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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 분견군은 서류상 야전군보다 작고 군단보다 규모가 큰 임시 편제로 1945년 4월 21일 베를린 공방전 당시 총통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서류상으로만 편성된 부대였다.


이 분견군의 지휘관은 펠릭스 슈타이너 SS대장이었다.

히틀러는 슈타이너 SS대장이 동 분견군을 이끌고 베를린을 목표로 하고 있던 제1 벨로루시 전선군을 필두로 한 소련군의 북쪽 주공점에 효과적인 역공을 가하길 바랬으나, 실제로는 불가능했다.


4월 21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는 이미 전력이 피폐해진 부대들을 슈타이너 SS대장 휘하에 모아 슈타이너 분견군을 조직했다.

그리고 슈타이너 SS대장에게 제1 벨로루시 전선군의 돌파에 의해 생긴 거대 돌출부의 북익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제9군이 돌출부 남쪽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이 공격을 위해 슈타이너 SS대장은 핀로 운하 북쪽에 배치되어 있던 제9군 소속의 4 SS경찰기갑척탄병사단, 5 경보병 사단, 25 기갑척탄병 사단 3개 사단을 배속받았다.

바이틀링 포병대장의 56 기갑 군단은 베르노이헨 바로 아래 북익을 둔 채 베를린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북익에 있던 앞서 언급한 3개 사단은 에버스발데(베를린 동쪽 24킬로미터)에서 남쪽에 위치한 제56 기갑 군단 방향으로 공격해 나아가 1 벨로루시 전선군의 돌출부를 분단할 예정이었다.

슈타이너 SS대장은 하인리치 상급대장에게 전화해 제5 경보병 사단과 제25 기갑척탄병 사단을 방어 임무에 투입해야 하고, 2 해군 사단이 내륙에 도착해 교대하기 전까지는 두 사단을 빼낼 수 없다며 계획의 실행이 불가능함을 알렸다.

이를 제외하고 작전에 동원 가능한 건 무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4 SS 경찰 기갑척탄병 사단의 2개 대대뿐이었다.


만약, 슈타이너 분견군과 제9군이 건재했더라도,

만약에 만약에 이 2개 대대가 훗날의 일본 만화처럼 흡혈귀들로 구성된 부대였다해도

제1 벨라루스 전선군 예하 부대:
제3군, 제28군, 제48군, 제65군, 제9전차군단, 제1근위전차군단, 제4근위기병군단, 제1기계화군단
총병력: 434,900명
전차: 883량
자주포: 414문
대전차포 1,444문
(구경 76mm 이상) 야포 3,769문
(구경 82mm ~ 120mm) 박격포 3,792문
다련장포: 749문
항공기: 2,303대

로 구성된 제1 벨라루스 전선군을 격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만약 기적이 일어나 제 1벨라루스 전선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했더라도

제1 벨로루시 전선군의 우'익에는 14개 제병협동군, 1개 전차군, 4개 항공군, 118개 소총병 사단과 2개 소총병여단, 2개 기병군단, 8개 기계화 또는 전차군단, 수십 개의 포병 여단들이 작전중이였으며

병력은 125만 4,300명이었고 전차와 자주포 4,070대, 야포 2만 4,363문, 항공기 5,327대로 장비했을 뿐 아니라 추가로 항공기 1,007대가 더 있었다.

제1벨로루시전선군의 좌'익에는 41만 6,000명의 병사와 1,748대의 전차와 자주포, 8,335문의 야포와 박격포, 1,456대의 항공기가 5개의 제병협동군, 1개 전차군, 1개 항공군, 36개 소총병사단, 2개 기병군단, 4개 전차 또는 기계화군단이 작전중이였다.



하인리치 상급대장은 육군 참모총장인 한스 크렙스 보병대장에게 전화해 계획의 불가함을 말하며 히틀러에게 계획의 재고를 요청했지만, 총통이 바쁘다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4월 22일 오후 작전 회의에서 히틀러는 슈타이너 SS대장이 공격을 가하지 않을 걸 확신하고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격분하고 말았다.

그는 전쟁에 패배했다고 선언하고 장군을 비난했다.

그리고 종말이 올 때까지 베를린에 머물겠으며, 그후에는 자살하겠다고 밝혔다.

4월 22일 이후 슈타이너 분견군은 총통 벙커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비참비참 히틀러의 공식적인 최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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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말기에 히틀러는 이미 자신의 몰락을 알고 있었지만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보고에 발작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화를 내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그러자 히틀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주요 인사들은 패배로 소멸한 부대에 대한 보고를 누락시켰고, 이는 결국 수십 개에 달했다.

이를 모르는 히틀러는 이미 소멸한 부대에 대해 "공세에 참가하라.", "뚫린 곳을 막으라."는 등의 명령을 내리게 된다. 전쟁 말기처럼 정보 하나, 부대 하나가 소중한 시점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결국 히틀러는 전쟁 마지막 순간까지 (이미 소멸한) 지원 올 '마지막 부대'에 대한 말이나 읊조리고 있어야 했다.
(발터벵크의 12군, 슈타이너 분견군 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히틀러에게 가장 충격을 준 것은 하인리히 힘러의 배신이었다.

히틀러는 헤르만 괴링은 기회주의적이고 부패한 사람이라고 여겼고 그의 배신은 예상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실망이 크지 않았고 알베르트 슈페어는 다른 세상에 붕 떠있는 예측 불가능한 예술가여서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충성스러웠고 청렴했던 하인리히 힘러의 배신에 대해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며 "최악의 반역이자 배반이다!" 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화를 냈다.

한나 라이치가 훗날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미친 사람처럼 미쳐 날뛰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고 한다. 그러나 이전에 있던 발작들과는 다르게 힘이 많이 빠져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곧 발작은 가라앉았고 그는 괴벨스, 보어만과 함께 문을 닫고 자기들끼리만 회의를 했다.


당시 히틀러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은 그의 끔찍한 몰골을 보아야 했다.

증언에 의하면

히틀러는 힘들어서 몹시 무겁게 상체를 앞으로 굽히면서 다리를 질질 끌고 벙커의 회의실로 나왔다. 균형감각이 없었고 히틀러는 잠깐 걷고 나면(20에서 30m 정도) 이런 경우를 위해서 여기저기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주저앉거나 아니면 옆사람에게 기댔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를 위한 서류들은 모두 3배 크기로 확대된 문자로 특별한 '총통 타자기'로 타자된 것이었는데도 그는 돋보기를 사용해야만 읽을 수가 있었다.

입 가장자리에서는 자주 침이 흘러내렸다. 등이 구부러지고 발을 질질 끌던 히틀러는 머리는 반백이고 일그러진 얼굴에 수염에는 흰 얼룩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부관이 그의 서명을 위조했다.


마지막 몇 주 동안 히틀러는 모스크바 동물원에 전시되거나 유대인이 연출한 연극에 주연으로 출연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아니 망상을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망상들은 4월 29일 무솔리니의 최후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는 무솔리니가 죽고 나서 로레토 광장에 있는 주유소 천장에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렸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시체에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최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 중 그와 가까운 측근인 하인 하인츠 링게, 기사인 에리히 켐프카, 그의 비행사인 한스 바우르 등에게 자신의 유해가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히틀러는 준비된 독약이 신속하고 확실하게 죽음을 불러오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히틀러가 아끼는 애완견인 블론디는 한밤중에 화장실로 끌려와서 히틀러의 개 조련사인 토르노브 상사가 억지로 입을 벌리고 있는 동안 관저 의료진 중 한 사람인 하제 교수가 집게를 이용해 독약 앰플을 으깨서 먹여 죽었다. 곧이어 히틀러가 블론디의 시체를 무표정하게 한참동안 바라보았고, 다른 벙커의 사람들을 회의실로 불러서 이별을 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에게 말을 건넸으나 히틀러는 대답하지 않거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입술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리고 동거녀, 아니 전날 결혼한 부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


그 직후 부하들이 그의 시체를 총통관저 화원으로 끌고 나와 주차된 자동차에서 무려 190리터나 되는 대량의 휘발유를 빼 내어 화장했지만, 저장된 기름의 상당량을 사용했음에도 제대로 된 화장시설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태운 게 아니라 대충 시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소실시키지 못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히틀러의 명령은 자신의 사체를 철저하게 소각할 것이었지만 불을 붙이자마자 포격이 떨어지기 시작해 모두 벙커로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화장한 직후에 소련군의 포화로 인해 시신의 상당부분이 훼손됐지만, 소련군은 히틀러를 진료하던 치과의사의 조수를 찾아내 치아를 대조해 그의 시신을 확인하는 데 성공한다.

이 시체는 1년이 지난 1946년에서야 겨우 전부 수습되어 비밀리에 탄약 상자에 넣어 매장되었는데, 스탈린은 그의 추종자들이 이 시체를 찾지 못하게 하려고 보안에 상당한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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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탄약 상자는 독일과 소련 각지를 돌며 무려 8번이나 이장되다 결국 70년대 중반 동독 KGB 지부에 명령이 하달되어 두개골이나 이빨 등 신원 확인이 가능한 일부분만 소련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화장된 뒤 작센-안할트 주, 마그데부르크 근교 엘레 강 개울에 뿌려졌다. 



이것이 냉전이 끝나고 밝혀진 공식적인 히틀러의 행방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아직 숨이 붙어있을지도 모르는 히틀러의 추종자들의 힘을 빼기 위해서 히틀러 시신의 행방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마치 히틀러가 살아있는 듯이 꾸며서 그의 추종자들이 그 흔적만 쫓다 힘빠지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KGB에게 히틀러를 잡아오라고 거짓 지시를 내려 1950년대까지 KGB는 아르헨티나 전 지역을 샅샅이 뒤지는 헛수고를 해야만 했다.