 130장 쓰고,  나름 이름 있는 외국계 제조업 영업 들어갔는데,

말만 외국계고 첫 번째 회사가 선녀로 보일법한 꼰대, 막장 관행에 개고생했다.(이 때 첫 회사 그만둔 거 졸라 후회함...)


그래도 첫 회사 그만둔 뒤라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고, 그 때 공장 영업 3달도 안 다녔는데, 구두를 2번 살 정도로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선배의 리베이트 영업 제의에 표정 관리 안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3개월 수습 통과를 못하고 짤리게 되었다.

이 때 동기랑 초밥집에서 펑펑 울다가 서비스 받음....(사장님 감사합니다.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 이대로 안되겠다. 업계를 바꿔야겠다 생각했다.

제조업 아닌 쪽으로 틀어서, 6개월 동안 자소서 70장 쓰고 외국계 보험 회사 영업 실장으로 뽑혔다.

나름 영업 현장도 좀 굴러봤고, 해서 보험 설계사 언니들 나름 잘 다룰거라 자신 있었는데,

진짜 실적 안나오는 사람 갈구는게 너무 힘들더라...

위에선 왜 안 갈구냐고 난리 치는데, 열심히 하는데 못하는 사람 갈구는게 정말 힘들더라.

그리고 난 왜 실적 잘 뽑아도 인격 안좋은 아줌마들이 그리 싫냐...

설계사 분들한테 잘 보일라고 집에서 과자 만들어가고 그러기도 했는데, 결국 실적 유지가 힘들면서 1년 만에 자존감이 꺽이고 출근이 싫어지는 걸 느꼈다...


이 때쯤 부터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회사 생활이나 영업에 안 맞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첫 회사에서도 회사가 문제인게 아니라, 내가 문제여서 그랬던 걸까 같은 생각도 들었고....(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었음)

게다가 세상 바뀌는 것도 보이니, 뭔가 빅데이터나 이런 자격증이라도 따서 회사 팀이라도 옮겨볼까 이런 생각에 이것저것 알아보게 되었다.


근데, 전문직하는 친구들이, 원래 언어는 잘 했으니 리트를 해보는게 어떻냐고 말해줬다.

원래 관심 하나도 없었는데, 22학년도 리트 집리트로 풀어보니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표점 116 정도 나왔었다.


아는게 디씨 밖에 없어서 여기 갤에 글 써보니 다 공부해 보래서, 22년 11월에 공부 시작했다.


근데 회사에서 12월에 내가 힘들어 하는거 보고 다른 쪽으로 팀 옮기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줬었다.

뭐 말이 제안이지 선택의 여지는 없는 거였고, 직무 전환하게 되었다.(사실 쫓겨난거임)

2월까지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바뀐 팀이 나름 분위기 좋고 하길래, 그 이후에는 자연스레 그냥 회사 생활에 중점이 쏠리면서 공부 실시간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말은 공부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냥 주말에 책만 펴놓는 레벨이었고...

그냥 회사 다녀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23년 5월 뭔지 자세하게 설명하진 못하지만, 회사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때 뒤늦게 다시 공부에 옮겨봤지만, 맘은 안 잡히고,

제대로 놀지도 공부도 않고, 첫 실릿을 보게 되었다.


시험을 잘 보면 그게 말이 안되는 거고, 결과는 무려 표점 95점....

모의고사 전체를 통틀어도 최저점이었다.


좀 낙담하긴 했지만, 어차피 공부 집중 못 한게 사실이고, 나이 더 먹으면 하고 싶어도 못 한단 생각에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미련없이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2달 쉬고, 작년 10월부터 맘 잡고 출퇴근 시간 줄일려고 회사 근처 고시원으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나름 맘 잡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인생에 고난이 한 번 왔다.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초기라 간단한 수술로 완치된다지만, 나의 충격과 가족들의 걱정은 컸다.

부모님은 당장 공부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오라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남은거 러프하게 반년인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올해 2월에 수술하고, 계속 고시원에서 공부랑 회사 생활을 병행했다.

물론 치료랑 회사생활 하다보니 공부량은 전업 학생들이랑 비교가 안 되었을거다.


나도 그런 벽을 많이 느꼈고, 특히 언어이해에서 그 벽을 크게 느꼈다.

점수가 당최 오르질 않는거다...


그런데 점점 문제를 풀면서 느낀게,

이게 점수가 안 오르는 시험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가 있단거다.


로스쿨 준비생들이 다 그렇듯 난 원래 어릴 때 부터 책 읽는거 겁나 좋아하고, 많이,  빨리 읽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글을 빠르게 읽고, 스키마를 도식화하고, 구조와 핵심을 뽑아내는데는 나름의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근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부분을 대충 읽고, 그냥 머리 속에서  삭제해버리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언어이해 지문 첫 문제를 다 틀린 모의고사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공부 좀 하다보면 바뀔 수 있는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가면 갈 수록 이 습관이 오히려 더 공고해지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나의 말 습관이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나는 "그래서 핵심이 뭔데?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만나본 변호사들은 사람의 말을 끊는 법이 없었다.

고객이 말하는 어떤 말에 어떤 힌트가 있는 지를 모르니까.

고객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잘 변호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 때 느꼈다.

아 이건 그냥 글 읽는 방식을 바꾸는게 아니구나.

이건 내 삶의 태도,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되는 문제인 거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다들 점수를 못 올린다고 하는 거구나.

법조인의 적성을 맞추려면 나를 내려놓고 겸손함을 키워야 하는 거구나.

내가 지금까지 영업을 못했던 이유도 내 똑똑한 맛에 취해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하고, 내 지식을 자랑하려 했기 때문은 아닐까?

대충 읽고 남을 판단하며 내가 흘려버린 디테일 속에 얼마나 많은 정답들이 있었고, 그걸로 잘못 판단했었을까?

리트라는 시험 앞에 얼마나 나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혹시 시험이 실패하더라도 그 변화만 얻을 수 있다면 내 삶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게 아닐까?


그 때 이후로 내 공부의 목적은 바뀌었다.

로스쿨에 진학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 시험에서 내 병과의 싸움, 회사 생활과의 병행이라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길 원했다.

나의 나쁜 습관과 싸워서 바뀔 수 있는 사람이란걸 스스로에게 입증받고 싶었다.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이걸 생각한 4월부터 시험 날까지 100일의 시간동안 회사에 없던 시간은 누구보다 충실하게 공부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납득이 갈만한 점수만 받는다면, 미련 없이 리트 준비를 졸업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졌다.

그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내가 로스쿨에 못 가더라도 회사 생활을 성공할 수 있기에 충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맞이한 대망의 2024 리트 당일....

떨리는 손으로 채점한 결과는 21/26

오늘 확인한 메가 예상 표점은 125.1이다.


이걸로 충북대를 쓸 수 있니 마니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아니 사실 중요하긴 하다. 이 글 다 쓰고 라인 잡아달라고 다시 글쓰긴 할거다.)


하지만, 나는 내 노력의 증거로 첫 집리트 대비 10점, 작년대비 30점을 올렸다.

그리고 나의 발목을 잡던 언어이해는 10프로에는 속한 것 같다.

이토록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 시험에서 말이다.


나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만족한다.

나는 32의 나이에도 평생 만들어온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성공의 경험을 얻었다.


물론 로스쿨 가고 싶지만, 못 가더라도 괜찮다.

나보다 더 오랜 꿈 꾼 친구들이 여기 많다는 사실도 알았으니까.

그게 맞는 걸지도 모른다.


다만 방에서 고생하고 낙담하는 갤러들에게 말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

나같이 준비 안된 인간도 점수 올려봤다.

다만, 정말 내 똑똑함에 취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의 태도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응원한다.

나이 많은 사람, 직장인들도 환자들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회사에서 회식과 야근에도 말 못한 직장인들을 응원한다.


내일 모레 정든 고시원을 떠난다.

회사에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작은 사서 한 고생이지만,

아직 결말은 모르지만, 되든 안되든 내가 리트를 다시 볼 일은 없다.

되면 어디든 열심히 다닐거고, 안되면 현생에 충실할 것이다.

모두들 힘들겠지만, 그냥 그런 태도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준비하고 낙담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